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120)

팡팡

2인 좌석에 앉은 녀석이 제 옆자리를 팡팡 두들긴다.

조용히 그 자리에 앉자, 녀석이 내 어깨에 팔을 둘러온다.

“너 대학에서 뭘 제일 먼저 해보고 싶냐?”

녀석이 내게 물었다.

“으음, 글쎄….”

한국 대학교는 말했듯 우리나라에 처음 설립된 헌터 양성 전문 기관이다.

커리큘럼은 그야말로 오직 뛰어난 헌터를 양성하기 위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근데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듯, 커리큘럼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일반 대학교와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아리도 하고, 술도 마시고, CC도 하고.

나는 신유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괜찮을 답을 떠올렸다.

“연애?”

“뭣…, 여, 연애?”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는지, 녀석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부끄럽단 느낌보단 화가 난다는 느낌이 강해 보이는데….

“야, 헌터가 되겠단 새끼가 연애할 시간이 어디 있어! 어? 그 시간에 한 자라도 더 들여다보고! 던전 하나라도 더 공략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언성이 높아진 탓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몰리는 게 느껴진다.

얘가 부끄럽게 왜 이래.

근데 부끄러움은 둘째치고 얘가 격렬하게 반응하는 건 재밌다.

조금만 더 건드려 볼까.

“그래도…, 같은 헌터 지망생 여자친구가 있으면 공부나 실습 같은 거 다 같이 하면 되잖아.”

나름대로 반박하자, 녀석이 갑자기 내 등짝을 세게 후려친다.

짜악!

“어딜 감히 말대꾸야? 내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줄 알아. 알았어?”

“윽…, 아, 알았어.”

이 년이 말발로는 안 되니까 냅다 후려갈기고 보네.

나중에 보자.

그런 습관은 아주 철저하게 사라지도록 해줄 테니까.

이후부터 나눈 이야기들은 대부분 한국 대학교와 관련된 얘기들이었다.

밥이 엄청 싸고 맛있다느니, 다른 학부 애들과 안면을 터두면 좋다느니 하는 것들.

들어두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수준까지는 아니고 그냥 괜찮겠다 싶은 정도의 조언들이었다.

“야, 저기 보인다.”

신나게 떠들어대던 녀석이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높다란 건물들이 하나둘씩 보인다.

한국 대학교는 슬픈 역사를 간직한 땅, 여의도 위에 세워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의도 전체가 한국 대학교 캠퍼스 부지가 되었다고 해야겠지.

내게는 저 거대한 건물들이 다르게 보인다.

“위령비….”

그래, 위령비.

삼십 년 전, 여의도에 거대한 던전이 생겨났다.

추정 등급은 SS급.

최소 S급 헌터 다섯에 A급 헌터 스물은 있어야 공략 가능성이 보이는 최악의 던전.

당시 대한민국의 S급 헌터는 총 셋이었다.

당연하게도 던전의 공략은 실패로 돌아갔고, 마력 임계치를 넘어버린 던전은 제 몸에 가둬두었던 몬스터들을 그대로 세상 밖에 토해냈다.

아비규환(阿鼻叫喚).

거대 몬스터들이 날뛰자 여의도는 순식간에 파괴되었다.

이대로라면 여의도뿐만 아니라 서울 전체가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을지도 모르는 상황.

그때 공략을 실패하고 부상을 입은 채 돌아온 S급 헌터 셋을 필두로 대한민국의 수많은 헌터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맞서 싸웠다.

결론만 말하자면, 헌터들은 몬스터들을 여의도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내보내지 않고 승리했다.

대신 그곳에 모였던 수천의 헌터들 중 고작 백 명이 겨우 살아남았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C급 헌터 손시우.

그날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죽을 뻔한 날이기도 했다.

여의도는 그야말로 재기불능의 도시가 되어버렸다.

그때 가까스로 살아남은 대한민국의 마지막 S급 헌터였던 최강철이 이곳에 학교를 세우자고 국가에 건의했다.

헌터가 국력이 된 지금, 이러한 아픔을 두 번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선 헌터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그는 열변을 토했고, 국가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설립된 것이 바로 저 한국 대학교다.

세계 헌터 전문 교육기관 랭킹 3위에 빛나는 대한민국의 자랑 중 하나.

실제로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S급 헌터 다섯 중에서 무려 두 명이 저기 출신이다.

“야, 내리자.”

“아.”

넋을 놓고 있었더니 어느덧 버스가 대학교 정문 앞 정류장에 도착해 있었다.

신유정의 뒤를 따라 황급히 버스에서 내렸다.

수많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우리를 지나쳐 간다.

고개를 돌리자, 거대한 캠퍼스 입구가 보인다.

허공에는 여러 현수막도 걸려 있다.

개강을 축하한다는 말도 안 되는 문구, 특례 입학생들의 입학을 축하하는 문구 등.

“묘하네….”

이곳이 처음은 아니다.

손시우의 몸으로 특강을 한답시고 몇 번이나 지나쳤던 곳인데.

왜 이렇게 낯설고, 설레는 느낌이 들지?

어쩌면 입장의 차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한 번 왔다가는 일일 강사였고, 지금은 몇 년이고 쭉 다녀야 하는 학생이니.

“야, 너 입학식 시간 얼마 안 남았어. 빨리 가자, 내가 데려다줄 테니까.”

“어…, 그래.”

녀석이 내 손을 잡고 이끈다.

그리곤 모두에게 보란 듯이 손을 마구 흔들어댄다.

뭐지, 이건.

주변 사람들한테 얘는 내가 침 발라뒀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영역 표시하는 건가.

그렇게 캠퍼스 입구로 들어서는데 우리 쪽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느껴진다.

비율을 따지면 남자 8에 여자 2 정도.

남자는 당연히 신유정을 보고 있는 걸 테고, 여자는…, 나구나!

“크으…!”

그래, 이거야!

환골탈태의 비술로 열심히 몸을 갈아엎은 보람이 이제야 나기 시작했다.

“헤헤.”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파릇파릇한 여자애들 얼굴을 하나둘씩 훔쳐보고 있는데 갑자기 신유정이 내 양볼을 꽉 짓누른다.

“야, 눈깔 그만 굴려.”

서슬퍼런 음성.

“넵….”

더 돌렸다간 옛날 만화영화에서 봤던 애꾸눈 선장이 내가 될지도 모르겠다.

“입학식 어디서 한다고 했지?”

“호국관.”

호국관.

놀랍게도 대학교 강당의 이름이다.

어쩔 수 없다.

여긴 국립 대학교니까.

당시에 애국심 하나만으로 국가를 수호하길 바라는 꼰대 정치인들의 입김이 여기에 덕지덕지 묻어 있거든.

한참을 걸어가고 나니 멀찍이 떨어진 곳에 커다란 강당이 보인다.

그리고 그곳을 촘촘하게 에워싸고 있는 검은 정장 차림의 인원들도.

강당 앞에 도착한 신유정이 내게 신신당부했다.

“야, 무슨 일 생기면 무조건 저 사람들 뒤에 숨어. 알았어?”

“그래, 알았어.”

“약속했다. 절대 나서지 마!”

물가에 애를 내놓고 떠나는 사람처럼 걱정하는 신유정.

녀석은 몇 번이고 내게 나대지 말라고 말을 건넨 뒤에야 돌아서서 제 강의실로 떠나갔다.

“흐음.”

나는 철저하게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강당 입구를 바라보았다.

특례 입학생들의 입학식은 항상 저런 식으로 엄중한 보안 속에서 펼쳐진다.

이유는 단 하나.

특례 입학생들을 노리고 이곳을 침범해오는 무리가 있기 때문.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었으면 하는데.

“쓰읍.”

왜 이렇게 기분이 아릿한 건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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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금세 내 차례가 왔다.

입구에는 헌터 협회 직원과 마력 파장을 통해 신원을 인증하는 기계가 놓여 있다.

이름이 뭐였더라?

아, 해태 1호였지.

이름만 들어도 알다시피 우리나라 장인이 만든 기계다.

시비와 선악을 판단할 줄 아는 상상 속 동물의 이름을 차용했다던가.

근데 저건 우리나라에서만 불리고, 외국에서는 MWIV(Mana Wave Identity Verification)라고 부른다.

저 기계가 신원을 파악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각성자에게는 저마다 고유의 마력 파장이 존재하는데, 이를 데이터베이스에 미리 등록해둔 사람에 한하여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 미리 등록 안 해둔 사람은 어떡하냐고?

어떡하긴.

미등록 각성자로 곧장 붙잡혀 가는 거지, 뭐.

우리나라는 각성자가 되면 데이터베이스에 마력 파장을 등록하는 게 법으로 제정되어 있으니까.

해태 모양으로 조각된 대가리에 손을 집어넣자 얼마 안 있어 등 뒤의 패널에 내 신원 정보가 떠오른다.

“김도진 씨, 확인되었습니다. 안으로 입장하셔도 좋습니다.”

그의 말에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협회 직원이 옆으로 비켜서서 길을 터주었다.

그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는데 묘한 움직임들이 보였다.

나를 보면서 옷깃에 착용한 마이크로 무언가 속닥거리는 것 같았는데, 내 착각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튀어나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김도진 씨…?”

가로막은 이는 다름 아닌 윤지안이었다.

조금 전 협회 직원에 마이크에다 대고 얘기한 게 이거였구나.

그녀의 표정은 조금 전 보았던 신유정의 표정과 매우 흡사해 보인다.

내가 김도진이 맞는지 의아해하는 표정.

“오랜만이에요, 지안 씨. 3주 만이죠?”

먼저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자, 윤지안의 눈과 입이 서서히 벌어진다.

“어, 어떻게….”

나를 가리킨 그녀의 검지가 빙글빙글 돈다.

얼굴이며 몸이 어떻게 그렇게 변했냐고 묻는 듯한 움직임.

“3주 동안 운동 열심히 하고, 또 약간의…, 아시죠?”

무언가가 있는 듯한 뉘앙스로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당혹감으로 물들어 있던 그녀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알겠습니다. 무언가 특별한 경험을 하신 모양이군요. 축하드립니다.”

이 여자야말로 요즘 젊은 친구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알잘딱깔센의 표본이 아닐까 싶다.

“남은 이야기는 나중에 하는 게 좋겠습니다. 입학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서 들어가시죠.”

“네, 그럼 나중에 봐요.”

그녀와 짧은 해후를 나눈 뒤, 다시 안으로 들어섰다.

고작 몇 안 되는 특례 입학생들의 입학식이 열리는 것치곤 과하게 넓은 공간이 드러났다.

못해도 200에서 300명은 충분히 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앉아 있는 사람의 수는 고작 열 명 남짓.

내가 거의 막바지에 들어왔으니까, 앞으로 한두 명 더 들어온다고 해도 스물이 채 안 된다.

“특례 입학이 빡세긴 빡세구나….”

앞서 말했듯, 특례 입학을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은 헌터 협회 또는 A급 이상의 고위 헌터만이 가능하다.

그들의 보증으로 들어온 만큼, 학교에서는 특례 입학생들을 인재 중의 인재로 대우한다.

등록금 면제는 기본이고, 식비 면제에 매월 카페테리아 50만 원 무료 이용 등.

다양한 혜택들이 주렁주렁 붙는다.

물론 이것들이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재로서 시험을 면제받고, 온갖 혜택을 받으며 이곳에 들어온 만큼 특례 입학생은 시험 때마다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실기 시험 성적 B+ 이상.

그 이하로 떨어지면 곧장 모든 혜택이 회수된다.

그렇게 되면 그 특례 입학생을 추천한 사람도 덩달아 욕을 먹게 되겠지.

어떻게 저런 녀석을 추천할 수 있냐며 뒷돈 받아먹은 건 아닌지 조사까지 들어갈 수도 있다.

그렇기에 특례 입학생은 부담감이 생각보다 심한 자리다.

본인의 혜택뿐만 아니라, 자신을 추천해준 추천인의 명예 또한 걸려 있으니.

그래서 특례 입학을 제안받아도 거부하고 일반 전형으로 입학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더라.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잠시 후에 입학식이 진행될 예정이오니, 특례 입학생들은 1열과 2열에 모두 착석해주시길 바랍니다.]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젊은 남성이 마이크에다 대고 말했다.

그 말에 자유분방하게 흩어져 앉아 있던 특례 입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의 뒤를 졸졸 따라가 2열의 끝자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 단상 위에 마련된 다섯 개의 의자에도 사람들이 앉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흩뿌리는 이들.

한국 대학교에 재직 중인 교수들이었다.

마이크 앞을 지키고 서 있던 조교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부터 특례 입학생들의 입학식이 있겠습니다. 본격적인 식에 앞서 국민의례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대강당 천장에서 펄럭이고 있는 태극기를 바라본다.

[일동, 국기에 대하여 경례.]

단상 아래에 놓인 커다란 스피커에서 익숙한 노래와 말이 흘러나왔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던 그때.

파지직!

불길한 소리가 귀를 때렸다.

빠직!

조금 전까지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던 대형 스피커에서 스파크 튀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강렬한 소음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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