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지나갈 때마다 날 보며 수군거리는 사람이 한둘이어야지.
“음…! 나, 느꼈습니다. 이 만남, 운명입니다!”
“으응…?”
뜬금없는 급발진에 당황하는 사이.
그녀가 팔을 뻗어 내 손을 붙잡는다.
“도진, 나는 압니다. 당신의 파티, 아직 사람 부족합니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어쩌면 나름대로 정보를 열심히 습득하고 다니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는 돈을 벌어야만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으니까.
지금 당장 돈을 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높은 성적으로 한국 대학교를 졸업하는 것일 터다.
그래야만 좋은 길드의 스카웃 제의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모르긴 몰라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실력 괜찮은 이들이 구성하는 파티에 대한 정보들이 제법 많이 들어 있지 않을까 싶다.
“도진의 파티, Offence Power 훌륭합니다. 하지만 헐렁합니다, 앞.”
“오….”
앞이라는 건 전열을 말하는 거겠지…?
우리 파티의 장단점도 알고 있고, 생각보다 제법인걸.
정확한 분석으로 자신을 뽐낸 그녀는 제 가슴에 손을 얹고서 당당한 목소리로 피력했다.
“나는 될 수 있습니다. 도진 파티의 코어 피스(Core Piece)!”
그러니까…, 말하자면 전열이 헐거운 우리 파티의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다는 거잖아, 본인이.
그녀의 두 눈에 뜨거운 열망이 내비친다.
절대로 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내 손을 쥐고 있는 손아귀에도 점점 힘이 더해진다.
그만큼 그녀가 처한 상황이 급박하다는 거겠지.
“흠.”
그녀의 성적은 알고 있다.
탱커들 중 하위권.
꼴찌와 힘겹게 각축전을 벌이는 하위권 중에서도 거의 밑바닥.
이는 두 가지 치명적인 단점 때문이었다.
하나는 언어.
지금 보면 일상적인 대화는 얼추 가능한 수준인데, 어려운 단어는 알아듣지 못한다.
당연하지만 한국 대학교의 수업은 전부 한국어.
말인즉, 이론 시험마다 죽을 쑤고 있다는 얘기다.
아무리 한국 대학교가 실전 위주 커리큘럼으로 유명하다고 해도, 이론을 중요치 않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성적 비중을 따지면 실전이 7이고, 이론이 3 정도는 된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만약 여기까지였으면 그녀의 성적이 지금처럼 바닥을 치고 있지는 않았겠지.
두 번째 이유는 뭐…, 다들 알다시피 특성 때문이다.
그녀의 몸만 봐도 기본기가 탄탄하고, 기초 능력치가 우수하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그러나 특성은 상식을 뛰어넘는 불합리한 능력.
그녀보다 모자란 탱커들도 이를 십분 활용하면 더 뛰어난 활약을 펼칠 수 있다는 의미다.
심지어 그녀는 특성이 자신에게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상황 아닌가.
이론 시험 바닥에 실전에서도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기가 어렵고.
성적이 자연스럽게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거다.
“엘레나 말대로 우리 파티는 탱커 한 명을 더 영입할 생각이기는 해요. 그건 맞는데….”
이를 어쩐다.
하드웨어만 보면 그녀는 뛰어난 재목이 맞는데….
일단 한 가지 알아보아야 할 게 있다.
“엘레나 씨가 생각하는 본인의 장단점, 말해줄 수 있을까요?”
“장단점….”
안색이 흐려지는 엘레나.
그녀의 장단점은 이미 파악했다.
그럼에도 직접 물어보는 건 얼마나 양심적인 인간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파티를 구성할 때 절대 끼워 넣어선 안 되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이기적인 인간과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인간.
나는 그녀가 거기에 속하는 인물인지, 아닌지는 알고 싶었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그녀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내 장점, 힘이 세고 튼튼합니다. 발까지 빠릅니다! 또 엘레나, 용맹한 전사입니다. 절대 물러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탱커를 위해 타고난 재목.
“그럼 단점은요?”
“단점, 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눈을 질끈 감는 엘레나.
“한국어, 서툽니다. 어려운 말들, 잘 이해 못합니다.”
비교적 가벼운 한 가지는 일단 밝혔고.
“그리고 또 하나…, 내 특성, 조금 이상합니다.”
“이상하다?”
그녀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 대미지 땅으로 흘립니다. 그러면 만들어집니다, 슬로우 존. 적, 느려집니다. 그런데 아군도, 느려집니다….”
일단 첫 번째 인성 시험은 무사히 합격.
마음 같아선 영입하고 싶은데…, 여전히 특성이 마음에 걸린다.
“엘레나.”
“말하십시오.”
“그 특성, 나한테 좀 보여줄 수 있어요?”
잠시 고민하던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음…, 보여줍니다. 하지만 대미지 필요합니다.”
아, 몸에 받은 충격을 흘려서 만드는 방식이라고 했었지.
가벼운 마법 몇 방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서 하기는 좀 그렇고…, 훈련장으로 가죠.”
“좋습니다.”
우리는 곧장 체단실을 나섰다.
“내 방패, 가져옵니다. 트레이닝 룸에서 보는 겁니다.”
“그래요.”
엘레나가 장비를 챙기기 위해 떠나고, 나는 곧장 훈련실이 있는 다음 구역으로 넘어갔다.
다행히 개인 훈련실이 남아 있어 곧장 빌렸다.
그쯤 해서 엘레나도 돌아왔다.
등에는 제 몸을 거의 다 가릴 듯한 거대한 방패를 메고 있고,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있다.
아무래도 저걸 등에 지고 뛰어온 모양.
“안 뛰어와도 됐는데.”
그러자 그녀는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따봉을 날렸다.
“괜찮습니다. 나, 체력 매우 강합니다.”
체력이 강하다고 해도 힘들지 않은 건 아닐 텐데.
인내심 강한 저 성격이 무척 마음에 든다.
“그럼 들어가죠.”
그녀가 오기 전에 빌려준 개인 훈련실 안으로 들어선다.
30평 남짓한 크기의 시설.
안으로 들어선 엘레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퍼스널 트레이닝 룸…, 처음 와봅니다.”
개인 훈련실은 성적 상위자와 특례 입학생에 한해서 신청 가능한 공간이다.
성적이 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엘레나로선 처음 들어오는 거겠지.
그리고 나도 처음이다.
말했다시피 지금까지 굉장히 게으르게 살아서 존재만 알았지, 들어온 적은 없었거든.
크기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고, 벽도 튼튼해서 마음껏 소란 피워도 괜찮겠네.
“그럼 해볼까요?”
“음, 좋습니다.”
등에 메고 있던 방패를 들어 제 앞에 세우는 엘레나.
“나, 준비 끝났습니다. 얼마든지 와도 좋습니다.”
타워 실드로 상체와 하체 대부분을 가리고 선 그녀가 하나의 벽처럼 느껴진다.
그럼 가벼운 마법 몇 개만 쏴볼까.
주변에 선명하게 흐르는 마력을 움직여 곧장 형태를 이룬다.
「파이어 볼(Fire Ball).」
성인 남성의 주먹 두 개를 갖다 붙인 듯한 크기의 화구.
“그럼 갑니다?”
“오십시오.”
강인한 눈빛으로 마법을 노려보는 그녀를 향해 화구를 냅다 던졌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화구가 그녀가 세운 방패에 닿는다.
화려하게 비산하는 불꽃들.
그녀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마법을 무리 없이 막아냈다.
“특성, 나옵니다.”
그 말과 함께 엘레나를 중심으로 땅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발밑으로 흐르는 거무죽죽한 마력.
그것이 땅으로 흘러 들어가더니, 반경 1m 내의 바닥을 짙은 갈색으로 물들였다.
“지금 대미지로는 이 정도가 끝입니다.”
“음.”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갈색으로 물든 감속 지역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자 곧장 걸음이 느려졌다.
발에 커다란 족쇄라도 단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더없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이거 능력이 상당하네….”
감속 효율이 제법 뛰어나다.
이 정도면 못해도 2할에서 3할 정도는 족히 느려진 것 같은데.
무거운 발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엘레나를 보았다.
“엘레나는 어때요? 여기 있으면 발이 느려져요?”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나, 느려지지 않습니다.”
“오.”
다른 사람은 전부 느려지는데 본인만큼은 느려지지 않는다라….
대충 이 특성의 문제점이 뭔지 알 것 같다.
“좋네요.”
“에? 아…,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엘레나, 나랑 파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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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진에게서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듣게 된 뒤.
신유정은 한순간도 그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아니, 쳐다볼 수가 없었다.
쪽팔리고, 화가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안했다.
그가 그토록 집요하게 괴롭힘당한 이유가 만만해서가 아니라,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에.
‘난 그것도 모르고….’
어쩌다가 한 번, 자기 엄마 생각해서 그가 크게 다치지 않도록 김정훈을 말렸다는 것 정도로 김도진에게 있어 자신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자위하고 있었다는 게 창피했다.
속이 들끓었다.
이대로는 김도진 앞에서 얼굴조차 제대로 들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와 약속한 대로 술 마신 날은 가만히 화를 삭이고, 다음날에 곧장 김정훈에게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돌아온 답변은 ‘언제든 좋다.’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먼저 연락한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먼저 연락을 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찌나 메시지를 많이 보내오던지.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유정은 학교를 나섰다.
목적지는 평창동.
어디서 만나든 상관없다고 했더니, 자기네 집으로 오라며 주소를 보내더란다.
“미친 새끼.”
듣자마자 욕이 한 바가지로 튀어나왔는데, 지금은 그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남 눈치 안 보고 후려갈길 수 있으니 잘됐네.”
지금 기분이 그랬다.
놈의 면상에 주먹이라도 한 대 꽂아 넣지 않으면 진정이 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워 택시에 올라탄 신유정.
이윽고 도착한 평창동의 전경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대궐 같은 으리으리한 단독 주택이 늘어선 드넓은 길.
“부자긴 존나 부자였네, 씹새끼.”
학교 선생조차 쉽게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부자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조금이지만 몸이 위축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신유정의 걸음을 막아서지 못했다.
“여기인가?”
이윽고 도착한 김정훈의 집.
거대한 단독 주택이 줄지어 늘어선 이곳 평창동에서도 손꼽을 정도의 대저택.
아버지가 작게 회사를 하고 있다고 하더니, 작다는 건 그저 겸양이었던 모양.
“후우.”
그녀는 작게 숨을 내뱉으며 초인종을 눌렀다.
지잉,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스피커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시죠?]
“김정훈 만나러 왔는데요.”
[아, 신유정 양이시군요. 도련님께 얘기 들었습니다. 금방 문 열어드릴게요.]
“허.”
도련님이라니.
부잣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정말 그런 식으로 호칭을 하는 건가.
“으, 닭살.”
팔에 오돌토돌 돋아나는 닭살을 매만지고 있을 때.
철컥!
잠금장치가 해제되고 거대한 대문이 양옆으로 갈라진다.
이윽고 펼쳐진 것은 파릇파릇한 잔디가 펼쳐진 드넓은 정원.
한쪽 구석에는 잉어들이 뛰노는 커다란 연못까지.
드라마에서나 보던 것들이 눈앞에 현실이 되어 나타나니 얼떨떨했다.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서자, 멀리서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유정아!”
낯익은 음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