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7/120)

삐이이이이이-!

“꺄아악!”

“악!”

귀를 날카롭게 찌르는 소음에 특례 입학생들이 귀를 부여잡고 하나둘씩 주저앉는다.

순식간에 대강당은 난장판이 되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협회 직원들이 귀에 꽂은 송수신기를 통해 상황을 주고받고 있다.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그들의 얼굴이 점차 굳어가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안팎으로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그 순간, 한쪽 문을 지키고 서 있던 윤지안이 단상 위로 올라서서 소리쳤다.

“외부에서 빌런의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특례 입학생 여러분은 협회 직원들의 지시에 따라 속히 움직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목이 터져라 외치는 그녀의 음성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강렬한 소음을 뚫고 특례 입학생들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애석하게 바라보았다.

“그 말은 지금 안 하는 게 좋았을 텐데.”

특례 입학생들을 빠르게 통제하기 위해 내뱉은 말은, 오히려 또 하나의 방아쇠를 잡아당기는 꼴이 되고 말았다.

빌런, 극악무도한 각성 범죄자들에 대한 특례 입학생들의 공포를 유발하는 방아쇠.

“비, 빌런…!”

“빌런이 공격해왔다!”

“도망쳐!”

공포가 들불처럼 번져 그들을 잠식했다.

혼비백산하여 어디로든 도망치기 위해 날뛰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부짖는 녀석도 있다.

한심하다…, 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

이곳에 모인 특례 입학생들이 증명해낸 건 고작 재능뿐.

재능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나면, 남는 것은 갓 스무 살 된 유약한 청년뿐이니.

나는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완전히 아비규환이구만.”

온갖 소음이 날뛰고 있다.

밖에선 전투가 한창인지 쾅쾅거리는 소리가 넘어오고, 안에선 스피커에 무슨 짓을 해놨는지 괴이한 소리가 귀를 찔러댄다.

거기에 더해 어떻게든 현장을 통제하려는 협회 직원의 중구난방 외침과 더불어 이를 듣지 않고 나 죽어요, 하는 입학생들까지.

“요즘 협회 일처리 솜씨가 영 꽝이란 말이야.”

인원배치를 어떻게 이따위로 한 건지 모르겠다.

내부에 있는 협회 직원들 중 누구도 40대 이상을 넘긴 사람이 없다.

죄다 새파랗게 젊은 애송이들 뿐이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니냐고.

적어도 이들을 통제할 경험 많은 지휘권자 하나 정도는 남겨뒀어야지, 쯧쯧.

“이를 어쩐다…?”

이 몸뚱어리로 이곳에 있는 모두를 통제하기란 불가능하겠지.

통제, 지휘도 끗발이 서야 잘 먹히는 거거든.

그럼 일단 저 스피커라도 좀 어떻게….

콰앙!

한 발 늦었네.

단상 위의 의자에 앉아서 묵묵히 이곳을 지켜보고 있던 교수 중 한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다부진 체격을 한 중년의 사내.

딱 봐도 탱커나 근접 딜러 쪽 애들 가르치는 교수일 것 같은데.

허둥대며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윤지안을 옆으로 밀쳐낸 사내가 소리쳤다.

“다들 조용!”

조용, 조용, 조용….

혼란스러운 대강당에 메아리가 퍼질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금부터 이곳은 본 교수가 통제하겠다! 다들 내 지시에 따라 신속히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 알았나!”

“아, 알겠습니다.”

“네…!”

이런 상황에서 목소리 크고, 뭔가 있어 보이는 놈은 신뢰를 얻기 마련.

그래서인지 협회 직원을 비롯한 특례 입학생들도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지금 바깥 상황은?”

그가 옆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는 윤지안에게 묻는다.

“…좋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지원 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으음…, 그렇다면 일부는 지원을 나가야겠군.”

괴상한 소리를 내던 스피커를 제외하면 내부에는 적어도 눈에 띄는 적은 보이지 않는 상황.

외부가 뚫리면 모든 게 끝인 만큼, 그의 선택은 나름 합당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내부를 둘러싸고 있던 인원 중 절반이 외부 지원을 위해 밖으로 나섰다.

“남은 인원은 현 위치를 고수하며 사주경계를….”

교수가 내부에 남은 인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을 때.

외부로 통하는 두 개의 문에서 별안간 강력한 마력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또한 특례 입학생들은….”

아무도 저곳에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고 보는 게 옳겠지.

마력의 발현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으니.

나는 특례 입학생들 사이에 숨어서 소리쳤다.

“출입문에서 마력이 느껴지는데요!”

“뭣이?”

내 말에 교수가 황급히 문을 돌아봤지만, 이미 늦었다.

활짝 열려 있던 문이 제멋대로 닫히더니, 문 전체에 선명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젠장!”

교수가 단상을 박차고 날아가 주먹을 내지른다.

콰앙-!

인간의 주먹에서 났다곤 믿기 힘들 정도의 굉음.

그러나 문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문 위에 드러난 육망성의 마법진이 문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빌어먹을, 봉인 마법인가….”

보통은 상자나 금고 같은 것들을 걸어 잠글 때 사용하는 마법이다.

보안을 위해 창안된 좋은 마법인데, 문제는 빌런 놈들이 사람 가두는 데에 봉인 마법을 애용하는 게 유일한 흠일까.

교수가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성동격서였군.”

그의 말대로 외부는 소란을 피우기 위한 용도였을 가능성이 크다.

진짜는 내부에 숨어 있는 소수였던 거고.

[하핫, 교수님 말씀이 맞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늦게 알아차리셨네요.]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조교가 마이크에다 대고 조롱 섞인 말을 내뱉었다.

웃는 꼴을 보니, 저놈이 문에다 봉인 마법을 건 장본인인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오늘을 위해서 조교 행세를 하고 있었다는 건가?

“…대단한 놈.”

적이지만 대단한 놈인 건 확실하다.

조교 그거 극한 직업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버텼나 몰라.

분노한 교수가 온몸에 힘을 주어 땅을 박찼다.

“네놈…!”

교수가 달려들자, 조교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성급하시네요.”

그가 모습을 나타낸 곳은 대강당의 가장 뒤였다.

블링크(Blink).

짧은 거리를 순식간에 도약하는 고위 마법.

당연한 얘기지만, 고위 마법은 고위 마법사만이 사용할 수 있다.

“어라.”

그럼 저 비리비리해 보이는 다크서클 조교가 고위급 마법사란 얘기잖아.

그렇다는 건.

“좆됐는데…?”

아무래도 제대로 좆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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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가 전사와 1:1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정식적인 통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대략 2할 정도라고 본다.

옛날에 마누라랑 싸울 때 내 승률이 그랬거든.

전사는 맞서 싸우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지만, 혼자일 때도 제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지만, 마법사는 아니다.

여러 방면으로 다재다능한 대신, 혼자서는 제 능력을 100% 발휘할 수가 없다.

왜냐고?

마법이 발현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시전 시간이 필요하니까.

던전에 들어갈 때는 그 시간을 벌어줄 동료들이 있으니까 문제가 되지 않지만, 1:1에는 그게 아주 큰 단점으로 작용한다.

특히 아주 빠르고, 강인한 신체 능력을 지닌 전사를 상대로는 단점이 더더욱 두드러진다.

어쩔 수 없는 상성의 차이라고 봐야겠지.

그런데 말했다시피 내 승률은 8할이었다.

상성이 주는 이점을 등에 업고도 열 번을 싸우면 두 번 정도는 패배했다는 거다.

패배의 원인은 바로 마법사의 사전 준비에 있었다.

마법 중에 메모라이즈(Memorize)라는 마법이 있다.

옛날 양산형 판타지 소설에도 자주 나와서 익숙한 바로 그거.

가진 바 능력도 비슷하다.

마력 수치에 따라 미리 마법을 시전하여 저장해두고, 이를 필요할 때 꺼내어 쓸 수 있다.

그녀의 2할 승률의 비밀은 바로 그거였다.

기상천외한 마법 조합을 세팅해두고 내가 미처 대응하지 못할 때 몰아붙여서 아무것도 못 하고 패배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마법사가 전사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다.

내가 좆됐다고 생각했던 근거 또한 거기에 있다.

전사 직업군 교수가 떡하니 상황을 통제하겠다며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놈은 굳이 제 위장을 걷어내고 정체를 드러냈다.

마법사가 전사에게 1:1로 밀린다는 것은 정론이나 다름없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놈이 당당하게 나서는 걸 보며 적어도 내 상식선에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 저 자식이 뭔가 엄청난 걸 준비해왔나 보다.

그래서 좆된 것 같다고 얘기를 했는데….

뭐냐, 저 도망 다니기 급급한 움직임은.

“쟤는 대체 왜 나선 거야?”

일방적인 공수가 이루어지고 있다.

교수는 끊임없이 공격하고, 마법사 녀석은 그걸 피하고 막느라 식은땀을 흘리고.

“크아앗!”

쿠우우

중년의 교수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대강당이 바람 소리로 요동을 친다.

“큭…, 배, 배리어(Barrier)!”

눈앞에 생겨난 반투명한 막에 교수의 주먹이 가로막힌다.

그러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격, 삼격.

연달아 울려 퍼지는 맹렬한 타격음에 중급 마법인 배리어는 결국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새로운 자살 방법인가?”

이대로 가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장기적인 전투는 무조건 전사가 우위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요즘 트렌드가 건강한 육신을 지닌 마법사라지만, 일생을 육체 단련에 바쳐온 전사에 비할 수는 없는 노릇.

체력이 떨어지면 숨이 거칠어진다.

숨이 거칠어진다는 건 호흡이 매우 불안정하게 변한다는 뜻이고, 이는 집중력의 저하를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되면 마법의 시전 속도가 길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

“진짜 없나?”

이상하네.

자신감 있게 나왔으면 필살기 하나쯤은 있어야 하고, 지금쯤은 꺼내야 하는데.

지금 안 꺼내면 더 이상의 적기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데?

“…뭔가 꺼림칙하네.”

녀석은 숨을 거칠게 내쉬며 힘들어할지언정 조급해 보이지는 않는다.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했는데, 사람이 저렇게 초연할 수가 있나?

내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겨봐서 아는데, 그거 쉽지 않던데.

“그럼 뭐지.”

문득 이 상황이 너무 작위적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

이 모든 상황은 놈이 제 정체를 밝힘으로써 이루어졌다.

난 솔직히 거기서부터 이해가 안 돼.

왜 밝혔지?

가만히 있었으면 의심의 눈초리조차 쏟아지지 않을 위치였는데.

“만약 제 정체를 밝혀야 할 이유가 있었다면….”

자,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만약 녀석이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면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됐을까.

“…대대적인 색출 작업이 이루어졌겠지.”

협회 직원 일부가 외부 지원을 나가기가 무섭게 출구가 막혔다.

그렇다는 건 내부에 이를 지켜보고 있는 첩자가 있다는 뜻이고, 그 녀석을 찾아내기 위해 모두를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했을 거다.

“아.”

놈은 그 색출 작업을 막고 싶었던 게 아닐까.

굳이 자기 정체를 드러내서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함으로써 그 상황이 찾아오지 않게끔 만든 거라면?

“여기에 또 누가 있단 얘기네.”

녀석은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을 또 다른 누군가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기 위해 어그로를 끈 거고.

“대체 뭘까.”

마법사는 어디에서도 고급 자원으로 취급받는데, 그런 자원을 미끼로 사용해가며 숨겨야만 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아니, 인물이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겠지.

그 인물이 수행해야 하는 임무가 그만큼 중요한 걸 수도.

그 임무가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야말로 수행하기에 가장 완벽한 타이밍이란 생각이 들었다.

A급 수준의 전사와 마법사가 눈앞에서 아주 휘황찬란하게 싸우고 있지 않나.

대부분의 인원들은 그걸 보느라 정신이 팔려 다른 이들이 무얼 하는지 관심조차 가지지 못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쯧쯧.”

저 봐라, 저거.

사주경계를 철저히 해야 하는 협회 직원들도 전부 저기에 빠져 있는 모습.

나 때는 저런 거 상상도 못 했는데, 세상 많이 좋아졌다.

이래서 나이 많은 지휘관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니까.

“그럼 내가 찾아야지, 뭐.”

지금은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좋은 때임과 동시에 그놈을 찾아낼 수 있는 가장 쉬운 순간이기도 했다.

모두가 정신이 팔린 와중에 다른 행동을 하는 놈들만 쏙쏙 골라내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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