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대답을 듣지도 않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 서정희의 목소리가 그녀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내 딸이지만 너 정말 속물 같다, 얘.”
“헤헹.”
타박하는 듯한 말투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시원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이곤 제 방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그 탓에 그녀는 보지 못했다.
그녀가 그를 사윗감이라 표현했을 때, 제 엄마 서정희가 얼굴에 드리운 복잡미묘한 감정을.
* * *
나와 신유정이 함께 공략한 첫 번째 던전이 결정됐다.
던전명 ‘칼라슈의 시련’.
번지르르한 이름과는 달리 고블린만 잔뜩 득실대는 난이도 E급의 작은 동굴이다.
그래서 헌터들 사이에선 원래 이름 대신 ‘고블린 소굴’이라 불린다.
협회에서는 주요 자원이 발굴되는 곳이나, 초보 헌터들에게 실전 경험을 더해주기 좋은 던전들을 선정하여 소멸하지 않는 선에서 던전 내의 몬스터 개체수를 조절하고 있다.
이곳이 그런 곳 중 하나다.
“햐, 옛날 생각나네.”
여기는 발견된 지 제법 오래된 곳이다.
정확히 한 6년 정도 됐나.
“그때 한참 시끌벅적했는데.”
단전 마력 측정기를 통해 결정된 던전의 난이도는 고작 E급.
하지만 칼라슈의 시련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이 헌터들의 모험심을 자극했다.
작은 동굴 어딘가에 무언가 숨겨져 있는 게 분명하다며 많은 헌터들이 달려들었더랬다.
“다 쪽박 찼지, 아마.”
수십 명의 헌터가 그 작은 동굴을 무려 3개월을 뒤졌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나도 한 번 갔던 그곳을 찾은 경험이 있다.
그때 잠깐 한가하던 시기였는데, 모험심 강한 처제가 가자고 하도 졸라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갔다가 아무것도 못 찾고 손에 흙만 잔뜩 묻히고 돌아왔었는데.
“처제는 잘 지내려나.”
문득 처제 생각이 난다.
제 언니 한주희와는 달리 친화력이 좋아서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밝고 명랑한 녀석.
모든 게 낯설었던 내게 먼저 다가와 이것저것 알려준 고마운 녀석이기도 했다.
동굴을 탐험하고 얼마 안 있어 해외로 떠나더니 그 이후로 한 번을 못 봤네.
이따금 전화 통화로 잘 지내고 있단 소식은 전해 들었으니, 지금도 잘 지내고 있겠지, 뭐.
“둘이서 깨긴 딱 적당하네.”
던전을 공략하는 첫 번째 목표는 어디까지나 능력치의 성장이었다.
근데 협회에서 전위와의 동행을 조건으로 내건 순간부터 목표가 하나 더 붙어버렸다.
“어필하기도 좋겠고.”
함께할 전위 신유정에게 나라는 인물에 대해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것.
그녀는 나를 길들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글쎄.
나는 내가 그녀를 길들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애초에 걔는 누군가를 길들이고 조련하는 데에 적합한 타입 자체가 아니다.
왜냐고? 얼굴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드러나거든.
내가 조금만 자기 입맛에 맞는 말만 해줘도 헤벌쭉 웃는 얼굴을 참는 게 보이는데 조련은 무슨.
그 덕분에 걔랑 같이 있는 게 무척이나 재밌다.
조련당하는 척하면서 역으로 조련하는 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다.
“이제 쫄지만 않으면 완벽하지.”
신유정이 눈을 부라리면 몸이 자연스레 움츠러든다.
그거 하나가 아쉽다.
처음보단 훨씬 편해지긴 했는데, 여전히 걔가 힘줘서 말하면 나도 모르게 따르게 된다.
몸에 밴 공포가 아직 물이 덜 빠져서 그렇다.
뭐…, 그래도 차차 나아지고 있으니 완전히 나아지는 것도 시간문제겠지.
험상궂은 얼굴이 쾌락과 치욕에 젖어들어 녹아내리는 상상을 하자 몸이 오슬오슬 떨린다.
“…나 이런 취향이었나?”
요즘 들어 새삼 내 취향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
상당히 음습하기 짝이 없다.
“대체 이런 걸 어떻게 숨기고 살았나 몰라.”
솔직히 모르겠다.
내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취향이 이런 건지, 아니면 갑작스레 젊은 몸을 얻게 된 부작용으로 이렇게 된 건지.
물론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고개를 내리자 또 잔뜩 성이나 바지를 부풀린 자지가 보인다.
“요즘 또 엄청 쌓였네….”
아줌마와 섹스 이후, 단 한 번도 자위를 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때의 쾌락이 어마어마했다.
고작 내 손으로 흔들어대는 자위 따위로는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아줌마와 나는 묘하게 서먹한 관계를 유지 중이다.
초밥을 가져다주고 시무룩하게 헤어진 이후로 더 그렇게 됐다.
“그냥 내가 먼저 다가갈까….”
성욕에 이성이 숙이고 들어갈 즈음.
캉캉캉!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도진아, 안에 있니?”
“어.”
아줌마다.
곧장 매트리스에서 몸을 일으켜 한달음에 달려가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아줌마가 서 있다.
최근에 한 번도 입지 않았던 몸에 달라붙는 회색 원피스를 입고서.
“반찬 떨어질 때가 된 것 같아서. 잠깐 실례할게?”
“아…, 네.”
당찬 걸음으로 내 방에 들어서는 아줌마.
뭐지?
의아해하는 사이, 아줌마는 들고 온 반찬통들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집어넣고 있다.
“냉장고 정리, 잘하고 있구나.”
“…네, 아줌마가 알려주신 대로 따라 하고 있어요.”
“그러니…?”
아줌마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스친다.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 눈까지 비비고 다시 확인했더니, 진짜다.
어느 부분에서 실망을 느낀 걸까?
나는 쭈그려 앉아 냉장고 내부를 확인하고 있는 아줌마의 곁으로 다가갔다.
“근데 냉장고 정리하는 거,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 그렇지…. 아무래도 도진이는 이런 걸 잘 안 했으니까 더 어려울 거야, 응.”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평소보다 빠르게 말을 내뱉는 아줌마를 보며 확신했다.
아줌마의 마음이 내게로 조금 더 기울어졌음을.
며칠 사이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선 더없는 호재였다.
나는 조금 더 아줌마를 향해 다가갔다.
“그래서 말인데요, 아줌마.”
“왜, 왜 그러니.”
덩달아 아줌마의 얼굴에 서린 긴장감 또한 높아진다.
아줌마의 어깨에 슬쩍 손을 올렸다.
아줌마의 얼굴은 그 어떤 거부감도 내비치지 않고 있다.
때가 무르익었음을 실감하며, 아줌마의 귀에다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가끔이라도 좋으니까 아줌마가 한 번씩 정리를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겉과 속이 다른 은밀한 제안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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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물음에 아줌마는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수락도, 거절도 하지 못하는 걸 보면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 듯한 모양인데.
이런 상황에서 대답을 재촉하는 건 악수겠지.
나는 아줌마를 지그시 바라보며 어떤 답이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또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 또 고개를 젓고.
끝없는 반복에도 나는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켰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줌마의 얼굴에서 망설임이 조금씩 사라져가는 게 보였으니까.
마침내 달싹거리기만 할 뿐, 열리지 않았던 아줌마의 입술이 떨어졌다.
“도진이 너도 알겠지만…, 아줌마는 가정이 있단다. 사랑하는 딸과 남편이 있어.”
“예, 알고 있어요.”
신유정에 대한 아줌마의 사랑이 각별하다는 것쯤, 지금까지 봐와서 잘 알고 있다.
남편에 대한 사랑은…, 글쎄.
애초에 1년에 얼굴 몇 번 보지 못하는 사이인데 정말 사랑하는 사이가 맞을까?
그것도 어디 머나먼 해외도 아니고 차 타고 몇 시간이면 오갈 수 있는 지방인데.
묻고 싶다.
아줌마의 마음을 떠나서, 아저씨가 아줌마를 사랑하는 것 같냐고.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아니라고 보는데, 난.
“너는 이런 아줌마랑 어떤 관계가 되길 바라는 거니?”
아, 그게 마음에 걸렸던 건가.
“음….”
일면식도 없는 생판 남이 아닌 바에야,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맺어지기 마련이다.
동료, 친구, 연인, 그냥 아는 사람 등.
그 사람과 나를 떠올렸을 때 하나로 정의할 수 있는 단어, 그것이 관계 아닐까.
아줌마가 이에 대해 고민했듯, 나 또한 진즉에 이에 대해 고민했고, 끝마쳤다.
나와 아줌마를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으로 정의하고 싶은가.
원하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니 생각보다 빠르게 답이 나왔다.
“저는, 글쎄요…. 아줌마와 제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다.
앞에 섹스가 붙는 섹프가 아닌 이상 친구라는 말도 통용되는 관계는 넘어선 지 오래.
섹스 프렌드 따위는 일말의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서로의 몸을 원해 얇게 달라붙었다가 금세 떨어지는 관계.
나쁘진 않지.
그런데, 아줌마와는 깔끔하게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관계가 되고 싶지 않다.
“저는요, 아줌마와 제 관계가 동료, 연인, 가족, 부부, 불륜처럼 하나의 단어로 간단명료하게 정리되는 관계를 원하지 않아요.”
아줌마의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아줌마도 움찔거리기만 할 뿐, 뒤로 물러나지는 않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다시 한 걸음 더.
가볍게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
“서로 채워주는 관계?”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내니, 딸이니, 친구니 하며 붙어 있는 건 더 이상 싫다.
그런 껍데기는 내 삶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 알았다.
“뭘…, 채워주는 건데?”
아줌마의 물음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뭐든지요. 예를 들어….”
팔을 뻗어 아줌마의 허리를 감아 품으로 끌어당겼다.
“지금처럼 아줌마의 몸이 뜨거워졌을 때 이걸 식혀준다던가.”
“그, 그건….”
아줌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아줌마가 원하는 건 뭐든지 채워줄게요.”
다른 한쪽 손으로 아줌마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싸며 입술을 가져갔다.
쪽!
입술과 입술이 가볍게 붙었다 떨어지는 가벼운 키스.
“슬픈 일이 생겨서 이를 나눌 사람이 필요하면 기꺼이 돼 주고, 위로받고 싶은 날이면 기꺼이 위로해주고, 지금처럼 사랑이 필요한 날에는 사랑도.”
내 말을 들은 아줌마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거…, 그냥 연인 아니니?”
“어허, 아니죠.”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연인이라니,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연인, 친구, 심지어 가족까지. 세월이 흐르면 다 변하더라고요. 예전에 어땠나 생각하면 쉽게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대답이 없는 아줌마.
표정을 보면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다.
“전 변하지 않을 거거든요. 아, 변할 때가 있기는 하겠네요.”
“…언제?”
넌지시 건네오는 질문.
이미 알고 있으면서 괜히 묻긴.
“지금.”
한 마리 짐승으로 변해 아줌마에게 달려들었다.
* * *
불이 붙었다.
아니, 번졌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합하리라.
츄르릅! 츕!
김도진이 강렬하게 혀를 빨아들인 순간, 그의 몸에 붙어 있던 불이 그녀에게 옮겨붙었다.
그의 방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심상치 않게 달아올랐던 몸이 주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흐읍…, 흑…!”
이미 한 번 지나온 길이었기에, 서정희도 김도진도 막힘없이 나아갔다.
서로의 혀의 움직임에 열렬히 호응하며 끈적한 타액을 주고받는다.
김도진은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
그 순간, 김도진은 열렬히 섞던 혀를 떼어놓으며 탄식을 내뱉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에게 물었다.
“왜, 왜…?”
한창 좋았던 순간에 왜 그러냐며 타박하는 듯한 말투.
김도진은 그런 그녀를 향해 뜨거운 숨결을 쏟아내며 말했다.
“제가 한 달 동안 이 가슴을 얼마나 만지고 싶었는지, 아줌마는 모를 거예요.”
“흣….”
속내가 뻔히 드러나는 노골적인 칭찬에도 기분이 나쁘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