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사이 신유정이 앞으로 쏜살같이 튀어 나간다.
“야, 그 교수 지각하면 바로 벌점 때린다. 뛰어!”
아, 벌점은 좀 곤란한데.
먼저 달려간 신유정을 황급히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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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에 땀이 맺힐 즈음 괴수학 강의가 이루어지는 바 구역에 당도했다.
널따란 구역에 강의동 건물 한 채.
그리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 무장 경비대의 초소가 구역을 둘러싸고 있다.
이곳의 경계가 삼엄한 이유는 하나.
이 구역 지하에 있는 한 시설을 지키기 위해서다.
“아직 안 늦었지?”
“어, 1분 남았어.”
몇십 초 정도를 남기고 건물 3층의 기초 괴수학 강의실에 들어섰다.
마법 학과 강의 때와는 사뭇 다른 환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전투 학부 1학년 필수 과목이라 학생들이 바글거린다.
“도진아, 유정아!”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든다.
조금 전에 어딘가 들렀다 온다며 사라졌던 임나은이다.
“쯧.”
신유정은 그런 그녀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차더니 갑자기 나를 째려본다.
“너 저년이랑 계속 다닐 거냐?”
“별일 없으면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
임나은 말대로 우리는 특례 입학생 중 유일한 마법 학과 동기다.
물론 우리보다 일찍 입학한 1학년들도 동기인 건 맞는데, 지난 학기 동안 짜인 무리 안으로 들어서기가 쉽지 않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마 그녀도 그런 부분에서 내게 조금 더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거겠지.
“노파심에 말하는 건데…, 너 쟤한테 다른 마음 품고 있는 건 아니지?”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진다.
나는 여유 있게 녀석의 말을 받아쳤다.
“에이, 아니지.”
아직은 그냥 동기 사이일 뿐이지.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망설임 없이 빠른 대답에 녀석의 표정이 한층 누그러진다.
임나은이 미리 맡아둔 자리에 앉자, 그녀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살짝 서운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어디 다녀온 거야? 전화했는데 받지도 않구.”
전화를 했었다고?
곧장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서 확인해봤다.
…진짜네.
그나저나 뭐 하고 왔다고 대답하지?
고민하는 사이, 신유정이 쾌활한 표정으로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대신 대답했다.
“미안, 우리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왔어. 그치?”
“그렇지. 전화는 내가 폰을 무음으로 해둬서 온 줄 몰랐네.”
“아…, 그랬어?”
신유정이 먼저 꺼낸 변명에 변명을 덧붙였다.
다행히 쉽게 납득하는 듯한 표정.
“다음엔 나도 같이 마시자. 두 사람은 무슨 커피 좋아해?”
별안간 질문이 쑥 들어왔다.
사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본 적이 별로 없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는데.
“난…, 아메리카노?”
그냥 무난한 걸로 대답했다.
“유정이는?”
질문이 신유정에게로 옮겨졌다.
“나? 나는… 오늘 라떼를 먹었는데, 우유가 듬-뿍 들어가서 진하고 맛있더라고.”
“우유 좋아하는구나?”
“응, 뭐…, 좋아하지. 앞으로 쭉 라떼만 먹을지도.”
…왜 우유 좋아하냐는 물음에 나를 쳐다보는 건데.
설마 지금 말한 우유가 그 ‘우유’인가.
야릇하게 웃는 걸 보니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조금 전 정액을 꿀꺽 삼키던 녀석의 모습이 상기된다.
하마터면 또 설 뻔했네….
포인트가 미묘하게 어긋난 질문과 답을 주고받을 때, 강의실 문이 열리고 낯익은 얼굴이 걸어 들어왔다.
입고 있는 와이셔츠가 꽉 낄 정도로 두꺼운 가슴과 팔뚝과 짧은 스포츠컷이 인상적인 중년 사내.
입학식에서 조교로 위장해 있던 마법사와 화끈한 공방을 펼쳤던 그 교수다.
단상 위에 올라선 교수가 마이크에다 대고 작게 읊조렸다.
“다들 조용.”
삽시간에 강의실은 적막으로 휩싸였다.
“반갑다, 제군들. 나는 이번 학기 기초 괴수학 강의를 맡게 된 임철웅 교수다.”
짝짝짝짝!
아.
이제야 기억난다.
A급 헌터 임철웅.
5년 전에 A급 던전을 공략하고 입은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은퇴한 비운의 인물.
같이 일해본 적이 없어서 얼굴만으론 기억이 안 났는데, 이름까지 들으니 알겠다.
그때 별명이 ‘권호(拳虎)’였던가.
어쩐지 고위 마법사를 상대로 무기도 없이 잘 버틴다 싶더라니, 그래서였구먼.
“출석부터 부르겠다. 고현철.”
“예!”
한 명씩 이름이 호명된다.
아마 이때 대답하지 못하면 곧장 벌점이 쌓이는 거겠지.
“김도진.”
“예.”
순간 임철웅 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음.”
작은 음성과 함께 고개가 살짝 끄덕인다.
아무래도 날 알아본 모양인데.
출석 확인이 끝난 뒤,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기초 괴수학의 수업 방식은 매우 단순하다. 설명을 듣고, 체험한다.”
저게 뭔 소린가 싶겠지만, 말 그대로다.
이곳 강의실에서 임철웅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자리를 옮겨 이를 체험한다.
그것도 실제 몬스터를 통해.
“오늘 강의할 몬스터는 고블린과 오크다. 이미 1학기 때 실습까지 끝마친 몬스터라는 건 안다. 허나, 두 몬스터는 몇 번이고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기에 복습하는 차원에서 선정했다.”
몇몇 학생들이 살짝 김빠진 표정들을 하고 있다.
이미 숱하게 상대해본 놈들이라 쉽다고 여기는 모양.
쟤들은 알려나 모르겠다.
고블린과 오크에 의해 죽는 초보 헌터들의 수가 무려 20%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고블린부터 설명하도록 하겠다. 고블린은….”
고블린과 오크.
생김새에 따라 전투력의 차이가 심하지만, 저급 던전에서 나오는 오크와 고블린은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존재들이 맞다.
고블린은 영악하지만 이를 실행하기 위한 신체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오크는 머리가 돼지라 그런지, 냅다 들이박는 것밖에 못 하는 바보다.
말인즉, 몇 번 상대하다 보면 금세 익숙해져서 잡기 쉬운 상대라는 뜻.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헌터들이 죽느냐.
“이는 다름 아닌 특수개체 때문이다.”
때마침 설명이 나오네.
특수 개체.
생김새가 같은데 유독 강한 녀석을 일컬어 업계에서는 녀석들을 특수 개체라 부른다.
이 특수 개체가 바로 헌터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주범이다.
“고블린과 오크는 유독 특수 개체의 등장이 잦은 편이다.”
특수 개체는 모든 몬스터들에게 존재한다.
그런데 유독 고블린과 오크들 사이에서 특수 개체가 자주 태어난다.
이유는 아직 불명이다.
녀석들은 같은 종족 내에서도 피부 색깔이나 크기 등에 따라서 전투력의 편차가 매우 심한데, 저난이도 던전부터 고난이도 던전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종족의 특성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을 뿐.
“오크를 상대할 때는….”
임철웅 교수의 수업은 초보 헌터들 모두가 꼭 들었으면 싶을 정도로 뛰어났다.
정석적인 상대법뿐만 아니라, 본인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상대법까지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
한 시간에 걸친 이론 수업이 끝났다.
“다들 잘 들었나?”
“예에!”
기쁨에 겨워 소리치는 학생들.
저들 중 7할은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딴짓에 몰두했다는 걸, 전 A급 헌터가 모를 리가 없다.
“제군들의 수업 태도는 잘 보았다.”
임철웅 교수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그려졌다.
“고블린과 오크 정도는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제군들은 이번 실습에서 특별한 오크와 고블린을 상대하게 해주겠다.”
수군거리기 시작하는 학생들.
임철웅 교수는 더욱 짙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 제군들은 특수 개체 고블린과 오크를 상대한다.”
삽시간에 강의실 내부는 적막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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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간 흐른 적막은 더 큰 소리를 자아냈다.
“특수 개체를 상대한다고…?”
“너무 위험한 거 아냐?”
“오늘 여럿 실려 가겠네.”
특수 개체를 상대함에 있어 무엇보다 까다로운 점은 녀석이 일반종에 비해 얼마나 더 강한지 상대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점이다.
나보다 강한지, 약한지.
알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만약 놈이 나보다 강하면 죽을 확률이 그만큼 올라가니까.
“다들 조용.”
임철웅 교수가 목소리에 마력을 실어 말하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전원 모의 던전으로 이동한다.”
걱정 한가득 끌어안은 표정으로 강의실 밖으로 향하는 학생들.
그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보고야 말았다.
손서연….
2학년 편입생이 1학년 틈바구니에서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아, 그런가.
마탑은 오직 마법이라는 학문을 배우기 위한 장소.
몬스터에 대해서는 직접 찾아보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는 곳이란 뜻.
그러니 1학년들 사이에서 기초부터 배울 수밖에.
“야, 안 일어나고 뭐 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신유정이 내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학생들은 전부 밖으로 나가고 우리밖에 없다.
“잠깐 생각 좀 하느라고.”
“왜, 특수 개체 상대한다고 하니까 너도 겁나냐?”
신유정이 싱글생글 웃으며 내게 묻는다.
“그럴 리가.”
“하긴…, 저번에 네 마법 정도면 웬만한 특수 개체도 한 방이면 끝나겠지.”
녀석이 말한 마법은 저번에 한 번 보여줬던 파이어볼과 에어볼의 조합을 뜻하는 거겠지.
확실히 그거라면 웬만한 몬스터는 한 방에 보내버릴 수 있다.
상성이 좋은 초급 마법 두 개의 시너지를 통해 중급 마법에 가까운 파괴력을 낼 수 있으니.
“마법? 무슨 마법?”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임나은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예전에 유정이랑 던전에 한 번 갔었는데, 그때 파이어볼을 썼었거든.”
“와…, 도진이 너 벌써 던전까지 돌아봤어?”
감탄하는 표정을 짓는 임나은.
“고블린만 나오는 곳이었어.”
“그래도 그게 어디야, 벌써 실전을 경험한 거잖아.”
연신 대단하다며 조잘대니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사람 기분 좋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한 녀석이란 말이야.
“안 갈 거야?”
어느덧 대화의 흐름에서 벗어난 신유정이 마음에 안 든다는 투로 뇌까렸다.
자기를 내버려 두고 우리 둘이서 떠들어대는 꼴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가야지.”
“응, 가자!”
조금 빠르게 걸어 앞선 대열의 끝에 합류했다.
2층, 1층.
밑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끊임없이 밟고 내려갔다.
지하 1층, 2층, 3층….
마침내 다다른 곳은 지하 5층.
열 명이 나란히 걸어도 충분할 법한 넓은 복도의 끝에 자리한 거대한 문.
그 앞에 선 임철웅 교수가 양쪽 벽에 난 작은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먼저 탈의실에서 방어구를 착용하도록 한다. 시간은 5분, 늦으면 벌점을 부여하겠다.”
벌점이라는 말 한마디에 남녀가 반으로 갈라져 작은 문을 통과한다.
탈의실 라커룸 안에는 부위별 가죽 방어구와 안에 받쳐 입는 검정색 쫄쫄이 슈트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먼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라커룸 안에 집어넣는데, 곳곳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몇몇 학생들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수군거리고 있다.
“와…, 몸 좀 봐.”
“쟤 마법사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