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120)

그런데.

“…없네?”

하나도 빠짐없이 두 사람의 전투에 집중하고 있다.

그나마 한 번씩 주변을 살피는 윤지안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전멸이다, 전멸.

“그럴 리가 없는데….”

저 마법사 놈이 저렇게 호기롭게 나선 건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가 분명한데.

그렇지 않고서야 죽음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갈 이유가 없지 않냐고.

“아!”

그러다 문득 내가 놓치고 있던 또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만약 녀석이 준비한 꿍꿍이가 사람이 아니라, 물건에 의해서 벌어지는 거라면?

“물건.”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단상 위로 향했다.

놈이 가장 오래 머물러 있던 곳, 마이크가 올라가 있는 강연대.

나는 곧장 특례 입학생 놈들을 제치고 지나가, 단상 위의 강연대로 향했다.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강연대 아래를 확인한 순간.

“빙고.”

비로소 정답을 발견했다.

강연대 안쪽 공간에 놓인 커다란 상자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는, 마력의 빛줄기.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 마정석이 놓여 있다.

아주 짙고 깨끗한 푸른색을 머금고 있는, 벽돌 두 개를 이어 붙여놓은 듯한 크기의 직육면체 형태의 마정석.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S급 아냐?”

색깔로 보나, 뭘로 보나 S급 마정석이 분명해 보인다.

“대체 이게 왜….”

푸른 빛줄기는 마정석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거였다.

그리고 그 빛은 꾸준히 한쪽으로 흐르고 있다.

바로 우리가 딛고 선 땅 밑으로.

“땅 밑….”

나는 꾸역꾸역 땅 밑으로 들어가는 마력의 줄기에 손을 가져가 보았다.

느껴진다.

마력이 땅 밑으로 흘러가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지.

느껴지는 이동 경로를 그대로 머릿속에 그린다.

그림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난 순간, 나는 지금 상황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건….”

땅 밑의 흐름을 머릿속에 그리자, 하나의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대강당 전체를 아우르는 어마어마한 크기.

어디선가 분명히 본 듯한 모양인데, 이게 뭐였지?

“이봐요, 학생. 지금 거기서 뭐 하는 거죠?”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상념을 일깨웠다.

쪽빛 머리를 한, 딱 봐도 깐깐해 보이는 표정을 한 중년 여성.

지금 마법사와 싸우고 있는 교수와 마찬가지로 교수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마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걸로 봐선 전투 지원 학부 쪽 교수인 것 같은데.

그녀의 정장 가슴 주머니에 꽂힌 펜이 눈에 들어왔다.

“교수님, 펜 좀 빌려주십쇼.”

“펜이요? 지금 상황에 펜은 왜….”

“아주 중요한 문젭니다.”

내가 최대한 심각한 표정을 들어 얘기하자,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꽂혀 있던 펜을 꺼내어 내게 건네주었다.

딱 봐도 제법 값이 나가 보이는 만년필.

“교수님, 죄송합니다.”

“무슨…, 아!”

일단 사과부터 박았다.

그리고 만년필의 뚜껑을 열어 날카롭게 선 펜촉을 나무 바닥으로 이루어진 단상에 꽂고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내가 머릿속에서 본 마법진을 그대로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 무슨…!”

불같은 표정으로 화를 내려던 교수가 내가 그린 그림을 보더니 입을 닫는다.

나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 마법진, 뭔지 알아보시겠어요?”

그녀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상체를 숙였다.

좀 더 가까워진 시야로 마법진을 훑어보더니, 이내 충격적인 답을 내놓았다.

“…텔레포테이션 마법진이군요.”

“아.”

어디서 봤나 했더니, 텔레포트 마법진이었구나!

텔레포테이션(Teleportation).

흔히들 텔레포트라 부르는 이 마법은 판타지 소설을 한 번 정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모두들 알고 있는 아주 유명한 이동 마법이다.

각각 A와 B 지역에 서로 공명하는 마법진을 그려두고, 이를 이용하여 양방향 이동이 가능하게끔 만드는 마법.

옛날에 이 마법이 처음 나타났을 때만 해도 이제 모든 운송 수단은 이 마법 아래에 몰락할 거라며 떠들어댔는데,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

마력 소모가 어마어마해서 아주 짧은 거리를 오가는 데에도 중급 마정석 한 개를 홀라당 먹어 치울 정도로 극악의 연비를 지녔거든.

그런데 이 마법진이 대강당의 땅 밑에 설치되어 있다고?

“교수님.”

“말씀하세요.”

“이 마법진이 여기 대강당 땅 밑에 설치되어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내 물음에 그녀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상식적으로 믿기 힘든 말이군요. 이 공간 전체를 이동시키려면 S급 마정석을 사용해도 될까, 말까일 테니.”

그렇겠지.

나도 직접 봤으니까 그렇지, 아니었다면 믿기 어려웠을 거다.

나는 곧장 강연대 아래에 놓여 있는 마정석을 꺼내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이거면 가능하겠네요?”

“그, 그건….”

교수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녀는 마정석을 손가락으로 몇 번인가 만져보더니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거 S급 마정석이군요. 이거라면 확실히 가능할지도… 서, 설마?”

그녀는 채 말을 다 내뱉기도 전에 눈을 부릅뜨며 말을 바꾸었다.

“…지금 땅 밑에 텔레포테이션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다는 말인가요? 이 마정석이 동력원이고?”

“예.”

이제야 모든 게 이해됐다.

녀석이 왜 정체를 드러냈는지, 무얼 숨기고자 했는지.

나는 중년 교수와 맞서 싸우며 점차 지쳐가는 마법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 양반이 우릴 통째로 옮기려고 하나 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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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포트 마법진이 발동되는 순간, 우리 모두는 죽었다고 봐야겠지.

아니, 차라리 죽는 게 나으려나.

손에 쥐고 있는 마정석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푸른 빛줄기가 끊임없이 새어 나와 땅 밑에 그려져 있는 텔레포트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고 있다.

“교수님.”

“…네.”

나는 파리해진 안색의 여교수를 향해 마정석을 들이밀며 물었다.

“지금 이걸 부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자 여교수의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변하더니 황급히 손사래를 친다.

“그, 그만둬요! 그랬다간 동력을 잃은 마법진이 오작동을 일으킬 거라구요!”

“오작동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데요?”

재차 묻자, 그녀는 가쁜 숨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가장 최악의 경우, 마법진이 폭발하는 수가 있어요.”

“아.”

그럼 안 되겠네.

과거 A급 마정석을 매개로 한 마법진이 과부하를 일으키는 바람에 폭발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마법진을 중심으로 반경 100미터 이내가 전부 초토화되어 난리가 났었지.

심지어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는 건 S급 마정석이다.

이게 이곳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밖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은 물론이고, 근처를 지나가는 학생들이 전부 폭발에 휘말려 죽어버릴 수도 있다.

“난감하네.”

이걸 어쩐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여교수에게 다시 물었다.

“교수님이 생각하기에 이 상황을 타개할 가장 최선의 방법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러자 그녀가 말하기를.

“…시간상으로 따졌을 때, 마법진은 이미 발동 준비를 거의 끝마친 상황일 거예요. 발동 직전의 마법진을 막는 건 지금으로선 사실상 불가능하고요.”

빠른 속도로 말을 쏟아낸 그녀는 한 차례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마법진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 밖으로 벗어나는 거겠죠.”

나는 땅 밑을 내려다봤다.

마력의 흐름을 읽었을 때 내가 본 마법진의 크기는 대강당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결국 대강당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건데….

“마법진을 파훼하는 것보다, 저 봉인 마법으로 잠긴 문을 여는 게 난이도 상으론 더 쉽다?”

“…맞아요. 어느 쪽이든 단시간에 해내기 어려운 일이지만, 오퍼레이터로서 내가 맡은 헌터에게 조언해야 한다면 전 문을 뚫고 나갈 방법을 찾으라고 할 거예요.”

오퍼레이터 또는 매니저.

양쪽 모두 비슷한 역할이지만, 오퍼레이터는 해박한 지식으로 헌터에게 던전 공략에 필요한 내용을 조언하는 일에 중점을 둔 직업군이다.

눈앞의 여교수는 그런 오퍼레이터 중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한국 대학교에 교수직을 역임하고 있는 것일 테고.

내가 그녀의 말을 들어야 할 이유로는 그거면 충분했다.

“교수님, 마정석 좀 부탁합니다.”

“에, 에에?”

당황하는 여교수의 손 위에 마정석을 올려놓은 뒤, 단상에서 뛰어내려 곧장 문 앞으로 향했다.

붉은색 마법진이 문을 단단하게 틀어막고 있다.

봉인 마법의 골자는 이렇다.

마법진을 구성하는 마력을 술자만이 알고 있는 방식으로 꼬아내어 하나의 복잡한 패턴을 형성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보안 패턴에 아주 강력한 방어 마법을 곁들이는 거다.

패턴을 해제하지 않으면 도무지 열 수 없도록.

“가능하려나.”

내 눈은 마력의 흐름을 선명하게 꿰뚫어 본다.

눈앞에서 마법이 펼쳐지면 마력이 어떤 식으로 움직여 마법을 형성하는지 토씨도 빠지지 않고 베껴낼 수 있을 정도.

그런데 눈앞의 봉인 마법은 이미 완성되어있는 상황.

과연 이 안에 숨어 있는 고유 패턴을 내 눈이 읽어 들일 수 있을까.

“…일단 해봐야지.”

되고, 안 되고를 재기엔 시간이 없다.

안구에 마력을 덧씌운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붉은색 마법진 위로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선들이 나타났다.

“이게 패턴인가.”

보인다.

마법진 안쪽에 어지러이 얽힌 마력 패턴이.

잠깐이나마 이 문을 열 수 있겠단 희망이 들기 시작한 것도 잠시.

“…젠장.”

문제가 생겼다.

지금 눈에 보이는 마력 패턴이 봉인 마법 해제에 필요한 전부가 아니라는 것.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켜켜이 쌓아 올린 패턴의 가장 윗부분뿐, 아랫부분은 흐릿한 안개가 낀 것처럼 패턴이 가려져 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안구에 덧씌운 마력의 양을 차츰 늘려간다.

눈이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선명해지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마력을 넣어도 나아지질 않는다.

마치 이것이 너의 한계라는 듯, 선이 그어진 것만 같다.

“크윽!”

참기 힘든 고통에 결국 눈을 감았다.

눈물을 흘려대며 몇 번 감았다 뜨자 흐릿해진 시야가 점차 돌아오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늦었다간 안구에 영구적인 손상이 가해졌을지도.

“후우.”

거세게 뛰는 심장의 맥박이 몸 전체로 퍼진다.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침착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

애써 불안한 가슴을 안정시키기 위해 숨을 고르며 단상 위를 올려다봤다.

여교수가 조심스레 놓아둔 마정석은 여전히 마력을 줄줄이 뿜어내고 있다.

어떻게 하지?

어떡해야….

방법을 떠올리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두근!

“윽….”

안 그래도 거칠게 뛰던 심장이 일순 온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요동쳤다.

뭐지?

살짝 움츠러든 어깨를 펴 고개를 들어 올리려는데.

두근! 두근!

다시 한번 심장이 요동친다.

뭐야,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알 수 없는 현상에 묘한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기 시작할 때.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남은 시간: 00:00:10]

“…아.”

난데없이 등장한 카운트다운.

보는 순간 이해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동시에 영문을 알 수 없던 심장의 거센 떨림도 이해의 영역으로 접어들었다.

“참 오래도 기다리게 하는구나.”

긴박한 상황 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다.

오늘이 바로 내 상태창에 빈칸으로 남아 있는 특성이 개화하는 날이라는 걸.

“타이밍이 참 공교롭네.”

[남은 시간: 00:00:06]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때마침 개화하는 특성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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