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120)

내 목소리가 들리자 곧장 고개를 들어 올린 녀석.

“야, 너…!”

나를 보자마자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갑자기 내 팔을 막 더듬기 시작한다.

얘 왜 이래?

“야, 괜찮아? 습격 있었다며. 어디 다친 데 없어?”

내가 걱정돼서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이건 좀 감동인데.

“난 괜찮아.”

“그래? 그럼 다행이네.”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신유정.

그러더니 별안간 악귀 같은 표정을 하고선 내게 달려들어 멱살을 쥔다.

…얘 무슨 병 있나?

“새꺄! 전화는 왜 안 받는데? 내가 지금까지 몇 통이나 걸었는 줄 알아? 어?! 아냐고!”

“이, 입학식 중에 전화를 어떻게 받아…!”

그러다가 교수님들한테 찍히면 네가 책임질 거냐?

아, 이 말은 하지 말자.

괜히 이런 말 꺼냈다가 갑자기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할까 봐 무섭다.

그런데 얘한테 전화가 왔었던가.

생각해보니 입학식 전부터 쭉 스마트폰을 꺼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입학식 때는 상태창 확인하면서 감동하느라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왔고.

“그럼 끝나고 전화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오오!”

내 멱살을 틀어쥐고 마구 흔들어대는 녀석.

그때 난데없이 구세주가 등장했다.

“그, 그만 하세요!”

아니, 토끼가 등장했다.

임나은은 내 멱살을 틀어쥐고 있는 신유정의 손을 붙잡고 강제로 풀어내려 했지만….

“이잇…, 왜, 왜 안 풀리지…!”

실패했다.

마법학과 학생이 탱커의 손아귀 힘을 풀어낼 수 있을 리가 있나.

“야.”

신유정의 눈빛이 조금 전보다 더 매섭게 변했다.

“얘 뭐냐?”

눈동자에 분노에 질투까지 뒤섞여서 아주 제대로 불타오르고 있네.

말 잘하자.

팩트만 깔금하게 전달하는 거야.

“나랑 같은 마법학과 특례 입학생이야. 이름은 임나은이고.”

“으음…, 마법학과라고.”

마법학과라는 단어에 녀석의 화가 사르르 녹아내린다.

단순한 녀석 같으니.

나는 토끼눈을 뜨고 나와 신유정을 번갈아보고 있는 임나은을 향해 녀석을 소개했다.

“얘는 신유정. 내 고등학교 동창이고, 전사 직업군이야. 탱커 계열.”

“아, 바, 반가워! 임나은이야….”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는 토끼.

쫄았네, 쫄았어.

말이 끝으로 갈수록 기어들어 간다.

“…그래, 반갑다.”

녀석은 퉁명하게 임나은의 인사를 받았다.

화가 난 건 아닌 것 같고, 약간 녀석을 견제하는 듯한 모양새다.

“아무튼, 빨리 들어가기나 해. 지금 OT 시작한지 꽤 됐으니까.”

신유정이 가운데에서 나와 임나은의 팔을 붙잡고 이끈다.

“어, 어어…?”

놀란 눈으로 이끌려가는 임나은.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다.

얘는 원래 이런 애거든.

당기시오, 라고 적혀 있는 문구를 무시하고 어깨로 문을 밀어 젖히는 녀석.

그 터프한 등장에 301호에 모여 있던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여기 뒤늦게 도착한 특례 입학생 두 명 데리고 왔습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외치기까지.

나와 임나은은 붉어진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창피함은 왜 우리 두 사람의 몫이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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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우리의 등장 때문에 행사 분위기가 망가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제 막 시작하려고 했는데 타이밍 좋게 잘 왔어.”

단상 위에 서 있던 선배로 보이는 사내가 마이크에다 대고 그리 말했다.

아무래도 특례 입학생들의 입학식이 늦게 끝난 만큼 행사 시작 또한 조금 늦춘 모양.

그나저나, 저 선배의 얼굴 어딘가 낯이 익은데….

“적당한 자리에 앉도록 해. 자기소개할 때 단상 위로 올라와야 하니까 기왕이면 앞자리가 좋겠지?”

“넵.”

“알겠습니다….”

가장 앞쪽 빈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신유정과 임나은 또한 자연스럽게 내 양옆에 앉는다.

“…….”

그림이 약간 묘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내 착각인가.

잘못하면 입학 첫날부터 여자를 둘씩이나 끼고 다니는 바람둥이로 보일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아니꼽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고,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시선도 있고, 질투로 타오르는 시선도 있고….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여기에 있는 학우들에게 내 얼굴을 또렷이 각인시켰다는 것.

“다들 반가워. 나는 올해 OT 진행을 맡게 된 3학년 과대표 박진우야. 내년부터는 현 4학년 선배들처럼 실습 때문에 보기 힘들게 되겠지만, 남은 한 학기 동안 잘 부탁해.”

짝짝짝짝!

매끄러운 자기소개에 열렬한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박수 소리만 들어도 알겠다.

저 박진우라는 3학년 과대표가 전투 학부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걸.

확실히 그럴 만한 능력이 있어 보이긴 해.

185cm는 되어 보이는 장신에 잔뜩 성난 잔근육 도드라지는 몸매, 웃으면 눈매가 돋보이는 순한 강아지상 얼굴까지.

여자들이 좋아하는 건 다 갖췄네, 아주.

심지어 능력까지 뛰어나 보인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녀석의 주변으로 흐르는 마력의 농도가 훨씬 짙다.

저 정도면…, 대략 B급 수준인가.

뉘집인진 몰라도, 자식 농사를 아주 잘 지었어.

“특례 입학생 후배님들 제외하면 다들 알겠지만, 별것 없는 행사야. 그냥 자기소개 좀 하고, 앞으로 어떻게 생활하게 될지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궁금한 거 있으면 질문하고.”

한 명도 빠짐없이 모이는 것치곤 조촐한 행사였다.

어쩐지 특례 입학생들만 잔뜩 긴장하고 있고, 나머지는 전부 풀어져 있더라니.

그냥 학기 시작 전에 안면이나 익히기 위해 모이는 행사였구나.

“그럼 가장 먼저 특례 입학생들 자기소개부터 들어볼까 하는데, 가장 먼저 지원할 사람?”

박진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군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린다.

“제가 먼저 소개해도 되겠슴까?”

빡빡 민 머리에 검게 그을린 피부.

혈관이 도드라질 정도로 비대한 근육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마초 냄새를 짙게 풍기는 녀석.

심지어 옷차림까지 꽉 끼는 기능성 반팔티에 트레이닝복 바지를 입고 있다.

내가 장담하는데, 저 자식은 100% 탱커다.

“패기 좋은데? 단상 위로 올라와.”

박진우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쿵쿵거리며 단상 위로 발걸음을 옮기는 마초.

여분의 마이크를 건네받은 녀석은 곧장 우리를 향해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안녕하심까!”

안 그래도 커다란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증폭되어 강의실 전체를 쩌렁쩌렁 울린다.

“최정철임다! 전사 학과 특례 입학했고, 포지션은 탱커임다! 앞으로 잘 부탁드림다!”

녀석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1학년의 패기가 살아 있다며 좋아하는 부류와 너무 오버한다며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부류.

전자는 대체로 선배들이었고, 후자는 같은 1학년 동기들이다.

첫 주자부터 저렇게 빡세게 인사를 하면 다음은 어떻게 하냐는 식의 항의처럼 보인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사격으로 특례 입학한….”

앞으로 한 명씩 불려 나가 제 이름과 특기 등을 소개한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직업별로 선배들의 호응 소리가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는 탱커인 최정철이 그나마 인기가 있었고, 나머지는 그보다 조금 낮은 정도?

여기까지만 봐도 한국 대학교의 직업 분포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전사 중에서도 딜러는 차고 넘치는 반면, 탱커는 제법 희소가치가 있다는 거겠지.

“자, 아직 자기소개 안 한 사람?”

마이크를 타고 흐르는 목소리에 나와 임나은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녀석들은 전부 자기소개를 마친 듯하다.

임나은에게 물었다.

“누가 먼저 할까?”

“내가 할게!”

녀석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앞으로 걸어 나간다.

“오오…!”

“예쁘다!”

등장하기가 무섭게 선배들이 추파를 던져댄다.

“안녕하세요! 마법 학과 특례 입학생 임나은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 순간.

“와아아아!”

“임나은! 임나은!”

어마어마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군대에 위문공연 온 아이돌에게 쏟아지는 것과 같은 어마어마한 함성.

어떻게 보면 저들의 환호성이 당연하게끔 여겨지기도 했다.

예쁘장하게 생긴데다 마법사 특례 입학생이다?

그럼 끝이지, 뭐.

쏟아지는 환호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임나은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신유정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푹푹 찌른다.

“야, 쟤 봐. 지금 일부러 선배들한테 약한 척 어필하는 거.

”저게?“

저게 어딜 봐서 약한 척 어필이라는 건데?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되묻자, 녀석이 별안간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이래서 남자 새끼들은….“

졸지에 남자 전체를 욕먹게 하고 말았다.

”여자들은 딱 봐도 여우짓인 걸 알아보는데 남자들은 그걸 모르더라.“

임나은의 행동이 여우짓이라는 건 도저히 모르겠고, 하나는 알겠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거.

이거 실제로 겪으니까 아주 어마무시하네.

선배들의 열띤 질문 공세에 몇 가지 답을 하고 내려와 이쪽으로 쪼르르 달려오는 임나은.

얼굴이 빨가니까 더 토끼 같네.

”으으, 너무 부끄럽다.“

달아오른 볼을 양손으로 감싸 쥐며 혀를 빼꼼 내미는 녀석.

그 모습에 이쪽을 향하는 시선이 한층 더 뜨거워진다.

등이 따가운 걸 보면 이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내가 무척이나 싫은 모양이다.

”자, 그럼 마지막 한 명 남았지?“

내 차례가 다가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 위로 천천히 올라섰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쟤 좀 잘생기지 않았어?“

”응. 근데 각성자치곤 키가 좀….“

”…….“

잘생겼다는 말만 들었다면 기분이 최고조였을 텐데.

마음의 상처가 되거나 한 건 아니다.

어차피 키야 쑥쑥 자랄 테니.

몇 달만 있어 봐라.

내가 어디까지 자라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해줄 테니까.

”여기 마이크.“

”감사합니다.“

박진우에게서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단상 가운데에 서서 앞을 바라보니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서 이쪽을 유심히 쳐다보는 동기와 선배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마법 학과 특례 입학생 김도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

”잘 생겼다, 우리 후배님!“

”멋있어!“

임나은에게 쏟아졌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몇몇 여자 선배들의 열렬한 호응이 뒤따랐다.

생김새 때문만은 아니고, 마법사 특례 입학생이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네.

적어도 혼자 밥 먹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 같다.

”자, 우리 김도진 후배님한테 다들 궁금한 게 하나 있는 것 같은데, 제가 대신 묻겠습니다.“

뜬금없이 옆에 서 있던 박진우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신유정 후배와 임나은 후배, 두 사람과 어떤 사입니까?“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온다.

이걸 물어보려고 대기하고 있었던 거였냐….

더 우스운 건 남자 동기, 선배들의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하다는 거다.

어지간히도 궁금했던 모양.

”유정이랑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 사이였고, 임나은은 같은 마법 학과 특례 입학생이라 오늘 인사 나누게 된 친굽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김도진! 내 후배가 되는 것을 허락한다!“

”믿겠다. 너는 내가 아끼는 후배가 맞군.“

”주모, 셔터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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