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59/120)

이건 마치 여기에 목숨 한 번 걸어보라는 듯이 강요하는 것 같은데.

난 도박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의한 도박은 좋아하는 편이다.

왜냐고?

그때마다 난 한 번도 진 적이 없거든.

[남은 시간: 0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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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시간: 0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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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마지막 숫자가 0에 도달한 순간.

외부에서 전해지는 감각들이 하나둘씩 차단되어 간다.

귓가로 들려오는 전투의 굉음도, 땅을 딛고 선 감촉도, 공기를 타고 흐르는 묘한 냄새까지도.

“끅…!”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체내의 변화뿐.

전신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온몸의 신경이 불타오르는 듯한 느낌.

불에 타 죽는 사람이 생전 느끼는 고통이 이러할까.

“아악…!”

너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른다.

그런데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갔는지는 모르겠다.

체내로 집중된 정신은 외부의 그 어떤 것도 전해주지 않고 있었기에.

불이 점차 번진다.

안구가 녹아내리고, 심장이 뭉개진다.

마침내 오장육부 전부 뭉개져 뭐가 뭔지도 모르게 되어버린다.

이게 지금 특성을 개화하고 있는 과정이 맞는 건가?

그냥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건 아닌가?

불같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을 때, 또 다른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녹이는 소멸이 아닌, 소생의 상징.

강건한 뼈와 근육 속에 무너져내린 것들이 다시 제모습을 되찾아간다.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튼튼하고, 활발하게 기능할 수 있는 이상적인 형태로.

마치 환골탈태의 비술과도 같았다.

뼈와 근육을 전부 부수어 가루로 만든 뒤 재건했던 것처럼, 미처 내가 바꿀 수 없었던 것들이 바뀌어 간다.

말초까지 타버린 신경 다발과 마나 회로 또한 내 몸 위에 새로운 길을 깔았다.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튼튼하고, 넓게.

텅 비어있던 안와에 새로운 안구가 자리 잡는다.

그리고 마침내.

아득히 멀어졌던 외부의 감각들이 다시금 하나둘씩 연결되었다.

전사와 마법사가 자아내는 굉음, 온몸으로 느껴지는 대강당 바닥의 감촉, 내 주변을 흥건하게 흐르는 검붉은색 피.

그리고.

“제발 눈을 뜨십시오, 김도진 씨!”

내 몸을 끌어안고 마구 흔들어대며 울부짖는 윤지안의 절규와 애처로운 얼굴까지.

힘겹게 뜬 눈으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그녀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기, 김도진 씨! 깨어나셨군요! 다행입니다, 정말, 정말로 다행…!”

커다래진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내가 쓰러진 지 얼마나 지났어요?”

“…5분 정도 지났습니다.”

고작 5분이라.

체감상으론 최소 몇 시간은 고통스러웠던 것 같은데.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운 상태에서 천천히 팔과 다리에 힘을 줘 보았다.

가볍고, 가뿐하다.

환골탈태의 비술을 사용했을 때부터 그렇기는 했지만, 지금은 더욱 뭔가 빠릿빠릿해진 느낌.

녹아내렸다가 재건된 신경 다발이 더욱 빠르게 의지를 전달하고 있는 덕분인가.

온몸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킨다.

귀신이 일어나는 것처럼 별다른 반동 없이 스르륵 하고 올라선다.

이를 본 윤지안이 놀란 얼굴로 내게 물었다.

“괘,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아요.”

사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새롭게 태어난 듯한 기분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더욱 선명하고, 짙어졌다.

귀로 들리는 소리는 더욱 또렷해졌고, 후각은 더욱 예민해졌다.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땅 밑에 숨겨진 마법진이 발동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같은.

“…5분.”

특성 개화가 아니라 진화에 가까운 변화.

대체 무슨 특성인지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조금만 참기로 했다.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까.

나는 다시 한번 문 앞에 섰다.

붉은색 마법진이 낱낱이 파헤쳐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안개가 끼어 흐릿하게만 보이던 패턴의 아랫부분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어우, 눈 아파.”

보고 있기만 해도 눈이 핑핑 돌 것 같은 어지럽고 난잡하다.

누구도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빌런의 단호한 의지가 느껴질 정도.

한 번 보고 외우라면 절대 외우지 못할 수준의 양이지만, 나는 굳이 외울 필요가 없다.

남들과는 달리 눈에 계속 보이니까, 그대로 보면서 반대로 그어버리면 되는 거잖아?

“좋아.”

한 번 해보자.

눈에 읽힌 패턴을 손가락에 마력을 모아 그대로 반대로 그려낸다.

위에서 아래로.

켜켜이 쌓인 잠금쇠가 철컥거리며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마침내.

카앙!

작지만, 또렷한 소리.

그와 함께 문 위를 뒤덮고 있던 붉은색 마법진이 유리 조각처럼 산산이 조각나 허공에 흩뿌려졌다.

나는 문고리를 잡고 그대로 문을 열어보았다.

철컥

“어, 됐네.”

잘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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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퇴로가 확보됐다.

“도, 도진 씨. 지금 봉인 마법을…?”

대강당 내에서 응시하고 있던 두 명 중 한 사람인 윤지안이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좀 놀랍기는 해.

지금 나는 봉인 마법을 강제로 깨트린 것도 아니고, 풀어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한 가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부잣집에 있는 마법 금고란 금고는 다 털어버릴 수 있는 괴도가 될 수도 있다는 뜻.

“지안 씨, 지금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빨리 사람들 밖으로 대피시켜야 해요.”

“예? 아, 예!”

퍼뜩 정신을 차린 윤지안이 곧장 달려가 협회 직원들을 비롯한 특례 입학생들을 출구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최대한 조용히 나갔으면 좋겠는데.

“추, 출구다!”

“문이 열렸어!”

이놈의 새끼들은 왜 이렇게 소리 지르는 걸 좋아하나 몰라.

조금 전까지 맹렬하게 울려 퍼지던 굉음이 사라졌다.

남교수와 마법사 또한 특례 입학생 중 하나가 내지른 소리를 듣고 반응한 모양.

“으음…!”

“어, 어떻게 문이…!”

사뭇 대조적인 두 사람의 반응.

남교수는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마법사 녀석은 제가 열심히 걸어 잠근 문이 열렸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다.

허나 그것도 잠시.

마법사의 얼굴이 점차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감히 어떤 녀석이 교의 행사에 방해를…!”

아, 이제야 알겠다.

저놈이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헌터들에게 길드가 있듯, 빌런들 또한 저마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집단을 이룬다.

그중 최근 5년 사이 세력을 급격하게 넓혀가는 빌런 집단이 하나 있다.

이름이 아마….

“광명교였나.”

거짓으로 얼룩된 세상에서 참된 빛으로 세상을 밝히겠다나 뭐라나.

대충 그런 이념을 가진 한 빌런을 중심으로 모여 만들어진 사이비 종교이자, 빌런 집단이다.

빌런 중에서 자신들의 집단을 교라 지칭하는 곳은 거기밖에 없으니, 확실하다.

“왜 입학생들을 납치하려 하나 했더니.”

광명교는 다른 빌런 집단과는 달리, 세력을 넓히는 수단이 매우 특이하다.

그들이 세력을 넓히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바로 납치다.

필요한 인원들을 납치해서 교도로 삼는 것.

그것이 바로 광명교가 세력을 넓혀온 방식이었다.

솔직히 이 말만 들으면 무슨 말인가 싶을 거다.

납치된 사람들이 순순히 그들의 말을 따를 리가 있나.

그런데 광명교는 그게 가능하다.

아니, 그걸 가능케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바로 광명교의 교주.

빌런 네임 ‘브레인 워셔(Brain Washer)’.

세뇌 또는 그에 준하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판단되는 준S급에 해당하는 빌런.

“특례 입학생들을 홀라당 먹어 치우려고 그랬구나.”

놈들은 아무래도 재능이 검증된 특례 입학생들을 몽땅 데려다가 자기들의 미래로 삼고자 했던 것 같다.

“욕심이 굉장히 크네, 응.”

아주 화끈한 놈들이 아닐 수 없다.

부르는 게 값인 S급 마정석에 고위급 마법사까지 동원해서 일을 꾸미다니.

아무래도 광명교에 들어오는 헌금이 넘쳐나는 모양이다.

특례 입학생들을 비롯한 협회 직원 대부분이 밖으로 빠져나간 상황.

나는 단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마정석을 바라보았다.

서서히 꺼져 가는 빛무리.

마법진의 완성이 머지 않았음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나는 마법사와 대치 중인 남교수를 향해 소리쳤다.

“교수님! 곧 텔레포트 마법진이 발동할 겁니다! 당장 밖으로 나가셔야 해요!”

“텔레포트…?”

중년 교수의 안색이 삽시간에 굳었다.

마법사가 이를 악물며 내쪽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큭…! 어떻게 텔레포트를…, 설마?”

어라.

아무래도 알아챈 모양이네.

“큭, 크크큭!”

별안간 녀석이 웃기 시작한다.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광기가 서려 있는 것이, 아무래도 무언가 꿍꿍이를 가진 모양.

“어쩔 수 없지.”

마법사의 전신에 흐르고 있던 마력이 부풀기 시작한다.

“네놈들이라도 데려가는 수밖에…!”

흘러나오는 마력의 양이 심상치가 않다.

아무래도 최후의 발악으로 우리를 어떻게든 데려갈 심산인 듯하다.

“그건 안 되지.”

곧장 마력을 끌어모았다.

체내에 잠들어 있던 마력 대부분이 손끝으로 모여들었다.

순간 놀라고 말았다.

마력이 모이는 속도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잖아…!

들뜬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섬세하게 마력을 조종한다.

입히는 색은 새하얀 백색.

마력의 색이 점차 하얗게 변할수록 주변의 온도가 뚝뚝 떨어져 간다.

공격 마법으론 녀석을 상하게 할 수 없다.

전신에 활성화된 마력을 현재의 내 수준으로는 뚫어낼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 가볍게 운신만 방해하자고.

「아이스 월(Ice Wall).」

녀석의 발밑이 한기로 물든다.

그와 동시에 그곳에서부터 단단한 얼음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쩌저적! 쩌적!

단숨에 치솟은 벽은 녀석의 키를 넘어서서 앞을 가로막았다.

옆과 뒤도 마찬가지.

두꺼운 얼음벽 너머로 녀석의 얼굴이 보인다.

크게 당황한 표정.

녀석에게 이깟 벽쯤이야 부수는 게 어렵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아주 잠깐, 운신의 폭을 좁혀 틈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교수님, 지금입니다!”

“으음…!”

교수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등을 돌려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고작 두어 걸음 만에 도착한 그는 곧장 우악스러운 손아귀로 내 목덜미를 붙잡았다.

“켁!”

그야말로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는 사이, 어마어마한 바람 소리가 내 귀를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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