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120)

입을 벌리고 내민 혀를 타고 끈적끈적한 정액이 흘러내린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자극적인지, 순간 또 설 뻔했다.

저게 다섯 번째 사정인데 양이며, 농도가 처음보다 훨씬 진한 것 같다.

혀에 휘감겨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걸 보면 확실히, 음….

“후우.”

마침내 컵에 정액이 가득 차올랐다.

철컥!

굳게 잠겨 있던 문의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오른다.

[칼라슈의 시련(眞) 던전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특수한 형태의 던전이므로, 임의의 장소에 세이프티 룸을 활성화합니다.]

[사용자의 행동을 기반으로 능력치 보상이 주어집니다.]

[체력 수치가 3 상승합니다.]

열심히 정액을 뽑아냈더니 체력이 좋아지네.

“도진 씨.”

문 앞에 서 있던 윤지안이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서서 말을 걸어왔다.

“말씀드렸듯, 우리의 모든 행동은 이곳을 탈출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무슨 말인지 알아요.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전부 없었던 일로, 맞죠?”

내가 선수치자, 그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예, 맞습니다….”

아줌마와의 섹스 다음으로 오늘이 가장 기분 좋은 날이었다.

나는 오늘을 그러한 날로 만들어준 그녀를 향해 허리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힘드셨을 텐데 내색도 안 하고 노력해줘서 고마워요, 지안 씨.”

그제야 비로소 그녀의 경직된 얼굴에 옅은 미소가 감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내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실은 중간쯤엔 저도…, 음, 마, 많이 힘들었는데 도진 씨보단 안 힘들었을 겁니다!”

뭐지, 급격한 드리프트가 느껴지는데.

그녀가 황급히 등을 돌린다.

“이, 일단 나가시죠! 신유정 씨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

신유정도 같이 던전에 들어왔었지?

깜빡 잊고 있었다.

윤지안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나도 그 뒤를 따라 밤꽃 냄새로 가득한 방을 탈출했다.

으음, 신선한 공기…, 는 아니고.

처음에 보았던 고블린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는 건 여기 반대편이 신유정이 갇혀 있던 곳이라는 건데.

덜컥

때마침 녀석이 갇혀 있던 방의 문이 열렸다.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신유정.

그녀의 옆구리에는 은빛 테두리가 둘러쳐진 상자가 끼워져 있다.

설마 임의로 활성화된다는 세이프티 룸이 저 녀석의 방이었나?

그런데 쟤는 왜 저렇게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담.

나는 곧장 녀석에게 다가갔다.

“유정아, 괜찮아?”

무슨 일인가 싶어 조심스럽게 묻자, 녀석의 시선이 데굴데굴 굴러 내게로 향한다.

퀭한 눈빛에서 느껴지는 묘한 압박감에 몸이 괜스레 움츠러든다.

뭐지?

저 방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왜, 왜 그래…?”

말까지 더듬거리며 묻자, 신유정이 이를 바득바득 갈다가 이내 고개를 휙 돌린다.

“됐고, 빨리 나가.”

고블린 룸 앞에는 우리가 처음 들어왔던 때와 똑같이 생긴 균열이 생성되어 있다.

신유정은 나를 지나쳐 걸어가더니, 윤지안의 어깨를 일부러 강하게 밀치며 그곳으로 향했다.

“이 좆같은 곳에 한시도 더 있고 싶지 않으니까.”

이내 녀석의 몸이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왜 저러시는 걸까요…?”

엉겁결에 어깨를 얻어맞은 윤지안이 묻는다.

“글쎄요…?”

나라고 알 리가 있나.

“왜 저러지.”

뭔가 잔뜩 화가 난 것 같기는 한데.

왜 화가 났을까.

“은색 상자 안에 보상이 마음에 안 들었나….”

모르겠다.

뭐가 됐든 내 잘못은 아닐 테니 크게 걱정할 필욘 없겠지.

나중에 화가 누그러지면 그때 슬쩍 물어보자.

“일단 저희도 나가요.”

“그러죠.”

그녀가 곧장 균열을 통해 출구로 향한다.

나는 잠시 머물러 고블린 칼라슈의 동상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는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노력만 한다면 꿈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고맙다, 칼라슈.”

너의 동상 앞에서 맹세한다.

나 또한 낭만의 길을 걷겠노라고.

효율, 비효율 따위는 집어치우고 오로지 내 꿈을 위해 가시밭길도 헤치고 나아가리.

중학생 시절의 꿈, ‘섹스를 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은 이루었다.

이제는 고등학생 시절의 꿈을 이룰 차례.

출구로 향하는 균열에 손을 얹으며, 나는 다짐했다.

고등학교 시절, 성진국의 야동을 접한 뒤로 꾸게 된 꿈.

그것을 구현해내고야 말겠다고.

“기다려라, 스톱워치…!”

다음은 네 차례다.

* * *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윤지안이 김도진의 자지를 빨아대는, 말도 안 되는 모습.

볼을 꼬집자, 벗어날 수 없는 현실임을 알려주듯 아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하, 하하….”

온갖 불쾌한 감각들이 몸을 타고 흐른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데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자꾸만 보고 있게 된다.

조금 전 키스 다음으로 뭘 해주면 녀석이 넘어올까 생각하던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손으로 해주면 좋아할 거라고?

“하…!”

이미 저 불여우 년의 입으로 양껏 즐기고 있는데 제 손 따위가 대수일까.

“씨발, 씨발, 씨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동시에 몸이 뜨겁다.

분노로 인해서라기엔 그 감각이 유독 새롭다.

“개새끼, 개새끼잇….”

당장 저것들을 갈라놓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시선을 옮기고 싶은데 그것도 안 된다.

미쳐버릴 것만 같은 순간, 두 연놈들의 화려한 피날레가 시선을 장악했다.

그리고 열렸다.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걷어차고, 방패로 밀어붙여도 꼼짝도 않던 문이 제멋대로 열린다.

던전이 공략 되었다는 말과 함께.

눈앞에는 은색 테두리로 둘러싸인 상자가 툭, 하고 떨어졌다.

분명 처음에만 해도 그것이 갖고 싶었는데.

지금은 왜일까.

조금도 안중에 들어오지 않는다.

삐걱거리는 움직임으로 상자를 옆구리에 낀다.

그리고 힘없이 문을 빠져나왔다.

“유정아, 괜찮아?”

자신을 향해 걱정어린 물음을 던지는 김도진이 가증스럽게만 느껴졌다.

지금까지 저 방에서 신나게 즐기고 온 주제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는 모습이 화를 돋운다.

그녀의 시선이 힐끔, 김도진의 아랫도리 쪽으로 향했다.

바로 저기에.

‘윤지안, 그 빌어먹을 년의 침이….’

역겹고, 더럽다.

당장에라도 바지를 벗겨서 물로 씻겨내고 싶을 정도로.

그녀는 애써 숨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돌렸다.

“됐고, 빨리 나가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도진을 쌩하니 지나친다.

마찬가지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윤지안의 어깨를 세게 밀치면서 균열에 다다랐다.

“이 좆같은 곳에 한시도 더 있고 싶지 않으니까.”

던전을 빠져나온 그녀는 두 사람을 기다릴 생각조차 않고 곧장 그 자리를 떴다.

은색 갑옷 차림에 옆구리에 낀 상자까지.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수군거렸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정처 없이 걷고, 또 걷고, 마침내 다다른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 그녀는 집에 도착했다.

“유정이 왔…, 어머나!”

갑옷 차림에 한 번, 심상치 않은 표정에 또 한 번.

짧은 시간에 두 번을 연달아 놀란 서정희가 걱정 가득한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 던전에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니?”

“별로.”

무뚝뚝한 말투로 대답한 그녀는 곧장 제 방으로 들어갔다.

서정희가 문 앞에서 무언가를 물은 듯한데, 귀에 잘 들리지 않았다.

침대에 걸터앉아 멍하니 전방을 바라보니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개새끼….”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 솟구친다.

다시는 꼴도 보기 싫다.

그런데.

“씨발, 진짜.”

그럴 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

불쾌하고 불결한 두 사람의 모습과 더불어 홉고블린에게 작렬한 녀석의 마법이 떠오른다.

던전 초행에, 기초 마법 배운지 고작 몇 달도 되지 않은, 마법사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녀석이 사용했다곤 믿을 수 없는 파괴력의 마법.

지금도 벌써 그런데,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1등 당첨이 확실시되는 복권.

그것을 남이 홀라당 먹어 치우는 걸 두고만 보라고?

“좆까.”

억울해서라도 그럴 수는 없지.

이대로 물러서면 자신만 호구가 된다는 사실을, 신유정을 깨달았다.

“그래, 냉정하게 생각해.”

자신과 그는 아직 아무런 사이도 아니다.

자신의 것이 되기 전에 누구랑 무얼 했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보아하니 윤지안도 겨우 자지만 빨았지, 섹스까지는 가지 않은 것 같고.

아니, 설령 섹스까지 했더라도 상관없다.

“뺏으면 그만이야.”

그녀는 자신 있다.

이미 김도진이 윤지안의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되찾아올 자신이.

지금까지 자신과 그가 보내온 세월이 몇 년인가.

더군다나 자신에게는 서정희가 있다.

지금까지 김도진을 자식처럼 보살펴온 그녀가 도와준다면 더욱 식은 죽 먹기일 테지.

“그래, 그러면 돼.”

그녀는 금세 자신감을 되찾았다.

“괜히 복잡하게 생각해서 머리만 아팠네, 씁.”

평정을 되찾은 그녀는 제 몸을 둘러싸고 있는 갑옷을 훌러덩 벗어 던졌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의 눈에 은색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 상자.”

곧장 은색 상자를 열어보려다, 이내 참았다.

어쨌든 김도진이 던전 공략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사실.

그러니 그와 함께 열어야겠지.

“새끼, 두고 봐.”

방구석 폐인으로 살아와 여자라면 그저 다 좋은 김도진에게 진짜 여자를 보여주리라.

그렇게만 하면 그 무뚝뚝한 윤지안은 생각조차 나지 않게 되겠지.

“흐흐흥.”

이상적인 미래에 헤프게 웃는 신유정.

그녀는 모른다.

자신의 진정한 상대는 윤지안이 아니라는 것을.

적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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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신유정이 저만치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방어구 차림에 상자는 옆구리에 턱 끼고선 대체 뭐 하는 거야, 저건.

“모르겠다, 모르겠어.”

저대로 집 가면 자기만 놀림거리 되는 거지.

탈의실로 가서 갑갑하게 조여둔 방어구들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고생하셨습니다.”

근처를 서성이고 있던 윤지안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평소보다 더 딱딱한 표정.

저렇게 하면 조금 전 일이 없던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오히려 억지로 애쓰고 있다는 게 팍팍 느껴져서 더 어색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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