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늦겠다, 빨리 가자!”
시계를 보니 어느덧 수업 시작까지 1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우리는 계단으로 황급히 뛰어 올라가 201호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강의실에는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쪽을 향해 시선을 한 번 휙 던지더니 이내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녀석들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내게 심어주었다.
성별, 생김새 전부 제각각인 녀석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존재했다.
바로 표정들이 전부 재수 없다는 것.
이곳에 들어오면서 나는 벌써부터 한 가지 능력을 얻게 됐다.
바로 표정만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중 마법사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게 됐다.
그냥 딱 봤을 때 표정이 말포이 같이 띠꺼우면 마법사라고 보면 되겠어, 응.
녀석들의 치솟은 콧대가 굉장히 거슬린다.
저 콧대를 전부 부러뜨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은 내 성격이 괴팍해서 그런 건가.
나와 임나은이 적당한 중간 자리에 앉았을 때, 말끔한 정장 차림의 사내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자리에 앉은 학생들과는 확연히 다른 마력 흐름.
역시나 그는 강의실 앞 단상 위로 올라서서 우리와 마주했다.
“반갑습니다. 한 학기 동안 여러분에게 초급 화염 마법 수업을 맡게 된 고수재입니다.”
첫 수업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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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들이 배울 마법은 파이어 볼입니다.”
김이 살짝 식었다.
파이어 볼은 박철수 마법 학원에서 예습을 끝마친 마법인데.
“먼저 파이어 볼을 구성하는 마법진의 획별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죠.”
수업 방식도 학원에서 배울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법을 이루는 마법진을 빔 프로젝터로 띄워놓고, 마법진을 구성하는 각각의 획이 마법을 구현하는 데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하나하나 일러주는 방식.
“좌측 상단에 사선으로 그어진 획은 화력 조절에 쓰입니다. 길이, 굵기에 따라 화력이 달라지고 그에 따른 마력의 소모량 또한 줄어들거나 늘어나죠.”
마법진이 완성되는 순간, 마법 또한 완성된다.
달리 말하면 마법진을 그리는 단계에서 마법의 위력이나 형태, 크기 등을 조절하고 완성된 이후에는 그것을 수정할 수 없다는 뜻.
그런데 나는 다르다.
마력 자체를 의지로 제어하기 때문에 원한다면 얼마든 기존의 마법 위에 화력이고, 크기고 덧씌울 수가 있다.
딱 하나 단점이 있다면 완성된 마법에 수정을 가하는 게 일반적인 방법보다 마력 소모가 더 크다는 것 정도?
솔직히 쥐어 짜내서 만든 단점이다.
감당 못할 정도로 커다란 차이도 아니고, 그에 비해 장점은 더욱 뚜렷하니까.
“이론적인 부분은 여기서 마치고, 실습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한 시간의 마법진 설명이 끝나고 실습 시간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토대로 마법진을 완성 시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실패한다고 해서 아무런 불이익이 따르지 않으니 다들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말을 마친 고수재 교수는 강의실 입구 쪽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그쪽 벽에 위치한 스위치가 있는 방향이었다.
“그럼 보호 마법 발동합니다.”
딸칵!
그가 버튼을 누르자, 천장과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이 생겨났다.
마법진의 형태로 봐선 화염 마법 저항력을 끌어올리는 종류인 듯싶다.
안전 대책 확실하구먼.
“흐음….”
한껏 몸이 달아오른 녀석들이 허공에다 대고 마법진을 그려대기 시작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예습이 끝난 몇몇 녀석들은 단숨에 마법을 성공시켰다.
가장 빨리 파이어 볼을 만든 녀석은 앞에 앉아 있던 머리를 하얗게 탈색시킨 사내놈이었다.
걸린 시간은 대략 15초 정도.
“와아…, 15초 만에 파이어 볼을 완성시켰어.”
“특례 입학생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
다른 학생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귀에 쏙쏙 박힌다.
뭐야, 쟤도 특례 입학생이야?
아무래도 나나 임나은과는 달리 1학기 때 특례 입학을 한 녀석인 듯하다.
때마침 앞을 지나치던 고수재 교수도 상당히 놀란 표정을 하고 있다.
“훌륭합니다. 이름이…?”
“김윤식입니다.”
자신만만하게 제 이름을 밝히는 녀석.
“시전 속도, 구현된 마법의 형태, 화력 모두 완벽합니다. 남은 시간 동안 쉬어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저게 왜 교수한테 인사하면서 은근슬쩍 뒤를 쳐다보는 거지.
내가 이런 사람이다, 자랑하고 싶은 건가.
하나둘씩 고수재 교수가 보는 앞에서 파이어 볼을 성공시키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슬슬 고민되기 시작했다.
적당히 주목 안 받는 선에서 넘길지, 아니면 강의실에 가득 찬 이 자만심 덩어리들을 제대로 한 번 눌러줄지.
마침내 교수가 우리 앞에 당도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임나은은 능숙하게 마법을 성공시켰다.
걸린 시간은 대략 20여 초.
15초, 18초에 이은 3등.
고수재 교수도 이에 만족하듯 흡족한 표정으로 그녀를 칭찬했다.
“좋아요, 임나은 학생. 쉬어도 좋습니다.”
“헤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향한다.
토끼의 맑은 두 눈망울에 ‘기대’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좋아, 결정했어.
우리 토끼가 지켜보고 있는데 적당한 수준에서 끝낼 수는 없지.
윤식이가 15초니까…, 그래, 반 딱 자르고 반올림 해서 8초 정도로 끝내자.
체내의 마력을 이용해 주변의 마력을 배열한다.
내 마법은 기본적으로 마력의 응집, 속성의 변환, 형상화로 이루어진다.
정확히는 며칠 전까지 그랬다.
그런데 특성을 통해 재능이 한층 더 개화한 지금은 두 과정이 하나로 합쳐졌다.
이제는 마력이 한데 모이면서 동시에 속성의 변화가 이루어지게 됐다.
말인즉, 마법을 시전하는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다는 뜻.
나는 고의적으로 마력의 응집 속도를 떨어뜨렸다.
목표한 시간까지 아직 좀 많이 남았거든.
5, 6, 7….
이쯤이면 됐겠지.
넘실거리는 불꽃의 마나에 마지막으로 형태를 덧씌운다.
「파이어 볼(Fire Ball).」
마침내 임나은의 작은 머리통만 한 크기의 화염구가 완성됐다.
“…….”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강의실이 적막에 휩싸였다.
하나 같이 경악으로 물든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그 표정에는 조금 전까지 가득했던 자만심이 차지할 자리 따위는 없어 보인다.
이제야 좀 볼 만한 얼굴들이 됐구먼.
*
두 시간을 조금 넘긴 수업이 마침내 끝났다.
조용히 앉아 있던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김도진 학우! 괜찮으시다면 제게 약간의 조언을…!”
“아, 비켜요! 제가 먼저 왔거든요? 김도진 학우님! 저랑 같이 점심이라도!”
하나 같이 학구열 넘치는 얼굴들.
그래, 마법사란 본디 학구열 하나로 살아가는 존재들인데 그런 표정을 지어야지.
내 8초짜리 파이어 볼이 녀석들 안에 잠들어 있던 학구열을 일깨웠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가슴이 뿌듯해진다.
근데 미안.
난 너희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없어요.
“미안합니다~ 이미 선약이 있어서요.”
그리 말하며 곧장 임나은의 팔을 붙잡고 강의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다행히 뒤따라와서 귀찮게 하지는 않네.
최소한의 매너 정도는 있다, 이건가.
서두르던 걸음을 천천히 늦췄다.
그때 옆에서 함께 걸어가던 임나은이 내게 조심스레 말했다.
“저기, 도진아. 팔 좀….”
아, 내가 아직도 팔을 잡고 있었구나.
“아이고, 미안하다.”
황급히 팔을 놓아주며 녀석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건넸다.
“아, 아니야.”
다른쪽 손으로 제 손목을 감싸는 모습이 영 부자연스럽다.
내가 너무 세게 잡았나…?
“혹시 손목이 아픈 건 아니지?”
“에이, 나 그 정도로 연약하진 않아!”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임나은.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인다.
“그나저나, 도진이 너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파이어 볼을 8초 만에 완성시키지…?”
크으, 이 맛에 마법 배운다!
예쁜 여자애가 칭찬해주니 자존감이 하늘을 뚫고 올라갈 것만 같다.
“험험, 그냥 특성이 그쪽으로 탁월해서 그래.”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고 했던가.
최대한 겸손하게 답했다.
“그래도 대단한 거지! 너한테 2등으로 밀려난 학생이 아까 너 엄청 째려봤다?”
“그래?”
“응, 완전 눈에서 레이저 나올 기세더라.”
사실 나도 봤다.
애초에 느끼지 못하면 그게 등신일 정도로 대놓고 노려보더라.
두 눈에서 질투심이 자글자글 끓는 게 ‘내가 가져야 할 관심을 네가 감히…!’라고 말하는 듯했다.
의역이긴 하지만 얼추 맞겠지.
“마력 썼더니 배고프다! 우리 밥 먹으러 가자.”
“그래.”
우리는 곧장 교내 식당으로 향했다.
여기 학식이 그렇게 싸고 맛있다고 신유정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던데.
우우웅
별안간 스마트폰에 진동이 울린다.
꺼내어 확인해 보니 신유정이다.
생각하기가 무섭게 전화가 걸려 오는 걸 보면 얘도 양반 되기는 글렀다.
나는 심드렁한 태도로 전화를 받았다.
“왜.”
-어디냐.
“나은이랑 밥 먹으러 가는 길인데.”
-…기다려, 나도 간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누구야?”
“신유정. 밥 먹으러 간다니까 자기도 오겠다네.”
내 대답에 임나은이 밝게 웃으며 손뼉을 친다.
“잘 됐다! 안 그래도 유정이한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먼저 가서 기다리자.”
“그래, 그러자.”
교내 식당은 다 구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느긋하게 오순도순 얘기 나누며 걸었더니 금세 도착하더라.
식당으로 곧장 들어가려는데 건물 앞에 버스 한 대가 멈춰 섰다.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신유정이 튀어나온다.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걸로 봐선 또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 모양.
“유정아, 안녕!”
“어…, 그래.”
임나은이 밝게 인사하자, 신유정도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받는다.
그러더니 내 반대편에 찰싹 달라붙어서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야…, 너 내가 연락 안 했으면 쟤랑 둘이서 밥 먹으려고 했냐?”
낮은 소리로 으르렁대는 게 예전에는 호랑이 같았는데, 이제는 귀여운 고양이 같다.
빈약한 몸뚱어리에 심어져 있던 트라우마가 거의 다 사라진 느낌.
이게 바로 섹스 치료 요법인가?
…과연 그것을 섹스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인가 싶기는 하지만.
나는 최대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랬겠지.”
나는 아직 잊지 않았다.
네년의 문자 한 통 때문에 땀 뻘뻘 흘리며 변명하던 구차한 순간을.
“…너 나한테 삐진 거 있냐?”
“그래, 있다.”
“뭔데.”
어디 한번 말해 보라는 식의 대답에 나는 녀석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비밀이야.”
한 번에 말하면 재미없지.
신유정은 놀려야 제맛이니까.
“이게 진짜….”
짜증이 팍 치솟은 녀석이 뭐라고 말하려 할 때, 타이밍 좋게 임나은이 끼어들었다.
“둘이서 무슨 얘기해?”
나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래…? 분명 말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빨리 들어가자, 배고프다.”
“그, 그래.”
임나은의 등을 떠밀 듯 식당 안으로 들어서며 뒤에 있던 신유정에게 씨익 웃어 보였다.
녀석이 질투심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의 뒤를 바짝 쫓는다.
밥 먹는 내내 괴롭혀주마, 신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