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를수록 몸이 극명한 변화를 보이리라는 것을.
살집 너머로 느껴지는 단단한 뼈와 근육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계속 가자.”
몸의 열기가 식기 전에 비술을 끝마쳐야만 한다.
그래야 덜 아프거든.
뿌득! 뿌득!
콰득!
빠각!
연신 섬뜩한 소리를 내며 신체 곳곳이 가루가 되었다가 재정립되기를 반복한다.
머리, 목, 가슴, 배, 팔, 허벅지, 무릎, 정강이, 발.
머릿속에 그려둔 이상적인 신체 구조와 더없이 닮아가고 있다.
꿀꺽! 꿀꺽!
여섯 개째 포션을 들이켰다.
한 번에 여러 병을 섭취한 탓에 슬슬 회복력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다행히 뼈와 근육을 굳히는 데에는 여전히 충분한 효능을 발휘하고 있다.
“이제 마지막….”
세부적인 조절은 끝마쳤다.
전신에서 욱신거리는 통증 때문에 지금 당장이라도 정신줄을 놓고 쓰러지고 싶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마지막 작업이 남아 있다.
바로 뼈와 뼈 사이를 이어주는 관절.
멋대로 재정립한 뼈와 뼈 사이가 조금씩 어긋나 있다.
이것들을 전부 바뀐 형태에 따라 틀어주면….
뿌득! 뿌득!
고통과 함께 희열이 느껴진다.
동시에 머릿속에 드는 확신.
아, 이번 환골탈태의 비술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완벽하게 되었구나.
관절이 맞춰질 때마다 뼈와 근육 깊은 곳에서부터 고양감이 전해진다.
이것은 S급 헌터의 몸으로도 느껴본 적 없던 종류의 희열이었다.
대부분의 관절과 마디가 몸을 움직임에 있어 최적의 형태로 자리 잡고.
뿌득!
마지막 남은 관절마저 완벽한 형태로 짜이는 순간.
[사용자에게 걸맞는 특성 탐색에 영향을 미칠 정보를 흡수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흡수한 정보를 기반으로 특성 탐색의 범위를 축소합니다.]
[흡수된 정보가 특성 탐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특성 탐색의 범위가 크게 줄어듭니다.]
[특성 탐색까지 남은 시간: 335:59:55]
나도 특성이 생기긴 하는구나…?
물음표에 가려져 있던 남은 시간이 마침내 진짜 시간을 드러냈다.
336시간, 14일, 2주.
공교롭게도 한국 대학교 특례 입학과 맞물리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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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힘을 주어 천천히 일어났다.
“끙차.”
전신에서 은은한 통증이 느껴진다.
관절 꿰맞추고 마신 마지막 한 병까지 더하면 무려 일곱 병을 마셨는데도 이 모양이냐.
내가 만들기는 했지만, 악랄한 수법이 아닐 수 없다.
몸을 재구성하는 데에 쓰일 게 아니라, 고문에 쓰이는 게 더 적합한 거 아닐까 싶을 정도.
“그래도 느낌은 좋네.”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는 것으로도 느껴진다.
이건 한 꺼풀 벗어 던졌다, 이런 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수준의 변화를 아득히 넘어섰음을.
“상태창.”
[상태창]
이름: 김도진
성별: 남
나이: 20세
키/몸무게: 172CM / 77.2KG
[근력: 20] [체력: 25] [민첩: 15] [마력: 5]
특성:
상호불가침[2022.06.09]~[2025.12.31]
발설금지[2022.06.09]~[2025.12.31]
비술을 사용하기 전에 보았던 상태창과는 몇 가지 변화된 점이 눈에 띈다.
일단 전체적으로 능력치가 소폭 상승했다.
환골탈태는 어디까지나 가지고 있는 것에 한해서 부수고 다시 만들 뿐, 이를 통해서 단숨에 근육의 양이 늘어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능력치가 증가한 건 아무래도 같은 근육 대비 효율이 개선되었기 때문이겠지.
비루한 몸뚱어리가 가진 나약한 근육 10과 이상적인 신체가 가진 근육 10은 그 밀도가 엄연히 다른 법이니.
조금 잔인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세상이란 게 그렇다.
평범한 사람? 자기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다만, 비범한 사람은 똑같은 노력으로 훨씬 더 잘 살 수 있다는 게 조금 아플 뿐.
가장 높았던 마력은 한 자릿수로 곤두박질쳤다.
“이거야 뭐…, 다시 모으면 그만이니까.”
마력 수치 30 투자해서 이만한 몸을 가질 수 있다면 남는 장사지.
키와 몸무게에도 제법 변화가 생겼다.
“이제야 그나마 좀 볼 만하네.”
여전히 작다.
그런데 적어도 무자비하게 하이힐 신은 여자만 아니면 무방비하게 정수리를 내어줄 정도는 아니게 되었다.
“…아닌가?”
각성을 겪은 여성들의 평균 신장이 170cm였나…?
여전히 아슬아슬하구먼.
“쩝.”
아쉽지만, 괜찮다.
각성 이후로 다시 열린 성장판이 환골탈태의 비술 이후로 더욱 크게 열렸다.
거기에 성장력의 비술까지 걸어두었으니, 과장 좀 보태서 한 달에 3~5cm씩 콩나물 자라듯 쑥쑥 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키에 대한 걱정은 얼마나 클 수 있을까가 아니다.
“적당히 컸으면 좋겠는데.”
성장판이 너무 크게 열렸다.
이대로 쭉쭉 자라면 2m가 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다.
“…적당한 때에 성장판에 걸려 있는 비술은 회수를 해야 할지도.”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평생 내 프로필에 쓰일 신장인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지.
일단 한 달 정도 지켜본 뒤에 결정하자.
이 걱정이 단순한 기우인지, 아니면 정말 신경을 써줘야만 하는 부분인지.
한 달 동안 얼마나 자라는지 확인한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살도 조금 빠졌고….”
고개를 내려, 가슴 아래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를 확인했다.
이제는 뱃살 앞에 애교를 붙여야 할 것 같다.
근육과 뼈를 부수고 다시 형태를 잡는 과정에서 몸에 붙은 지방이 조금 녹아내린 모양.
지금 내 모습이 어떤지, 갑자기 참을 수 없이 궁금해졌다.
곧장 화장실 거울 앞으로 가 내 모습을 확인했다.
골격 구조와 근육 형태의 변화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진 몸이 눈에 띈다.
“크으, 죽인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왜소하고 끝이 말려 들어갔던 어깨는 태평양처럼 넓고 평평해졌고, 웬만한 여자 가슴보다 빵빵하게 튀어나왔던 여유증 말기의 가슴은 사라지고 탄탄한 근육으로 무장했다.
흔히들 말하는 역삼각형 몸매의 표본과도 같은 형태.
여전히 살집이 살짝 붙어 있기는 한데, 눈으로 보이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 위에 살이 붙어 있는 듯한 말랑말랑한 마시멜로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근육질 몸매에 잠깐의 관리 소홀로 인해 살집이 조금 붙어버린 듯한 느낌?
달라진 건 단순히 몸매뿐만이 아니었다.
얼굴 또한 달라졌다.
안면에 고루 퍼져서 들러붙어 있던 무수히 많은 살.
그 안에 파묻혀 있던 이목구비가 융기하면서 한층, 아니, 몇 층은 더 인상이 또렷해졌다.
서글서글한 눈매는 인상 좋아 보인다는 소리를 숱하게 들을 만큼 호감형이고, 오뚝하게 솟은 코는 콧대에 종이를 올리면 베일 것처럼 날카롭게 서 있다.
턱 밑에 두꺼비마냥 두툼하게 자리 잡고 있던 살도 쏙 들어가 턱선의 예리함이 살아났다.
“괜찮은데…?”
때에 따라선 충분히 미남 소리를 들을 만한 얼굴.
이를 보면서 나는 또 한 번 짭시우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아낌없는 나무처럼 다 주고 가셨군요, 찐도진…, 아니, 짭시우 씨!”
환골탈태의 비술을 통해 내가 건드린 건 목 아래까지다.
말인즉, 이 얼굴은 김도진이 원래 가지고 있는 오리지널이라는 뜻.
본판이 나쁜 녀석이 아니었다.
과도하게 찐 살이 얼굴을 파묻은 탓에, 몸의 주인마저도 몰라봤을 뿐.
아마 녀석이 제 몸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나는 왜 이따위냐고 자책하기보다 자애(自愛)했더라면 상황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겠지.
“하…, 양심에 찔리네.”
누가 내 가슴을 바늘로 콕콕 찌르고 있는 것처럼 따끔거린다.
스무 살의 파릇파릇한 몸뚱어리, 천재적인 재능, 훈훈한 외모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몸을 받았는데, 정작 내가 그 사람에게 준 건 옛저녁에 다 타버리고, 이제는 남은 찌꺼기들을 끌어모아 다시 태워서 겨우 연명하고 있는 몸뿐이라니.
“미안합니다, 짭시우 씨…. 정말 미안합니다…!”
미안한데.
아, 진짜 미안한데.
“프흐흐흐흐.”
왜 이렇게 웃음이 나지.
이걸 통해서 짭시우 군도 알았으면 좋겠다.
“인생은 실전이다, 좆만아…!”
인생은 실전이고, 실수 중에는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도 있다는 것을.
“후우!”
기쁜 마음의 한켠에 작은 걱정거리가 생겼다.
환골탈태의 비술이 너무나도 잘 먹혔다.
먹혀도 너무 잘 먹혀서 하루아침 사이에 내 몸이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
지금 내 모습을 아줌마나 신유정이 본다면 대체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탕탕탕!
한창 고민 중인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이제는 두드리는 세기만 봐도 누군지 알겠다.
“도진아, 안에 있니…?”
역시.
아줌마다.
“아, 어떡하지.”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도진아…?”
아줌마가 부르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벌써 나갔나?”
난반사되는 두꺼운 유리창 너머로 드리워진 아줌마의 실루엣이 점점 멀어져간다.
그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아줌마한테 구구절절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막말로 내가 뭐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가진 재주로 한껏 빡세게 몸을 만들어온 게 전분데.
입장 바꿔 생각해서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갑자기 몸매가 더 섹시해져서 나타나면?
나라면 감사하다고 절을 올릴 것 같은데.
아줌마는 그 정도까지 가진 않겠지만…, 나를 추궁하려 들지는 않겠지.
“그래, 언제까지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신유정, 윤지안 등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피해 다닐 수 있어도 아줌마는 그럴 수 없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내 생활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아니, 그보다 그냥 내 마음이 그러고 싶지 않다.
이제야 좀 불타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생이별을 하라고?
싫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불같이 타오르다가도 연료가 떨어지면 금세 식는 법.
안정적으로 타오를 수 있으려면 꾸준히 연료가 될 장작을 밀어 넣어줘야 한다는 말씀.
곧장 문을 열고 나가 멀어져가는 아줌마의 팔을 붙잡아 돌렸다.
“어맛!”
소녀틱한 비명을 내지르며 돌아선 아줌마가 나를 바라본다.
“도진아, 집에 있었….”
반가운 음성으로 전해지던 말이 채 이어지지 못하고 도중에 뚝 끊긴다.
동시에 나를 담아내고 있는 아줌마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거세게 흔들렸다.
“누, 누구세요…?”
아, 짜릿해.
현재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많이 봐온 아줌마가 나를 보고 누구냔다.
그만큼 내 변화가 극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거 아니겠나.
“누구긴요.”
전혀 바뀌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를 알아차린 아줌마의 눈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한다.
“저예요, 아줌마.”
이윽고 당장에라도 찢어질 듯 커진 눈동자로 아줌마가 나를 살핀다.
심지어 손을 들어 얼굴을 마구 더듬기까지 했다.
“아, 아니, 이게 어떻게….”
아줌마와 헤어진 건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어젯밤.
“정말 도진이 너 맞니…?”
믿기 힘들다는 듯, 재차 물어오는 아줌마.
불신의 빛이 서려 있을지언정 불쾌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얼굴에 띤 홍조로 봐선 더 좋아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저라니까요. 어떻게, 증명이라도 한 번 해드려요?”
“즈, 증명이라니…, 뭘 어떻게….”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줌마의 손을 붙잡고 방 안으로 이끌었다.
그다음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그대로 아줌마를 문에 기대게 한 채로 얼굴을 들이밀어 입술을 집어삼켰다.
“으븝…!?”
찰나에 벌어진 과감한 행동에 놀라는 것도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