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한 해후를 나눈 뒤 떨어졌을 때, 뒤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아, 뒤에 윤지안이 있었지.
등을 돌리자 윤지안이 어색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아요.”
뒤에서 마법만 갈겼는데 안 괜찮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
“신유정 씨도 갑옷은 그을렸지만…, 괜찮으신 것 같고요.”
“아, 예.”
두 사람 사이에 묘한 시선이 오간다.
서로를 경계하는 듯한 눈빛.
처음에만 해도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언제 저렇게 됐지.
눈싸움은 윤지안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시시하게 끝이 나버렸다.
“그나저나, 조금 전 마법은….”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에어 볼이랑 파이어 볼을 섞으면 화력이 더 좋아지겠다 싶어서 합쳐봤어요.”
“예에…?”
놀란 그녀의 입이 살짝 벌어진다.
“그러니까…, 즉석에서 두 개의 마법을 합쳐서 사용하셨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죠?”
두 개의 마법이 서로 뒤섞이지 않도록 마력 배열을 조정하는 게 조금 번거롭긴 했지만, 초급 마법이라 배열 자체가 촘촘하지 않아 조금만 건드려주면 되었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녀가 얼빠진 표정을 수습하는 사이, 신유정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야, 이제 보상 확인하러 가야지?”
“아, 보상.”
그녀가 한쪽 벽면을 가리켰다.
그곳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던 문이 생겨나 있었다.
던전의 마지막 몬스터인 보스를 제거하고 나면, 보스 룸에 새로운 방이 하나 생겨난다.
그게 바로 저 문 너머다.
헌터들은 저기를 세이프티 룸(Safety Room)이라고 부른다.
보상도 보상인데, 저 방이 나타나면 비로소 안전해졌음을 실감하게 돼서라던가.
“가자.”
“엇….”
신유정의 손에 이끌려 트레저 룸으로 향하는 문 앞에 섰다.
보스 룸에 들어설 때와 마찬가지로 문 중앙에 손을 올리자 약간의 빛을 뿜어내며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3평쯤 되는 넓이의 방.
문의 반대편 벽면에 서 있는 커다란 동상과 벽면에 걸린 불빛이 전부인 깔끔한 방.
그 방의 가운데에는 손바닥 두 개를 이어 붙인 정도의 작은 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자, 열어봐.”
신유정이 등을 떠밀었다.
얼떨결에 상자 근처까지 떠밀린 나는 쪼그리고 앉아 상자 뚜껑을 위로 들어 올렸다.
끼이익
뻑뻑한 소리를 내며 열린 상자에 들어있는 건 500원짜리 동전만 한 마정석이 전부였다.
내 어깨너머로 보상을 확인한 신유정이 입맛을 다셨다.
“워낙 쉬운 던전이라 보상이 별로일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별로네.”
마정석은 마력을 품고 있는 광석에 붙여진 이름이다.
초창기에만 해도 장인들이 헌터들을 위한 장비를 제작 재료로 쓰이기만 하던 녀석이었다.
그러다 10년쯤 전이었나.
한 기업에서 마정석에 담긴 마력으로 작동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때부터 마정석은 신에너지로 각광받기 시작했고, 지금은 없어선 안 될 중요 자원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상태다.
마석을 확인한 신유정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정도면…, 간신히 E급 정도겠네.”
마정석은 F급부터 S급까지 등급이 정해져 있다.
순도가 높을수록 맑고 깨끗한 파란색을 띠고, 불순물이 섞여 순도가 낮으면 파란색이 점점 탁해져 F급에 다다르면 거의 검은색에 가까워진다.
상자 안의 마정석은 검푸른색을 띠고 있다.
이 정도면 신유정 말대로 간신히 E급 턱걸이 수준이겠네.
“보상 챙기고 얼른 일어나. 다른 것도 챙겨야지.”
“알았어.”
상자 안에 든 마석을 꺼내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트레저 룸에서 주어지는 보상은 총 두 가지.
하나는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물질적인 보상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능력치 보상이다.
이 능력치 보상이야말로 내가 던전에 들어오고 싶어 한 주된 이유.
보상은 세이프티 룸 안에 세워진 동상으로부터 시작된다.
신유정이 먼저 동상 앞에 서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동상에서 미약한 빛이 뿜어져 나와 그녀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대략 3초 정도 지났을까.
신유정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 씨. 하나도 안 올랐어.”
능력치 보상의 수치는 여러 요인들로 결정된다.
던전의 난이도, 던전 공략 기여도에 따라 보상의 양이 결정되고, 던전 내에서 가장 많이 한 행동에 따라 오를 능력치가 선택된다.
신유정은 안 그래도 난이도 낮은 던전에 들어온 데다, 나 때문에 활약도 못 한 탓에 능력치가 1도 오르지 않은 듯했다.
한마디로 그녀는 오늘 자원봉사를 한 거나 다름없는 셈.
“자, 네 차례야.”
나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동상 앞에 서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조금 전 신유정에게 내리쬘 때보다 훨씬 더 강한 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던전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사용자의 행동을 기반으로 능력치 보상이 주어집니다.]
[마력 수치가 2 상승합니다.]
빛이 심장에 모여들어 코어를 넓힌다.
2만큼 조금 더 묵직해진 코어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무릎을 펴고 일어나자, 신유정이 궁금하다는 듯 내게 달라붙어 물었다.
“야, 많이 올랐냐?”
“마력만 2 올랐어.”
“하긴…, 여긴 너한테도 쉬웠지, 참.”
그러게.
여긴 시시해도 너무 시시했다.
이 던전을 내어준 헌터 협회의 잘못은 아니었다.
내 마법이 그들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어서 그런 것일 뿐.
진짜 초보들이었다면 여기도 쉽게 깰 수 있는 곳은 아니었을 거다.
“이제 나가자. 지안 씨 기다리고 있겠다.”
나는 일부러 윤지안의 이름을 들먹여가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자 예상대로 신유정이 발끈하며 대답한다.
“야, 그 여자는 우리 기다리는 게 일이야, 일.”
“그래도….”
말에 토를 달자, 신유정의 눈썹이 위로 솟구쳤다.
화났네, 화났어.
“너, 딱 말해.”
“뭘…?”
“너 저 여자 좋아하냐?”
“아, 아니?”
당황한 척 말을 살짝 더듬었더니, 녀석이 한 걸음 더 다가와 눈을 부라린다.
“근데 왜 자꾸 은근슬쩍 저 여자 편드는 건데?”
“그냥, 지금까지 나한테 잘해줬으니까…, 여러모로.”
“여러모로 뭐. 뭘 해줬는데 그렇게까지 편을 들어주냐고.”
이제 이거는 거의 질투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저 눈이 매서우면서도, 짜릿하다.
신유정의 신경이 온통 내게로 집중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뭘 해줬다고 해야 녀석이 더욱 발끈하려나.
“그냥, 이것저것….”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서 그냥 여지를 남기는 식의 발언을 했더니, 신유정이 입꼬리를 삐죽 말아 올리며 팔짱을 낀다.
“왜, 저 여자가 네 자지라도 빨아주든?”
이야, 설마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는데.
너무나도 직설적인 말투에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네.
말문이 막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자, 신유정이 확신에 찬 어조로 이죽거린다.
“빨아줬네, 빨아줬어. 이 새끼 이거 존나 음흉한 새끼네.”
위험하다.
얘 눈이 돌아가기 일보직전이다.
이대로 가면 밥 다 짓기 전에 뚜껑부터 열릴 것 같다.
“그, 그런 거 아니야. 얼른 나가자!”
녀석과의 대화를 멈추고 도망치듯 세이프티 룸을 나섰다.
“야, 내 얘기 아직 안 끝났는데 어딜…!”
황급히 따라 나온 신유정이 내 어깨를 강하게 붙잡고 돌리려다 행동을 멈추었다.
“아, 이제 나오시는군요. 한참 안 나오시길래 걱정이 돼서 왔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찍이 떨어져 있던 윤지안이 어느덧 세이프티 룸 문 앞에 서 있었기에.
“쳇.”
신유정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혀를 차더니 내 어깨에 올렸던 손을 거두었다.
그리곤 내 옆을 지나쳐가며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너, 나중에 다시 얘기해.”
응, 싫어.
계속 너 약 올릴 거야.
성큼성큼 걸어가던 신유정이 뒤로 돌아서서 소리친다.
“뭐 해? 빨리 안 따라와?!”
“갈게…!”
자기가 먼저 가놓고 왜 나한테 성질이야.
그래도 들어주는 척 시늉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설렁설렁 뛰어가는데.
[자격을, 증명하라.]
잠시 잊고 있었던 기분 나쁜 목소리가 또 한 번 내 귀에 울려 퍼졌다.
나는 걸음을 멈춘 채 널따란 공간을 슥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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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에 빛줄기가 흐른다.
마치 금이라도 간 것처럼 벽을 타고 이리저리 흐르는 줄기들은 전부 마력이었다.
“야, 너 뭐 하냐.”
앞서가던 신유정이 천장을 바라보고 선 나를 의아하게 쳐다본다.
“어…, 뭔가를 찾은 것 같아서.”
“찾아? 뭐를?”
“글쎄.”
그건 이제부터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마력의 빛줄기들은 벽 전체에 퍼져 있지만, 그것이 나온 곳은 딱 한 곳이다.
공동의 천장에 드문드문 박혀 미약한 빛을 뿜어내는 발광석.
그중 가운데에 박혀 있는 발광석으로부터, 모든 빛줄기가 시작되고 있다.
“흐음.”
저게 내 주변을 둘러싼 어떤 현상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분명한데.
저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야, 뭘 찾았냐니까?”
기다리다 못한 신유정이 내 옆구릴 쿡쿡 찌르며 대답을 재촉한다.
저렇게 참을성이 없어서야, 원.
느긋하게 기다리라고 한마디 쏘아붙이려다 그만뒀다.
인상 찡그리고 있는 얼굴 보니까 하고 싶은 말이 그대로 쏙 들어가네.
대신 나는 천장 위에 붙은 발광석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발광석, 뭔가 좀 이상해서.”
내 손가락을 따라 발광석을 바라보던 녀석이 눈살을 찌푸린다.
“뭐가 이상해. 이런 종류 던전 들어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발광석 그 자체구만.”
생김새 똑같은 거야 나도 알지.
골똘히 고민하다가 이내 결정을 내렸다.
천장까지 높이만 무려 5m가 넘는다.
저런 걸 버튼마냥 누르라고 만들어두지는 않았겠지.
그러니, 부수자.
곧장 마력을 모아 하나의 구체를 만든다.
「매직 미사일(Magic Missile).」
아무런 속성도 부여되지 않은 공용 기초 마법.
이것의 유일한 특징이라고 하면 마법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뭉쳐진 마나의 물리력으로 적을 공격한다는 점일까.
“야, 갑자기 뭔데.”
신유정이 당황해서 뒤로 물러난다.
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내 눈에 닿은 발광석을 향해 매직 미사일을 날렸다.
퍼억!
힘차게 날아간 구체는 발광석을 산산이 부서뜨렸다.
“야, 애꿎은 발광석은 왜 부수는….”
그녀가 뭐라 채 말하기도 전에 변화는 시작됐다.
벽 전체에 마력을 공급하던 발광석이 부서지자 벽에 거미줄처럼 타고 흐르던 빛줄기들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쿠구궁
그 순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 전체가 요동쳤다.
“어, 어어…, 이거 뭐야, 왜 이래.”
쿠구구구
무언가가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불길함을 자극한다.
“다들 조심하십시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윤지안이 어느덧 달려와 우리 두 사람 앞에 섰다.
“제 뒤에서 절대 떨어지면 안 됩니다.”
바짝 긴장한 그녀가 우리를 향해 말했다.
요동치는 땅의 움직임을 따라 흔들거리던 신유정이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댄다.
“야, 너 무슨 짓 한 거야? 아까 매직 미사일 때문에 이렇게 된 거지,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