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화 (80/120)

“…….”

주변에서 질투의 시선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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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쯤 되어서야 모든 수업이 끝났다.

“야, 여기!”

교양동 건물을 나서는데 신유정이 나를 보면서 손을 흔든다.

그나저나, 야라니.

거친 게 딱 녀석 스타일이긴 한데, 애정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호칭이라 좀 별론데.

신유정이 웃으면서 ‘도진아!’ 하는 모습을 떠올려 봤다.

“어우야.”

그만두자, 그건.

사람이 생긴 대로, 성격대로 살아야지, 그러다 죽을까 봐 겁난다.

“도진아, 안녕.”

옆에는 임나은도 함께였다.

그녀의 어깨에는 신유정의 팔이 휘감겨 있었다.

자기보다 5cm쯤 작은 사람을 팔걸이마냥 사용하는 모양새가 왜 저렇게 잘 어울리는지.

저러니까 이 몸뚱어리가 잔뜩 겁을 먹었지.

“오늘 수업 하나도 같이 못 들어서 얼마나 쓸쓸했는지 몰라, 힝….”

울상을 짓는 걸 보니 인사치레는 아닌 듯하다.

아마 그녀도 나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모양.

2학기 때 특례 입학했다 보니 6개월간 미리 친분을 쌓은 무리에 끼기 힘들다는 문제 말이다.

그렇다곤 해도 나은이가 나와 같은 문제를 겪으리라곤 생각을 못 했는데.

“남자애들이 말 많이 걸지 않아?”

“응…? 아, 그렇긴 한데…, 너무 부담스러워서 좀….”

말을 하면서도 싫은 기색이 역력하다.

대체 어떻게 다가갔길래 세상 착하고, 사교성 좋은 애가 부담감을 느낄 수 있는 거지?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안 부담스러워?”

“응!”

오, 감동.

일말의 망설임 없는 즉답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유는?”

“으음, 글쎄…? 그냥 볼 때부터 편하고 좋았어.”

이게 그건가.

그린 라이트인가 뭔가 하는.

세상 착하고 귀여운 대답에 가슴이 물들어가고 있을 때, 악의가 가득 담긴 일격이 옆구리를 찌르고 들어왔다.

아, 맞다.

얘가 있었지.

“그만 떠들고 빨리 가지?”

으르렁대는 목소리.

미안해서 어쩌지.

“미안, 나 지금 못 가.”

신유정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진다.

“뭐? 왜.”

“교수님이 부르셔서. 실습 때 잘했다고 상을 주신다나, 뭐라나….”

살짝 뻗대듯 말하자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조금씩 펴지는 게 눈에 들어온다.

“흠흠, 그래? 그런 이유라면 뭐….”

상을 받는 건 나인데, 왜 자기가 더 기뻐하는지.

아무튼 알면 알수록 귀엽다니까.

“오래 안 걸리면 기다려주고.”

“으음….”

모르겠다.

일찍 끝날지, 안 끝날지 도통 감이 안 잡힌다.

상을 준다고 부르기는 했는데 단순히 그것뿐만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언제 끝날지도 모르니까 그냥 먼저 가.”

“그래? 그럼 집에서 보자.”

“도진아, 내일 봐!”

“잘들 들어가.”

두 사람을 배웅한 뒤, 곧장 마법 학과 강의동으로 향했다.

가장 꼭대기 층에 있는 교수실.

그중 백현아의 이름이 적힌 교수실의 문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똑똑!

“네에, 들어와요.”

기다렸다는 듯이 들려오는 음성.

문을 열고 들어가자 책상 위에 가득 쌓인 서류 더미가 방의 주인보다 먼저 보였다.

“…….”

저걸 보고 있자니 한주희의 서재가 떠오른다.

그녀의 책상도 맨날 서류 더미가 한가득이었는데.

마법사들의 공통점 같은 건가.

서류 더미 속에서 얼굴이 빼꼼 드러났다.

환한 미소.

그러나 마냥 해맑게 받아들이긴 어려울 듯한 감춰진 속내가 느껴진다.

“어서 와요! 수업이 이제 끝났나 봐요?”

“네, 조금 전에 끝나고 오는 길이에요.”

“고생 많았어요. 피곤하죠? 일단 자리에 앉을까요, 우리?”

우리라는 단어를 서슴지 않게 사용하며 서서히 거리를 좁혀온다.

노골적인 움직임.

내 취향의 여자가 이렇게 다가오면 일단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말이지….

정확히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한 상황에서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어 일단 자리에 앉았다.

백현아 교수는 내 건너편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짧은 드레스 차림으로 반대편에 다리를 꼬고 앉다니…, 상당히 아슬아슬한 느낌.

아, 남자의 본능이란 게 이토록 무서운 거다.

수준 낮은 유혹인 줄 알면서도 저기에 시선이 자꾸만 가는 걸 보면 말이다.

손시우일 땐 저런 유혹에 끄떡도 안 했는데, 몸이 달라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마음가짐이 달라져서 그런 건지 몰라도 저런 데에 굉장히 취약해지고 말았다.

“후후….”

교태어린 웃음소리.

내 시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고서 짓는 웃음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놀아나는 꼴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제게 줄 선물이란 게 뭔가요?”

“아…, 선물, 맞아요. 제가 선물을 주겠다고 했었죠.”

“…….”

이로써 한 가지는 확실해졌네.

선물은 나를 이곳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급조한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

그렇다면 남은 건 목적인데.

“도진 학생처럼 젊은 남자들한테 선물로 뭐가 좋으려나….”

그러면서 내가 보길 바라는 듯이 다리를 반대로 꼰다.

아, 봤다.

딱 봐도 야시시해 보이는 승부 팬티.

노림수인 걸 알면서도 던지는 족족 물어대는 내가 밉다, 미워….

“그 전에, 도진 학생에게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말씀하세요.”

“라이트닝 볼, 다시 한번 만들어볼 수 있어요? 이번엔 제대로.”

그거였구나.

제대로…, 라는 조건을 전제로 단 걸 보면 무언가 들은 게 있는 모양이다.

과연 누가 그녀에게 정보를 흘렸을까.

“임철웅 교수님이 제게 영상 하나를 보여줬어요. 본인의 식견으로는 좀처럼 판단이 어려운 마법을 쓴 학생이 있어서 좀 봐달라고.”

“아.”

정보가 어떻게 전달됐는진 알겠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다.

“지금도 그 평가의 연장선이라고 봐야 할까요.”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평가만을 하려 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거예요.”

그녀의 상체가 앞으로 살짝 쏟아져 내렸다.

깊게 파인 가슴골이 아른거린다.

시선은 끊임없이 가는데, 그로 인한 집중력의 흐트러짐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와의 대화, 만족스러운 시선.

느껴지는 건 두 가지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는 충족감뿐.

“솔직하게 말하면…, 도진 학생에게 관심이 생겨서예요.”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또각 또각

경쾌한 하이힐 소리와 함께 다다른 곳은 내 옆자리.

향수의 진한 꽃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든다.

“이유는…, 일단 마법을 보고 나서 말해주고 싶은데, 어때요?”

“음.”

일반적인 관심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마 굉장히 조심스럽고, 비밀스럽게 건네야만 하는 무언가라서 내 실력을 재차 확인한 뒤에 내 능력이 합격점일 때만 꺼내 들 요령일 테지.

이를 어쩐다.

감추고서 멀어질까, 아니면 원하는 대로 보여줄까.

답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래요, 그럼.”

지금은 그저 이미 확인한 사실을 한 번 더 제 눈으로 확인하는 것뿐.

감추기엔 이미 늦었다고 봐야겠지.

그러면 결국 답은 하나뿐.

제대로 보여줘서 그녀가 애간장을 들들 볶게 만드는 것.

생각을 마침과 동시에 마력을 끌어당긴다.

강의 때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마법진을 그려내고, 이를 발현한다.

「라이트닝 볼(Lightning Ball).」

시동어와 함께 마법은 완성되었다.

마법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5초 안팎.

원한다면 1초 내로도 가능하겠지만, 거기까지 보여주기는 아무래도 좀 그렇지.

“이 정도면 될까요?”

자색의 번개 구체를 그녀의 눈앞에 보란 듯이 들이밀었다.

“아….”

눈앞에서 마법의 시전을 확인한 그녀의 목울대가 크게 울렁거린다.

힘겹게 목을 넘어가는 걸로 봐선 제법 목이 마른 모양.

과연 정말로 수분이 부족해서 느끼는 갈증일까.

아니면….

“응, 좋아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합격점.

아니, 그 이상을 받으며 나는 구체를 지워냈다.

백현아 교수의 입가에는 더없이 짙은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올라간 입꼬리가 연신 떨리는 걸 봐선 그마저도 좋아하는 티를 덜 내기 위해 애쓰는 모양.

“응, 후후…, 그래요. 선물, 선물을 줘야지.”

옆에 앉은 그녀에게서 묘한 열기가 느껴졌다.

시선에 불이 붙었고.

필시 그 불은 그녀의 몸에도 옮겨붙었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도진 학생처럼 젊은 남자에게 어떤 선물이 어울리려나….”

은근슬쩍 엉덩이를 떼어낸 그녀가 나를 바라본 채로 내 무릎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아까 보니까 여자의 몸에 꽤나 관심이 많아 보이던데.”

으이구, 이놈의 시선.

선글라스를 쓰고 다닐 수도 없고, 정말.

“여체에 대한 호기심…, 그걸 풀어주는 거라면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은데, 어때요…?”

그녀의 말, 눈빛, 몸짓에서 폭발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염기가 노골적으로 엄습해온다.

사내로서 더없이 흥분되고, 떨리는 상황.

그러나 머릿속은 더없이 차갑다.

속내가 까만 여자.

이런 여자가 주는 걸 무턱대고 먹은 놈치고 좋은 결과 맞이한 놈을 내가 본 적이 없다.

아, 한 사람 있다.

예전에 매일 같이 다른 여자와 잠자리에 드는 문란하기 짝이 없는 S급 헌터 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S급 헌터한테 빨대 꽂으려고 달려드는 속 까만 여자들도 많을 텐데, 그런 여자들은 어떻게 하냐고.

그랬더니 놈이 했던 답이 가관이라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

무턱대고 먹는 건 하책.

접근 자체를 거부하는 건 중책.

“고작 이 정도로 교수님의 몸을 바라는 건 좀 염치가 없는 것 같고요.”

내 목을 휘감아오는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붙잡아 제지한다.

“네…? 아, 아니….”

당황하는 그녀.

그녀의 손목에 끼워져 있는 팔찌 하나가 눈에 띈다.

두께 0.5cm 정도의, 각인된 마법진을 제외하면 별다른 문양 없는 심플한 은색 팔찌.

나는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팔찌 정도면 보상으로 딱 적당할 것 같은데….”

예전에 놈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상책은 무엇이냐고.

놈이 말하기를.

“교수님 생각은 어떠세요.”

몸에 가득한 가시와 독을 전부 제거한 뒤, 안전하게 먹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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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우리 도진 학생이 원하는 거라면 이 정도쯤이야.”

일순 당황하는 듯하던 백현아 교수는 이내 웃는 낯으로 내 제안을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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