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120)

그저 어린애 주먹만 한 크기의 구체에 왜 미사일이란 단어를 사용했을까.

박철수 원장이 말하기를, 과거 미사일이란 단어는 투사체를 뜻하는 단어였다고 한다.

그랬던 것이 지금에 와선 현대 무기의 명칭이 되어버린 거라고.

그러니까 파이어 미사일이란 단어는 화염 속성의 투사체라는 뜻.

아, 그렇다고 약한 건 아니다.

“김도진! 침착하게 마법 준비….”

앞으로 달려 나가며 내게 명령하는 신유정의 옆으로 붉은색 구체가 쏜살같이 지나가 고블린의 몸에 적중했다.

그 순간.

퍼엉-!

작은 폭발이 일어나 고블린의 몸이 불길에 휩싸였다.

“키이잇….”

폭발력에 의해 쓰러진 녀석은 잠시 몸을 꿈틀거리다 그대로 축 늘어졌다.

“죽은 것 같은데…?”

달려가던 신유정에게 그리 말하자, 녀석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뒤로 돌아서자 윤지안도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다.

뭐야, 고작 기초 마법에 왜 이러는 건데.

* * *

윤지안은 생각했다.

‘내 첫 실전이 어땠더라.’

지금과 비슷한 느낌의 동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양한 종류의 고블린들이 나오는 던전이었던 것 같은데.

‘최악.’

떠오르는 기억은 다시 뇌 깊숙한 곳에 밀어 넣고 자신을 포함한 누구도 열 수 없는 자물쇠를 채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비단 그것은 자신이 못났기 때문은 아니었다.

자신과 함께 첫 실전을 경험했던 동기들 전부, 가관이었으니까.

몬스터란 게 그런 존재다.

인간에게 죽음의 공포를 각인시키는, 여전히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인 미지의 존재.

전사는 자연스럽게 몸이 굳고, 마법사는 마력이 꼬여 마법진조차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

그녀는 고블린을 두고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는 데에만 한 시간이 걸렸고, 녀석의 몸을 베어 죽이고선 꼬박 하루를 앓아누웠다가 일어났다.

그마저도 빠르다며 교수들에게 칭찬받고, 동기들에겐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분명 그랬는데.

‘저 남자는 대체…?’

김도진이란 인간의 뇌는 대체 어떻게 돼먹었길래 조금도 떨지 않고 마법을 뚝딱 만들어내 고블린의 몸을 터뜨려버린단 말인가.

놀라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파이어 미사일.”

그가 시동어를 외치기가 무섭게 생성되는 붉게 타오르는 구체.

그것이 날아갈 때마다 호기롭게 달려들던 고블린들이 목숨을 잃고 나뒹군다.

그를 지키라고 구한 전위는 중간부터 넋이 나가선 더 이상 달려 나갈 준비도 안 한다.

그녀는 협회에서 건네준 체크 리스트를 살폈다.

‘시전 속도.’

속성 기초 마법의 평균 시전 시간은 초급 마법사 기준 5초에서 10초.

실전임을 감안하여 플러스 20%정도 더하라고 했으니, 6초에서 12초 정도인데.

김도진은 어땠나.

“…2초.”

그것도 어림잡아서 2초지, 사실은 1초 하고도 소수점 몇 초가 더 붙는 수준으로 보인다.

‘이게 말이 되나…?’

박철수 원장이 그의 놀라운 시전 속도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기는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어마어마할 줄이야.

그녀가 놀라는 사이, 또 다른 고블린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두 마리.

그가 한 번에 만들어낼 수 있는 구체의 수는 지금까지 하나였으니, 이번만큼은 신유정이 앞을 막아야 하지 않나 생각했으나, 그것마저도 기우에 불과했다.

“아이스 미사일, 파이어 미사일.”

그는 아주 간단히도 두 개의 마법을 연달아 성공시켰다.

심지어 각기 다른 속성으로 말이다.

쩌정!

퍼엉!

덕분에 한 놈은 얼음으로 뒤덮여 죽었고, 한 놈은 불길에 휩싸여 죽었다.

그녀는 체크 리스트 중 또 다른 항목을 살폈다.

‘몇 가지 속성을 사용하는가?’

의미 없다.

김도진은 지금 고블린을 시시한 상대로 여기고 있다.

그 탓에 심심했는지, 색깔 놀이로 재미를 충당하고 있다.

“이번엔, 어스 니들(Earth Needle).”

단단한 돌로 만들어진 바늘이 고블린의 주요 부위를 꿰뚫는다.

“벌써 세 속성째….”

수정구를 통해 그의 알아본 그의 적성은 전부.

고블린을 눈앞에 두고 잠깐잠깐 고민하는 건 이번엔 어떤 속성을 사용해볼까 고르는 게 틀림없다.

그녀는 체크 리스트 가장 마지막 항목을 확인했다.

‘던전 공략까지 걸리는 시간.’

칼라슈의 시련은 소규모 던전이다.

입구부터 마지막 보스룸까지 평균 공략 시간은 대략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사이.

그렇다면 김도진은 어떤가.

현재 위치는 대략 중간 정도.

입구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에 걸린 시간은 고작….

“17분 32초….”

그마저도 걸음이 느려서 그렇지, 각 잡고 제대로 걸어갔으면 5분은 더 단축됐을 터.

그는 지금 모든 걸 돌파하고 있다.

협회의 사람들이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거라고 적어 놓은 기준치들을 전부 압도적인 차이로 박살을 내며 전진하고 있단 말이다.

그녀는 던전에 진입할 때와 달리, 한없이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도진을 보며 생각했다.

‘그는 반드시 잡아야 해.’

다른 사람 전부를 놓치더라도 김도진 만큼은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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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맣게 탄 고블린의 시체에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화상으로 인한 연기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움직임.

이제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향해 손을 뻗어 내 몸 안으로 밀어 넣는다.

심장이 자리 잡은 코어가 아주 약간, 묵직해지는 게 느껴진다.

내가 사용하는 정순한 마력과는 달리, 이것저것 뒤섞인 혼탁한 마력.

[고블린의 시체로부터 마력을 흡수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어김없이 메시지가 떠올랐다.

양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눈에 보이는 수치 상승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한 건가.”

고블린 한 마리 잡고 마력 수치가 오르면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하지.

“생각보다 더 시시하네….”

살짝 맥 빠진다.

여기 사는 고블린들은 종족 내에서도 가장 약한 개체들이다.

직업도, 뭣도 가지지 못한, 인간의 사회에 빗대어 설명하면 아주 평범한 시민13 정도?

거기에 더해 내 마법의 위력이 생각보다 강력한 것 같다.

파이어 미사일은 적중 시 작은 폭발을 일으킨다고 하는데, 고블린 상체를 홀라당 태워버리는 정도면 작은 폭발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나?

덕분에 구경꾼이 하나에서 둘로 늘어났다.

고블린이 나오는 족족 마법 한 방에 처리되니, 신유정이 나설 기회가 사라진 탓이다.

그렇게 어느덧 던전의 중후반부에 다다랐다.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

제멋대로 날뛰는 특성 때문에 가장 다루기 힘들다는 전격 계열 속성의 마법까지 무사히 완성시켜 녀석의 고블린의 몸뚱어리에 쏘아보낼 즈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를 …하라.】

쇠를 긁어내는 듯한 거친 음성.

너무나도 작고 희미해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듣지도 못했지만, 무언가가 들렸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놀란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윤지안은 손에 쥐고 있는 태블릿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무언가를 적고 있고, 신유정은 고블린의 시체로부터 무언가 건질 만한 게 없나 살펴보고 있다.

“둘 다 무슨 소리 못 들었어요?”

“무슨 소리?”

“아무 소리도 안 들렸습니다만….”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며 대답하는 두 사람.

그들의 표정으로 봐선 정말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조금 전 소리는 나만 들었다는 건데….

“야, 왜 그래?”

어느새 다가온 신유정이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일단 아무것도 아니라고 잡아뗐다.

이 상황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다고 해봐야 이상한 놈 취급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새삼 이 던전의 멋들어진 이름이 떠올랐다.

칼라슈의 시련.

던전의 이름에 걸맞은 무언가가 시작되려는 거라면 언제가 됐든 그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오지 않을까.

아니면 말고.

“좀 쉬었다 갈까?”

신유정이 물었다.

내가 멀뚱멀뚱 서 있는 게 지쳤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듯했다.

“아니, 그냥 가자.”

던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헌터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격언 중 하나.

이 말 무시한 놈치고 오래 살아남은 놈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던전에 들어가기 한참 전부터 비술도 사용하지 않고 마력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그렇게 쌓인 마력 수치는 25.

이 정도 양이면 기초 마법 수십 발은 거뜬히 날리고도 남는 수치다.

실험하듯 다양한 마법을 사용한 탓에 예상보다 마력 소모가 조금 오버하긴 했지만, 여전히 쉬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력 회복 속도를 높여주는 로브를 걸치고 있어서인지 평소보다 마력 회복이 좀 더 수월하기도 하고.

“쉬어야겠으면 언제든지 말해라?”

“어, 알았어.”

걱정하는 말투가 새삼 스윗하다.

나와 어떤 썸씽을 일으키기 위해 본격적인 페이즈로 돌입하기 위한 노골적인 의도가 느껴진다.

녀석은 여전히 모르는 듯했다.

나에 대한 태도가 바뀔수록 길들여지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멀리 와버린 먼 훗날.

뒤늦게 깨닫게 된 그때의 너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이 던전에서 조금 더 큰 임팩트를 남겨줘야겠지.

마침 그럴 수 있을 만한 기회 앞에 도달했다.

쉴 새 없이 마법을 던져가며 고블린을 죽이고 도달한 끝에 자리한 거대한 문.

저 문 너머에 이 던전에서 가장 강한 몬스터가 존재한다.

헌터들은 저 문 너머 공간을 이렇게 부른다.

보스 룸(Boss Room).

“이제 보스전이니까 한 번 쉬자.”

“그래.”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신유정이 제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친다.

나는 쭈뼛거리며 걸어가 녀석의 옆에 살포시 앉았다.

그러자 녀석은 내 어깨에 팔을 두르더니 흐뭇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야, 너 진짜 처음 맞냐?”

“그렇지…?”

미약한 의심의 눈초리가 느껴진다.

“근데 왜 이렇게 잘하냐? 긴장도 안 한 것 같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변명 중에 가장 점수 따기 좋을 만한 말을 골라서 내뱉는다.

“그냥, 네가 앞에서 다 막아준다고 했으니까…, 믿었지.”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 탓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신유정.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흐흐흥, 그니까 날 믿어서 긴장을 안 했다는 거네?”

“응.”

그러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헛기침을 하며 자기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내가 든든하게 막아줄 테니까, 넌 나만 믿어, 나만. 알았어?”

‘나만’을 유독 강조해서 말하곤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는 윤지안을 슬쩍 째려본다.

그러고선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저 여자는 너무 믿지 않는 게 좋아.”

“왜…?”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묻자, 신유정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꾹꾹 눌러 뱉었다.

“협회 사람이잖아! 너 협회가 어떤 놈들인지 몰라서 그러나 본데….”

협회에 대한 욕이 한 사발 튀어나온다.

나를 코 꿰려고 미리 작업을 친다느니, 저 여자도 그래서 너한테 잘해주고 있다느니.

나와 윤지안을 어떻게든 이간질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퍽 귀엽다.

“그러니까 그, 상담 같은 거 받고 그러지 마.”

“으음…, 지안 씨 좋은 사람인 것 같은데.”

넌지시 말을 흘리자, 녀석의 눈빛이 일변했다.

“야, 너 아까 내가 뭐랬어.”

낮고 스산한 음성에 이 등신 같은 몸뚱어리는 또 자연스럽게 움츠러든다.

속 터져, 증말.

나는 녀석의 눈동자를 감정들을 엿보았다.

서서히 끓기 시작하는 욕망과 집착.

맑고 깨끗한, 검은 감정들이 일렁일 때마다 묘하게 가슴을 콕콕 쑤신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 너만 믿으라고?”

내 어깨에 두르고 있는 팔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자연스레 더욱 가까워지는 얼굴.

“그래. 난 네가 진심으로 걱정돼서 얘기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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