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동정녀 미망인 (3/12)

2. 동정녀 미망인

어머니의 처녀흔을

나누어 발랐죠.

금목서가 만개한 밤에.

“정실 자리라니! 내 딸이 후작 부인이 되다니! 하하하… 으하하하!”

쥐어짜듯 소리 내어 웃는 허드슨의 후덕한 턱이 식은땀 범벅이었다.

그는 금이 간 2층 창문 너머, 투레질하는 흑마를 내려다보고는 불안하게 방 안을 서성였다.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는다. 일생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용했던 기름진 뇌가 팽팽 회전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예비 신부 딸을 두고 신경질적으로 욕설을 뱉기도 했다. 지참금이 적어도 너무나 적었다.

“겨우 이것 가지고는 저당 잡힌 집조차 돌려받지 못한단 말이다. 젠장, 가진 놈들이 더 쪼잔하다더니. 5백만 헥사르 땅을 소유한 지주네가 이렇게 배포가 작아서야… 고작 8백 스랑이 뭐냔 말이야, 8백이.”

소작 농민이 꼬박 1년을 벌어야 1백 스랑이니, 8백이면 8년 치 불로소득이다. 그러나 딸 올가가 콘라드 후작에게 간택받았다는 발 빠른 소문이 들려온 순간 허겁지겁 구두 뒤축을 접어 신고 도박장으로 달려간 허드슨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그 밤에 사채업자에게 고금리로 대출받아 모조리 털린 금액만 3천 스랑이었던 것이다.

“조만간 찾아가마. 내외하지 말고 반갑게 맞이해야 할 것이야, 올가. 너에게 달리 누가 있느냐. 친정아버지밖에 더 있어? 응?”

“…아버지,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요.”

“뭐? 벌써부터 나약한 소리 말아! 너도 멍청히 있지만 말고 수완을 좀 발휘해서, 이것저것 돈 될 만한 것들을 미리 챙겨 놓아라. 일이 언제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는… 아니, 아니지! 악착같이 붙어 있어야지. 그게 어떤 자리인데…….”

“자리라뇨. 무슨 자리요. 제 자리가 아니잖아요! 이미 없어진 자리라고요! 저를 유령이라도 만들 셈인가요?”

횡설수설하는 아버지를 참다못한 올가가 목소리를 높이자,

“그래! 유령이 돼! 까짓것 아비를 위해서, 아니 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

“네가 잘만 처신하면 개국 이래 가장 저명한 가문을 쥐락펴락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느냐.”

“맙소사,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이 아비를 감옥에 처넣는 건 말이 되고?”

잠시 후 팔려 갈 딸에게 득달같이 달려온 허드슨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씨근덕거렸다.

“8백 스랑은 이미 전부 써 버렸다.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아. 혼사를 파기하고 지참금을 돌려주지 않는 행위는 법전에도 명시되어 있는 중한 사기죄인 걸 알고 있겠지. 너, 나를 사기꾼으로 만들 셈이냐?”

속사포로 쏘아붙이자마자 험악하게 올가의 손목을 틀어쥐고 당긴다. 그는 마음이 조급했다. 기다림에 지친 후작가의 마부가 행여나 신경질을 부리며 돌아가 허튼소리를 전할까 봐서였다. 파혼? 목에 칼을 들이밀어도 안 될 일이었다.

차라리 딸년을 시체에게 시집보내고 말지.

상품 가치라곤 문둥이에게나 사창가에 팔아 치울 정도밖에 되지 않는 열성 오메가 계집이다. 상대가 송장이라도 후작은 후작이니, 대귀족에게 매도할 수만 있다면야 수지맞은 장사였다.

“아버지……!”

“감히 나를 원망할 생각 말아라. 내가 빚쟁이가 된 게 어디 내 탓이기만 하더냐? 전부 너를 귀부인으로 만들고자 애쓴 값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네가 갚아야 할 돈이지.”

“제발. 이렇게 애원할게요. 정말로 가기 싫어요! 제발 저를 보내지 마세요, 아버지…….”

“정숙한 여인답게 몸가짐 똑바로 하고.”

함부로 흉터 많은 알몸을 보이지 말고 잘 숨기라는 의미다.

품행이 바른 부인이라면 남편에게도 분별없이 헐벗은 등을 보이지 않는 법이다. 이러한 예법을 악용하여 딸의 등짝을 가죽 허리띠로 후려치기를 취미 삼던 허드슨이, 집 밖으로 끌어낸 올가를 반강제로 흑색 옻칠한 장의 마차에 태웠다.

“그, 새 아들들 좀 잘 가르쳐 봐. 그래도 엄연한 웃어른한테 아니꼽게 구는 꼬락서니하고는…….”

새로운 외조부 되는 자신을 옷걸이처럼 벽에 세워 두고 발끝으로 지참금 주머니를 밀어 던지던 후작가의 형제.

신분 차이도 차이거니와, 본래 베타는 강한 알파 앞에서 사마귀를 맞닥뜨린 진딧물처럼 맥을 못 추곤 했다. 턱없는 지참금이 불만이었지만 그들 위세에 짓눌려 찍소리도 하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뿐인가. 후에 후작가의 비보를 알려 온 우아한 필체 역시 아주 고압적으로 그의 혓바닥을 틀어막아 단속하기까지 했다. 어른 대접이 형편없기 짝이 없는 것이다.

분한 마음에, 허드슨은 썩은 어금니와 잇몸이 드러나도록 이를 갈았다. 마차 안에 구겨 박힌 올가에게 최후통첩을 선고한다.

“멋대로 돌아올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 내 손에 요절나고 싶은 게 아니면.”

탕!

이윽고 관짝이 덮이는 것처럼 마차 문이 거세게 닫히고 암막 커튼이 쳐졌다.

이랴! 이내 마부의 채찍질과 함께 여덟 말이 서서히 속력을 높여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순간, 고르지 못한 도로의 암석에 바퀴가 걸려 차체가 심하게 들썩였다. 덕분에 의자에서 넘어질 뻔했다. 올가는 문손잡이를 움켜쥐고 가까스로 균형을 지탱할 수 있었다. 피가 맺히도록 입술을 짓씹고 맞은편 의자에 쌓인 패물과 예복을 노려보았다.

순백 드레스 대신 보내온 장례용 검은 드레스와 발끝까지 떨어지는 검은 베일.

간밤, 심부름꾼 하나가 은밀하게 밤을 헤치고 허드슨가를 찾아왔다. 전한 내용은 실로 놀라웠다. 첫째, 간택받은 올가를 측실에서 정실로 승격한다. 그리고 둘째.

콘라드 체이스필드 후작이 죽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새로이 사람을 맞이하는 기념으로 축포와 폭죽놀이를 주관하여 감독하던 후작이 불운한 폭발 사고에 휘말려 사망했다고. 육신이 사방으로 터져 나가 살점과 뼛조각을 채 전부 수거하지 못했다는 첨언까지.

얼어붙은 올가를 대신해 허드슨이 혼인 절차에 대해 따져 묻자, 밀랍처럼 표정 없던 심부름꾼은 짤막하게 대답했을 뿐이다.

‘모든 것은 집안 대소사를 대리하시는 공자들께서 도맡아 처리하실 겁니다.’

그러하니 이 이상 관여하지 말고 고분고분하게 따르라는 뉘앙스였다.

급사가 건넨 전보를 급하게 읽어 내린 허드슨은 턱을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올가는 편지 사이에 껴 있던 가공 보석 알갱이를 남김없이 털어서 호주머니에 욱여넣던 아버지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족히 1, 2천 스랑은 되어 보이던 재화였다. 입 막음값.

“처음부터 껄끄럽기 짝이 없었는데…….”

악문 입에서 끓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고아한 귀부인? 넘보지 못할 부와 권력? 자유?

하.

애초부터 망령된 꿈이었다.

헛된 꾐에 빠져 길을 잘못 들었음이다. 자신을 암소에 비유해 회유했지 않나. 기가 막히게도 지금이야말로 정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이었다.

올가는 낮게 흐느껴 탄식했다. 어리석게도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배움에도 때가 있고 출세에도 때가 있다면, 죽어 마땅한 때 역시 있는 법인데. 보름 전 미련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어야 했다. 아니, 애초에 그들 체이스필드 형제와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적어도 불타 죽은 귀신에게 시집가는 신세는 되지 않았을 테니까.

머릿속이 용암처럼 끓고 가슴속에서 미친 돌개바람이 휘몰아친다.

올가가 두 눈을 질끈 감고 터질 듯한 내장을 다스릴 때였다. 도시 외곽의 지름길을 한참 달린 마차가 어느덧 멈추어 섰다. 비밀스러운 잠행인 만큼, 장엄한 후작가의 으리으리한 정문이 아니라 담장 덩굴에 가려진 뒷문 앞이었다.

“어서 내리시죠. 할 일이 산적해 있습니다.”

망자의 신부를 마중하기 위해 미리 나와 있던 시종장급 메이드가 마차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매우 놀랐다. 서럽게 울고 있으리라 예상한 망문과부의 눈빛이 몹시 형형했던 것이다.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예배당에 가야 하나요, 아니면 장례식장에?”

되바라졌군.

에두를 줄 모르는 직설 화법이 교양 없다. 희미하게 눈살을 찌푸린 메이드가 건조하게 입을 열었다.

“두 군데 다 참석하셔야 할 것 같군요. 따라오십시오.”

푸릉. 어서 쫓아가지 않고 뭐 하냐는 듯 마차를 끄는 중종마의 콧김이 거셌다. 올가는 하는 수 없이 그녀를 따라 고용인 전용 입구를 통해 대저택에 처음으로 들어섰다.

아치형 돌길에 괸 공기가 퍽 서늘했다.

해가 뜨기 시작한 오전이었으나 초가을 저택은 여전히 어둑어둑했다. 치익. 호리병 모양 유리관에 밀랍 초 타는 냄새가 피어오른다. 손잡이 달린 램프를 든 메이드가 앞장서 부엌과 식량 창고, 와인 저장고와 하녀 집사들의 사무소, 이 거대한 일가의 살림살이 전반을 처리하는 각종 시설들을 지나쳐 지하에서 지상으로 계단을 밟았다.

세상에, 이렇게 넓은 홀은 난생처음 봤다.

초원처럼 탁 트인 본저(邸) 내부는 사소한 장식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고 고풍스러웠다. 특히 중심이 되는 중앙 벽에 거대하게 양각된, 체이스필드의 상징인 야생 종마가 백합을 짓밟고 있는 문양이 인상적이었다.

허드슨은 나름대로 올가에게 교양 일체를 교육하여 상위 계급에 어울리는 규수로서 구색을 갖춰 주려 했다. 그래 봤자 일개 평민의 조잡한 깜냥이었을 뿐이지마는.

잡지나 귀동냥을 통해 알음알음 상상했던 고위 귀족가의 생활상을 마침내 직면하게 된 올가는 얼뜨기처럼 굴지 않으려 꼿꼿이 앞을 응시했다. 그러나 이미 그 본데없음이 들통난 후였다. 바다랍시고 개울가를 상상하던 촌년이 따로 없군. 서느렇게 코웃음 친 메이드가, 타원형 중앙 층계를 한참 올라 어느 양문 앞에 섰다.

“환영합니다, 부인.”

곧장 문이 열리고 또 다른 시녀가 나타났다.

“이리 오셔서 서 주십시오. 환복 시중을 들겠습니다.”

부인이라는 호칭에 숨이 턱 막혔다. 올가는 떠밀리듯 거대한 방 안으로 들어섰다. 가볍게 무릎을 꿇었다 일어선 시녀는 그러나 조금도 그녀를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궁핍한 생활 속에서 눈치가 발달한 올가다. 자신이 홀대받는 처지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읏!”

“어머나, 실수였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부인.”

가소롭다는 듯 용서를 구한다.

부드러운 가죽을 덧댄 코르셋 위로 찔러 넣었던 시침바늘을 느릿하게 빼낸 시녀가 잘록한 올가의 허리를 흘겨보았다.

“괜찮습니다. 한데 귀녀는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실비아라고 불러 주세요. 브렛 자작의 차녀입니다. 오늘부로 부인의 전담 시녀가 되었습니다.”

“…실비아.”

“예, 다시 뵙게 되었습니다. 일전의 야회에서 스치듯 뵈었죠.”

다시금 따끔하게 살을 찔렸다. 윽. 작게 신음한 올가는 키만큼 거대한 거울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실비아와 눈을 마주쳤다. 서로를 탐색하는 긴장감이 찰나 면도칼처럼 날카로웠다.

“그렇다면 그때는 못 볼 꼴을 보여 드렸군요. 낯 뜨겁습니다.”

“그런 말 마세요, 부인. 덕분에 아주 재밌었던 자리였으니까요.”

눈싸움하던 올가가 먼저 눈꺼풀을 내리깔자, 그에 만족한 실비아가 그녀에게 입힌 코르셋의 가장 아랫단 매듭을 조여 당겼다.

기실 실비아 브렛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야회에서의 꼬락서니를 목도한 경험을 비꼬아 언급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그녀는 초커를 하지 않은 평범한 베타였으나, 딸린 시종 하나 없이 맨몸으로 굴러들어 온 이 하층 계급의 열성 계집에게 밀릴 바가 아니었다.

올가. 가문의 성조차 없는 밑바닥 평민.

과분한 자리에 기어이 머리를 들이민 계집. 그래도 먼저 시선을 피하여 거두는 걸 보면, 제 분수를 가늠할 최소한의 눈치는 있는 모양이다. 하기는, 변변찮은 제 편 한 명 없는 이곳에서 자신마저 적으로 돌린다면 앞날이 어떻게 될지 뻔한 거지.

코르셋 얼개만 걸쳤을 뿐인데도 테두리 밖으로 넘칠 듯 뽀얗고 푸짐한 젖가슴이 가장 못마땅했다. 얼굴은 평범한 데 비해 몸매는 봐줄 만하네. 그러나 그러면 뭐 하는가. 저 젖으로 엉겨서 베갯머리송사할 노익장은 내장이 터져 뒈졌는데. 실비아는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고 작은 주먹을 틀어쥔 올가를 향해 소리 없이 조소했다.

“풍만하시네요. 급히 마련한 드레스 앞판이 조일까 봐 걱정됩니다. 어차피 베일로 가려질 테니 옆선을 약간만 뜯어서 품을 늘여야겠어요. 부인, 팔을 들어 주시겠어요?”

절대로 체이스필드 가문명을 붙여 정식으로 호칭하지 않는다.

양 머리를 띠처럼 땋아 레이스 캡을 쓴 실비아가 이동형 선반을 가까이 끌어왔다. 다음으로 고를 시침용 바늘을 고민할 차례였다.

“실비아.”

“예, 부인.”

“당신도 그 사실…을 알고 계시는가요.”

“아아, 어제저녁 콘라드 후작께서 비명횡사하신 비극 말씀이신가요.”

자잘한 시침 핀도 있고 중바늘과 대바늘도 있다. 어디 아예 깊게 찔러서 피를 봐 볼까.

행여나 비명이라도 지른다면 얼른 스스로 뺨을 치고 쓰러져 연기하면 된다. 바깥의 시녀장이 달려오면, 의도치 않은 실수에 입술이 터질 정도로 뺨을 얻어맞았노라, 선수를 쳐서 통곡하면 그만 아닌가. 총 여섯 남매의 아귀다툼 속에서 제 몫을 차리기 위해 그간 눈물 연기만 배우 급으로 통달한 실비아의 입매가 가늘어졌다.

“아주 극소수만 알고 있는 극비입니다. 해금령이 내려질 때까지 부인께서도 철저히 입단속하셔야 해요. 듣지 못하셨나요?”

“아뇨. 전해 들었습니다만, 아직도 실감이 안 나서요. 실은 부인이라고 불러 주시는 것도 영 적응이 안 돼요.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머, 그러세요.”

아량을 보여 작은 바늘을 고를까 했던 실비아의 눈초리가 새침해졌다.

이게 지금 날 먹이는 건가.

베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후작의 간택 자리에 초대받지 못했던 데 일찌감치 상해 있었던 자존심이 꿈틀거렸다. 오메가의 삶은 비참할 뿐이라고 야유하면서도 남몰래 열등감을 품고 있던 차였다. 마음이 상한 실비아는 한 줌 관용을 도로 거두어 이 괘씸한 계집에게 본때를 보여 주기로 했다.

“그렇게나 부인이란 호칭이 불편하시다면.”

하여 망설임 없이 대바늘을 집어 들고.

“대신 미망인이라고 불러 드릴까요. 아, 까막과부는 어떠신지?”

한입거리 계집의 허리에 말뚝처럼 꽂아 넣으려던 순간이었다.

…쾅!

“어머니.”

꿀타래처럼 달큼하게 얽어 오는 목소리.

실비아는 황급히 바늘을 내려놓고 옷 방에 닥쳐들어 온 금발 후계자에게 허리를 숙였다. 이내 독충을 뱉어 낸 식충식물처럼 문이 거세게 닫혔다. 기세에 놀란 전면 테라스의 실크 커튼이 풍성하게 나부꼈다.

“아름다우십니다. 베일을 드리우기 아까울 정도로요.”

지극히 뻔뻔했다. 상복이지만 디테일이 섬세한 드레스를 반쯤 걸친 새어머니의 비치는 살결을 보고도 고개를 돌릴 줄 모른다. 뒤로 물러나 시립한 실비아 대신 올가의 뒤에 다가와 선 미겔 체이스필드가 그녀의 코르셋을 마저 조이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놀란 표정이십니까?”

“귀, 귀공의 옷차림이… 하윽.”

“아아, 부재하신 부친 대신 저라도 잘 차려입어야지 않겠습니까.”

기가 막히게도, 미겔은 호화로운 성장 차림이었다. 염료가 귀한 흰색과 푸른색으로 어우러진 테일 코트를 걸치고 길고 긴 다리에는 반듯한 판탈룬즈 바짓단이 똑 떨어졌다. 흡사 자체 발광하는 것처럼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오늘 성혼하는 남자가 이자였던가.

장례식장에서 가장 먼저 쫓겨날 차림새를 한 장남이 코르셋의 가장 윗단을 숨 막히게 조였다. 압박감에 놀란 동그란 어깨가 퍼뜩 경직되었다. 속옷을 대용하여 걸친 얇은 모슬린 슈미즈를 투과하여 올가의 등이 살구색으로 비치고 있었다. 오글쪼글하게 피부가 얽은 자국 또한 드문드문했다.

흠. 미겔이 눈가를 가느다랗게 접었다. 올가의 허리춤에 걸쳐 벌어져 있는 상복의 옷단을 뒤이어 거머쥐었다.

“드레스를 입혀 드리겠습니다.”

옷시중을 자처한 예의 바른 자제처럼 손길은 담백했으나, 단추를 잠가 주는 옷자락 틈새로 엿보이는 둔부 곡선을 훔치는 시선은 퍽 질펀했다.

“다 되었습니다. 완벽하군요.”

이제 거울에는 바싹 붙어 선 두 남녀가 보였다.

중키의 올가는 미겔의 어깨에도 닿지 않았다. 좋은 체격 차였다. 언제 어디서 일을 치러도, 그와 휴고의 덩치로 그녀의 정체를 남김없이 가릴 만했다.

미소를 머금은 미겔은 올가의 등 뒤에서 거울을, 아니 거울 속 올가의 가슴을 노골적으로 바라보았다.

유행을 좇아 앞판을 너르게 노출한 디자인 덕분에 불룩하게 솟구친 젖가슴의 골짜기가 적나라했다. 상복이 아니었더라면, 간신히 가려진 유륜 근처에 애인을 구한다는 암시용 점을 두어 개 찍어 주었을 것이다. 침대를 데워 준다는 핑계로 험하게 붙어먹을 수 있게 말이다.

아쉬움을 담은 혀끝으로 연구개 입천장을 가볍게 긁은 사내가 산뜻하게 떨어졌다.

그야 머릿속은 이미 한 차례 난잡함이 휩쓸고 지나간 후였다. 거울에 매달리게끔 밀어붙인 올가의 젖무덤을 억세게 움켜쥐고 흔들어 젖히는 망상에 바지 속이 슬몃 발기해 두툼해졌다. 오메가의 향에 자극받은 굵다란 해면체가 슬그머니 길어지는 감각이 선연하다. 그러나 그는 성적으로 흥분한 티를 조금도 내지 않고 태연자약했다.

“휴고는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웠습니다.”

실비아가 건네는 베일을 올가의 정수리에 씌워 주면서 하는 말이었다. 그가 자리에 없는 형제의 소식을 이어 갔다.

“변경의 군인들은 워낙 본새가 사나운지라 한시라도 고삐를 당기지 않으면 언제 폭도로 돌변할지 몰라서요. 해서, 녀석은 당분간 군사 업무를 대리하느라 바쁠 예정입니다. 수도의 황제께서 한시 빨리 다음 후임자를 임명해 주시길 바랄 밖에요.”

‘아니면 저의 작위 승계 승인을 서둘러 주시든가.’ 뼈 있는 한마디를 덧붙인 미겔이 촘촘한 장미 문양 망사 베일에 가려진 올가를 향해 미소했다.

“그럼 이제 가 보실까요.”

“어디로 말입니까.”

“어디 보자, 예배당이 최우선 순위겠군요. 실은 혼례 전문 주교를 급히 불러왔습니다. 아침도 굶기고 대기시켜 놓았으니 단단히 뿔이 났을 테죠. 그자가 의전용 포도주를 거덜 내기 전에 가 보는 게 좋겠습니다.”

배웅 인사하는 시녀에게 곁눈질도 하지 않았다. 미겔은 베일과 같은 재질의 장갑을 낀 올가의 손을 붙잡아 당겨 회랑으로 빠져나왔다. 시녀장마저 사라져 여전히 인적 없는 저택은 광막하리만치 텅 비었다.

“저기, 잠시만요… 귀공!”

“호칭이 어색합니다. 편하게 불러 주세요, 어머니. 아들이라든가. 아니면 이름 그대로 불러 주셔도 되고. 아, 애칭을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건 제게 허락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일을 진행하시는 법이 어딨습니까? 저희가 앞서 논했던 바와 상황이 전혀 다르잖아요!”

글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층계참에서 멈춰 선 올가를 미겔이 두어 계단 아래에서 올려다보았다. 행여나 누가 들을세라, 발끝까지 베일을 덮고 속살거리는 신부를 향해 싱긋이 웃었다.

“용서하세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무례를 무릅쓰고 속전속결로 식을 진행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사정이 무엇인지 꼭 좀 들어야겠는데요.”

“좋아요,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제 이름을 불러 주신다면.”

“…….”

“어라, 별로 궁금하지 않으신가 봅니다?”

빌어먹겠다, 정말. 이 여우 같은 작자를 한 대 쥐어 때릴 수도 없고. 가끔 신문을 몰래 훔치곤 하는 옆집 소년이었더라면 진작에 정수리를 쥐어박아 주었을 것이다. 잠시 뒤. 마지못해, 올가의 악문 잇새로 남자의 이름이 샜다.

“…미겔.”

“네, 잘하셨습니다. 듣기 좋네요. 그럼 먼저 하나 여쭙겠습니다, 어머니. 상황이 달라졌다고요. 어떻게?”

“어떻게라뇨! 후작님이.”

“부재하시죠.”

“……!”

“아직 정식 후계로 인정받지 못한 아들을 두고 타계하신 건 절대 아닐 겁니다. 이건 비밀 아닌 비밀입니다만. 실은 너구리 같은 황제가 저를 상당히 싫어하거든요. 제게 후작 위를 넘겨주기 싫어서 열 통이 넘는 청원서도 묵살하고 있죠.”

무력할 뿐이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게 아니다.

콘라드 후작의 죽음을 에둘러 부인한 미겔의 이야기에, 혼란에 겨웠던 올가의 눈동자에 서서히 이채가 어리기 시작했다.

잇속에는 밝으나 지나치게 스스로에게 관대해서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아비와는 다르다. 자존감이 썩 높지 않기에 오히려 영리하게 인과관계를 파악할 줄 아는 여자. 그렇다고 교활할 줄은 모르는 지적인 냄새가 입맛을 돋우었다. 그에 사파이어 청안을 휘어 미소한 미겔이 그녀의 손등에 칭찬처럼 입 맞추었다.

“그런 주제에 휴고는 얼마나 총애하는지. 녀석의 황실 기사단 사표를 한참이나 수리해 주지 않아 애를 먹었었지요.”

어깨를 으쓱인 그가 올가를 조심스레 당겼다. 스르륵. 검은 베일이 계단을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하니 다시 묻겠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다는 건가요.”

그러자 잠시 침묵한 올가의 답변이 바뀌었다.

“귀공… 미겔의 위치는 여전히 위태롭다는 말씀이시군요.”

“더욱 경각에 달했다고 봐야겠죠. 이 자리를 뜯어먹으려는 일가친척이 차고 넘치지 않겠습니까. 툭하면 순수 혈통 운운하며 트집을 잡아 대는데 배길 수가 있나요.”

그리고 이제까지 그들 친척을 납작하게 밟고 있던 후작이 사라졌다.

그러니 도사린 적들에게 노출된 미겔과 휴고 형제에게는 새로운 방패막이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를테면 허수아비로 부려먹기 딱 좋은 무력한 후작 부인이라든가. 명목상이라도 정식 신분의 집안 큰어른이 되어 줄 테니까. 황제의 작위 승계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그녀를 앞세워 버텨야 할 명분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당신이 간절해요.”

올가를 후작 부인으로 맞이하기 전까지 콘라드 체이스필드는 죽어도 죽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당신이 어디선가 8백 스랑의 지참금을 구해 와 돌려주지 않는 이상, 네, 우리의 거래 내용은 이전과 그다지 달라진 게 없는 것 같군요.”

“…….”

“자, 이리 들어오시죠.”

이상한 남자다.

올가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어떠한 비통이나 애도도, 또는 일말의 기뻐하는 태도마저 전혀 보이지 않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마치 수렁 같은 자였다. 빠져나가려고 할수록 더욱 강하게 옭아매어 속절없이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올가는 이 바닥없는 무저갱에서 헤어 나올 힘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안도하기까지 했다. 자신의 쓰임새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에.

“어서요.”

마을마다 하나씩 있는 예배소를, 체이스필드 후작가는 저택 1층 별관에 가족 전용으로 갖추고 있었다. 올가는 미겔의 인도에 따라서 가을 장미 넝쿨에 감긴 여신상을 지나 아늑한 예배당 문턱을 넘어섰다.

곧장 아귀가 맞지 않는 기묘한 장면이 펼쳐졌다.

신랑처럼 주교 앞에 선 우성 알파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투과한 빛이 그의 뺨에 온화하게 여물었다. 어딘가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분위기였으나 주고받는 대화만큼은 무척 사무적이었다.

“어머니, 제게 주실 게 있으실 텐데요.”

“아.”

주교에게 간소화한 예식을 신고하고 대리 입회인 선서를 한 미겔이, 짙은 보라색 쿠션 위에 무릎 꿇은 신부에게 나긋하게 물었다. 가장 중요한 절차를 행할 순간이었다. 뒤늦게 그의 뜻을 헤아린 올가가 품에 소중히 품고 있던 작은 보석함을 건넸다. 심장을 떼어 건네주는 것처럼 손가락 끝이 떨렸다.

“네, 바로 이겁니다.”

결혼하는 오메가가 지아비께 반드시 전달해야 하는 필수 예물. 다름 아닌 목덜미의 특수 초커를 해제할 수 있는 열쇠였다. 부디 목덜미를 물어 달라는, 퍽 저속한 뉘앙스를 띠는 징표이기도 했다. 새틴 상자에 누워 있는 감은빛 작은 열쇠를 확인한 미겔의 눈동자에 엷은 희열이 스쳤다.

“입맞춤을 대행합니다.”

그렇게 선언하고는 열쇠를 들어 올려 차가운 쇠에 입술을 붙인다. 입맞춤이 꽤 길었다.

이후 밀폐된 공간에 단 3인에 의해서 행해진 식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신랑이 해야 할 절차 대부분을 생략하거나 장자인 미겔이 대리했고, 올가는 무릎 꿇은 채로 잠자코 주교를 따라 기도문을 외우거나 그가 사한 포도주를 한 입 마시거나 했다. 그게 전부였다.

“애칭이라…….”

“괜찮아요, 굳이 적지 않아도.”

“만리향 부인은 어떠십니까.”

이윽고 마지막 절차였다. 성인 남성의 상체만 한 가문 족보책을 펼치고 깃털 펜으로 신부의 인적 사항을 적어 넣어야 했다. 동명이인을 구분하기 위한 별칭란에서 펜이 멈추자, 올가의 정수리 위에서 깊게 숨을 들이켠 미겔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금목서요? 이 지방에서는 아직 필 때가 아니지 않나요.”

“가을의 신부시니까요. 금목서꽃은 늦가을에 피지만 뭐 어떻습니까. 좀 당겨 와서 상징으로 삼죠. 멀리 가는 향기처럼 길이 기억되시기를 바랍니다.”

망설이는 올가에게서 부드럽게 깃펜을 앗아 간 미겔이 대신 유려한 필체로 족보에 서명했다. 그 위로 손끝을 약간 물어뜯어 피의 지장을 찍는다. ‘어차피 같은 피니 괜찮습니다.’ 녹슨 철 냄새에 표정을 굳힌 신부를 달래며 그가 자꾸만 웃었다.

“올가.”

마침내 주교의 축사가 끝났다.

“체이스필드.”

이로써 바야흐로 완전한 성혼이 성립되었다. 뒷짐을 지고 선 미겔은 올가의 이름 뒤로 자신과 같은 성을 음미하듯 혀를 굴려 발음해 보았다.

“…부인.”

아주 괜찮았다. 체이스필드의 알파가 꼭 아버지란 법은 없으니까.

“수고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곧바로 장례를 치러 볼까요. 이제야 아버지도 마음 편히 영면하시겠군요.”

딱. 스물여섯의 어머니보다 정확히 두 살 더 연상인 미겔이 손가락을 부딪쳐 경쾌한 소리를 내어 다음 사람을 불러들였다.

“실은 장례 전문 주교도 불러왔거든요.”

***

조문객을 생략한 장례 신고는 앞서 결혼식보다 더욱 짧았다.

어차피 아버지의 부고를 수도로 알리자마자 전국의 문상객들이 떡고물을 바라고 알아서 찾아올 터였다. 게다가 오체 분쇄된 콘라드 후작의 살점을 전부 수거하지도 못했다. 아름답게 사후 화장하여 내보일 시체가 부재했으니 장례식이 길어 봤자 좋을 게 없는 것이다. 시체 구경을 제외해도 귀족의 장례 문화는 충분히 지겨워질 예정이었다.

“상당히 지치셨을 테죠. 바깥에 시종을 불러 놨습니다. 따라가 요기를 좀 하시고 방에 돌아가 푹 쉬세요. 저녁때까지 깨우지 않겠습니다.”

“당신은요.”

“저는 우리의 앞날을 위해 좀 더 기도하고 돌아가겠습니다.”

저래 보여도 독실한가 보다. 오해의 여지를 심어 준 미겔이 오래 무릎 꿇은 여파로 비틀거리는 올가를 부축해 예배당 밖으로 안내했다. 대기하고 있던 사용인에게 어머니를 맡기고 서둘러 성전의 문을 닫아걸었다. 쾅.

“후윽.”

그렇게 혼자 남은 남자는 서둘러 바지춤을 풀어 헤쳤다. 과격한 손길에 앞섶의 가장 밑 단추는 아예 뜯겨 나갔다. 뚜렷한 성기 윤곽을 따라 축축하게 젖은 속옷을 벗기자마자, 똬리 틀고 있던 기다란 페니스가 가열하게 퉁겨 나왔다. 해방된 큼직한 귀두가 걸쭉한 선액을 흘려 댔다.

“참느라… 흣.”

예배당에 무너지다시피 쓰러진 미겔이 성급하게 성기를 훑기 시작했다. 참았던 숨이 거칠어졌다. 좁은 공간에 가득 찬 올가의 향을 내도록 흡입하면서 인내하느라 관자놀이 부위에 핏줄이 시퍼렇게 섰다. 지나치게 발기를 참은 바람에 돌처럼 뭉친 단전에서 내장을 쥐어뜯듯 지독한 통증이 이어졌다.

그의 새어머니는 아마 꿈에도 모를 것이다. 주교가 보는 앞에서 그녀의 베일과 치맛단을 찢어발기지 않으려고 그가 초인적인 인내를 발휘했다는 사실을.

“죽는 줄… 아, 후으… 빌어먹을!”

올가가 작은 구두로 밟고 지나간 붉은 카펫에 뺨을 문댄 미겔이 신경질적으로 헐떡였다.

엄지손톱으로 강하게 귀두 구멍을 후벼 파는데도 좀처럼 사정을 할 수 없다. 그에 반해 오르가슴을 동반한 사정 욕구는 점점 더 거세게 치솟고 있었다. 젠장. 온몸이 끓는 용암이 되어 휘발할 것만 같다. 굵직한 기둥을 따라 정관에 정액이 꽉 들어찼는데, 누군가 코르크 마개로 분출구를 막아 놓은 듯 사출이 어려웠다. 젠장… 제기랄! 미겔은 식은땀이 솟은 이마를 바닥에 문지르며 짝 잃은 배암처럼 꿈틀거렸다.

“하…….”

덜덜 떨리는 음낭을 마저 꺼내 사정없이 짜부라트려도 소용이 없다. 아픔마저 정액 사출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벌름거리는 귀두구가 부질없는 애액만 연거푸 토한 바람에, 원색적인 색을 띠는 성기 기둥이 온통 끈적거렸다. 한 손에 다 잡히지도 않는 굵기를 한참 위아래로 오가며 자위하던 때였다. 미겔의 손바닥이 어느 순간 뿌리 밑동에 걸렸다.

“하하.”

짝짓기할 오메가는 진작 떠나고 없는데, 그녀의 자궁에 씨 뿌릴 기대감에 부푼 페니스 뿌리가 혹처럼 심하게 부풀었다. 암캐의 질에서 좆이 빠지고 정액이 새는 걸 방지하는 갯과 짐승의 특질이 드러난 것이다. 금수의 종족이라 비하당하는 알파의 고유 특성이었다.

러트(Rut)가 시작될 조짐이었다.

환장하겠군. 이렇게 밑이 혹처럼 부풀면 가라앉기까지 족히 한 시간은 걸리는데.

그 긴 시간을 사정하지도 못하고 짝짓기한 오메가의 질과 자궁 없이 홀로 견뎌야 하는 거다. 실로 끔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게 오자마자 지옥부터 선사하시는군요, 어머니. 흐윽!”

엎드린 미겔이 섬뜩한 광을 발하는 송곳니를 드러내고 이를 갈았다. 아담한 공간을 가득 채운 올가의 향에 그가 뿜어내는 페로몬 향이 빠르게 뒤섞이고 있었다.

“왜 그렇게, 후으, 쳐다보십니까, 여신 셰라.”

조금이라도 빠른 사정에 도움이 될까 하여 주머니에서 꺼낸 낡은 리본을 페니스 혹 아래 꽉 묶었다. 턱을 바닥에 대고 청안을 치켜뜬 미겔이 예배단의 여신상을 노려보았다.

“어린 양을 불쌍히 여겨 주셔야죠. 학대와 불신과 번민에 고통받는 신자 아닙니까.”

올가.

“누구의 잘못입니까.”

올가 체이스필드. 이 비참함을 알게 하고.

“적어도 제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비참함을 거둘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

“아… 어머니. 아, 내 어머니. 나의……. 올가, 올가, 올가!”

미겔은 눈 감고 기도하는 여신상을 쏘아보며 고통스러운 자위를 이어 갔다. 아래를 묶은 머리끈을 조여 당기고,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선뜩한 고통을 이 악물어 참는다. 괴로움에 짓이겨진 미간과 흐느낌을 닮은 신음. 자욱하게 퍼져 나가 예배당 밖으로 샌 그의 페로몬은 절규하는 자의 좌절처럼 끔찍했다. 근처에 있던 페로몬 향을 잘 인지할 수 없는 베타 사용인들까지도 오싹하여 겁먹게 할 정도였다.

모든 고통과 죄악의 씨앗은 과거로 말미암는다.

이 천진한 잔학성은 어디에서부터 연유하는가. 그래, 아마도 연인의 축복을 관장하는 여신상 앞에서 두 남녀가 포옹하였을 때부터. 그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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