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몸뚱어리가 어느새 대강당 밖으로 나와 있다.
그리고 동시에 시작됐다.
텔레포트 마법진의 발현이.
우우우웅!
땅 밑에서 푸른빛 기둥이 치솟더니, 대강당 전체를 감싸 안았다.
하늘에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땅 밑에서 느꼈던 텔레포트 마법진의 형상이다.
그와 함께 대강당이 점차 사라져 간다.
“안돼에에에에!”
들린다.
놈의 절규가.
S급 마정석을 투자해서 고작 건물 하나 얻어가다니.
“호구가 요기 있네.”
저게 호구가 아니면 뭐가 호구겠어.
마침내 대강당이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빛무리가 서서히 잦아들고 나타난 땅 밑에는 쓰임새를 다한 거대한 마법진이 푸른빛 마력의 잔흔을 내뿜고 있다.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인다.
“휴.”
하마터면 광명교도 될 뻔했네.
*
호국관이 홀라당 사라져버린 관계로 특례 입학생들은 다른 대강당인 영령관에 모여 앉았다.
모인 이유는 입학식을 재개하기 위해서였다.
이럴 때일수록 행사를 취소할 게 아니라 진행함으로써 건재함을 과시해야 한다나, 뭐라나.
이미 한 번 했던 국민의례를 다시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앞에선 교수들의 축사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는데,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비어 있는 특성칸에 무엇이 생겼느냐거든.
“상태창.”
곧장 상태창을 열어 내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 메시지들을 다시 확인해보았다.
[지금까지 수집한 경험을 토대로 특성을 부여합니다.]
[사용자에게 새로운 특성 ‘자질을 지닌 자’가 부여됩니다.]
[신체의 변화가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고통에 대비하세요!]
“…이 새끼가 장난하나.”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고, 감각도 차단시켜 놓고선 고통에 대비하세요?
이 정도면 사람 놀리는 거 아니냐.
“후우.”
참자.
그나저나 저 특성은 대체 뭐야?
“자질을 지닌 자…?”
대체 무슨 자질을 지니게 됐길래.
이후에도 몇 개의 메시지가 더 도착해 있다.
그걸 확인해보면 답이 나오려나.
[신체 적용 완료.]
[사용자의 능력치 효율이 1.2배로 상향 조정되었습니다.]
[사용자의 재능이 더욱 개화합니다.]
[특정 조건 만족 시, ‘마력 흡수’가 가능합니다.]
“…이게 맞나?”
어쩐지 몸이 더 가볍고, 단단해진 느낌이 들더라니.
각성자들에게 있어 특성은 로또나 다름없다.
무엇을 타고 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내 삶이 결정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 특성은….
“1등이네.”
듣도 보도 못했다.
재능을 더욱 개화시키고, 능력치 효율을 뻥튀기시켜주는 특성이 있단 말은.
현재 내 능력치 중에서 가장 높은 건 체력이다.
수치는 30.
여기에 1.2배를 곱하면…, 36이 된다.
“미친.”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6의 수치.
어쩌면 지금은 크게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장을 이어갈수록 상승의 폭이 어마어마하게 커질 걸 생각하면 이건 말도 안 된다.
과거 손시우의 몸으로 전성기를 맞이했을 때 내 체력 수치가 90이었다.
거기에 1.2배가 적용되면 무려 108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수치로 뻥튀기된다.
그 정도면 지구 한 바퀴를 돌아도 숨이 안 차지 않을까.
능력치는 총량이 높아질수록 1이 지니는 수치가 매우 커진다.
그만큼 능력치 1을 올리기 위해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하고.
근데 나는 아무런 노력 없이 18이라는 수치를 더 얻게 된다는 거다.
“이건 로또 수준이 아니네….”
정정한다.
내 특성은 로또 1등이 아니라, 파워볼 1등인 것 같다.
그것도 몇 달째 이월된.
“후우….”
차분히 숨을 내쉬며 기분을 가라앉혔다.
아직 메시지는 끝난 게 아니기에.
[사용자는 504번째로 자질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사용자를 마지막으로 모든 자리가 채워졌습니다.]
[특성을 더욱 성장시켜, 다가올 운명에 대비하세요.]
“…….”
의미심장한 말을 끝으로 지난 메시지를 모두 읽었다.
마지막 메시지가 내 머릿속에 의문을 잔뜩 심어놓고 가버렸다.
마지막 특성을 더욱 성장시키라는 말은 ‘자질을 지닌 자’라는 특성이 성장 가능성이 열려 있는 성장형 특성이라는 걸 의미하는 거겠지.
여기까지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다.
지금까지 성장형 특성을 지닌 이들은 몇이나 존재해 왔으니까.
마음에 걸리는 건 그 전과 후의 내용.
504번째 마지막 자리와 다가올 운명이라….
대체 저 애매한 숫자는 무엇이고, 또 다가올 운명이라는 건 무엇인지.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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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
이름: 김도진
성별: 남
나이: 20세
키/몸무게: 174CM / 68.0KG
[근력: 25] [체력: 30] [민첩: 20] [마력: 20]
특성: 자질을 지닌 자
[상호불가침(2022.06.09.~2025.12.31)]
[발설 금지(2022.06.09.~2025.12.31.)]
뭔가 좀 감격스럽네.
이제야 비로소 상태창이 완벽하게 채워진 듯한 느낌이랄까.
아래 주렁주렁 매달린 저 제약만 사라지면 좋겠는데 말이지.
[…이상으로 제15회 특례 입학식을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어라, 벌써 끝났나.
다시 치러진 입학식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시간에 차질을 빚게 된 만큼, 이후에 있을 스케줄까지 고려해서 빨리 끝낸 것 같다.
“다음은 학부별 오리엔테이션이지?”
“응, 기대된다.”
입학생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이후에 있는 스케줄에 대해서 떠들며 하나둘씩 떠나간다.
“…뭐지.”
나를 제외하고 모두 어느 정도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빌런의 위협으로부터 함께 살아남은 동료애 뭐 그런 게 생긴 건가?
“…그럼 나는?”
이거 아주 웃긴 놈들이네.
결정적으로 내가 모두를 살린 거나 마찬가지인데, 나를 빼놓고 자기들끼리 친해진다고?
물론 내가 한 일을 전부 비밀로 부치기는 했지만, 서운함이 밀려온다.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거구나.
“씁쓸하구만….”
이게 스무 살 인생의 쓴맛이라는 걸까.
“뭐가 씁쓸해?”
한창 고독을 씹어삼키고 있는데 별안간 발랄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옆을 돌아보니 제법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다.
흑갈색 포니테일에 가만히 있어도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커다란 눈과 올라간 눈꼬리.
거기에 앞니가 살짝 도드라지는 게 꼭 토끼 같이 생겼네.
“누구…?”
내가 묻자, 토끼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황급히 입을 연다.
“반가워, 임나은이라고 해!”
“어…, 난 김도진.”
뭔가 뻘쭘한 느낌이 든다.
서로 이름 말하면서 인사하는 거 되게 쑥스러운 거였구나?
“너도 마법학과 특례 입학생이지? 나도야!”
“아….”
얘였구나, 마법학과 특례 입학생 두 명 중 나를 제외한 다른 한 사람이.
스무 명 남짓한 특례 입학생 중에서 마법학과에 특례 입학한 인원은 고작 두 명.
이는 타 학과 또는 학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숫자다.
오직 한국 대학교만이 유일한 선택지인 다른 직업군과는 달리, 마법사 지망생에게는 또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는 왜 마탑에 안 가고 여기로 온 거야?”
바로 마탑.
정부 설립 기관으로 마법을 연구, 발전시키는 시설이다.
유명 마법사들의 시그니처 마법을 제외하면 이제까지 발견되고, 개발한 마법서가 전부 보관되어있는 곳.
사실 마법만 배운다고 가정하면 거기보다 좋은 곳은 없다.
실제로 나와 함께 박철수 마법 학원에서 동문수학하던 녀석들은 전부 마탑으로 빠져버렸다.
윤지안한테 지대한 관심을 표출하던 빨간 머리는 원래 한국 대학교 입학 예정이었는데, 삐져서 마탑으로 돌아섰다나, 뭐라나.
이렇듯, 마법사에겐 한국 대학교보다 더 좋은 선택지가 하나 더 있다.
근데 난 마탑 못 간다.
내 전 마누라, 한주희가 거기 마탑의 최고 관리자인 탑주거든.
그 여자가 바뀐 내 모습을 꿰뚫어볼 수 있을 리는 없으니, 가려면 갈 수야 있었겠지만…, 난 마탑이 싫다.
지금까지 나와의 관계를 피해온 그녀의 변명이 업무 때문에 바쁘단 핑계 때문이었으니까.
그래서 마탑 생각만 하면 아주 이가 바득바득 갈린다.
이 얘기를 실제로 할 수는 없으니, 대충 둘러대자.
“마탑은 좀 연구원 같은 느낌이 강해서 별로더라.”
“아~ 맞아. 약간 마탑 마법사들은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마법 연구만 하는 것처럼 보이긴 해.”
내 말에 웃으며 수긍하는 토끼, 아니, 임나은이랬나.
“아무튼 반가워! 우리 서로한테 되게 잘해야 한다?”
“…왜?”
“왜냐니, 우린 서로가 없었으면 마법학과 유일의 특례 입학생이 되는 거잖아.”
갑자기 입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몸서리를 치는 임나은.
“우우…, 엄청 외로웠을 거야. 밥도 막 혼자 먹고, 수업도 매번 혼자 듣고….”
비약이 좀 심한 것 같은데….
임나은은 딱 봐도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을 스타일이다.
얼굴도 예쁘장하고, 나한테 스스럼없이 말 걸어오는 걸 보면 성격도 좋아 보이고.
아마 얘가 혼자 밥 먹고 있으면 전투 학부에 속한 다른 학과생들이 얘를 가만히 두지 않았을 거다.
안 그래도 귀한 마법사 직업군에 얼굴까지 예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테니.
“아무튼! 네가 있을 테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헤헤.”
이빨 보이면서 웃으니까 더 토끼 같네.
집에서 한 마리 키우고 싶어지게 만드는 미소다.
보고만 있어도 치유되는 느낌이야.
“곧 학부 오리엔테이션 시작인데 빨리 가자!”
“아, 그래야지.”
중학교나 고등학교처럼 입학식 끝나고 곧장 집으로 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직 행사가 하나 더 남아 있다.
어쩌면 입학식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길게 이어질지도 모르는 행사.
바로 학부 오리엔테이션이다.
전투 학부는 그 아래 직업별로 과를 나누어두긴 했지만, 실상 크게 의미가 없다.
이유인즉, 최근 던전 공략에 파티 플레이가 선호되는 만큼 직업별로 파티를 이루어 실습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리엔테이션도 학과별로 진행하지 않고 학부별로 진행하는 편이다.
어차피 다 알아야 하는 얼굴들이니, 시작부터 안면은 익히고 가자는 거겠지.
“아, 저기다, 제3 강의동!”
우리가 향한 곳은 가 구역에 위치한 제3 강의동.
여의도 전체를 사용하는 한국 대학교는 용도별로 구역이 나누어져 있다.
그중 가 구역은 이론 수업을 듣는 강의동이 모여 있는 곳이다.
제3 강의동의 301호 대형 강의실.
그곳에서 전투학부 오리엔테이션이 열린다.
아니, 아마 열리고 있을 거다.
입학식이 지연되는 바람에 오리엔테이션 시작보다 늦게 끝이 나고 말았으니.
“빨리 가자, 빨리!”
기운이 넘치는구나.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대는 임나은의 뒤를 따라 강의동 3층으로 재빨리 올라섰다.
곧장 301호 강의실로 향하는데 도중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신유정?”
301호 강의실 앞에 등을 기대고 서서 팔짱을 낀 채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분명히 신유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