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직!
날카로운 검이 나아가는 방향은 하나 같이 단단한 갑각 사이를 잇는 이음새 부분.
어딜 노리라고 말도 안 했는데 가장 약한 부분을 공략하고 있다.
틈이 좁아 노리려고 해도 쉽지 않은 곳인데…, 내 딸다운 솜씨라고 해야 할지.
“끄응….”
내 색채가 강하게 묻어나는 녀석의 검술을 보고 있으면 자꾸 기분이 오묘해진단 말이지.
어쨌든, 신나게 날뛴 서연이 덕분에 마지막 정리가 손쉽게 끝났다.
이제 전리품을 수거해야지.
단검을 손에 쥔 채로 죽어 널브러진 개미의 등을 해체한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음새 부분에 단검을 박아넣은 다음, 힘을 주어 들어 올리면….
뿌드득-!
이렇게 뜯어져 올라온다.
“자, 이렇게 등껍질을 뜯어내면 돼.”
“으엑….”
“히끅!”
헛구역질에 딸꾹질까지.
이것들이 아주 배가 불렀구나?
“얘들아, 이게 다 돈이야. 우리 돈 벌어서 더 좋은 장비 사야지?”
“으으….”
하나둘씩 개미들의 등껍질을 떼어내기 시작하는 팀원들.
좋은 장비.
그것만큼 헌터들의 의욕을 자극하는 말은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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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흐헤헤…!”
바닥에 떨어진 등껍질을 줍는 엘레나의 입가에 그려진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다.
아니, 지워지는 걸 떠나서 웃음소리가 점점 무섭게 변하는 것 같은데.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지금 줍는 등껍질들이 결국 다 돈으로 바뀔 테니, 그녀는 지금 땅에 떨어져 있는 돈을 줍고 있는 듯한 느낌이겠지.
“흠….”
진행은 순조롭다.
아니, 순조롭다는 말보단 쾌속하다는 말이 더 어울리려나.
그만큼 전투 속도가 빠르다.
전방의 탱커 두 명이 개미들을 꽁꽁 묶어놓는 동안 준비한 마법으로 폭사.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공략 덕분이었다.
“좀 아쉽네.”
모든 게 완벽하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응? 뭐가?”
옆에 있던 임나은이 내가 낸 소리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 등껍질 상태가 좀 아쉬워서.”
던전 공략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로 인해 품질 가치가 하락하는 등껍질이 조금 아까울 뿐.
파이어볼을 통한 폭발은 개미들을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지만, 그만큼 상처도 크다.
폭발 범위 중앙에 있는 녀석들은 등껍질이 조각조각 나서 쓸 수가 없을 지경.
그것을 확인한 임나은도 아쉽다는 투로 얘기했다.
“응…, 좀 아깝기는 하네.”
말했듯, 저게 다 돈이다.
던전 공략은 그렇게 숭고한 일이 아니다.
그냥 헌터가 좀 위험하게 돈 벌러 들어오는 곳이지.
그런데 그 돈이 줄줄 새고 있다는 거고.
“흐음.”
잠깐 고민을 해보았다.
조금 더 누수를 줄인 상태로 잡을 수는 없을까?
사실 속도를 줄이면 그만이긴 한데, 그러면 그만큼 탱커의 부담이 늘어나니까.
“여기서 더 벌 수 있다면 괜찮습니다! 내 몸, 매우 튼튼! 합니다!”
그러면서 팔을 접어 제 이두박근을 내게 보여준다.
본인의 건재함을 내게 어필하고 싶은 모양인가 본데, 그건 좀 잘못된 선택이다.
“엘레나, 돈 좀 더 벌자고 몸을 상하는 행동만큼 어리석은 건 없어.”
그러자 그녀가 입을 삐죽 내민다.
“도진, 모릅니다. 가족의 배고픔이 내게는 더 아픕니다.”
내가 조금 더 고생해서 가족들 배부르면 그걸로 만족한다는 건가.
“그건 너무 근시안적인 생각이야.”
“근…시안? 뭡니까, 그 말.”
아, 너무 어려웠나.
“그러니까 내 말은 당장 배고픔만 해결하는 걸로 끝내지 말자는 얘기야.”
“그럼 뭘 더 합니까?”
“아주 좋은 집, 맛있는 음식, 예쁜 옷. 다 해주고 싶지 않아?”
“…해주고 싶습니다!”
“그걸 다 하려면 엘레나가 지금 다치면 안 돼.”
“아, 이해했습니다.”
그래.
이해했다니 다행이다.
헌터는 몸이 재산이다.
나는 그걸 늦게 깨달았다.
만약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손시우의 몸은 지금보다 훨씬 좋은 상태, 아니, 가로막힌 벽 하나를 더 뚫고 올라섰을지도.
“고맙습니다, 도진.”
“응?”
갑자기 웬 감사.
“처음입니다. 내 건강 걱정해준 사람.”
“아….”
얘가 또 괜한 곳에서 찡해지게 만드네.
마음이 조금 더 의욕적으로 변했다.
어떻게든 엘레나가 한 푼이라도 더 벌게 해주자.
겸사겸사 우리도 더 벌면 좋고.
“지금부터 공략 방법을 바꾸자.”
답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결국 폭발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등껍질만 안전하면 된다는 거잖아?
나는 즉각 팀원들에게 달라진 작전을 제시했다.
“확실히 그렇게 하면 등껍질은 안전하겠네.”
“…그 빌어먹을 녹색 체액도 좀 덜 튈 거고.”
반응은 제법 괜찮았다.
“그럼 바로 시험해 보자.”
논의를 끝마친 뒤, 곧장 던전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눈동자들.
포지션은 변하지 않았다.
두 명의 탱커가 한 몸이 되어 개미들의 공격을 견제한다.
원래는 여기서 파이어볼을 장전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다른 걸 준비했다.
시작은 나부터.
백색의 마력을 한데 모은 뒤, 개미들이 우글거리는 지역에 넓게 퍼뜨린다.
마치 스프레이를 뿌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그와 동시에 녀석들의 발밑으로 자욱한 안개가 깔리기 시작했다.
자연적인 안개가 아닌, 냉기의 마력을 듬뿍 머금고 있는 서리 안개가.
「아이스 포그(Ice Fog).」
엘레나의 특성에 의해 이미 한 차례 느려졌던 개미의 움직임이 더욱 굼뜨게 변했다.
냉기가 안으로 파고드는 탓에 몸이 움츠러들어 공격의 빈도 또한 줄어든 상황.
이쯤 되면 녀석들은 과녁이다.
우리 마법을 대놓고 맞아줄 과녁.
“이제 쏘면 돼?”
“어, 쏴.”
발이 느려진 녀석들의 숨통을 끊어낼 마법 또한 따로 준비해뒀다.
등껍질에는 최대한 손상이 가지 않고 숨을 끊어내려면 결국 목과 몸통을 분리시키는 게 제격 아니겠나.
이때 필요한 건 예기(銳氣).
날카롭게 벼린 바람의 칼날 정도면 놈들의 단단한 갑각 사이의 이음새 정도는 충분히 끊을 수 있다.
「윈드 커터(Wind Cutter).」
날카로운 칼바람이 굼뜬 개미들을 향해 쏟아진다.
노리는 곳은 각각의 이음새.
목이 떨어져 나가고, 다리가 후두둑 잘려 나갔다.
마무리는 탱커와 서연이의 몫.
다리를 잃고 죽어가는 개미들의 목에 칼을 쑤셔 박으면 끝.
“아!”
전투가 끝난 뒤 개미들의 사체를 확인한 엘레나의 몸이 잘게 떨렸다.
“돈이 더 많아졌습니다…!”
한껏 감격한 표정.
스무 마리를 잡으면 고작 열 개밖에 건지지 못했던 전과는 달리, 지금은 거의 열여덟, 열아홉 개를 건질 수 있게 됐다.
“금액적인 면에선 이게 맞네.”
“응, 그런 것 같아.”
“마력 소모가 조금 더 크다는 게 문제지만.”
파이어볼 한 방으로 서너 마리를 한꺼번에 잡을 때와는 달리, 윈드커터는 잘 해봐야 두 마리가 한계였다.
거기에 아이스 포그도 설치해야 하는 만큼 마력의 소모가 더 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행인 건 던전이 끝나갈 무렵이라 마력이 바닥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슬슬 보스 룸이 나올 때가 됐는데….”
“아, 저기 보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개미굴 공략 세 시간여 만에 보스 룸에 닿았다.
“원래 여기 평균 공략 시간이 다섯 시간 아니었나?”
“응, 우리가 엄청 빠른 거야.”
“헤에.”
신유정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그려진다.
현역 헌터들도 다섯 시간 걸려서 공략하는 던전을 우리가 세 시간 만에 주파했으니, 이 파티의 잠재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눈치챈 거겠지.
“하아…, 들어오기 전에는 걱정했었는데, 막상 오니까 생각보다 괜찮다.”
가슴에 손을 얹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임나은.
들어올 때보다 마음이 한결 편하다는 게 표정에서 드러난다.
반면 기세등등하게 던전에 들어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헤프게 웃던 엘레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엘레나, 표정이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렇게 묻자,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었다.
“떠나는 게 아쉽습니다, 도진…. 왜 항상 좋은 순간은 짧은 것입니까?”
“…….”
더 벌지 못해서 아쉬워하고 있는 거였구나.
“걱정하지 마. 이번 한 번으로 끝이 아니니까.”
“다음에 또 옵니까?”
“던전은 자주 가게 될 거야. 돈도 돈이지만, 팀워크 단련도 해야 하니까.”
팀워크는 결국 실전에서 쌓아 가야만 몸이 깨닫게 된다.
실제 상황에서 팀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또 나는 어떻게 이를 뒷받침해야 하는지 등.
정형화된 훈련 속에선 익힐 수 없는 것들이 한가득 존재하니까.
돈을 벌면서 엘레나와의 유대를 쌓고, 동시에 팀워크도 다지고.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계책이 아닐 수 없다.
“자, 그럼 보스 후딱 해치우고 쉬러 갈까?”
“그러자.”
“좋습니다!”
의욕 넘치는 표정으로 일어나 보스 룸으로 향하는 팀원들.
나는 웃으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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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감 넘치는 보스전 따위는…, 없었다.
개미굴의 보스라고 해봐야 수십 마리 병정개미를 이끌고 나타나는 여왕개미인데, 그 자체로 강력하기보다 병사들에게 이로운 버프를 걸어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잡몹 제거만 수월히 할 수 있다면 잡는 데에 그리 어렵지는 않은 녀석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잡몹 제거가 탁월한 팀이니까.
몰려드는 병정개미를 그 자리에 붙잡아두고 깔끔하게 전부 없애버렸다.
남은 여왕개미도 당연히 날아드는 마법을 다 막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고.
거기까지 걸린 시간이 정확하게 30분 정도.
결국 우리는 3시간 30분 만에 던전 공략을 마친 셈이다.
던전 앞을 지키던 경비들이 금세 나온 우리를 보고 어찌나 놀라던지.
아무튼.
우리가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흔히들 환전소라 불리는 곳이었다.
정확한 명칭은 ‘괴수 부산물 거래소’인데, 부르기 귀찮아서 다들 환전소라고 부른다.
그곳에서 개미굴에서 얻은 등껍질과 보스 공략 후 세이프티 룸에서 얻은 마정석까지 전부 팔아치웠다.
그렇게 해서 오늘 벌어들인 액수는 총 1,500만 원 정도.
거기에 세금 2할을 떼고 나면….
“대략 1,200만 원 정도인가.”
인원수대로 나누면 명당 240만 원 정도의 수익을 올린 셈.
C급 던전에서 올린 수익치곤 상당한 액수였다.
나는 곧장 받은 액수를 똑같이 나누어 네 사람의 계좌에 송금했다.
“2, 240만 원…!”
제 스마트폰 액정에 적힌 이체 금액을 확인한 엘레나가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다.
화면에서 가까스로 눈을 떼어낸 그녀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더니, 내 손을 꼭 붙잡는다.
“도진, 정말 고맙습니다! 도진이 아니었다면 이런 돈, 벌지 못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