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50/120)

가볍게 등을 토닥이면서 가슴골에 살짝 닿아 있는 코로 조용히 그리고 깊숙이 숨을 들이켠다.

베이비 파우더 같은 향기가 콧속으로 깊이 스며든다.

아줌마의 체취가 익을 대로 익어 농밀한 느낌이라면, 얘는 좀 더 가볍고 풋풋한 느낌.

모녀지간이라 그런가, 자꾸만 뭔가를 느낄 때마다 아줌마랑 얘를 비교하게 되네.

제법 긴 시간.

신유정은 어깨를 들썩이며 코를 훌쩍였다.

그러다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하고.

“으흠…!”

내 머리를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어 가볍게 나를 밀어내면서 뒤로 물러난다.

체취가 멀어져감에 아쉬움을 느끼며 녀석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두 눈은 퉁퉁 부어 있고, 얼굴은 빨갛다.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걸로 봐선 감정이 북받쳐 울게 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괜찮아?”

“괘, 괜찮지, 그럼!”

가벼운 물음에 격렬하게도 답하고 있다.

그러다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닫고 있었고, 녀석은 책상 위에 놓인 상자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는 듯했다.

뭐 하고 있는 거지?

고민을 마친 듯, 고개를 짧게 끄덕인 녀석이 상자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상자 안에 있던 포션 몇 병을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모니터 앞에 줄지어 늘어선 포션의 개수는 총 아홉 병.

신유정은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이게 네 몫이야.”

통보에 가까운 말을 하더니, 여섯 병이 남아 있는 상자의 뚜껑을 닫는다.

“이건 내 몫.”

뭘 고민하고 있나 했더니, 포션 분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던 건가.

내가 아홉 병, 신유정이 여섯 병이면…, 6:4로 나누었다는 건데.

나는 고개를 들어 녀석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조금 의외네.

난 녀석이 적어도 5 아니면 그보다 더 많이 가져갈 줄 알았는데.

내 눈과 마주친 신유정의 얼굴이 조금 더 붉어졌다.

“뭐, 왜, 뭐. 나도 이 정도는 받을 자격 있거든?”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혼자 저러는 거 보면 무언가 찔리기는 한 모양.

보상 분배라는 게 대체로 그렇다.

모두가 만족할 만큼 깔끔하게 나누는 것이 무척 어렵다.

보통 보상을 나눌 때는 사전에 포지션별로 비율을 나눠두거나, 던전 공략 후 기여도에 따라 보상을 나누거나, 이마저도 아니면 아예 균등하게 배분하거나.

이렇게 세 가지를 따르는 편인데, 각각의 장단점이 존재해서 모두가 만족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 고정 파티 또는 공략대가 깨지는 일도 부지기수고, 더 심한 경우엔 칼부림도 난다.

신유정은 선을 잘 지켰다.

욕심을 억누르되, 챙길 만큼은 또 챙겼다.

“하, 한 병 더 줘?”

내가 아무런 대꾸 없이 쳐다보는 게 제법 압박이 됐는지, 스스로 상자를 열고 있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난 네가 생각보다 덜 가져가는 것 같아서.”

“어…?”

살짝 당황하는 표정이 됐다.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한 느낌.

순간 녀석의 얼굴에 망설임이 깃들었다.

지금이라도 철면피 깔고 한두 병 더 챙길까, 하는.

“야, 나 그렇게 염치없는 사람 아니거든? 던전 공략 기여도가 네 쪽이 더 높으니까, 네가 더 가져가는 게 맞아.”

망설임을 과감하게 잘라내는 걸 보면 두 가지다.

양심이 있어 내 보상을 챙겨줬거나, 이마저도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한 고도의 노림수거나.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고.

뭐, 어느 쪽이든 나야 상관없지만.

“너, 그, 포션 바로 팔 거냐? 그럴 거면 내가 도와주고.”

녀석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장 돈이 급한 건 아니니까 일단 가지고 있어 보려고.”

“뭐…, 그러던가.”

신유정은 상자를 옆구리에 끼웠다.

“그럼 난 간다?”

“어, 조심히 내려가.”

그러고는 중고 거래를 수월하게 끝마친 사람처럼 후련한 표정으로 우리 집을 나섰다.

걸음이 빠른 걸로 봐선 어지간히 기쁘거나, 조금 전의 일로 창피했나 보다.

“재밌는 녀석이야.”

처음 볼 때만 해도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면서 몰아붙이더니, 이제는 내 앞에서 저런 부끄러운 표정도 짓고, 웃기도 하고 다 한다.

감개무량한 느낌이 들면서도 멀지 않은 미래가 궁금해진다.

던전 공략 한 번 같이 한 걸로도 이렇게 됐는데, 나중에 가면 대체 어떻게 변할지.

“어으.”

기분 좋은 소름에 온몸을 바르르 떨다가 이내 돌아섰다.

“그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고.”

지금 중요한 건 따로 있으니까.

책상 위에 놓인 아홉 병의 포션을 보고 있자니 하늘이 날 돕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안 그래도 환골탈태의 비술 때문에 필요하던 차였는데.

“저 정도면 이 비루한 몸뚱어리를 사람답게 만들 수 있겠어.”

예전에도 한 번 생각한 적 있는데, 이 몸뚱어리는 정말 신이 공평하게 빚은 육체다.

마법사로서 가질 수 있는 재능은 다 가졌는데, 몸이 쓰레기야.

이건 성장력의 비술로도 커버를 칠 수가 없는 수준이다.

애초에 타고난 게 별로인데 여기서 좋아져봤자 얼마나 좋아질 수 있겠냐고.

결국 근본적인 해결법은 하나.

타고난 근골 자체를 한 번 갈아엎는 수밖에.

지금까지 이를 알면서도 못한 건 환골탈태의 비술을 사용한 이후 몸을 회복시킬 수단이 없기 때문이었다.

옆에서 계속 치유해줄 힐러 또는 몸을 충분히 회복시킬 만큼의 포션이 있어야 했는데, 드디어 그 조건을 충족시킨 거다.

“후우.”

아, 근데 막상 하려니까 걱정이 앞선다.

“이거 진짜 아픈데, 아.”

아픈 것만 생각하면 하기 싫은데, 해야 한다.

성공하기만 하면 이 몸뚱어리가 선천적으로 가지지 못한 것들을 지닐 수 있게 될 테니까.

“상태창.”

[상태창]

이름: 김도진

성별: 남

나이: 20세

키/몸무게: 167CM / 81.6KG

[근력: 15] [체력: 20] [민첩: 11] [마력: 35]

특성:

상호불가침[2022.06.09]~[2025.12.31]

발설금지[2022.06.09]~[2025.12.31]

살이 빠지는 속도도 슬슬 늦어지고 있고, 마력을 제외한 능력치의 성장도 더뎌졌다.

아직 성장이 늦춰져선 안 되는 구간인데도 말이다.

이는 노력의 문제라기보단, 재능의 문제다.

근골이 좋으면 남들과 똑같이 노력해도 더 많이 성장하는 반면, 근골이 나쁘면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겨우 평균을 따라갈 수 있다.

이 몸뚱어리가 그렇다.

근골이 약해서 남들보다 몇 배를 노력해도 중간까지나마 갈 수 있을까 싶은 수준이다.

이것만 나쁘면 내가 뭐라고 안 한다.

근데 얘는 그냥 습관 자체가 글러 먹은 인간이었다는 게 문제거든.

오랜 좌식 생활 때문에 몸의 균형이 여기저기 전부 어긋나 있다.

그뿐이면 또 말을 안 해.

앉는 자세 자체가 비뚤어져서 몸도 그대로 비뚤어졌다.

이제는 정상적인 자세로 앉으면 그게 불편한 수준.

사실 근골을 제외하면 비술 없이도 다 고칠 수 있는 것들이다.

문제는 십수 년간 몸에 익은 버릇을 고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 노력해야 한다.

더군다나 아예 원상태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느끼지 못하겠지만, 나처럼 신체적인 구조에 빠삭한 사람들은 자꾸만 거슬리게 느낄 정도의 미약한 어긋남은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는 뜻.

그런데 환골탈태의 비술은 한 번 뒤지게 아프고 나면 모든 걸 되돌려놓을 수 있다.

그러니 별 수 있나.

해야지.

“마력은 간당간당하지만 가능할 것 같고….”

지금까지 모아둔 마력량이면 완벽하게는 무리더라도 몸의 균형을 돌려놓고, 근골을 더욱 탄탄하게 만드는 건 가능하지 싶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빨리 끝내자.”

책상 위에 있던 포션들을 전부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앞에 양반다리로 앉아 과도한 긴장으로 들어간 힘을 빼기 위해 몸 곳곳을 풀어주었다.

“후우….”

심호흡도 하고.

괜찮아.

이미 한 번 해본 일이잖아?

“…시발.”

그래서 더 문제구나.

한 번 해봐서 얼마나 아픈지 아니까.

그럼에도 그만둬야겠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 내 외형은 여자에게 인기 많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다.

어떻게 일이 잘 풀려서 아줌마랑 섹스도 하고, 윤지안에게 펠라까지 받긴 했지만 얻어걸렸단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를 모두 해결하려면 넉넉잡아 1년은 허비를 해야 한다는 건데.

나는 싫다.

안 그래도 짧은 인생,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놀아야지.

“하자, 해.”

그러니까 한다.

지금까지 누려보지 못한 것들을 누리기 위하여.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을 감는다.

관조.

체내의 마력을 통해 직접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몸속 구조가 또렷하게 떠오른다.

보고 있으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나약하고 어긋난 신체.

이제 이것들을 하나하나 내 손으로 부수고, 원하는 형태로 다시 빚어내야 한다.

S급 헌터 손시우로서 살아온 세월과 경험이 어긋난 신체 위로 이상적인 형태를 덧씌운다.

이것은 내 신체에서 가장 자신 있었던 부분과 더불어 이 부분은 좀 더 이랬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이상이 결합된 형태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표홀하게 움직일 수 있고 순간, 지속적인 능력을 발휘함에 있어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그야말로 어떤 환경, 제약에서도 활약할 수 있는 이상적인 형태.

그 밑바탕을 그대로 따라가면 가질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신체를.

“흡!”

짧게 숨을 내뱉으며 장기를 보호하고 있는 상체의 뼈와 근육을 모조리 부수고 뭉갠다.

“크으…!”

앙다문 입술 사이로 미처 막아내지 못한 고통어린 신음이 새어 나온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인간의 뼈와 근육이 환골탈태의 비술을 받아낼 수 있는 횟수는 단 1회뿐.

물론 억지로 하려고 하면 더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내 옛날 몸은 환골탈태의 비술을 세 번이나 사용했으니까.

세 번이면 더 완벽한 신체를 얻은 거 아니냐고?

아니다.

형태는 더욱 이상적이게 변했을지 몰라도, 그 강도는 처음에 비해 많이 약해졌다.

인간의 뼈와 근육이 이를 버티지 못하고 영구적인 손상을 입은 탓이었다.

만약 그걸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대한민국 1위 헌터가 아니라,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다투는 헌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후회는 한 번으로 족하다.

이번에는 단 한 번으로 이상적인 형태의 신체를 빚어내야 한다.

우득! 우드득!

뿌득!

섬뜩한 소리가 연신 귀를 때린다.

그와 함께 느껴지는 고통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예전에 S급 던전을 공략할 때 동료를 대신해 거대 몬스터의 손아귀에 붙잡힌 적이 있다.

그때 녀석의 손아귀에서 온몸이 박살 날 때가 지금과 비슷하다면 비슷했다.

물론 고통의 정도로 따지면 지금이 더 아프다.

“후욱, 후…!”

마력의 일부로 장기를 보호하고, 남은 마력으로는 잘게 부서진 뼈와 근육을 재조립한다.

지금 이 순간, 마력은 내 손이다.

머릿속에 투영된 이미지를 그대로 따라서 찰흙 놀이하듯 뼈와 근육을 주무른다.

형태를 잃고 바스라졌던 것들이 더 단단하고, 질기고, 이상적인 형태로 바뀌어 간다.

마침내 상체의 모든 뼈와 근육의 형태가 잡혔음을 확인한 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포션을 손에 쥔다.

퐁!

현재 상체의 뼈와 근육은 형태만 온전하게 이루었을 뿐, 무수히 많은 실금이 뼈 전체에 그어져 있는 상황.

이대로 조금만 크게 움직이면 온몸의 뼈가 다시 가루가 되어 무너져 내린다.

그러기 전에 포션을 통해 뼈에 간 실금을 모조리 회복시켜 형태를 굳혀야만 한다.

힘겹게 마개를 연 포션의 주둥이를 입에 가져가 내용물을 흘려 넣는다.

목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간 포션의 회복력이 금 간 뼈 사이로 스며들었다.

느껴진다.

파도 한 번 치면 흔적도 없이 쓸려갈 모래성 같은 뼈대와 근육이 시시각각 단단함을 더해가고 있음이.

“후우….”

한 차례 고통이 휩쓸고 지나간 후, 견고하게 자리 잡은 상체를 내려다봤다.

여전히 살집은 붙어 있지만 형태가 달라졌다.

분명 몸무게는 0.1kg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뱃살이 덜 튀어나와 보인다.

솔직히 말해 지금 당장 겉으로 보기에 감수한 고통만큼 기적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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