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104/120)

그때 용감한 누군가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의자에 앉으면 뭐가 달라지지?”

[Good Question! 아주 좋은 질문이에요.]

[의자에 앉으면 뭐가 달라지냐고요?]

턱시도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모두가 원하는 답을 들려주었다.

[바뀌는 건…, 전부입니다.]

[세상 전부가 뒤바뀔 겁니다.]

[이 의자에 앉은 여러분을 중심으로 말입니다.]

[바꿔 말하면…, 이 의자에 앉은 여러분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간간이 흐르던 이야기가 전부 멎었다.

그들은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제 입맛대로 세상을 뒤바꾸는 절대자가 된 제 모습을.

권력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그것이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절대 권력이라면 더더욱.

누군가가 물었다.

“저 의자를 차지하기 위한 조건은?”

턱시도가 답을 주었다.

[증명하면 됩니다.]

“무엇을 말인가.”

[당연히 저 의자에 앉을 자격이죠.]

[앞으로 펼쳐질 여러분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겁니다.]

[수많은 사건, 사고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마주하게 되겠죠.]

턱시도의 지팡이가 우리 모두를 가리킨다.

[헤쳐 나가십시오.]

[승리하십시오.]

[살아남으십시오.]

[그리하면…, 이 의자는 응당 여러분의 것이 될 겁니다.]

처음 특성을 얻게 되었을 때.

메시지는 말했다.

‘다가올 운명에 대비하십시오.’라고.

단상 위의 턱시도 녀석은 그것을 구체화하여 설명한 거다.

우리의 삶은 이제 온갖 평지풍파를 마주하게 될 것이고, 이를 이겨내는 사람만이 자격을 얻게 된다고 말이다.

서서히 의욕이 고취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나는 턱시도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는데.”

[말씀하시죠.]

이쪽을 향해 있는 503명의 시선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 나갔다.

목적지는 턱시도가 서 있는 단상 위.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녀석은 지금 날 아주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을 뒤로한 채, 나는 녀석의 뒤에 놓인 의자를 향해 다가갔다.

일곱 개의 의자 중, 검은색 마력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가장 우측의 일곱 번째 의자.

나는 마침내 녀석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여기에 앉으면, 이 의자는 내 것이 되는 건가?”

[하하…,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일곱 개의 의자는 자격이 없는 자가 앉지 못하도록 강력한 마력으로 보호 받고 있거든요.]

[자격이 없는 자가 섣불리 앉으려 했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녀석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 전에.

내가 일곱 번째 의자의 마력을 뚫어내고 그곳을 차지했기에.

나는 아주 느긋하게 다리까지 꼬며 턱시도 녀석을 포함한 504명에게 말했다.

“이 의자는 이제 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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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쌓이고 쌓여온 정형화된 패턴의 마법을 훔쳐 그 형태를 흉내 냈다.

그러다 보니 마력만 보면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의자를 둘러싸고 있는 형형색색 마력의 철통 보안도, 나라면 뚫어낼 수 있지 않을까.

턱시도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등장했을 때.

우리 504명이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을 때도.

내 정신의 7할은 저 의자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림잡아 수억, 수십억 개의 마력 알갱이들이 뭉쳐 자아내는 흐름과 패턴은 족히 수천 가지.

이걸 기억으로써 받아들여야 한다면 머리가 터지고도 남았겠으나, 이것은 기억이 아니었다.

무엇이든 변할 수 있는 새하얀 도화지 같은 내 마력에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각각의 색에는 고유한 성질이 있고, 이를 전부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

이는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각각의 색이 가지는 궁합의 문제였다.

특히 좌측 첫 번째와 두 번째인 빨간색과 파란색은 그야말로 상극 중에서도 상극이었다.

두 가지 색이 가지는 고유한 성질을 구현해내는 순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것 같고, 구역질이 절로 튀어나올 것 같더라.

분홍색은…, 앞선 둘과 달리 몸에 잘 맞았다.

비유하자면 내 몸 사이즈에 잘 맞는 옷을 구매해서 입은 느낌.

사뭇 편안한 느낌에 짙은 분홍색을 띤 여섯 번째 의자를 탈취해야겠다 마음먹었을 때.

마지막 일곱 번째에서 잭팟이 터졌다.

여섯 번째가 사이즈 선택을 잘한 기성복이라면, 이건 그냥 오직 나만이 입을 수 있게 제작한 맞춤복처럼 느껴지더라.

심지어 고유한 성질을 구현해내는 것도 다른 의자에 비해 훨씬 쉬웠다.

이쯤 되면 너는 이거다, 하고 신이 점지해준 운명이 아닐까 싶은 정도.

이렇게까지 파장이 잘 맞는데 구태여 다른 걸 선택할 이유가 없지.

그래서 여기에 앉았다.

검은색의 마력 흐름이 잠시나마 나를 막아서는 듯했으나, 녀석은 끝내 나를 받아들였다.

동시에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의 마력’을 흡수합니다.]

[고유 능력 ‘마력 흡수’가 ‘○○의 마력’의 영향을 받아 ‘○○’으로 진화합니다.]

[조건이 부족하여 완전 개화에 실패하였습니다.]

[특수 조건을 달성할 때까지 ‘○○’이 봉인됩니다.]

“…….”

마력 흡수는 내 빠른 성장에 보탬이 되어주었던 꿀 같던 능력인데, 그걸 봉인하다니.

물론 진화라는 표현이 들어간 만큼, 더 좋은 능력으로 변화했을 가능성이 점쳐지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게 조금 뼈 아프다.

…별수 있나.

조금 성장이 늦어지겠지만, 먼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 생각하고 감내하는 수밖에.

생각을 갈무리한 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썩 매력적이다.

단차로 인해 생겨난, 503명과 나의 사뭇 다른 눈높이.

우러러보는 오백하고도 세 쌍의 시선과 이를 내려다보는 단 한 쌍의 시선.

“아쉽네….”

진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하얗게 물들어 있는 저 안의 표정이며 눈빛이 어떠할지, 너무 궁금해서.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던 분위기에 삽시간에 혼란이 찾아왔다.

“저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시작도 전에 의자 하나를 뺏겨야 하는 건 아니겠지?”

“대체 무슨 일이….”

고작 일곱 개밖에 되지 않는 의자.

이걸 잔인하게 표현하면 497명은 죽어야 하고, 일곱 명만이 살아남는다는 뜻.

그런데 벌써 한 자리를 빼앗겼으니, 혼란이 찾아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자, 다들 진정하십시오.]

턱시도가 서서히 들끓기 시작하는 이들을 진정시켰다.

조금 더 보고 싶었는데, 아쉽구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게임은 이제 시작이라고.]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듯하여 여러분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만….]

턱시도 녀석이 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가 삐딱한 자세로 앉아 있는 나를 가리켰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의자는, 가짜입니다.]

나는 녀석의 말에 덧붙였다.

“정확히 말하면 가짜는 아니지.”

턱시도의 시선이 내게로 쏟아진다.

보이지 않아도 알겠다.

녀석은 그것을 내가 어찌 알았는지 몹시도 궁금해하고 있다.

[…맞습니다. 가짜라는 말은 표현이 좀 박하고, 정확히 말하자면 ‘복제품’이라고 해야 할까요.]

가짜가 겉으로 드러난 모양만 흉내 낸 허술한 것이라면, 이것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마력까지 비슷하게 구현해낸 복제품이었다.

“아, 아쉬워라.”

나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 나오는 말투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대로 한 자리 차지하나 싶었는데.”

이것이 복제품임을 알게 된 건 조금 전의 일이었다.

마침내 마력의 흐름을 파악하여 의자를 둘러싼 막을 돌파한 순간, 느낌이 오더라.

‘아, 이건 가짜구나.’ 하고 말이다.

오랜만에 손쉽게 날로 먹나 싶어서 기뻐했는데, 살짝 아쉽다.

그래도 얻은 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복제품 의자를 통해 얻게 된 수많은 마력 패턴과 흐름, 그리고 마력 흡수의 진화인 ‘○○’까지.

이제 막 지향점을 알게 된 503명과 달리, 나는 이것저것 뜯어냈으니 제법 큰 소득이지.

의자 위에서 다리를 까딱거리며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젊은 친구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날뛰는군.”

아무래도 내 모습이 아니꼬왔던 모양.

목소리를 낸 이는 단상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는 사내였다.

젊은 친구라…, 아주 듣기 좋은 말이야.

칭찬을 들었으니, 화답을 해줘야겠지.

“그러는 댁은 다 늙어빠진 영감탱인가 봐. 말투가 꼬장꼬장한 게 딱 꼰대네, 꼰대.”

노인 특, 꼰대라는 말 제일 싫어함.

“슬슬 뒷방에 계셔야 할 나이인 것 같은데, 뭐가 그리 욕심이 많아서 나오셨을까.”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노인이 화가 났다는 건 아주 잘 알겠다.

노인을 중심으로 흐르는 마력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거든.

마력량이 어마어마하다.

이 정도면 못해도 A급, 전력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S급도 너끈해 보이는데.

이는 좋은 정보임과 동시에 노인의 크나큰 실책이었다.

세계에 널리고 널린 헌터들 중 S급은 그 수가 매우 적으니까.

[자아, 진정들 하세요. 어차피 여기선 싸움도 못한답니다?]

“크흠.”

턱시도가 타이밍 좋게 끼어든 덕분에 노인의 마력이 서서히 원래의 흐름을 찾아간다.

그런데도 영 못마땅했는지, 나한테 한마디 덧붙이더라.

“이곳에서 날 만난 걸 다행인 줄 알거라,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그런 인간이 있다.

자기가 마지막으로 공격당한 채 끝나는 걸 몹시도 싫어하는 부류.

응, 그게 바로 나야.

“영감도 운 좋은 줄 아슈. 밖에서 만났으면 지금쯤 수의 입고 관짝에 들어가 있었을 테니까.”

“이, 이놈이…!”

마지막 공격이 깔끔하게 들어갔다.

욕을 한 바가지 쏟아내려는 것 같길래 나는 턱시도를 이용해 주제를 바꿔버렸다.

“그래서, 대면식은 이걸로 끝?”

[하하…, 504번 덕분에 난장판이 되긴 했습니다만, 제가 전하고 싶은 말은 전부 다 전한 것 같네요.]

턱시도가 주변을 둘러보며 지팡이를 흔들었다.

[혹시 질문 있으신 분?]

나를 제외한 503명 중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슬슬 집에 돌아가고 싶은 건지, 아니면 궁금증이 모두 풀려서 저러는 건지.

[흐음, 아무래도 없는 듯하군요.]

[그렇다면…, 제 1회 대면식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놈의 말에 주변이 살짝 술렁인다.

1회라면…, 이 대면식이 앞으로 몇 번 더 있을 수도 있다는 거야, 뭐야.

사람들의 궁금증을 눈치챈 턱시도가 적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대면식은 의자의 주인이 모두 정해질 때까지 몇 번이나 더 있을 예정입니다.]

[그럼 다음 대면식에도 여러분 모두를 뵐 수 있기를.]

다음 대면식이 언제 열릴지는 모르겠으나, 여기 있는 전부를 다시 보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턱시도가 참여자들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다.

그와 동시에 녀석의 존재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턱시도가 완전히 사라진 뒤,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대면식이 종료되었습니다.]

[3초 후, 원래 있던 곳으로 복귀합니다.]

[3….]

그때였다.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내 네놈을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그때까지 목 간수 잘하고 있어야 할 게다!”

[2….]

저 영감탱이가 잠깐 방심한 사이에 딜을 욱여넣네.

나도 질 수 없지.

“영감은 나 만나기 전에 죽지 않게 건강 관리나 잘하쇼.”

그러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중지를 들어 보여주었다.

[1.]

노인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각각의 몸이 빛줄기에 휘감겼다.

이번 딜교는 나의 압승으로 끝났다.

* * *

대면식이 끝난 직후.

깊은 심연 속에 잠들어 있던 존재가 깨어났다.

절대 깨지 않을 것만 같은 그가 깨어난 이유는 단 하나.

냄새를 맡은 탓이었다.

수백 년간 전해지지 않았던 아주 그리운 냄새를.

어둠 속에서 거대한 몸체가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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