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 (76/120)

“야, 빨리 나가자.”

이런 자리에서 마음껏 기뻐하기도 뭐 했는지, 신유정이 내 팔을 잡아끈다.

도망치듯 밖으로 나오니 주변을 둘러싼 우울한 분위기가 조금씩 가셨다.

“다들 고생했다!”

신유정이 더없이 기쁜 목소리로 모두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임나은이 걱정하는 투로 녀석에게 물었다.

“유정이 너도 고생 많았어. 몬스터들한테 엄청 시달리던데…, 의무실 안 가봐도 돼?”

“야, 탱커는 그게 일상이야, 일상. 그 정도도 못 버티면 헌터 관둬야지.”

다른 건 몰라도 신유정에게 딱 하나 칭찬할 점이 있다면 바로 마음가짐일 거다.

마음 전부는 아니고, 헌터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이라고 해야 할까.

헌터를 꿈꾸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인기, 돈, 명예 등.

모두가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에 부풀어 현실을 잊고 있을 때, 신유정은 이상을 꿈꾸면서도 현실 또한 직시하고 있다.

저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모르긴 몰라도 쟤는 제법 괜찮은 헌터가 될 거다.

아직 여러 가지 배워야 할 게 많아 보이는데, 내가 가르치면 더 나은 헌터가 될지도?

내 가르침을 받아들일지가 의문이긴 하지만.

“오늘 다들 고생했는데 뒤풀이 어때? 내가 쏠게.”

다들 들떠 있는 사이, 백지훈이 뒤풀이를 제안했다.

뒤풀이라….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한창 젊을 때는 진짜 엿같은 놈들만 아니면 당연하다는 듯이 뒤풀이를 하곤 했는데.

주최자가 영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옛날 기분도 낼 겸 참가해볼까.

“그거 좋…, 읍.”

흔쾌히 따라가려는데 신유정이 황급히 내 입을 가로막는다.

그러면서 나랑 임나은을 제 곁으로 끌어당긴다.

“아~ 미안, 오늘 우리 집에서 삼겹살 파티하기로 했거든.”

갑자기 웬 삼겹살 파티?

나와 임나은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봐선 쟤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뒤풀이 가기 싫어서 변명하는 건가.

“에이, 다섯이 다 같이 고생했는데 너희 셋만?”

백지훈이 노골적으로 서운하다는 티를 낸다.

그러나 상대는 신유정.

“미안미안. 며칠 전부터 약속했던 거라 그땐 이렇게 될 줄 몰랐지.”

“…그냥 다 같이 하면 안 돼? 재료 같은 건 우리가 사가면 되잖아.”

“집이 좁아서 셋이 한계야. 거기에 우리 엄마도 있고.”

어떻게든 틈을 파고들기 위해 공격해오는 백지훈을 끝내 침몰시킨다.

“다음에 하자, 다음에. 그땐 내가 쏜다!”

마지막으로 기약 없는 ‘다음에’ 공격까지.

정말 완벽하다, 신유정!

말을 마친 녀석이 우리 두 사람을 마구 이끌었다.

“그럼 우리 먼저 간다? 다음에 봐!”

“어, 그래….”

백지훈과 그의 똘마니 현석을 남겨둔 채 우리는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나는 녀석에게 물었다.

“넌 뒤풀이 별로 안 좋아하나 보다?”

기분 좋은 날인데도 변명까지 해가며 뒤풀이를 거절하는 걸 보면 그렇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 나 뒤풀이 좋아하는데.”

…뭐지, 이건.

“그럼 아까 뒤풀이는 왜 거절했어?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거짓말이라니, 무슨 거짓말.”

“아니…, 집에서 삼겹살 파티한다고 거짓말했잖아.”

“그거 거짓말 아닌데?”

“……?”

무슨 소리냐며 되묻는 듯한 녀석의 표정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거 진짜였어…?

* * *

수업을 끝마친 임철웅은 곧장 다른 곳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다 구역에 자리한 마법 학과 강의동.

건물 안으로 들어선 그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언제 와도 거북한 곳이군.’

특성에 의해 신체에 자동 적용된 마법 저항력이 건물에 그려진 마법진의 마력으로부터 거부 반응을 일으킨 탓이었다.

그러한 연유로 그는 마법 학과 건물을 찾는 것은 극도로 자제해왔다.

애초에 그와는 딱히 연관이 없는 곳이기도 했고.

그런 그가 이곳을 찾은 건 다름 아닌 김도진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실습 마지막 순간에 그가 선보인 마법이 문제였다.

‘전체 학년을 통틀어 최고였다.’

파괴력, 시전 시간, 타이밍.

그 모든 것이 시의적절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마법적 지식이 얕은 그에게 보인 것은.

대단하다는 건 알겠는데, 어느 정도로 대단한지 정확히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기에 이곳을 찾았다.

마법적 지식이 뛰어난 이의 식견을 빌리기 위해.

마침내 도착한 곳은 강의동 건물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교수실.

가볍게 문을 두드리자,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들어오세요.”

나긋한 음성.

듣기 좋은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임철웅은 일말의 꺼림칙함을 느끼며 안으로 들어섰다.

교수실 안으로 들어선 그가 처음으로 본 것은 산더미 같이 쌓인 서류들이었다.

자신으로선 알아볼 수 없는 기하학적인 문양과 글자들이 빼곡하게 쓰인 서류들.

그 속에서 희고 고운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오랜만에 뵙네요? 임 교수님.”

“…오랜만이오.”

이윽고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전체적으로 화장기가 짙은 얼굴이지만, 미녀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만한 외모.

매혹적인 얼굴과 풍만한 육체에서 폭발적인 염기가 쏟아진다.

“마법 학과라면 질색을 하시는 분이 웬일로 여기까지 오셨을까요?”

나른한 말투의 물음에 임철웅은 굳은 표정으로 제 주머니에 들어 있던 물건 하나를 꺼내놓았다.

“이건….”

그가 책상 위에 올려둔 것은 다름 아닌 USB였다.

“한 번 봐주었음 하는 학생이 있어 찾아왔소.”

“흐응…, 오랜만이네요.”

이따금 그가 이곳을 찾는 이유 중 하나였다.

USB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미약한 흥미가 서렸다.

“좋아요. 급한 일만 처리하고 바로 확인할게요. 감상평은…, 적어도 다음 주까진 들려드리죠.”

“음.”

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가실 건가요? 아니면 오붓하게 차나 한 잔…?”

은근한 물음에 임철웅은 단호히 물러섰다.

“퇴근 시간이라 이만.”

“어머, 아쉬워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얼굴 어디에서도 아쉬움은 묻어 나오지 않았다.

“그럼 살펴 가세요?”

“답변 기다리겠소.”

그 말만을 남긴 채 임철웅은 떠나갔다.

혼자 남게 된 여인은 책상 위에 놓인 USB를 집어들었다.

“이번엔 어떤 학생이려나.”

그녀는 곧장 제 컴퓨터에 USB를 꽂았다.

말로는 다음 주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거짓말이다.

원한다면 당장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녀에게 시간이 급박한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굳이 거짓말을 한 이유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다.

그가 가지고 온 영상에서 나타날 이가 제 마음에 쏙 들어 포섭할 가치가 있다면 이를 위해 설득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

그녀는 곧장 영상을 재생했다.

이윽고 나타난 5인의 파티.

“저 아이인가?”

처음 시선을 잡아끈 이는 스태프를 든 여학생, 임나은이었다.

특성을 이용해 마법을 저장하는 모습에 여인은 작은 감탄을 터뜨렸다.

“헤에…, 재미있는 특성이네.”

마법사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시전 시간을 상쇄한 임나은의 활약상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그 증거로 옆에 있는 남학생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활약할 틈이 없어 울적해진 표정에 그녀의 표정도 덩달아 울상으로 변했다.

“저 아이도 마법사인 것 같은데, 불쌍해라….”

생긴 게 제법 취향인 남학생이 아무것도 못 하는 걸 보니 괜한 측은지심이 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여인은 임나은에 대한 평가를 끊임없이 이어 나갔다.

“저 정도면 확실히 끌어들일 만한데….”

구미가 당긴다.

지금까지의 평가는 매우 우수했다.

접촉할 만한 가치가 있냐고 하면…, 아직 부족하다.

특성은 뛰어나지만, 마법적 소양은 크게 드러나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이제 그 마법적 소양 또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마침 특성도 떨어졌고….”

마지막 방에 이른 임나은은 특성을 모두 소모한 상태.

과연 그때 어떤 활약상을 보일지가 마지막 테스트가 되리라.

그녀는 영상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의아함을 느꼈다.

“응…?”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활약한 임나은이 아닌, 그녀의 옆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찌그러져 있어 측은지심마저 느꼈던 남학생으로부터.

그의 손 위에 라이트닝 볼이 완성되었다.

거기서부터 그녀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전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빨라…!”

그는 고작 5초 만에 라이트닝 볼을 만들어냈다.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 압축!?”

세상 다루기 까다롭다는 뇌전 계열의 마법에 압축을 가하고 있다.

당장에라도 사방으로 쏟아질 것 같은 번개를 강제로 억누르고 크기를 줄여간다.

이미 이것만 해도 재능이 번뜩이다 못해 흘러넘칠 지경인데, 그는 그보다 더한 것을 보여주었다.

압축된 번개 구슬 위에 에어볼을 덧씌우고, 그 위에 한 번 더 워터볼까지…!

“이, 이게 무슨…!”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정론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던 마법에 대한 이론들이.

절대 불가능한 것이라고 여기고 세워두었던 높다란 벽이.

지적해서 놀라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냥 그가 지금 선보이는 마법 자체가 불가해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마침내 선보인 마법의 위력은 화룡점정.

영상에서는 고블린 셋에 오크 두 마리를 까맣게 태우는 것으로 끝났지만, 물방울을 타고 주변을 뒤덮는 번개의 크기만 봐도 알 수 있다.

“저 정도면 오크가 수십 마리가 있었어도 다 죽었을 거야….”

고작 다섯만 죽이고 끝날 마법이 아니라는 것을.

“대단해, 대단해, 대단해, 대단해, 대단해…!”

몇 번을 외쳐도 부족하다.

그만큼 환상적이고, 황홀했다.

“흐윽…!”

아랫도리에서 짜릿한 쾌감이 일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광경에 흥분한 음부에서 물을 왈칵 쏟아내고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주변을 매만졌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황홀한 광경을 보여준 사내의 얼굴이 띄워져 있는 모니터를 쓰다듬으며, 그녀는 결심했다.

“하으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그곳으로 끌어들이고 말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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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신유정은 곧장 아줌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집에 불판 있지? 그것 좀 꺼내놔 줘. 응, 옥상으로. 도진이랑 친구 한 명 갈 거야. 어, 어. 알았어.”

삼겹살 파티하자고 당당하게 끌고 가길래 얘가 진짜 나 몰래 준비라도 해뒀나 했더니.

“집에 가기 전에 마트 좀 들렀다 가자. 고기랑 쌈 좀 사가게.”

“…….”

이 정도면 그냥 생각난 김에 하자는 수준인데.

녀석의 옆에 고분고분 앉아 있는 임나은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야 어차피 같은 건물에 사니까 그렇다 쳐도, 얘는 무슨 날벼락이야.

“나은이 너 시간 괜찮아?”

“응? 어…, 괜찮아.”

녀석의 막무가내식 행동에 언짢은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보인다.

나쁜 수준을 넘어 기대감마저 서려 있다.

내가 빤히 쳐다보는 걸 느낀 임나은이 부끄러운 듯, 제 볼을 감싸 쥐며 대답했다.

“나 사실 이런 거 처음이거든….”

“삼겹살 파티가?”

“응. 정확히는 이렇게 친구들이랑 자유롭게 노는 거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 노는 게 처음이라니.

엄한 집안에서 자랐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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