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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 식당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난관에 봉착했다.
“와아…, 메뉴 엄청 다양하다.”
40대 이상 중년들의 간악한 적이 내 간편한 식사 생활을 방해하고 있다.
키오스크…, 또 너냐.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흑역사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2년 전이었나, 3년 전이었나.
조르고 졸라서 가족들끼리 간 영화관에서 티켓을 뽑기 위해 처음으로 키오스크 앞에 섰다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결국 서연이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었지….
귀찮은 일들을 전부 매니저나 오퍼레이터에게 맡긴 게 문제였다.
우후죽순 새로 생겨나는 신문물을 미리미리 배워뒀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야, 뭐해.”
뒤에 서 있던 신유정이 내 등을 툭 민다.
“후우….”
나는 깊은숨과 함께 흑역사를 날려 보냈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배움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날 이후로 오직 나만 출입할 수 있는 길드 내 휴게실에 남들 몰래 키오스크를 들였다.
언제고 키오스크를 상대할 일이 생겼을 때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
애석하게도 더 이상 가족들과 함께 어디론가 갈 일은 없게 됐지만, 그때의 노력이 지금이라도 쓰이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어디 보자….”
가장 먼저 메인이 될 메뉴로 돈까스와 우동을 고르고, 곁들여 먹을 반찬을 추가한다.
가격은 제각각이지만, 전체적으로 밖에서 사 먹을 때보다 절반 이상은 싸다.
마지막으로 결정 버튼을 누르고 카드 투입구에 학생증을 밀어 넣으면….
[결제가 완료 되었습니다.]
안내음과 동시에 식권이 뽑혀 나온다.
떨리는 손으로 식권을 받아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해냈어…!”
보고 있나, 매니저!
내가 드디어 처음으로 키오스크를 혼자 이용했어…!
감격에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데 별안간 불쑥 튀어나온 손이 나를 옆으로 밀어냈다.
“야, 꼴값 떨지 말고 나와.”
…악마 같은 년.
“키오스크 하나 쓰는데 3분을 써먹냐? 무슨 노인네도 아니고.”
내가 3분 걸려서 뽑은 식권을, 신유정은 고작 30초 만에 뽑는다.
저거 오늘따라 주는 거 없이 밉네….
각자 음식을 받아 모여앉았다.
임나은은 내 맞은편에, 신유정은 내 옆에.
나이프로 돈까스를 써는 사이, 임나은이 신유정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유정아, 어제 나 데려다줘서 정말 고마워. 내가 언제 밥 한 번 살게!”
“됐어.”
갑자기 녀석이 젓가락을 불쑥 들이밀어 먹기 좋게 잘라둔 돈까스 하나를 집어 간다.
평소엔 나눠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달라고 안 했어도 줬을 텐데.
이상하네.
오늘따라 저거 왜 이렇게 얄밉지?
돈까스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녀석이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임나은을 향해 씨익 웃는다.
“너 데려다준 값은 얘가 다 치렀거든.”
“도진이가…?”
신유정이 젓가락으로 가리킨 ‘얘’는 나였다.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내가 값을 다 치렀다니?
의아해하는 사이, 무언가가 내 허벅지를 슬금슬금 타고 올라온다.
시선을 내려다보니 신유정의 왼쪽 손이 내 허벅지 안쪽을 비벼대고 있다.
아.
설마 값이라는 게 그거 말하는 건가.
“헤헤…, 그럼 밥은 도진이한테 사야겠네?”
임나은의 말 한마디에 신유정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 간다.
멍청한 녀석.
나름대로 나와의 관계를 어떻게든 티 내고 싶었나 본데,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고 있다.
“학식이 맛있어서 웬만한 음식으로는 안 되는 거 알지?”
“응! 내가 맛집 알아볼게.”
“그래.”
훈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내 허벅지 안쪽을 만져대던 녀석의 손길이 점점 거칠어진다.
질투가 절절 끓는구나, 끓어.
나를 째려보던 녀석이 황급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나도 맛집 가는 거 좋아하는데.”
“그래, 그럼 유정이도 같이 가자! 내가 맛있는 곳 많이 찾아둘게.”
“흠흠.”
결단코 둘이서 무언가를 하게 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먹는 데에 집중하기 시작한 탓에 한동안 대화가 사라졌다.
열심히 칼질해서 썰어둔 돈까스 몇 조각을 임나은의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이를 본 녀석이 히죽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히…, 잘 먹을게.”
“그래.”
“너도 이것 좀 먹어봐.”
서로 반찬을 나누는 훈훈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신유정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른다.
얘는 내 옆구리가 호출 버튼이라도 되는 줄 아나….
“흠흠.”
자기 입으로 돈까스 달라고 말하기는 싫었는지 은근슬쩍 젓가락으로 빈 접시를 가리킨다.
응, 싫어~ 안 줄 거야.
녀석의 신호를 무시하고 돈까스를 내 입에다 밀어 넣었다.
그랬더니 울분에 찬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며 나를 노려보다가 밥을 입에 왕창 퍼넣더라.
빵빵해진 볼로 우물거리는 건 좀 귀엽네.
“우리 다음 수업 기초 괴수학이네….”
기초 괴수학은 말 그대로 던전에서 마주칠 수 있는 몬스터에 대해 배우는 수업이다.
얘는 뭐가 특징이고, 어딜 노리면 좋고 하는 등.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선 꼭 들어야만 하는 필수 과목.
옛날에 한 번 3학년들 특강으로 고급 괴수학 강의를 했던 기억이 난다.
몬스터의 특징을 설명해주고,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직접 보여주기까지 했었는데.
지금도 그런 식이려나.
식사를 마치자 신유정이 먼저 벌떡 일어나 식기를 반납하고 밖으로 나간다.
아까부터 불퉁한 시선으로 보고 있더라니, 삐지기라도 했나.
“도진이 너 먼저 나가 있어. 나 잠깐 들를 데가 있어서.”
“그래.”
화장실에라도 가려는 건가.
임나은과 함께 식기를 반납한 뒤, 그 자리에서 헤어져 먼저 식당 밖으로 나왔다.
입이 살짝 느끼해서 자판기 커피라도 한 잔 할까 하고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먼저 나갔던 신유정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다가와선 내 팔을 잡아당겼다.
“너 따라와.”
우악스러운 행동.
평소 같았으면 그냥 끌려가 줬을 테지만, 이번에는 버텼다.
“무슨 일인데?”
이제 슬슬 관계를 조금씩 뒤집어엎을 때가 됐다.
무작정 끌려가기만 할 때는 벗어났다는 뜻.
힘을 준 채로 버티고 서 있자, 녀석이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한다.
“…너 아까부터 나한테 틱틱거리는 거, 화나서 그런 거잖아.”
정확하게 말하면 화가 아니라 심술이긴 한데.
“그래서?”
“그러니까 그 화 풀어줄 테니까 일단 따라오라고.”
변하고 있다.
녀석의 행동 양상이.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 꺾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주구장창 억지로 밀어붙였을 녀석이 어떻게든 설명하려 하고, 내 의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직 미미한 수준이라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좋은 징조라는 건 확실하다.
대체 어떻게 화를 풀어주려는지 모르겠지만, 기특하니 가주도록 할까.
몸에 힘을 풀고 녀석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걸어간 곳은 교내 식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강의동 건물.
“여기는 왜 온 건데.”
“이 건물에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건물 안으로 나를 끌고 들어간 녀석이 마침내 발걸음을 멈춰 선 곳은….
“화장실?”
의외의 장소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꿈뻑거리고 있을 때.
“시간 없으니까 빨리 들어가.”
퍼억!
뒤에서 갑자기 날 밀어 넣는다.
창졸간에 벌어진 일에 내 몸이 그대로 선을 넘었다.
“야, 여기 여자 화장실…!”
“쉿.”
내 손가락에 입술을 갖다대는 신유정.
뒷골이 짜르르 한 게 느낌이 온다.
얘가 또 뭔가 크게 저지르겠구나 싶은 느낌이.
여자 화장실 안에서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변기 칸의 문을 열고 들어간 신유정이 그대로 변기 커버를 내리고 앉아 나에게 오라고 손짓한다.
변기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이쪽을 쳐다보는 모습에 묘한 색기가 느껴진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안으로 들어갔다.
쿵
문이 닫혔다.
“내가 밥 먹으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거든?”
“…뭘.”
“네가 왜 삐졌는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기특하네.
예전에는 내 기분이 어떻건 자기 마음대로 하더니, 이제는 슬슬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는 거잖아?
“그래서 나온 답이 뭔데?”
내가 묻자, 녀석이 별안간 내 자지 위에 지긋이 손을 올려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밖에 없더라고.”
다른 한쪽 손이 가세해 후크를 풀어 바지를 벗겨낸다.
“너나, 나나 어제 첫 섹스였는데 아쉽게 끝나긴 했지?”
“…그렇긴 했지.”
첫 섹스도 아니었지만, 아쉽기는 했다.
물론 그 아쉬움마저도 아침에 아줌마가 다 풀어주기는 했는데….
“그래서 삐진 거잖아. 같잖게 사람 질투하게 만들려고 임나은 그년이랑 시시덕대고. 아니야?”
“…그랬던 것 같아.”
이제부터 그런 걸로 치자.
정답을 맞춰서 기쁜 듯, 입가에 미소를 띤 녀석이 말을 덧붙였다.
“마음 같아선 박게 해주고 싶긴 한데…, 그랬다간 내가 소리를 못 참을 것 같아서.”
그리 말하며 두 손으로 내 팬티를 끌어 내린다.
신유정이 변기에 앉아 손짓했을 때부터 내 자지는 커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학교 여자 화장실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이를 더욱 부추겼다.
“그러니까 그…, 입으로 한 번 빼줄 테니까 화 풀라고.”
…오늘 너 얄밉다고 했던 거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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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생각하기에 김도진이 화가 날 이유는 딱 하나뿐이었다.
어젯밤의 섹스.
시작은 어떨지 몰라도 결과는 매우 아름다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서로에게 처음을 내어주는 섹스.
무릇 처음이란 무엇보다 각별하게 기억되는 법이니, 자신과 그는 서로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하나씩 안겨준 것 아닌가.
그렇기에 아쉬웠다.
쾌락보다 고통이 앞섰지만, 끝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피를 흘린 자신도 그럴진대, 오직 쾌락뿐이었던 김도진은 오죽했을까.
‘어떻게 화를 풀지?’
그의 자지가 보지를 통과한 순간부터 그녀는 김도진을 반쯤 제 남자친구쯤으로 생각했다.
거기에 사랑이 있고, 없고는 그다음의 문제.
호시탐탐 그를 노리는 이들이 많다.
수업을 듣는 도중에도 다음 실습 때 김도진을 자기 파티에 넣자는 말들이 나오지 않았던가.
‘발정난 년들이 너무 많아.’
쯧.
그녀는 혀를 차며 스마트폰으로 자신이 자주 이용하는 헌터 갤러리에 글을 올렸다.
제목: 존나 급함) 남자친구 화 풀어주는 방법 좀;;
제곧내.
남자친구 화 푸는 방법 좀 알려줘라.
남친 사귄 거 첨이라 ㅅㅂ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 제시하는 헌갤럼한테 기프티콘 보내준다.
구라 아니고 진짜로.
기프티콘의 효과는 과연 대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댓글들이 주루룩 달렸다.
ㄴㅅㅂ년아 기만질 뒤질래?
ㄴ남자 화 풀어주는 법 존나 쉽지 ㅋ 으슥한 데 가서 가슴 만질래? 하면 남자 새끼들 좋아서 바로 ㅇㅇ 하고 만지면서 화 품.
ㄴ아~ 섹스하고 싶다.
ㄴ이 새끼 호감 고닉인 줄 알았더니,,, 씹새끼였네,,,?
ㄴ병먹금
ㄴ이 새끼 뒤짐. 곧 내 손에 죽을 거임 ㅇㅇ
ㄴ학생,,, 어디 살아,,,?
“…….”
이 쓸모없는 새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