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새어 나온 혼잣말을 들은 신유정이 내 물음의 답을 해주었다.
“아니, 불가리아 사람.”
“그렇구나.”
한국 대학교에 재학중인 외국인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입학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점과 언어의 장벽이 생각보다 높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요즘에는 마도 공학의 발전으로 좋은 성능의 번역기가 우후죽순 출시되고 있지만, 아직 번역률이 완벽한 수준은 아닌지라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한국어를 반드시 익혀야만 했다.
대학교 강의를 들을 정도로 한국어를 익히는 게 쉬운 것도 아니고, 또 한국 대학교가 뛰어난 헌터 육성 기관인 건 맞지만, 아예 대체 불가 수준은 아니니까.
“불가리아면 유럽 아냐?”
“맞아.”
“그런데 왜 한국 대학교에 입학했대.”
유럽에도 한국 대학교와 견줄 만한 헌터 양성 기관이 제법 많다.
영국, 독일의 기관은 우리와 견줄 만하고, 프랑스도 조금 떨어지긴 해도 상당한 수준으로 알고 있는데.
“돈 벌러 왔다던데?”
“돈…?”
“어, 한국 대학교 학생들은 임시 면허가 나오잖아.”
“아하.”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헌터 협회는 한국 대학교 학생들에게 임시 헌터 면허를 발급해준다.
성적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지만, 랭크는 대략 B에서 D 사이.
임시 면허가 발급되면 합법적으로 던전 공략이 가능해진다.
말인즉, 학생 신분으로 공부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것.
근데 모든 국가의 헌터 양성 기관이 이러한 제도를 따르는 건 아닌 걸로 알고 있다.
특히 유럽에 있는 헌터 양성 기관은 군대의 성향이 짙어 외출조차 허락받고 가야 한다지?
십중팔구 엘레나라는 친구의 집은 가난할 확률이 높다.
또 이 친구가 가장의 역할을 맡고 있을 테고.
그래서 헌터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으면서 돈까지 벌 수 있는 한국에까지 온 거겠지.
“흐음….”
가난은 대체로 제 삶을 비관하게 만들지만, 때때로 성장의 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까지 왔을 정도라면…, 이 엘레나라는 친구는 후자가 아닐까 싶은데.
“너 설마 엘레나를 팀에 넣을 생각은 아니지?”
잠깐 고민하는 사이, 신유정이 불안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탱킹 능력만 좋으면 그럴 수도 있지. 왜?”
내가 되묻자, 신유정이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걔는 안돼.”
표정만큼이나 단호한 음성.
아무 이유 없이 반대하지는 않을 테고, 치명적인 단점이라도 지니고 있는 건가.
“이유는?”
“일단 소통이 힘들어.”
음, 확실히 그건 단점으로 통할 만하지.
던전에서는 각각의 파티원이 원활하게 소통하며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엘레나라는 친구가 한국어에 능숙하지 않다면 벌써 하나의 단점을 안고 시작하는 셈.
“한국어를 아예 못 해?”
“그건 아니지만…, 가벼운 대화만 가능한 수준이야.”
“그래…?”
그 정도면 바디랭귀지와 번역기까지 더해서 어떻게든 대화가 가능할 것 같은데.
솔직히 의아하다.
태블릿에 떠 있는 인물 사진을 클릭하면 간략한 프로필이 나타난다.
키와 몸무게, 사용하는 무기, 장단점, 특성 등.
180cm에 달하는 장신에 72kg.
사용 무기는 몸 전체를 가릴 수 있는 거대한 타워 실드(Tower Shield).
웬만해선 운반하는 것조차 버거운 방패를 사용하는 걸 보면 근력 수치도 제법 높을 테고.
특성은 뿌리 깊은 나무.
내용은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이름만 들어선 그야말로 탱커에게 찰떡인 특성 같은데.
“너도 의아하겠지. 프로필만 보면 딱 봐도 뛰어난 애가 왜 아직 남아 있는지.”
얘가 이제는 내 마음을 읽는 건가.
어떻게 알았는지 내 속마음을 그대로 들춰낸다.
“네 말이 맞아. 솔직히 이 정도면 남은 탱커, 아니, 이미 영입된 애들 몇보다 더 나은데.”
고작 의사소통이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하기엔 상당히 아까운 매물이다.
한국 대학교 학생들이 전부 바보가 아니라면 굳이 놓칠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왜일까.
신유정은 그에 대한 답을 내게 들려주었다.
“걔한테 언어보다 더 치명적인 단점이 있거든.”
“그게 뭔데?”
“특성.”
“특성이라면…, 뿌리 깊은 나무?”
“그래, 그거.”
이름만 들어선 영 감이 오지 않는다.
“뿌리 깊은 나무는 본인에게 가해진 충격 일부를 발밑으로 흘려보내서 본인을 중심으로 광역 감속 지역을 생성해내는 특성이야.”
…들으니까 더 군침이 도는 건 나 뿐이야?
Crowd Control.
통칭 CC기.
게임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로, 적에게 제약을 거는 기술들을 의미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탱커의 최고 특성 중 하나로 꼽혀도 이상할 게 없다.
본인이 받는 충격 일부를 흘리고, 또 그걸 이용해 감속 지대를 만들어낸다?
이 정도면 대형 길드 영입 대상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그런데 여기에 커다란 단점이 숨어 있어.”
“뭔데?”
솔직히 내 마음은 거의 정해졌다.
수치로 환산하면 대략 9할 정도?
얘, 영입한다.
단점이야 뻔하지.
지속 시간이 매우 짧다거나, 범위가 좁다거나, 효과가 미미한 수준이라거나.
당장 치명적일 수는 있지만 충분히 훈련을 통해 개선이 가능하니까 미래를 보고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그 감속 지역은 피아 구분이 없어.”
“응?”
“그러니까, 아군 발도 느려진다고.”
아, 이게 또 1할에 걸리네.
.
.
.
.
.
.
.
잠깐이지만 꿈을 꾸었다.
신유정이 메인 탱커로 몬스터를 막아내고, 서브 탱커 엘레나가 감속 지대를 설치해 적을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완벽한 조화를.
“에휴.”
생각대로만 됐다면 정말 완벽했을 텐데.
설마 단점이 피아 구분 없이 모두를 느리게 만드는 것이었을 줄이야.
“아직도 아쉽냐?”
“…조금.”
옆에서 걸어가는 신유정의 물음에 솔직하게 답했다.
“포기해. 1학기 때는 그 단점 어떻게든 이겨내 보겠다고 데려간 사람도 많았거든?”
“…다 실패했겠지.”
그러니까 지금 외톨이처럼 남아 있는 거고.
“잘 아네.”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치는 녀석.
자꾸만 아쉬움이 남는다.
그냥 눈 딱 감고 영입해봐?
나는 또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해법을 찾아낼지도 모르잖아?
…최초의 실패자 이후 나타난 도전자들도 전부 나와 같은 생각을 했겠지.
“야, 일단 그 생각은 그만하고.”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데, 녀석의 손이 내 팔을 붙잡아 멈춰 세운다.
“그…, 시간도 늦어서 엄마한테 밥 차려달라고 하기도 좀 그렇지 않냐?”
지금이 저녁 8시니까….
일반적인 저녁 시간이 지나긴 했네.
“그럼 집에서 대충 차려 먹지, 뭐.”
“아니, 그게 아니라!”
깜짝이야.
얘는 왜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르고 있어.
“기왕 이렇게 된 거 저녁을 먹고 들어가자 이 말이야, 내 말은. 그…, 가볍게 반주도 하면서.”
살짝 붉어진 얼굴로 횡설수설하는 신유정.
아까 전부터 눈치채고는 있었다.
계속 사람 얼굴 힐끔거리는 거 보면 무언가 할 말이 있겠구나, 하고.
“그럼 그럴까.”
과연 무슨 얘기일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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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내게 무언가 할 말이 있을 때.
나는 상대가 편하게 말을 꺼내기를 차분히 기다려주는 타입이다.
꺼내기 어려운 말이니까 저렇게 뜸을 들이고 있는 거겠지.
그런데.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추가요!”
“…….”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저녁도 먹을 겸 삼겹살집에 왔더니 얘가 고기는 안 먹고 술만 주구장창 마셔대고 있다.
고기는 아직 구워지지도 않았는데 한 병을 다 마시냐.
“좀 천천히 마시지?”
안 되겠다 싶어 한마디 하니까 녀석의 기세가 한층 누그러들었다.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는데, 소주잔을 들어 올리는 속도가 전보다 느려진 게 보인다.
이상하다.
웬일로 군말 없이 말을 잘 듣지?
“술만 마시면 속 버리니까 고기 다 구워지면 마셔.”
이것도 듣나 싶어 한 번 더 말렸더니, 그대로 들고 있던 소주잔을 내려놓는다.
어라, 진짜 이상한데?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 한마디도 안 내뱉는다.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저렇게까지 자기 성질을 죽이고 있는 거지?
궁금해서 성격이고 나발이고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그렇게 뜸 들이냐고 물어볼 뻔했네.
참자.
어차피 시간은 많고, 꼭 해야 할 말이라면 언제고 꺼내겠지.
잊지 말자.
느긋함, 여유야말로 인간관계에 있어 우위를 놓치지 않게 만드는 가장 좋은 무기라는 걸.
그러니 일단 배부터 채우자.
치이이익-
세상 가장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불판에서 익어가는 삼겹살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신유정의 공기밥 뚜껑 위에 하나둘씩 쌓아 올렸다.
그러자 녀석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하길.
“야, 이거 다 나 주면 넌 뭐 먹으려고.”
“아.”
아차.
무심코 옛날 버릇이 나오고야 말았다.
어쩌다 가족끼리 모여서 고기를 구워 먹을 때면 마누라, 딸내미 챙기는 게 일이었어서 그런가, 아주 자연스럽게 신유정에게 고기를 몰아 줬네.
“자.”
뚜껑에 쌓인 고기의 절반을 뚝 떼다가 내게 건네준다.
제멋대로에 속물이기는 해도, 이럴 때 보면 영 글러 먹은 인간은 아닌 것 같단 말이야.
그렇게 반반 고기를 가른 상태에서 식사가 시작됐다.
주변에서는 왁자지껄 떠드는데, 우리 테이블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먹으면서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하는 게 뻔히 보이길래 그냥 가만히 뒀다.
주고받는 행동이라곤 고작해야 구운 고기를 나누고, 술잔을 주고받는 행위뿐.
테이블 위에 빈 소주병 두 개가 나란히 놓였을 즈음.
“야…,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마침내 녀석이 입을 열었다.
“뭔데?”
“그게 말야….”
다시 한 번 뜸을 들이는 녀석.
그러다 입술을 살짝 깨물며 다시금 입을 연다.
“옛날얘기거든? 네가 기억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는….”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옛날….”
굳이 꺼내어 보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고 생각만 해도 머릿속에 줄줄이 떠오른다.
원체 이 몸뚱어리의 인생이 기구하기 짝이 없긴 했는데, 가장 힘들었던 때는 역시.
“고등학생 때?”
“…어.”
한층 안색이 흐려지는 신유정.
표정만 보면 내가 아니라, 자기가 기억하기 싫은 추억인 줄 알겠다.
뭐…, 어떻게 보면 나보단 녀석이 조금 더 찔리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 몸뚱어리가 당한 학교 폭력은 녀석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으니.
근데 그걸 얘가 아나?
“그래서 묻고 싶은 게 뭔데?”
“그…, 후우.”
다시 한번 말을 하다가 말고 술잔을 들이켠다.
웬만한 일은 노빠꾸로 내지르는 녀석이 저러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속이 답답한 모양.
취기가 올라 몽롱해진 두 시선이 나를 향한다.
“그때 존나 힘들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