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120)

“팔, 다 나았지?”

“아…, 네.”

“그럼 오전에 운동…, 갈 수 있겠네.”

“그건….”

갈 수 있지.

갈 수 있고 말고.

하지만 곧장 예, 라고 대답하지는 않았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망설이는 듯한 느낌을 연신 내비쳤다.

그러자 아줌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일 아침에 다른 일이라도 있니?”

“아뇨, 그런 건 없는데….”

“그럼, 갈 수 있겠구나.”

아줌마의 말투가 조금 더 강압적으로 변했다.

“아침에 올라갈 테니까, 준비하고 있으렴.”

무시무시한 기운이 들끓는 듯했다.

그래서 더 이상 뜸을 들이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

“어, 넵.”

살짝 쫄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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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빠 빠빠빠 빠빠라빠빠-

오랜만에 켜둔 알람이 끝까지 울리기 전에 꺼버리며 몸을 일으킨다.

“흐아아암-”

이 시간에 일어나는 건 3주 만인가.

눈곱도 뗄 겸,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고 거울로 얼굴을 보았다.

“점점 사람이 되고 있어, 음.”

살이 빠지면서 이목구비도 조금씩 두드러지기 시작하고, 피부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여드름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니까 나름대로 봐줄 만한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이 정도면 본판 걱정은 안 해도 되겠는데.”

키, 몸무게, 자지 크기까지.

모든 걸 성장시킬 수 있는 나도 얼굴만큼은 건드리는 게 쉽지가 않다.

얼굴에 성장력을 끌어올려 봐야 뭐할 것이며, 뼈를 박살 내서 얼굴을 다시 조형한다?

“하, 그게 불가능한 건 아닌데….”

좀 많이 어렵다.

조금이라도 충격이 세게 가해지는 순간 근처에 있는 뇌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다행히 본판이 나쁘지 않을 듯하니, 그런 대공사는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조금 모자라면 조금씩만 손보지, 뭐.

양치질까지 끝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니, 문의 유리창 너머로 실루엣이 드리워져 있다.

굴곡진 몸매만 봐도 아줌마란 걸 알겠다.

“햐, 진짜….”

대체 저 나이에 저 몸매가 어떻게 가능하지?

심지어 각성자도 아니고 일반인인데.

문 앞에 서 있으면서도 아줌마는 예전처럼 쉬이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있다.

“흐음…, 분명히 뭔가 조금 달라진 것 같기는 한데.”

아줌마는 분명히 변화를 겪었다.

어제 만났을 때 강압적인 어투로 내게 오전 운동을 강요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몸뚱어리의 기억 속의 아줌마는 단 한 번도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었으니까.

언제쯤 문을 두드리나 하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아줌마의 팔이 움직인다.

탕탕탕!

“도진아…? 준비 다 했니?”

묘하고 어색한 말투.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조금 큰 소리로 아줌마에게 답했다.

“네에, 잠시만요!”

이미 준비를 끝마쳤지만, 지금부터 준비하는 척 요란을 떨다가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간다.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아줌마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레깅스에 탱크톱, 그 위에 걸친 얇은 점퍼.

입고 있는 옷차림은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분명 그런데.

레깅스가 과도하게 꽉 끼어 보이는 건 내가 오랜만에 봐서 그런 건가…?

“왜 그러니…?”

넋이 나간 내 모습을 본 아줌마가 의아한 듯 물었다.

나는 황급히 정신을 수습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얼른 출발하죠.”

“그래.”

앞서 내려가는 아줌마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간다.

그러는 와중에 내 시선은 눈앞에서 열심히 씰룩이는 아줌마의 엉덩이에 고정되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한데.

아무리 레깅스라곤 하지만 저렇게까지 딱 달라붙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건 가히 폭력이나 다름없다.

시각으로 들어오는 압도적인 폭력.

당장에라도 손을 뻗어서 저 엉덩이를 움켜쥐고 싶단 생각만 가득해진다.

“후우….”

그랬다간 완전히 끝이다.

밥이 다 되기까지 뜸을 들여야 하듯,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니.

본격적인 운동이 시작되었다.

예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루트를 선택하는 아줌마를 보며 새삼 느낀다.

아줌마가 무척이나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몬스터와 조우하게 된 일반인은 강렬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한동안은 그쪽으로 오줌도 못 눠야 정상이고.

그런데 아줌마는 당당하게 나아가고 있잖은가.

“요즘 날씨가 참 좋지 않니?”

“예…, 좋네요.”

내가 지금 좋다고 말한 게 날씨인 건지, 아니면 눈앞에 있는 아줌마 엉덩이인 건지.

원래 열 걸음 정도는 앞서가야 할 아줌마가 지금은 고작 서너 걸음만 앞서 있다.

그만큼 멀리 있어야 할 엉덩이가 더 가까이에 있다는 뜻.

뭐지, 진짜.

3주 동안 아줌마를 못본 부작용 같은 건가?

왜 이렇게 하나하나가 신경이 쓰이는 건지 모르겠다.

엉덩이에 혼이 쏙 빠진 채로 걸어가다 보니 어느덧 공원이다.

“요즘 공원에 사람이 없네.”

아줌마 말대로다.

원래 이 시간이면 등치기 하는 아줌마와 벤치에 앉아 있는 아저씨로 가득해야 하는데.

지금은 우리 말고 단 한 명도 없다.

“아무래도 다들 공포가 가시지 않은 거겠죠.”

공포라는 게 그렇다.

이미 근원이 사라져도 제법 오랜 시간 잔상은 뇌리에 남기 마련이다.

그것도 아주 뚜렷한 형태로.

아줌마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그 공포와 싸우고 있는 중일 거다.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없으니까 편하긴 하다, 얘.”

그렇게 말하며 입고 있던 점퍼를 벗는 아줌마.

커다란 가슴을 단단하게 붙잡고 있는 하얀색 탱크톱과 매끈하게 드러난 배가 시선을 확 잡아끈다.

나는 애써 시선을 위로 올리며 아줌마에게 물었다.

“어떤 부분에서요?”

그러자 아줌마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대답했다.

“아저씨들이 쳐다보는 게 좀 부끄럽지 뭐니.”

자기가 말하고도 조금 뻘쭘했는지 어색한 표정으로 호호 웃는다.

“이런 아줌마 몸매가 뭐가 좋다고 다들 보는지 몰라.”

뭐지, 이게 바로 기만질이라는 건가.

아줌마의 묘한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한다.

“그렇지 않니?”

“어….”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이쪽을 지그시 바라보는 아줌마의 눈빛을 보면 무언가 바라는 대답이 있는 듯 보이는데.

대체 뭐가 정답이지?

모르겠다.

그냥 솔직한 감상을 전달하면 되는 거 아닐까.

“어…, 저는 그 아저씨들이 이해가 가는데요…?”

“으, 응?”

정확하게 말하면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100% 공감한다.

“그, 아줌마 몸매…, 굉장히 좋으세요. 20대랑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정도로요.”

“도, 도진아.”

아줌마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조금 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아저씨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도 불가항력이 아닐까….”

그렇게 말하는 내 눈도 바쁘게 아줌마의 위아래를 오간다.

당황했는지 숨을 가쁘게 내쉴 때마다 들썩이는 가슴 하며, 오늘따라 유독 타이트하게 다리를 붙잡고 있는 레깅스.

심지어 가랑이 부분이 살짝 먹혀 있다.

저게 그 말로만 듣던 도끼 자국…?

“아.”

황급히 다리를 오므렸다.

도끼 자국까지 본 순간, 자지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 방금까지 분위기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런 낭패가 있나!

“왜 그러니…?”

내 자세가 엉거주춤하게 변하는 걸 눈앞에서 본 아줌마가 의아하게 쳐다본다.

나는 황급히 뒤로 돌아섰다.

“아, 저기,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대로 화장실로 줄행랑 쳤다.

“하아, 시발.”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욕지기를 내뱉었다.

욕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다.

“분위기 좋았는데, 아….”

조금만 더 그대로 분위기 탔으면 사이가 좀 더 가까워졌을 것도 같은데!

이놈의 젊은 몸뚱어리는 서야 할 때와 서지 말아야 할 때 구분이 그렇게 안 되나?

“그래서 젊은 거기는 하다만….”

괜히 젊은 사람들을 보고 혈기왕성하다고 하는 게 아니긴 해.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벌떡벌떡 세울 수 있을 정도로 피가 쭉쭉 도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어쨌든 최악의 상황은 면했으니까….”

여기서 조금 시간을 보내다가 발기가 가라앉으면 나가자.

왜 늦었냐고 물어보면 급똥 때문이라고 둘러대는 수밖에.

“하…, 근데 이거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은데.”

자지의 빳빳함이 평소와 다르다.

아주 돌덩이처럼 단단한 게 아무리 봐도 피가 빠지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아줌마한테 전화해서 먼저 내려가라고 할까…?”

아니면 너무 오래 세워둬야 할 것 같은데, 그러면 분위기 망치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까지 겨우 쌓아뒀던 것까지 다 박살 나는 거 아닌가.

“그래. 아줌마한테 연락하자.”

어떻게든 둘러대고 아줌마를 먼저 내려보내자.

그렇게 결심하고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리고 있는 도중.

“저어, 도진아…?”

들려선 안 될 목소리가 뒷목을 타고 흐른다.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천천히 돌렸더니…, 아줌마가 있다.

“아, 아줌마?”

너무 놀란 나머지 뒷걸음질 치다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까지 떨어뜨리고 말았다.

바닥에 부딪힌 스마트폰에서 빠각,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머나.”

내가 허리를 굽히기도 전에 아줌마가 놀란 표정으로 달려와 내 스마트폰을 줍는다.

여기저기 확인하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다행히 액정이 나가진 않았네. 자.”

멍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돌려받았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아줌마한테 말했다.

“근데 여기는 남자 화장실인데요….”

스마트폰 때문에 잠시 환기되었던 주제가 다시 떠오르자 아줌마의 얼굴이 재차 붉어진다.

오늘따라 유독 붉은 입술이 천천히 벌어진다.

“도진이 네가 아줌마 때문에 또…, 선 것 같아서….”

“헉.”

잊고 있던 가랑이를 황급히 오므린다.

“보, 보셨어요?”

“응….”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줌마.

시발, 망했어.

그렇게 빠르게 몸을 돌렸는데 어떻게 그걸 볼 수가 있지?

이제는 젊다 못해 동체시력마저 젊은 건가.

근데 잠깐만.

내가 발기한 걸 다 봤으면서 남자 화장실에 따라 들어온 건 대체 무슨 경우지?

의아해하는 사이, 아줌마가 재차 입을 열었다.

“도, 도진이 너만 괜찮다면…, 아줌마가 도와줄까…?”

“얼마든지요!”

아.

나도 모르게 급발진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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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칭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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