소설리스트

9. 짝 (10/12)

9. 짝

지고의 쾌락을 나누는 뱀들.

갈라진 혀로 나누는 감미로운 입맞춤.

체이스필드 후작가는 장장 일주일 동안 사용인을 비워 두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집안 형제의 발정기였다. 깐깐한 알파 가문에서 종종 있는 일이었기에 고용인 모두가 기꺼이 유급 휴가를 받아들였다.

미혼의 형제 아닌가. 누구를 불러 성 처리를 하려는가. 고급 오메가 창부? 창부 전용 마차를 보진 못했는걸. 집을 떠나는 시녀들은 삼삼오오 모여 속삭였다. 저길 봐. 후작 부인의 방에 불이 켜졌어. 부인께서는 저택에 머무르시려나.

“위험하지 않나.”

“뭐가 위험해. 최고급 억제제를 상비하고 계시는데. 게다가 못 들었어? 부인께서는 열성이시라잖아. 아무 향기도 나지 않는. 러트에도 딱히 영향받지 않으실 거야.”

누군가 속삭이자 그 옆에서 다른 시녀가 톡 쏴붙였다.

그들은 머릿속에 떠오른 불결한 이미지를 떨치려고 애써 화제를 전환했다. 아무도 대역죄의 가능성을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설마 그럴 리가 없어. 아무리 피가 안 섞인 사이래도 부모 자식인데.

동년배의 모자지간.

섹스에 환장한 종족이라 은밀하게 조롱받는 알파와 오메가.

에이, 생각만으로도 천벌을 받을라. 가장 어린 시녀가 입술을 꾹 다물고 도리질을 쳤다.

“그거 알아?”

“뭘?”

“짝짓기의 정사는 특별하대. 서로 바라만 봐도 짜릿하다더라. 일반인보다 수십, 수백 배 감도가 예민해져서 그야말로 천국의 교접이 따로 없다더라.”

“얘, 이상한 책 좀 그만 봐. 허무맹랑한 소리하고는. 짝이라는 게 어디 그렇게 흔하던가?”

“진짜라던데…….”

“그런 건 모르겠지만, 짝이라는 게 참 멋지긴 해. 그렇지 않아?”

또 다른 시녀가 끼어들었다.

“오직 서로의 향에만 발정한다는 게.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뚜렷한 증명이잖아. 짝은 한쪽이 죽으면 다른 쪽도 따라서 미쳐 죽는다지.”

“그래, 그거 하나는 편하다. 남편 놈 바람피우지 못하게 단도리하기에는 딱이네. 다른 계집 가랑이를 두고는 평생 못 세울 거 아냐.”

속닥거리는 처녀들 사이에서 와락 웃음꽃이 피었다.

그런 그들과 거리를 두고 도도하게 저택 대문을 나서는 여인이 한 명 더 있었다. 실비아 브렛이었다. 내심 저택의 핵심 관리자를 자처했기에, 저들과 함께 쫓겨나는 처지에 자존심이 상했다. 흥, 콧방귀를 뀐 그녀가 후작 부인 방의 창문을 흘겨보았다. 미리미리 ‘그’가 시킨 지령을 남김없이 시행했기에 마음만은 홀가분하여 다행이었다.

저택에 돌아올 때 즈음이면 무언가 달라지겠지.

후작 부인의 방은 다시 예전처럼 텅 비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충실한 종으로서 상전의 포상을 받게 될 거고. 승진을 부탁드리자. 궁정에 들어갈 수 있는 소개장도. 어쩌면 손도 한 번 잡아 주실지 모르지.

콧잔등이 붉어진 실비아는 치맛자락을 펄럭이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뒤로 짧고도 긴 일주일이 유여하게 흘렀다.

그동안 후작 부인의 방은 단 한 번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고용인들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칩거한 체이스필드가의 알파 형제는 광란의 발정기를 보냈음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들의 믿음이 틀렸다. 결혼한 지 며칠 만에 미망인이 된 후작 부인은, 일곱 낮 일곱 밤을 단 한 순간도 홀로 보내지 않았다.

“맞혀 봐요, 어머니. 지금 자궁을 찌르는 게 누구의 것인지.”

땀에 흠뻑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긴 미겔이 짓궂게 속삭였다. 바로 옆, 좆질에 여념 없는 동생의 어깨에 팔꿈치를 올려 기댄다. 축축했다. 헐벗은 휴고의 짙은 살갗 역시 연속된 정사로 인하여 기이하고 뜨거운 열을 뿜고 있었다.

“올가.”

푸른 눈의 형제는 엉망으로 흐느끼고 있는 올가를 홀린 듯 내려다보았다.

직접 무릎을 버티어 잡고 벌리고 있는 그녀의 음부는 헤집어 대는 좆 때문에 온통 붉게 헐었다. 하도 울어 눈가 또한 짓물렀다. 방 안의 불빛을 못 견딜 만큼 괴로워하기에 임시방편으로 비단 안대를 매 준 참이었다. 비단으로 가려진 눈가는 이미 환희의 눈물로 흥건했다.

미겔은 방 안을 가득 채운 만리향을 폐 깊숙이 흡입했다.

아, 올가와 짝이 되고 나니 그녀의 향이 더욱 생생해졌다. 어느 정도냐면, 페로몬을 약간 맡은 것만으로도 그녀의 감정까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어서 대답해 보세요. 수천 번을 번갈아 찔러 댔는데 설마 아직도 구별이 안 됩니까?”

“아, 하, 아… 으응……!”

재촉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두 살 어린 모친은 그저 모자란 숨만 할딱일 뿐이었다. 정답을 몰라서가 아니다. 끊임없이 자극받아 고조된 성감에 외부의 질문을 듣고 이해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을 뿐이었다. 그녀는 짝의 발정기가 어떤 것인지 지난 일주일 동안 온몸으로 혹독하게 깨달았다.

그 결과 목소리가 아예 탁하게 쉬어 버렸다. 이내 색, 색, 바람 빠지는 소리가 신음에 섞였다. 그러자 몸을 일으킨 미겔이 가까운 협탁에서 물병을 가져왔다. 찬물을 입에 머금어 입맞춤으로 그녀의 목을 축여 주었다. 그동안에도 손이 쉬질 않는다. 심하게 출렁거려 아파 보이는 젖을 받치고 잇자국이 가득한 유륜과 젖꼭지를 지분거렸다.

“후욱…….”

그사이 휴고의 사정이 끝났다. 침대 전체가 철썩이도록 올가의 속살을 짓이기던 움직임이 멎은 것이다. 쫀쫀한 질 주름으로 그의 페니스를 물어뜯고 있는 그의 짝은 미겔의 입 안에서 절정의 신음을 내지르는 중이었다. 입맞춤을 빼앗겼다. 하여 미간을 찌푸린 그는 대신 꼿꼿하게 솟구친 올가의 음핵 알갱이를 손끝으로 비비고 떨어졌다. 흡사 나무뿌리를 낳듯 굵직한 음경이 벌어진 덩잇살 밑으로 쏟아진다. 질구를 힘겹게 빠져나온 귀두구에서 걸쭉한 정액 가닥이 늘어졌다.

“하… 애액에 불어 터진 것 같다.”

전신의 신경이 불타는 듯한 사정의 쾌감. 팔뚝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 낸 휴고가 거칠게 씨근덕거렸다. 그러자 시선만 향해 그를 바라본 미겔이 물음표를 띄웠다.

“좆이?”

“특히 귀두가. 충혈되었어.”

“난 좆 뿌리가. 노팅할 때 너무 꽉 끼었나 봐. 아, 사랑스러운 여인. 어쩜 이렇게 좁아터졌는지.”

“미친놈, 양심이 있으면 네 자지 크기나 재어 보지 그래.”

“하하, 하기는. 둘이나 되는 알파 상대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올가.”

오르가슴의 여운에 간헐적으로 떨고 있는 올가의 콧잔등에 쪽, 키스한 미겔이 다시 일어섰다. 이번에는 납작한 원통 갑을 가져와 휴고에게 던졌다.

“자, 듬뿍 발라.”

“뭔데?”

“궁정에서 유행하는 방사(房事) 연고. 음경 껍질과 귀두 점막, 자궁구 모두 튼튼하게 해 주는 용도야. 통증 완화 효과도 있고. 입소문 파다한 거야.”

“별 게 다…….”

황당해 혀를 차면서도 휴고는 결국 약초 냄새 나는 연고를 반쯤 풀 죽은 성기에 치덕치덕 발랐다. 남은 연고는 미겔의 몫이었다. 특히 페니스 선단에 두툼하게 연고를 얹은 그가, 간만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올가의 위로 기어올랐다.

“아, 싫어. 미겔, 그만.”

“응, 그래요. 약만. 약만 발라 줄 테니까요. 그 뒤에 원하는 만큼 쉬어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미겔이 가냘프게 팔을 휘두르는 올가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자연스럽게 후배위 체위가 되었다. 날갯죽지가 도드라진 그녀의 뽀얀 등허리에 채찍이 지나간 흉이 실뱀 자국처럼 어지러웠다. 그처럼 가엾게 얽은 살갗에 촘촘히 입 맞춘 남자의 눈동자에 서늘한 살기가 어렸다.

노망난 늙은이. 곱게 뒤지게 두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일부러 잔학한 속내를 밝혀 올가를 겁먹게 할 필요는 없었다. 미겔은 자신의 잇자국이 선명한 올가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 부드럽게 그녀의 안으로 삽입했다. 처음에는 정말로 예민하게 날선 내벽에 연고를 발라 주듯 허리 짓이 부드럽고 유연했다. 그러나 결합이 야금야금 깊어진 이후에는 대번에 추삽 동작이 달라졌다.

“아파, 흣… 아파요, 미겔… 아흐, 앗……!”

“거짓말. 하하, 냄새로 다 알아요, 올가. 하아. 있는 힘껏 찔러 주는 걸 좋아하잖습니까. 느껴지나요. 얼마나 제가 깊이 쑤시고 있는지. 여기쯤 박혀 있나요.”

“읏……!”

배꼽 위를 강하게 압박하는 손바닥 때문에 순식간에 요의가 치밀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봐줄 남자가 아니었다. 올가의 정수리에 코를 박은 미겔이, 그녀를 남김없이 감출 만큼 차이가 나는 체격으로 거침없이 성교라는 파도를 탔다. 그야말로 휴고의 거친 몸짓에 지지 않는 사나움이었다. 정사의 풍랑에 뒤흔들리는 침상에서 이불이며 베개 따위가 모조리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하아. 하아.”

이윽고 머릿속이 전부 타 버렸다. 올가는 정말로 산화하여 한 줌의 재가 되었다. 미겔마저 뜨겁게 파정하고 빠져나간 아랫길이 너무나도 홧홧했다. 둔통의 여운이 남은 배 속이 지끈지끈하여 견딜 수가 없다. 온 살갗에 거스러미가 터 그 고랑 사이사이를 자잘한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것 같기도 했다.

마를 일 없는 다리 사이가 만족스럽다니.

오래전에 미친 게 분명했다.

“올가.”

침대보에 쓸린 안대가 헐거워졌다. 그 끈을 조심스레 걷어 치운 휴고가 커다란 엄지로 올가의 짓무른 눈가를 부드럽게 쓸었다. 입맞춤을 익히 예상할 수 있었다.

“으음.”

그녀의 작은 턱을 검지로 받친 남자가 입 안에 머금은 부드러운 콩소메 수프를 입술로 넘겨주었다. 갓 난 새를 보듬는 어미처럼 쉼 없이 떠먹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남지 않은 올가는 그 수프를 달게 목 넘겨 삼켰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몸이 바로 돌려졌다. 곧장 안온한 훈기가 그녀의 전신을 덮었다. 뜨겁게 훈증한 전신 수건을 가져온 미겔이 그녀의 몸을 닦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들의 보살핌 속에서 올가는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끌려갔다.

이날이 꼭 일곱째 아침이었다.

첫날밤 가장 격렬했던 발정기는 짝짓기 도중 세 차례의 노팅을 거쳐 점차 잦아들었다. 그간 금수와 다름없었던 알파들과 뒹굴면서 아무런 상처가 나지 않은 건 정말이지 요행에 가까웠다. 대신 올가는 목덜미와 겨드랑이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흉을 얻었다. 짝 된 징표였다.

“너무나 애틋해서 숨도 못 쉬겠어. 이것도 짝짓기의 효과인가?”

이른 아침의 햇살은 암막 커튼이 완벽히 차단하여 방 안은 아늑했다.

잠든 그녀의 옆에 길게 누워 있던 미겔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낮게 잠긴 목소리는 정사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눅눅했다.

“글쎄, 나는 너무나 오래 전부터 그래서. 알 수가 없군.”

그 반대편에 누운 휴고가 올가의 머리칼을 손등에 휘감아 향을 맡았다. 자신의 냄새가 충분히 배어 만족스러웠다. 젖은 앞머리가 이마를 덮어 제 나이대로 보이는 기사가 배부른 포식자처럼 목을 울렸다.

“올가는 우리를 선택하겠지.”

“두려운가.”

“약간은.”

그녀마저 자신을 버린다면 진정 미쳐 버릴 것이다.

단지 막연한 불안인데도 단전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미겔은 부산한 사념을 떨치려는 듯 올가의 손가락을 핥았다. 다행히 칼에 베인 상처가 옅어졌다.

“발가락은 의외로 상처가 깊었어.”

“거봐, 나는 처음부터 반대했다.”

“발뺌은. 너도 똑같은 몰이꾼이었던 주제에.”

“여하튼 그래서, 계획은?”

“속행해야지. 엉덩이 무거운 염소 새끼를 끌어내야지 않나. 올가를 우리의 부인으로 두기 위해서는 절대 후환거리를 남겨 두어선 안 돼.”

그렇게 올가를 사이에 두고 형제가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던 때였다.

…차릉.

차릉, 차릉. 대저택의 정문을 두드리는 종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고용인들은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올 텐데. 누구지.”

지나가는 길에 구걸하려고 들른 이방인은 아닌 모양이었다. 끈질긴 알람에 마지못해 침상에서 내려온 미겔이 창가의 커튼을 손끝으로 걷었다.

“아하.”

“누구?”

“제 발로 찾아온 개자식.”

얼마나 되었다고 거액 8백 스랑을 전부 털어먹은 건가. 과연 빈민가에서 소문난 도박꾼답군그래. 정문 밖에서 모자를 구겨 쥐고 서성이는 허드슨을 내려다본 미겔이 이를 드러내고 비소했다.

어떻게 처리해야 속이 시원할까.

엄한 아비랍시고 올가의 등을 가죽 벨트로 후려쳤겠다. 그렇다면 똑같이 등짝을 찢어발겨 줄까. 아, 마침 사막 경계에 약식 지뢰를 새로 만들어 두었다. 저 기름진 몸뚱이로 시연을 해 봐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여기 있어. 내가 도맡아서 처리하고 올 테니.”

미겔은 홑겹 셔츠를 단숨에 걸치고 넓은 보폭으로 걸어 방문을 열어젖혔다.

“꺄악……!”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외부인이 한 명 더 나타났다. 열쇠 구멍으로 방 안을 훔쳐보던 실비아가 갑자기 문이 열린 바람에 무게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졌다.

“미, 미겔 공. 오랜만에 뵈어요. 저는 어, 분부하신 것보다 조금 일찍 돌아…….”

뜨끔하여 눈알을 굴리던 그녀가 한순간 얼어붙었다.

“세, 세상에…….”

미겔의 뒤로 누워 있는 남녀 한 쌍을 발견한 것이다.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알몸의 휴고 퍼스 경이 화장기 하나 없이 잠든 후작 부인을 소중히 보듬고 있었다. 올가의 목에서, 초커가 사라졌다.

오, 셰라 여신이시여.

이들이 텅 빈 저택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벌였는지 너무나 자명했다. 방 안을 짙게 메운 페로몬을 맡지 못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훔쳐보았다.

쿵. 뒷걸음질 치려다가 뒤로 넘어진 실비아는 얼어붙은 혀를 굴리려고 애를 썼다. 그런 자신의 위로 드리운 미겔 공의 그림자가 지나치게 불길했다.

“이런, 처리해야 할 건수가 하나 더 생겼어. 어쩔 수 없군. 휴고, 정문 쪽은 네게 맡기마.”

배덕이 도사린 침실 문을 가로막은 미겔이 고개를 뒤로해 외쳤다. 그러자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를 태연하게 걸친 휴고가 이내 벽난로가 달린 벽면의 비밀 통로를 밀고 사라졌다.

“…미겔 공!”

“쉿, 조심해야지. 어머니가 깨시면 어떡하려고.”

끼익… 달칵.

완전히 겁에 질린 실비아를 향해 손가락을 세운 미겔이 등 뒤로 침실 문을 닫아걸었다. 그 작은 소음이 어떠한 선고처럼 들린다. 적확한 비유였다. 자칭 그의 오른팔이라고 떠들고 다니던 시녀의 얼굴이 대번에 창백하게 질렸다.

“함구, 함구하겠습니다, 귀공. 절대로 오늘 본 사실을 입 밖에 발설하지 않을 거예요. 약속드리겠습니다.”

“오늘 보았다라. 뭘?”

“……!”

맙소사, 실수했다. 약속을 내건 행위 자체가 그들의 비밀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는 방증이었던 것이다. 세련되지 못한 실책에 크게 당황한 실비아가, 앞뒤 가리지 않고 얼른 저택 주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새빨간 비상경보가 머릿속에 진동하고 있었다.

“마, 말이 헛나왔습니다. 아니에요,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로요.”

“그랬겠지, 우리 형제가 고귀하신 여인과 색사를 나누고 후희를 즐기는 장면 같은 걸 훔쳐보진 않았을 거야. 시키지도 않은 이른 출근을 해서 주인 방까지 훔쳐보던 시녀 양.”

“예, 그럼, 그럼요……!”

미겔이 자신의 이름조차 외우지 못했다는 사실과 하층민 신분의 올가를 고귀하다 찬양한 모순에 마음 상할 겨를이 없었다. 실비아는 그저 주인의 비위를 맞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존 본능이었다.

“그러니 제발 살려 주세요, 귀공! 이제까지처럼, 앞으로도 더없이 충실한 종이 되겠습니다. 믿어 주세요. 제발…….”

“하하, 내가 널 왜 죽이겠나.”

“아아, 감사, 감사합.”

“잘못한 만큼만 벌할 거야.”

“예……?”

잘못 들은 줄로만 알았다. 감사를 연발하던 실비아는 미겔의 아름다운 미소 이면의 뜻을 뒤늦게 파악하고는 소스라쳐 떨어져 나갔다.

“그러시면, 안 되시잖아요, 귀공. 억울합니다. 저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시키신 대로 충실히 이행했을 뿐인데……! 오히려 상을, 커다란 상을 받을 줄 알았는데.”

촌년에게 귀족의 본분과 도리를 교육해 주기를 부탁하셨지 않았나. 때때로 공개적인 장소에서 아닌 척 후작 부인을 조롱하여도 그는 웃기만 했다. 거짓에 기반한 소문이 저택 밖으로 새어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여 실비아는 자신이 그의 마음이 흡족할 만큼 맡은 바를 아주 잘 처리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지난번, 면도칼을 내밀어 주셨을 때는 어떠했던가.

그녀는 주인의 침묵을 제대로 이해하고 행동했다. 아무런 의심 없이 슬리퍼를 신자마자 칼날에 베이고도, 꼴에 후작 부인이랍시고 위엄을 지키려고 태연한 척 식은땀을 흘리던 계집의 꼴이 참 유쾌했지 않나.

“주제를 모르고 뻔뻔하게 기어들어 온 부인이 미우셨잖아요! 그래서, 저를 시켜서 그녀를 쫓아내시려고.”

“글쎄, 내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나.”

“……!”

그야 그는 한 번도 그렇게 속내를 내색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철석같이 믿게 했다. 귀족의 의사 표현이 으레 그러하듯이 말이다.

“저는 귀공께서 시키신 대로.”

“그래, 시킨 일은 잘했어. 그 부분을 탓하려는 게 아니야. 너 또한 훌륭한 몰이 개였다. 포상이라… 아, 브렛 자작가. 요새 형편이 좀 기울었다고 들었는데. 좋아, 일가가 평생 먹고사는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농지를 세습 대여해 주도록 하지. 하지만.”

복도의 반대편 벽까지 뒷걸음질 쳐 달라붙은 실비아에게 가까이 다가온 귀공자가, 삽시에 미소를 거두고 무표정하게 변모하였다.

“어머니를 괴롭히면서 즐겼잖나. 고귀하신 분을 농락하며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고, 대리 만족했나? 그런 것까지 명령한 적은 없는데 말이야.”

“아, 아. 그러니까, 저는. 흑!”

“그건 별도의 죗값을 치러야지.”

천천히 무릎을 굽혀 앉은 미겔이 한 손을 뻗어 실비아의 이마를 짚었다.

소수 인종인 알파가 수적으로 월등한 베타 위에 군림한다.

저열한 짐승의 족속이라 손가락질하면서도 베타는 알파의 위압 앞에서 굴복하고 마는 것이다.

태양의 온도를 육안으로 확인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뜨거움을 모르던가. 정오의 태양을 맨눈으로 오래도록 응시하면 종내에 눈이 멀어 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베타에게는 무색무취한 알파의 페로몬도 마음먹고자 하면 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악마의 이능이라 불리는 힘. 그들 알파가 영원토록 포식자로 군림할 수 있는 저력이자 자연의 법칙이었다.

그 위력을, 휴고도 저택의 복도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선보이고 있었다.

“퍼스 경! 오, 드디어 사람이 나왔구려. 하도 깜깜무소식해서 그사이 이 으리으리한 후작가가 유령 저택이라도 되었나 싶었지 뭐요.”

이제나저제나 저택의 대문이 열리길 기다리던 차였다.

무심하게 걸어오는 기사를 발견한 허드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외조부 맞이가 형편없다고 욕설을 지껄이던 흉측한 표정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벌써 서리가 앉는 계절 아니오. 바깥에 계속 서 있으려니 얼어 죽을 것 같구만. 퍼스 경, 집 안에 난로를 때우기 시작했는가? 내 아직 아침도 먹지 못한 차라 배를 몹시 곯았소. 뜨뜻한 난롯가에서 기름진 스튜 한 그릇만…….”

“알긴 아는가 보군. 식사도 거르고 이른 아침부터 달려온 이유가 뭐지.”

“아, 하하. 허이참, 세상에. 내 올가에게 그리 신신당부했거늘. 어딜 가나 예의범절이 최우선이라고 말이오. 경은 몰랐던 것 같지만, 큼. 우리 가풍이 그렇소. 어르신을 공경할 줄 알고, 크흠.”

하나 이렇게까지 돌려 말하는데도 휴고 퍼스는 대문의 철창 너머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족보로 따지자면 외조부 되는 허드슨을 서슬 퍼런 청안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그에 타고나길 간이 작은 소인 허드슨은 없는 꼬리가 말리는 기분이었으나, 이번에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기실 물러날 곳도 없었다.

내가 후작 부인의 아비다. 딸년이 신분 상승했으면 그 아비는 더 귀한 대접을 받아 마땅하지 않는가. 그 계집을 키워 진상한 것은 자신인데, 올가는 이런 대저택에서 호의호식할 동안 자신은 차가운 골방에서 지내며 푼돈으로 짤짤이 도박이나 하는 게 말이 되냔 말이다. 암, 어불성설이지. 그 짤짤이 도박으로 올가의 신붓값에 다 쓰러져 가는 집문서까지 털어먹은 사내가 초조하여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철창을 움켜쥐었다.

“이보시오, 퍼스 경. 먼저 기별을 알리지 않고 찾아온 건 미안하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사이인가. 난 자네 할아버지 된 사람 아닌가. 신분보다 인륜이 먼저요. 내 딸이 보고 싶어 죽겠으니, 혈연의 정에 이끌려 찾아온 노인을 너무 홀대하지 마오.”

대놓고 대접을 요구하는 허드슨을 보자니 실소가 나왔다.

과묵한 휴고의 입꼬리가 느슨해졌다. 올가는 가히 견부 아래 호녀였다. 어떻게 저렇게 닮은 점이 없는지 신기할 정도다. 오히려 저 비계칠한 혓바닥이 연상시키는 자는 따로 있었다. 미겔 체이스필드. 둘에게 말싸움을 붙여보면 볼만하겠군. 헛웃음이 이어졌다. 어리석은 허드슨은 이를 호조로 여기고 더욱 대문에 달라붙었다.

“그래, 내 딸은 잘 있는가? 부족함이 많은 아이지 않나.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 주던 아비가 없는 빈자리가 클 거야. 외로울 테고. 아, 좋은 수가 있네. 이참에 나도 저택에 머무르면 어떨까.”

“하.”

“다른 건 필요 없소. 빈방 하나만 내어 주면 족하오. 내 아비로서, 교육자로서 정성껏 올가를 보필하며 곁에 있으리다.”

“그러다 원하는 만큼 돈을 내놓지 못하면 또 등허리를 갈기려고.”

“뭐, 뭐요?”

“너 같은 새끼는 뻔하지. 점찍은 먹이의 골수까지 기를 쓰고 빨아먹는 기생충이 어디 한둘인가.”

“퍼스 경, 그 무슨 망발을… 커, 커흑!”

“아비라는 허울로 여태 그녀의 피를 빨았으면 되었지 않나. 알량한 소갈머리라도 보존하고 싶었으면 이렇게 나타나지 말았어야지.”

“크… 아, 악!”

기습적으로 머리통을 붙잡혔다.

한순간 두피가 뜯어지고 머리뼈가 빠개진 줄 알았다. 허드슨은 철창 밖으로 뻗어 나온 휴고의 손아귀를 떼어 내려고 발악했으나 무시무시한 악력은 요지부동이었다.

삽시에 뇌수가 끓는다. 흡사 뇌막에 직접적으로 끓는 물을 붓는 듯한 그악한 고통이 허드슨을 강타했다. 우성 알파의 공격적인 페로몬을 전신으로 후려 맞은 그가 게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소인배의 동공은 눈꺼풀 뒤로 까무룩 넘어가 흰자만 보일 지경이었다.

“복창해. 다시는.”

“다, 다시는… 컥.”

“나타나지 않는다. 올가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그녀를 떠올리지 않는다. 이대로 사라져 쥐 죽은 듯이 살다가, 죽는다.”

“쥐 죽은 듯이… 살다… 켁, 주, 죽는다…….”

순식간에 반병신이 된 허드슨의 육중한 몸이 철창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뇌수가 녹아내릴 정도로 신경 체계를 건드리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휴고는 엉금엉금 기어가는 허드슨의 궁둥이를 노려보고 뒤돌았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 짐승이고, 죽음은 사치스러운 상벌이므로, 죽임을 당할 가치도 없는 저자는 일평생 저리 미쳐 살다 비참한 말로를 맞을 것이다. 오메가 딸을 팔아 신세를 떨치려 했던 도박꾼의 최후였다.

“다녀왔어?”

“그래, 그쪽은?”

“너와 비슷하게 처리했지.”

올가의 침실에는 미겔이 먼저 돌아와 있었다. 창가에서 허드슨의 종말을 지켜보았다. 목젖을 울려 낮게 웃은 그가 걸터앉은 창턱에서 일어섰다. ‘브렛가는 미친 딸과 막대한 부를 동시에 얻게 될 거야.’ 시처럼 실비아의 끝을 읊고는 전면 창의 암막 커튼을 단숨에 걷었다.

새벽안개가 갰다. 푸른 하늘을 차지한 노오란 가을 햇볕이 따사롭게 그의 금발 위로 쏟아졌다.

금목서가 만개할 날이 머잖았군.

날짜를 가늠해 본 그가 가만히 올가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세요, 올가.”

“으음.”

“잠드신 사이에 당신 아버지께서 다녀가셨습니다.”

“아버지가요……?”

“예, 지난날 과오를 깊이 참회하신답니다. 당신께 진실한 용서를 구하시고 떠나셨습니다. 수도원에 들어가신다고 머리를 전부 깎으셨더군요.”

“…말도 안 돼요. 노름판에서 집까지 저당 잡히신 거겠죠. 빚쟁이들을 피해서 피신 가신 겁니다. 곧 돌아오실 거예요…….”

“하하하, 그럴지도 모르죠. 아, 그리고.”

찰칵.

비몽사몽하여 힘이 없는 올가의 가녀린 목덜미에 다시 초커를 채워 준 미겔이, 지나가는 어투로 실비아의 소식을 덧붙였다.

“시중을 들던 시녀가 집안 문제로 일을 그만둔다고 합니다. 당분간은 제가 당신의 머리를 빗겨 드려야 하겠군요.”

성한 곳 없이 물고 빨아 울혈이 낭자한 살갗이 아이보리색 슈미즈에 감추어졌다. 특히 혹독하게 괴롭힘당한 젖꼭지는 부드러운 비단 옷감의 감촉에도 쓰라려 따끔했다. 인상을 찌푸린 올가의 뒤에 앉은 남자가 유려한 빗질을 시작했다.

“…그래요.”

실비아가 떠났다고.

뒤돌아본 올가와 미겔의 시선이 잠시 맞부딪혔다. 캐내려는 시선과 숨기려는 시선. 찰나 팽팽해진 긴장은 싱겁게 끊기고 말았다. 올가가 먼저 눈을 돌린 것이다.

“어쩐지.”

마저 다가온 휴고가 그녀의 동그란 이마에 정애의 키스를 했다. 그에게 물린 겨드랑이가 욱신거렸다.

“이렇게 될 것 같았어요. …처음부터.”

두 남자의 아침 시중을 받으며 올가가 한숨처럼 속삭였다.

***

새파랗게 젊은 부인을 두고 죽어도 죽지 못한 후작의 원혼이 떠돈대.

이윽고 해안가를 낀 북부 지방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낮의 볕은 따가울 정도였으나 서둘러 해가 저물고 나면 제법 을씨년스러운 추위가 발목께를 휘감는 계절이었다. 그러면 연례행사처럼 으스스한 이야기가 소곤소곤 유행하는 것이다.

어느 집안 처녀가 미쳤대.

어떤 실성한 도박꾼이 강둑에서 고꾸라졌대.

시시한 소문들은 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스러졌다. 기실, 동북부 변경 지역 사람들의 현 최대 관심사는 체이스필드 후작 가문의 대소사였다. 여전히 황제의 칙서는 내려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문 직계의 형제가 수도의 부름을 받는 일도 없었다.

변경의 역사 최초로, 기이한 2인 체제가 이어지고 있었다.

변경백 대리 휴고 경은 국경 경계를 도맡았고, 그의 형 미겔 공은 자연스레 영지의 관리 업무를 대행했다. 둘 중 누가 차기 후작이 되려는가. 낙폭이 큰 기온 차에 제대로 감기에 걸린 파르보만 궁금해하는 게 아니었다. 모든 이들이 숨죽여 그들 형제를 예의 주시했다.

그러는 사이 이상한 구설이 장내 안팎을 떠돌기 시작했다.

“아응, 으, 흐… 아, 좋아, 좋아…….”

“저도 좋습니다, 후, 완전히 중독되었어요. 하루라도 당신을 안고 이 짓을 못 하면 아래가 터질 거 같아. 후윽… 아십니까? 꿈속에서도 당신이랑 붙어먹어요. 당신의 벗은 엉덩이를 껴안고 자면서 몽정하다니. 웃기지도 않아. 하하.”

올가. 또는 어머니.

부르는 명칭은 생략했다. 밖이었기 때문이다.

가족 정원의 안쪽, 외국에서 들여온 화초를 기르는 유리온실이었다. 볕이 좋으니 화원에서 점심을 들자고 올가를 꾀어낸 참이다. 물론 미겔은 기회를 잡자마자 그녀를 올라탔다.

풍성한 치맛단을 가슴까지 젖혀 올리고 유백색 하이 스타킹은 발목까지 잡아 내렸다. 도시락 바구니를 내려놓은 작은 티 테이블에 여체를 누이고 쑤석이는 행위는 퍽 위태로웠다. 구두가 벗겨진 올가의 종아리가 미겔의 팔뚝 양옆까지 들려 마구 흔들린다. 테이블이 휘청거리는 소음 외에도 정낭으로 통통한 회음을 때리는 음란한 효과음이 요란했다. 물 먹어 찌걱거리는 마찰음은 덤이었다.

“하아… 이러다 녹겠습니다.”

좆이. 당신의 보지 안에서.

어떻게 수만 번을 쑤셔도 이리 좁죠. 축축하고 뜨거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탄복하는 속삭임이 쉬었다. 하도 깨물고 빨아서 두 배 이상 통통해진 젖꼭지를 손끝으로 당기자, 움찔거리는 내벽이 더욱 자잘하게 경련했다. 하.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애무였다. 경부까지 틀어박힌 페니스 심지가 와들와들 깨물리는 감각에 남자의 등이 후끈 땀으로 젖었다.

비등하게 자지러지는 건 올가도 마찬가지였다. 테이블에서 떨어질까 봐 무서워 미겔의 허리춤을 꽉 움켜쥔 그녀가 흐느껴 울었다. 짓찧어지는 배 속부터 흥분이 지나쳐서 끝도 없이 눈물이 샘솟았다. 내벽이 한계까지 벌어진 포만감. 건드리기만 해도 몸서리칠 예민한 점막을 뭉툭하게 긁는 선단 모서리. 페니스의 핏줄까지 생생하게 그려졌다. 유독 음경이 긴 미겔이 자궁구를 찌르듯이 밀어 올릴 때마다 남자도 아니건만 싸고 싶다는 강렬한 사정의 욕구가 치밀었다. 으응. 참는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눈물에 번진 빛무리가 그늘을 드리운 나뭇잎 사이로 드문드문했다.

“그냥 우는 당신의 얼굴도 짜릿하지만.”

“아……!”

“섹스하면서 우는 얼굴은 정말로 날 미쳐 버리게 해요.”

휴고 그 새끼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겁니다.

낮게 뇌까린 미겔이 혀끝에 고인 침을 밖으로 뱉었다. 씹질만 시작하면 코로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리는 탓에 혀가 바싹 마르기 일쑤인 올가의 입 안을 축이기 위해서였다. 짝의 체액은 가히 감로수처럼 달고 맛있는 법인지라. 올가는 거리낄 것 없이 허겁지겁 미겔의 타액을 받아 마셨다. 밤이면 밤마다 미겔이 그녀의 가랑이를 미쳐 빨듯이.

“아, 아아, 아… 미겔!”

“후읏…….”

절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몸속 세포가 일시에 끓어올라 산화할 순간. 오르가슴이 중첩되어 올가의 신음이 고조되었다. 때를 맞추어 사정하려는 미겔의 몸짓도 가빠졌다. 한동안 최대로 발기하여 믿기 어려운 길이의 음경이 문드러진 올가의 질구를 거품 나도록 깊숙이 드나들 때였다. 노크도 없이 유리 화원의 문이 벌컥 열렸다.

“……!”

소변보다 물줄기가 훨씬 거센 정액이 질 내에 뿜어진 찰나, 그 뜨거움에 놀란 올가가 높다랗게 신음하려 하자 미겔이 황급히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방만하게 풀어 헤친 재킷을 벗어 그녀의 얼굴과 상체를 덮는 동작이 민첩했다.

“가주님, 예 계십니까. 대출 상담을 원한다면서 연합 상단에서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접견실에서 가주님을 기다리고 있…….”

화원의 침입자는 급한 안건 때문에 이리저리 미겔을 찾아다니던 노련한 집사였다. 마지막 가림막인 활엽수를 걷고 나타난 그는, 눈앞에 펼쳐진 예상치 못한 장면에 전달 사항을 중간에 잘라먹을 정도로 크게 당황했다.

“그래? 그렇다면 더 기다리시라고 해. 보다시피 내가 한창 하던 일이 바빠서.”

격렬한 정사의 여파로 아름다운 얼굴이며, 남성미 넘치는 목덜미, 도드라진 빗장뼈 따위가 전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얼굴을 감춘 여인의 발목을 벌려 잡은 미겔이 무섭도록 싸늘한 시선으로 방해자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자리를 비우면, 사적인 업무로 바쁘겠거니 하고 찾지 않는 게 좋겠네. 알아들었나?”

“예, 예! 알겠습니다.”

“좋아.”

폭렬한 위압적인 페로몬은 중년의 집사를 겁먹게 하기 충분했다. 그의 벗어진 이마에 땀이 진탕 솟았다. 앵무새처럼 대답한 집사는 허둥지둥 돌아섰다. 그렇게 하나뿐인 출구인 양 화원의 출입구로 달려가려던 참이었다.

“잠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가주님.”

“어머니께서는 지금 어디 계신가?”

짓궂은 질문이었다. 미겔은 재킷 아래에서 자신의 손목을 아프게 할퀴는 손톱을 느끼고 소리 없이 웃었다.

“자, 잘 모르겠습니다. 후작 부인께서는 내성적인 성격이신지라, 특별한 일과가 없다면 보통은 방에 머무르십니다. 간간이 본저 도서관에서도 들르시는 것 같았습니다마는.”

“아, 그래. 독서를 좋아하시는 분이지. 책에 빠지셔서 끼니도 잊으실까 봐 걱정되는군. 대신 자네가 잊지 말고 잘 챙겨 드리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맡겨만 주십시오. 그,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남사스럽게 허벅지를 내놓은 여성의 아래 펼쳐진 도시락과 접시, 식기류 등이 전부 두 벌씩이었으나 집사는 그 모든 상황 증거들을 애써 무시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길.’ 머뭇거리다가 끝인사를 덧붙인 집사가 꽁지를 감추고 사라졌다. 그제야 킬킬거리며 희소한 미겔이 페니스의 밑동을 움켜쥐고 뒤로 빠졌다. 정액이며 애액으로 지저분해진 성기를 휴대용 식탁보로 대충 닦는다.

“귀공이 제정신이 아닌 줄은 익히 알았지만, 정말……!”

“아아, 너무 화내지 마세요. 일상의 소소한 재미랄까. 그래도 잘 대처했으니 뒤탈은 없을 겁니다.”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인 그가 재킷을 벗고 일어나 화를 내는 올가의 뺨에 입 맞추었다.

“사랑합니다.”

“…….”

꾸중당하는 상황을 모면하려는 의도도 섞였지만, 너무 무겁게 들리지 않도록 일상적인 분위기를 틈탄 기습 고백이었다.

“대답은 냄새로 알겠군요.”

쪽. 가볍게 입술을 깨물어 당겼다. 불안과 불신, 그리고 저변에 깔린 배덕한 기쁨의 냄새. 올가의 향을 폐에 가득 흡입한 남자가 반대로 접은 식탁보로 그녀의 아래를 닦아 주었다. 그는 천에 흠뻑 묻어난 정액을 보고 입술을 비죽였다.

“아깝네요. 왜 착상하질 못할까.”

“무슨 기대를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아셨잖아요. 저는 형편없는 열성 오메가예요. 임신은…….”

“설마요, 이렇게 진한 향으로 저희 형제를 홀렸잖습니까. 경우가 특수했던지라 당신의 페로몬을 판별할 수 있는 자가 없었을 뿐입니다.”

올가의 페로몬에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와 반대로 미겔의 미소는 비틀어졌다.

초커를 벗기고 깨물었더니 이제는 불임을 방패 삼으려는군.

금방이라도 부서질 게 뻔한 부실한 방패막이를 내세운 그녀가 가소롭고도 사랑스러웠다. 참지 못하고 키스하는 미겔의 목소리가 다정해졌다.

“하나 오래 가물었던 몸이죠. 적응기를 가지고 있나 봅니다. 그러니 너무 초조해하지 맙시다.”

“초조라뇨, 그런 말씀 마세요. 듣기 싫습니다.”

끔찍하니까.

하지 않은 뒷말이 또렷하게 들렸다.

“하하, 방금까지 섹스하던 짝에게 좀 야박하신 말씀 아닌지. 하지만 홍조가 어여뻐서 넘어가 드리겠습니다. 못다 한 시간도 밤에 이어서 갖도록 하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아쉽지만 여기까지만.”

스타킹을 올려 신는 올가의 뒤에 섰다. 드레스 등판을 잠가 준 미겔이 그녀의 풍성한 머리칼을 잠시 손빗질 해 주었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천천히 시간 보내고 나오세요.”

여성은 남자보다 정사의 여운이 길지 않나. 올가의 부드러운 피부는 아직 미열을 품고 뜨거웠다. 하여 그녀가 진정할 수 있도록 미겔은 자리를 피해 화원을 나섰다. 묵직하게 괬던 사타구니가 홀가분해졌다. 이 정도면 화장실에서 몰래 수음하지 않고 밤까지 참을 만했다.

가지고 나니 상상보다 더 어여쁘고 음란한 여인.

만족감으로 식도까지 근질근질했다. 큼. 헛기침한 미겔이 가까운 곳의 덤불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숨어 있던 작은 머리통이 드러났다.

“안녕, 꼬맹이.”

정원사가 데리고 다니던 아들이라 했던가. 꽃목걸이며 화관이며 혼자 노는 데 이골이 난 듯한 어린아이였다. 물끄러미 순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아이의 갈색 정수리를 부드럽게 흩트린 미겔이, 입술 중앙에 검지를 세웠다.

“너, 여기서 놀면 안 된다고 들었을 텐데. 벌받기 싫으면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줘야겠다. 용돈도 주지.”

“무슨 부탁요?”

“마을에 돌아가면 화원에서 들린 소리에 관해 이야기하렴. 조금 있으면 귀부인이 밖으로 나오실 거다.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함께 이야기해. 숲처럼 그윽한 녹갈색 눈동자. 모닥불처럼 아늑한 붉은 머리칼. 가녀린 목덜미의 초커. 그런 것들.”

무구한 손바닥에 동전 몇 개를 쥐여 준다.

“내 귀에까지 소문이 들려오면 좀 더 칭찬해 주마.”

그러자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인 아이가 뜀박질해 사라졌다. 그렇게 모략가의 기질을 타고난 알파의 덫이 또 하나 완성되었다.

그렇게 야금야금 장내에 퍼진 구설인즉슨 이러했다.

체이스필드 형제가 집안 여자를 건드리고 있다.

밤낮, 장소, 시간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흘레붙느라 저택을 청소하는 시녀들 뺨이 식을 줄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남녀의 교합은 의외로 비밀스럽지 않다.

그 거친 움직임이며 터져 나오는 신음, 과장하자면 강물을 이룰 정도로 흥건한 체액과 분비물 때문이라도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택 곳곳에서 정사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격분한 시녀장은 어떤 무엄한 시녀가 가주 형제에게 꼬리를 쳤는지 정체를 밝히려고 무던히 애를 썼으나, 신기할 만큼 그 상스러운 계집은 꼬리가 짧았다. 어찌나 감쪽같이 신변을 감추었는지 아무도 그녀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생강색 머리칼을 가진 여자래.

방사의 흔적이 남은 자리마다 한두 가닥씩 남아 있던 머리카락. 단지 이것만이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안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였다. 문제는, 저택의 진저가 후작 부인 단 한 명뿐이라는 것이었다.

“휴고… 앗!”

“올가.”

저택 내에 검은 의심이 안개처럼 깔리던 어느 날이었다.

부인 방에 딸린, 간단하게 세안을 하거나 화장을 고칠 수 있는 파우더 룸. 일찍 깨어난 올가를 따라온 휴고가 그녀의 잠옷을 걷어 올렸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뽀얀 엉덩이 사이가 반짝였다. 음부를 만져 보니 애액 실이 길게 묻어났다. 이성이 날아가는 건 한순간이었다. 화려하게 양각된 거울 앞에서 올가의 손등 위에 깍지 낀 남자가 바로 흥분한 페니스를 욱여넣었다. 푹. 푸욱. 가차 없이 박히는 진동에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가 파르르 떨렸다.

“아… 하아.”

퉁퉁 부어 충혈된 점막이 굵다란 음경을 간신히 꽉 물었다.

벌써부터 눈두덩에 습기 먹은 올가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뜨겁게 바라보는 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것만으로도 서로가 얼마나 흥분하였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 아앗. 매듭이 헐거운 잠옷이 흘러내려 울혈이 빼곡한 젖가슴이 드러났다. 뒤에서 단단한 남자의 사타구니가 닥칠 때마다 윤택한 젖이 야살스럽게 흔들린다. 엇박자로 신음이 터졌다.

“천천히, 제발……. 그리고 짧게. 짧게요.”

“어째서. 마음에 안 드십니까, 제가 그리 서투른가요.”

“그런 게 아니에요, 곧 나가 보셔야 하잖아요. 흣, 그리고 어젯밤도 노팅하셨잖아요… 아직 아파요. 아.”

다리가 긴 휴고와 서서 하는 관계는 퍽 힘들었다. 마치 꿰인 것처럼 발꿈치를 높게 띄운 올가의 상체가 자꾸만 앞으로 기울었다.

“그래서 반만 넣고 있습니다… 후으.”

“그래도 닿는단, 말이에요. 아!”

“네, 저도 느껴집니다. 찌르진 않겠습니다. 문대기만, 할 테니.”

얼얼한 속살을 가른 큼직한 귀두가 말랑한 자궁구를 꾹 눌러 올리기 시작했다. 뿔처럼 단단한 음경이 내벽을 압박하며 뒤따라 들어왔다. 시간을 들여, 무성한 음모가 엉덩이를 할퀼 정도로 결합이 깊어졌다. 속살이 짓이겨지는 쾌감. 올가는 저도 모르게 허벅지를 오므려 옴짝거렸다. 두 번이나 짝짓기한 상대와의 섹스였다. 어쩔 도리 없이 간지러움을 동반한 오르가슴이 피어오르고, 힘이 바짝 들어간 아랫배가 간헐적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안이… 촉촉해졌습니다.”

“마, 말 안 하셔도. 흐으.”

“저는 듣고 싶습니다, 올가. 좋다고 해 주세요. 저와 하는 게. 누구보다 더. 가장 좋다고.”

직계혈족에게만 전승되는 비밀 통로를 통해 형제는 밤마다 올가의 침대에 기어올랐다. 입맞춤과 애무로 밤의 장막을 찢는다. 아울러 이제는 유명무실해진 초커를 해제하는 것이 그들 절차의 시작이었다.

은근히 미겔에게 경쟁심을 불태우는 휴고가, 그녀의 목덜미에 남은 잇자국 위를 강하게 물었다. 형제의 자국을 덮어 버리고 싶은 거다. 아무래도 겨드랑이보다 더 보편적인 짝짓기의 부위다 보니 미련이 남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궁정의 문란한 색사를 숙달한 미겔의 방중술에 못 미쳐 올가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건 아닌가, 홀로 자격지심에 시달리는 듯했다.

고요하게 승부욕을 태우는 그를 보자니 이제는 일상이 된 아침 색사가 끈질겨질 낌새였다. 그건 싫다. 올가는 망설임 끝에 입술을 뗐다. 잠자리의 정담이라는 걸 하려니 혀끝이 절로 뻣뻣해졌다.

“휴고, 당신이랑 할 때면 마, 말뚝에 강제로 앉혀지는 것 같아요. 너무 커서. 흑.”

“하여 싫으십니까.”

“아, 니요. 오히려… 좋아요. 배가 부른 느낌이. 힘을 주어도 다물어지지 않는 게 이상하게… 만족스러워. 조금만 움직여 줘도 배 속에서 번개가 치는 것 같아요. 아.”

“…올가, 당신은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성(性)에 관한 만큼은 유독 결벽적인 그녀치고는 파격적인 솔직함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몹시 감명받은 휴고의 야만적인 본성이 꿈틀거렸다. 자궁 가득 씨물을 퍼부어 임신시키고 싶다. 일차원적인 욕구가 이 아침에도 그의 페로몬 분비 체계를 고장 냈다.

“설마, 아, 또……!”

“괜찮습니다, 어제보다는 작은 혹입니다. 하아, 금방 꺼질 테니, 잠시만 이대로… 부디.”

“아으…….”

그렇게 어젯밤에 이어 불규칙한 노팅이 연속되었다.

속살을 비집고 박힌 페니스 뿌리가 공처럼 부풀었다. 그러잖아도 납작하게 좁다란 질구 언저리가 한계까지 쩍 벌어지는 감각은 절대 익숙해지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토할 거 같아. 살갗의 솜털이 죄 일어선 올가가 울먹거리자, 그녀를 달래고자 휴고는 정욕적인 페로몬을 뿜기 시작했다. 취하게 만드는 달콤한 향. 이내 몽롱해진 올가의 몸이 허물어졌다.

“…올가, 내 짝. 내 일생의 여자.”

그녀를 따라 파우더 룸 구석에 무너진 젊은 기사가 갈급하게 키스를 갈구했다.

“날 안아 줘요. 그대 안에서 아예 녹아 버리고 싶습니다. 아니, 그대를 씹어 삼키고 싶기도 해. 떨어질 일 없도록 당신을 배 속에 담고 싶어. 올가, 제발. 임신해요. 부른 배가 무거워 꼼짝하지 못하는 걸 보고 싶습니다.”

이 윤택한 젖이 더욱 부풀어 처지는 게 보고 싶다.

아이를 먹이고 남은 달큼한 젖물이 젖꼭지 군데군데 유백색 방울로 맺히면, 색이 짙어진 유륜까지 한입에 씹어 쭉쭉 빨고 싶다.

참외 배꼽이 될 만큼 배가 나오면 몸의 중심선이 도드라질 테다. 무거워진 자궁이 방광을 압박해 종종 실례를 저지를 테고, 아래를 제대로 닦지 못해 울상을 지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대신 치마를 걷고 그녀의 젖은 음부를 남김없이 핥아 마시고 싶었다.

열다섯, 그녀에게 청혼을 머뭇거렸던 때부터 품었던 저열한 욕망이었다.

“올가.”

그녀의 이름을 탁하게 신음한 휴고가 치받는 육욕을 어쩌지 못하고 씨근덕거렸다. 그 순간만큼은 올가도 짝지은 알파의 아이를 얼른 배고 싶다는 본능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매달리는 등을 원하는 대로 껴안아 주었다. 근육뿐인 등에 섬세한 손가락이 안착했다. 그대로 그의 밑에 깔린 올가는 휴고와 음란하게 혀를 나누며 할딱였다.

이번 노팅은 30분쯤 걸렸다.

이윽고 혹이 가라앉은 검붉은 음경이 한참을 빠져나왔다. 귀두를 잡아 뽑자, 가쁘게 씰룩거리는 질구에서 뭉텅이 진 정액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 미겔의 정액까지 섞여서 수천억 마리의 우성 정자가 자궁을 꽉 채우고도 넘쳤다.

“푹 주무십시오.”

기진맥진한 그녀를 위로하고자, 엎드려 붉게 충혈된 덩잇살을 벌리고 한참을 물소리 나게 빨았다. 귀여운 음핵을 쪽, 뱉어 낸 휴고가 파르라니 떨리는 얄따란 소음순을 녹지 않는 셔벗처럼 핥다가 몸을 세웠다.

지친 올가를 안아 다시 침상에 뉘었다. 그러자 헐벗은 알몸으로 엎드려 있던 미겔이 그녀를 당겨 껴안았다.

그렇게 형제에게 사랑하는 여인의 이양을 마쳤다. 휴고는 의상을 정제하고 군복 차림으로 후작 부인의 방을 나섰다. 단정한 기사의 모범 그 자체로 변모했다. 눈빛만으로 군인들을 기립하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전신에 흘러넘쳤다.

“……!”

휴고 퍼스가 방문을 닫고 나온 순간. 가을맞이 단장을 위하여 이른 아침부터 회랑을 쓸고 닦던 모든 사용인들이 그를 발견하고 얼어붙었다. 모두가 한 가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인의 방에 들어간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저기서 나온단 말인가.

그리고 도대체 저건…….

식사를 올린 적도 없는데 그의 입술이 번들번들하게 젖어 있었다. 진중한 입가에 야릇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희끗한 액체가 묻어 있기도 했다.

“흠.”

그들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휴고는 엄지로 입술을 훔쳐 냈다. 묻어난 정액을 푸른 리본 실을 풀어 새로이 만든 손수건으로 닦았다.

태연하게 인파를 가르고 그가 떠나자마자, 발 없는 소문이 천 리를 날아가 드디어 궁정에까지 도착했다. 체이스필드의 패륜이 드디어 늙은 염소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기다리던 절호의 기회였다. 드레이크 체이스필드는 회심의 미소와 함께 지팡이의 옥석을 힘주어 움켜쥐었다.

같은 시각. 멀리 떨어진 변경에서는 열다섯 번의 노팅 끝에 마침내 올가가 임신을 자각했다.

“맙소사, 안 돼…….”

헛배가 부른 게 아니었다.

간식으로 흰 빵을 먹었다. 식감을 살리고자 섞은 건포도를 씹자마자 헛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올가는 황급히 식당을 뛰쳐나와 식수대로 달려갔다. 빈속을 게우며 이것이 입덧이라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축하드립니다.”

그제야 날짜를 계산하여 월경이 끊긴 지 두 달이 다 되어 간다는 걸 자각했다. 올가는 창백하게 질려 절망했다. 아무리 노팅해도 반응하지 않는 몸이었던지라 난생처음 열성 오메가라 다행이다, 생각하던 차였다. 안일해지자마자 새 생명이 그녀의 자궁에 착상한 것이다.

“어, 어쩌죠, 미겔. 나는……!”

아이까지 죽게 될 거야.

“그럴 일은 없습니다, 올가. 그저 배가 불러 오도록 편히 계세요. 약속드렸잖나요. 세상 모든 다복과 부, 지고의 권력을 안겨 드리겠노라고.”

그녀의 뒤에서 나타난 미겔은 명백하게 기뻐했다. 무언의 두려움을 읽고 확고하게 부인한다.

“짝의 새끼를 뱄을 뿐인걸요. 정절과 절개를 지켰을 뿐 아닙니까. 당신이 사형대에 오를 리가 있나요.”

느긋하게 속삭인 그가 올가를 껴안았다. 그녀의 아랫배를 소중하게 감싸 깍지를 꼈다.

“안심하세요. 지켜 드리겠습니다. 그대가 배신하지만 않는다면.”

“어떻게…….”

“어머니를 미끼로 꾀어낸 미친 종교인만 처리하면 만사가 형통할 것입니다.”

쪽. 귀부인답게 틀어 올린 올가의 올림머리에 입 맞춘 미겔이 전에 없이 매혹스럽게 미소했다.

“정원에 한가득 금목서 묘목을 심어야겠군요. 아이가 태어날 즈음이면 꽃봉오리가 맺히게끔요.”

태어난 아이는 왕족이 될런가. 아니면 이 변경의 유지를 이어받게 될 것인가. 그도 아니면, 새로운 영토를 다스리는 대공이 되려나.

“아이가 어떤 머리와 눈동자 색을 띨까, 궁금하네요.”

아비가 누구인지 짐작해 볼 만하지 않을까요.

마침내 새어머니를 임신시켜 그들의 계획은 절정에 다다랐다. 벌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미겔은 얼음장처럼 찬 올가의 손끝을 끌어 키스했다.

***

“폐하.”

접견을 허락받은 드레이크 체이스필드가 황제의 알현실에 들어섰다. 웬일인지 목숨처럼 머리에 이고 다니던 사제 전용 모자를 벗었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왕궁을 벗어나고자 합니다. 검소한 은둔자로서 고향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목회자가 되렵니다. 하니 사직서를 허하여 주시옵소서.”

“이런이런, 자네 뒤로 승진이 막혀 늙어 죽은 평사제가 한둘이 아닐 텐데. 이제 와서 은퇴라니, 놀랍네.”

“면목이 없습니다.”

“고향에 내려간다고?”

“네, 폐하.”

“두 놈의 머리통을 바칠 텐가?”

“아무렴요, 폐하.”

강한 확신이 담긴 대답이었다. 일곱 살배기 정신연령의 태자 안젤로가 목각 인형을 가지고 놀며 황제 에드먼드와 퇴직 예정인 드레이크의 주변을 산만하게 뛰어다녔다.

“…군사를 대리 운용할 수 있는 황금칙서를 내리겠네. 확실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야.”

하나뿐인 아들에게서 눈을 뗀 에드먼드가 마침내 드레이크의 사직을 허하였다. 조건은 여동생 안젤리나의 자식들이었다.

혹시나 미겔을 처치할까 기대했던 퍼스 기사는 아무런 소동 없이 그저 묵묵히 국경 수호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둘 모두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다. 하여 황제는 자신 못지않게 무수한 정적을 죽이고 종교직 꼭지에 오른 드레이크에게 그들 형제의 처형을 위임하였다.

“맡겨만 주십시오. 패륜하는 더러운 연놈들의 소굴이 된 고향을 깨끗이 정화하겠습니다. 여신 셰라를 칭송하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땅을 기대하시지요.”

반란. 반역. 내란. 마녀사냥. 종교재판. 구린 냄새를 맡은 이상 어둠 속에 숨은 쥐새끼를 끌어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조카들의 목을 바치겠노라, 자신한 드레이크는 황제의 접견을 마치자마자 그길로 궁정을 나왔다.

“고향으로 내려가겠다. 당장 채비를 해.”

동행한 수행인은 우직한 꼽추 한 명이었다. 거인족의 피를 타고났다는 둥, 타고난 체격이 성인 남성 서넛을 합친 듯 거대한 놈이었다. 노예시장에서 헐값에 산 녀석은 알파의 페로몬이 잘 안 먹히는 고래 심줄 같은 체질을 타고나 퍽 유용했다.

“오랜 길을 돌아왔어. 드디어 내 땅을 되찾을 때가 되었다.”

동생 콘라드의 권능에 밀려 반강제로 고향을 떠난 지 어언 반백 년이었다. 마땅한 제 것을 빼앗겼다는 박탈감과 울분으로 얼룩지었던 생애. 마침내 유종의 미를 거둘 때가 되었다.

“추기경 나리.”

“흥, 조만간 후작님이라 부르게 될 거다.”

공인받지 못한 불륜의 핏줄에게 내 땅을 넘겨줄쏘냐.

분하여 이를 간 노인이 거칠게 마차 창문을 닫아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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