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짧게 숨을 내뱉은 뒤, 그녀는 또렷한 걸음으로 가게를 빠져나왔다.
빙 돌아가지도 않았다.
어차피 고주망태가 되어버린 남편은 제 모습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할 테니.
들쭉날쭉하던 감정은 어느새 가라앉았다.
아니, 도리어 차갑게 변했다.
자기만 힘들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기적인 태도에 잠깐 울분이 차올랐지만, 그뿐이었다.
의외로 화는 많이 나지 않았다.
외간 여자의 몸을 능숙하게 주물러대던 것?
자신은 거기에 화를 낼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사내와 선을 넘어버린 자신은 그보다 더한 인간이니까.
다만 억울했다.
오지 않는 전화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과도한 업무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는 말에 한껏 걱정하고 있을 때.
이곳에서 혼자만의 삶을 만끽하며 즐거워했을 남편의 모습을 생각하니 더없이 억울했다.
동시에 남편을 환멸했다.
“비겁한 인간….”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같이 살기 싫다면 이혼하자고 했어야지.
만약 이혼이 싫었다면 뭐가 그리도 힘들었는지 말이라도 허심탄회하게 했어야지…!
선택은 한없이 미뤄둔 채 제 즐기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던 그가 미워졌다.
“…이제 다 필요 없어.”
남편은 제 행복을 찾아 먼저 떠난 지 오래였다.
그렇다면 자신 또한 더 이상 거리낄 게 어디 있을까.
그녀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긴 시간을 땅속에 잠들어 있다가 마침내 날개를 펼친 사내.
하루가 멀다고 변화하여 제 가슴을 뒤흔들었던 그가, 간절히 보고 싶어졌다.
당장에라도 서울로 올라가 그의 품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기왕 떠나온 것, 조금 더 여행을 이어갈 참이다.
더없이 아름다운 것을 눈에 담고, 맛있는 것을 입에 담으며 마음을 추스를 것이다.
홧김에, 충동적으로 그에게 안기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
그의 진심에 보답할 수 있도록 온전하게 다가가리라.
가슴에서 남편을 지워낸 그녀는 마침내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 * *
최근에 신유정이 내 방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너 요즘 내 방에 너무 자주 오는 것 같다?”
내 방에 들어선 녀석은 곧장 매트리스 위에 벌러덩 드러누우며 당당한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그래서, 싫어?”
“싫은 건 아니긴 한데.”
싫지는 않다.
어차피 혼자 있어 봐야 하는 거라곤 맨몸 운동이나 TV 보는 것 정도뿐이고.
“그냥 궁금해서.”
그냥 궁금한 거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내 방에 자꾸만 올라와 나한테 치근덕대는지.
그랬더니 녀석이 답하길.
“집에 혼자 있기 심심하잖아.”
그렇단다.
어차피 아줌마가 집에 있어도 자기 방에 콕 틀어박혀서 대화도 잘 안 하면서 심심하긴 무슨.
어쨌든.
신유정이 내 방에서 노는 게 썩 싫지는 않다.
얘가 있으면 볼거리가 하나 더 생기거든.
바로 녀석의 야시시한 차림새.
“안 추워?”
“별로.”
흰색 얇은 나시에 검정 돌핀 팬츠가 녀석이 몸에 걸친 전부다.
계절도 계절이고, 아무리 윗층에 올라오는 거라지만 너무 무방비한 게 아닐까 싶은데.
오히려 녀석은 그걸 노리는 듯하다.
내가 빤히 녀석의 엉덩이를 쳐다보고 있으면 귀신 같이 알아차리곤 나를 쳐다본다.
그러고선 씨익 웃으면서 한다는 말이.
“만지고 싶으면 만져.”
아주 가관이다.
처음에는 뭔가 함정 같아서 보는 데에만 그쳤는데, 이제는 거리낌 없이 나아가기로 했다.
그래서 바로 손을 뻗어서 녀석의 엉덩이 한쪽을 움켜쥐었다.
“윽…, 야.”
설마 진짜 만질 거라곤 생각 안 했는지 녀석이 붉어진 얼굴로 나를 째려본다.
나도 당당한 표정으로 녀석의 시선에 응수했다.
뭐, 왜, 뭐.
“네가 만져도 된다며.”
“…살살 만져.”
자기가 내뱉은 말 때문에 딱히 뭐라 하지는 못하고 웃긴 당부만 전하고 시선을 돌린다.
아줌마의 엉덩이를 만질 때와는 또 다른 질감이 손바닥에 전해진다.
움켜쥐면 손가락이 안으로 부드럽게 파고드는 아줌마의 것과는 달리 얘는 강하게 쥘수록 더 강한 반발력이 내 손을 밀어내려 안간힘을 쓴다.
온몸에 근육이 꽉 차 있어서 그런가.
“후우….”
옆으로 돌아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녀석의 입에서 한 차례 깊은숨이 새어 나온다.
훤히 드러난 목덜미가 살짝 붉어져 있는 걸로 보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 모양.
처음에는 여러 번 만져야 조금씩 반응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반응이 빨라진다.
“흐읏…, 흐으으….”
달뜬 신음에 자연스럽게 흥이 올라 손놀림을 더욱 과감하게 가져갔다.
지금까지는 옷 위로만 만지고 있었는데, 녀석이 방심한 틈을 타 바지와 팬티 속으로 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동시에 녀석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야, 너 이 씨…!”
발끈해도 할 수 없다.
“왜? 난 네가 말한대로 엉덩이 만지고 있는 건데.”
옷 밖이나, 안이나.
내가 만지고 있는 게 엉덩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거든.
당당한 내 대답에 신유정은 잠깐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못마땅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너 요즘 좀 뻔뻔해졌다?”
“네가 예전보다 훨씬 더 편해져서 그런 거 아닐까.”
내 말에 그녀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그…, 흐흠, 그렇다면 뭐….”
감춰지지 않는 기쁜 표정을 애써 감추려는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신유정과 이러고 있노라면 그런 기분이 든다.
거칠게 자란 맹수를 서서히 길들여가는 듯한 느낌?
마냥 거칠고 표현에 서툰 녀석이 나중에 어디까지 변하게 될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
나는 녀석의 귀에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속삭였다.
“유정아.”
“흣…, 왜.”
“오늘 자고 갈래?”
빠르게 던진 돌직구에 녀석의 얼굴이 예쁜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야, 일어나.”
평소보다 늦은 아침.
내 품에 안겨 있던 신유정이 제 몸을 흔들어 나를 깨웠다.
“팔 좀 풀어, 자식아. 아침 안 먹을 거야?”
아직 덜 돌아온 정신머리에 저울이 생겨났다.
신유정이 해준 아침밥 먹기 vs 신유정을 품에 안고 늦잠 자기.
답은 금세 나왔다.
“그냥 이대로 더 자는 게 더 좋을지도….”
“흐흥…, 아, 아니, 일어나라고오!”
“에이.”
아쉽다.
어물쩍 넘어갈 수 있었는데.
꽉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끄으으….”
원래부터 자고 일어나면 몸과 정신이 맑긴 했는데, 오늘은 유독 맑다.
정확히 말하면 맑은 몸과 정신에 깊은 만족감이 더해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나와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녀석이 내게 말했다.
“30분 뒤에 내려와.”
“안 도와줘도 돼?”
“어.”
짧게 대답한 신유정은 곧장 슬리퍼를 신고 방을 나섰다.
둘이 있다가 혼자가 되니 묘하게 쓸쓸한 느낌이 든다.
이래서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말하는 건가.
고작 하루 붙어 있었을 뿐인데 괜히 아쉽네.
입이 텁텁해 양치질이라도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아침부터 잔뜩 성이 난 자지가 바지 안에서 우뚝 솟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아….”
원래 아침이면 서는 게 맞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꼿꼿하다.
이유는 어제 때문이겠지.
“아, 좋았는데.”
쓰읍.
어제 생각만 하면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제대로 각이었던 것 같았는데.
“이걸 거절당하네….”
착실하게 과정을 밟아나갔다.
엉덩이를 시작으로 해서 가슴도 만지고, 목덜미도 가볍게 쓸어내리고 마지막은 보지에까지 손을 대면서 점차 분위기를 잡아갔다.
이쯤이면 무르익었다 싶어 본격적인 섹스에 돌입하려 했는데, 거기서 돌연 막혀버렸다.
“이게 업보라는 건가.”
이유는 예전에 내가 둘러대듯 던진 말 때문이었다.
허무하게 끝난 첫 경험을 만회할 수 있도록 특별한 분위기를 조성하겠다고 말했던 과거의 내가, 이 모든 걸 망쳐버렸다.
“아이구, 이 등신아.”
그래서 이 모양, 이 꼴이다.
과거의 내가 눈앞에 있다면 죽빵이라도 한 대 꽂아버렸을 텐데, 그럴 수도 없으니 원.
“다음부턴 말조심하자….”
씁쓸하게 교훈을 하나 새기며 마음을 갈고닦아 솟아오른 자지를 안정시켰다.
마음 같아선 한 발 시원하게 빼버리고 싶었는데, 억지로 참았다.
이제부터 내 인생에 자위는 없다고 다짐했으니까.
아까운 정력을 자기 위로 따위에 낭비할 순 없지.
“흡! 후웁!”
밤사이 굳은 몸을 적당히 풀어준 뒤, 시간에 맞춰 아래층으로 향한다.
문을 열자마자 매큰한 냄새가 코끝으로 스며든다.
얘가 참 신기한 게, 냄새 하나만큼은 아줌마 못지않다.
맛이 한참 떨어져서 문제지.
“오늘은 무슨 찌개야?”
“흐흥, 순두부찌개.”
당찬 대답과 자신 있는 미소가 인상적이다.
맛이 저기의 반의 반만이라도 따라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식탁에 앉자 꾹꾹 눌러 담은 밥 한 공기가 앞에 놓인다.
실전 압축 근육으로 무장한 팔뚝 탓에 한 공기에 담긴 밥의 양은 상상 그 이상.
“야, 찌개부터 먹어 봐. 오늘 찌개 존나 잘 됨.”
“…그럼 어디 한 번.”
빨간 찌개 한 숟가락을 떠 입으로 가져갔다.
후릅.
“크흠.”
맵고, 짜다.
“어때, 맛있지?”
이게 참 애매하단 말이야.
아예 맛없으면 촌철살인이라도 하겠는데, 그건 또 아니거든.
약간 뭐랄까…, 간 조절만 잘하면 맛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만드는 맛없음이랄까.
맞은편에 앉아서 강아지마냥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는 신유정을 보니 마음이 약해진다.
그래, 아침부터 나 밥해준다고 일어난 사람한테 촌철살인은 무슨.
밥 한 끼 얻어먹지 못했던 과거를 떠올리니 모든 것이 행복해진다.
“맛있어. 맛있는데…, 간이 조금, 아주 조금 세다. 좀만 덜 넣었으면 완벽했을 듯?”
“그래? 어디….”
칭찬을 베이스로 약간의 훈수를 섞으니 가볍게 받아들이는 녀석.
그리고선 숟가락으로 찌개를 떠먹어 보고는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응, 네 말이 맞네. 간만 조금 약하게 했으면 진짜 대박이었겠다.”
“…그렇지?”
어쩌면 달라져야 하는 건 간 조절이 아니라, 녀석의 입맛이 아닐까 싶다.
간간이 찌개 한 숟가락씩 떠먹어 가며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찌개가 좀 에러긴 해도, 밥을 먹는 데엔 크게 지장이 없다.
식탁 위에 꺼내둔 반찬 일체는 모두 아줌마가 만든 거니까.
식사가 끝나갈 즈음, 신유정이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래서, 엄마 찌개랑 내 찌개랑 비교하면 뭐가 더 맛있냐?”
“…….”
며칠간 밥 차려준 건 고맙다만, 그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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