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120)

그녀가 내 앞으로 걸어와 제 명함을 내밀었다.

“헌터 협회 감찰부 소속 윤지안입니다.”

명함에도 똑같이 그렇게 쓰여 있다.

헌터 협회 감찰부라.

여기 협회 내에서도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일 텐데.

“어제 발생한 사건에 대한 보상과 더불어 제안드릴 것이 있어 찾아뵙게 됐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나는 그녀를 지나쳐 문을 열었다.

“들어가서 얘기하는 게 낫겠죠?”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안으로 들어와 밥 먹을 때 사용하는 작은 식탁을 펼친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이 몸의 원주인이 밤새 게임을 할 때마다 한 캔씩 마시던 에너지 음료가 들어 있다.

“이거라도 드시죠.”

“잘 마시겠습니다.”

에너지 음료를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던데, 이 여자는 흔쾌히 마신다.

그녀가 목을 축이는 동안 잠시 기다렸다가, 이야기를 꺼냈다.

“일단 보상에 대해서 얘길 좀 해주세요.”

“아, 예.”

마시고 있던 캔을 식탁에 내려놓은 그녀가 정장 안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어 내게 내밀었다.

“저희가 놓친 오크로 인해 피해를 보신 데에 대한 보상금입니다.”

“오.”

봉투를 받아 곧장 열어보았다.

안에 든 것은 수표 한 장.

살짝 들어 올려 액수를 확인해 봤더니, 천만 원짜리다.

“죽을 위기에까지 놓이신 걸로 압니다. 사람 목숨에 대한 값으론 턱없는 금액이지만, 협회 규칙상 보상 한도가 정해져 있어서…, 부디 너른 양해 바랍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윤지안.

그녀의 말대로다.

그들의 실수로 인해 죽을 뻔한 사람에게 천만 원이란 돈은 목숨값치곤 약한 편이지.

그러나 구태여 따지지는 않기로 했다.

고개를 숙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다만, 하나 더 따지고 넘어갈 게 있다.

“이거 저만 받는 건 아니겠죠?”

“물론입니다. 함께 계셨던 서정희 씨에게도 보상이 지급될 예정입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린 바 있듯이 김도진 씨께는 제안할 것도 있어 직접 찾아뵙게 됐습니다.”

“아, 그랬었지. 그래서 제안이 뭔데요?”

궁금하다.

감찰부에서 직접 보상까지 전해줘 가면서 날 만나 하고 싶은 제안이 무엇인지.

그녀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김도진 씨, 마법을 배워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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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진 씨, 마법을 배워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

이때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게 웬 떡?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마법이라면 뭐, 학원이라도 등록시켜 주시려고요?”

“맞습니다.”

“……?”

마법의 난이도는 총 네 가지로 나뉘어 있다.

초급, 중급, 상급, 현자.

각각의 난이도마다 마법을 배울 수 있는 장소, 조건이 다르다.

초급 같은 경우엔 정부 기관의 인가를 받은 기초 마법 학원에서 수강할 수 있다.

각성자라면 누구나 등록 가능하지만, 한 달 수강료가 백 단위로 시작한다.

그러니까 지금 저 여자가 나를 그 학원에 등록을 시켜준다는 거지?

없는 살림에 그것마저도 감지덕지긴 한데…, 내가 생각한 건 그 정도가 아닌데.

“물론 학원에 등록 시켜드린다고 제가 이곳까지 온 것은 아닙니다.”

“그럼요?”

어휴.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진짜 학원 등록 시켜주려고 여기까지 왔나, 싶어서 순간 아찔했다.

그녀는 안주머니에서 또 다른 봉투 하나를 꺼내어 내게 보여주었다.

돈은 아닌 것 같은데, 뭐지.

“한국 대학교 특례 입학 요청서입니다.”

한국 대학교.

20년 전 여의도에서 벌어진 대전쟁 이후 설립된 헌터 양성 기관.

젊은 나이에 각성자가 된 친구들이 안간힘을 다해 입학하고 싶어 하는 곳이다.

왜냐고?

졸업만 하면 별다른 시험 없이 곧장 헌터 자격증이 발급되거든.

물론 그 졸업 난이도가 헌터 자격증 시험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라는 게 문제기는 하지만.

“한국 대학교 마법 학부는 이례적으로 2학기에도 특례 입학이 가능합니다.”

들어본 적 있다.

마법사 재목이 무척이나 적어 언제든지 그 수를 늘리기 위해서라고 했던가.

다른 학부에서도 별다른 말이 나오지 않고 만장일치로 결정됐던 걸로 기억한다.

자기들은 미칠 듯이 어려운 불지옥 난이도 시험을 치고 들어왔으니 아니꼽기야 하겠다만, 그들로서도 뒤에서 대미지 왕창 넣어줄 마법사가 하나라도 더 늘면 좋기야 하니까.

윤지안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그러니까…, 학원에서 기초를 배우고, 2학기부터 특례 입학해라, 뭐 그런 거네요?”

“예, 정확합니다.”

“흐음.”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는 연기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연기다.

마음은 이미 기울었다.

근데 덥석 물면 저들한테 빚을 지고 입학하는 것처럼 되니까, 서로가 윈윈하는 느낌으로 제안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내 고민이 길어지는 듯하자, 윤지안의 무표정한 얼굴에 약간의 조급함이 서렸다.

마침내 묵묵히 기다리고 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오크를 쓰러뜨릴 때 사용하신 마법은 독학으로 배우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죠.”

정확히는 미튜브 보고 배웠다.

이따금 어디에도 적을 두지 못한 떠돌이 마법사 또는 관종병이 심하게 걸린 놈들이 미튜브에 제 마법 시연 영상을 올리곤 한다.

내가 본 영상 제목이 뭐였더라.

아.

[다시는 땅법을 무시하지 마라.] 였던가.

나름대로 대지 속성 마법의 위대함을 알리려고 했던 것 같은데, 정작 시연하는 것들은 초급 중에서도 가장 기본에 속하는 마법들이라 댓글 반응이 조롱으로 가득했었지.

“독학으로 마법을 성공시키는 이들의 수는 매우 적다는 것, 아십니까?”

“그건 몰랐네요.”

어려운 것도 당연하다.

미튜브 같은 데에 시연 영상을 올리는 놈들의 목적은 하나 같이 똑같다.

자기 과시.

굳이 쉬운 말을 놔두고 어려운 말들로 영상의 사운드를 꽉 채우고, 마법을 발현한다.

그것으로 자기가 얼마나 멋지고, 대단한 마법사인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러니 쉬울 리가 있나.

그거 보고 마법을 성공시킨 애들은 이미 배운 애들이거나, 떡잎부터 다른 재목이거나.

나는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독학으로 배운 마법으로 오크를 죽이기까지 했다.

그들에게 있어 나란 존재는 그야말로 될성부른 떡잎인 셈.

“재능을 만개하기 위해선 시작 시점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저들이 특례 입학이라는 제법 먹음직스러운 미끼로 나를 흔들려는 거다.

저거 없어도 내년 입학시험까지 기다렸다가 마법 몇 개 선보이면 난 곧장 합격이다.

독학으로 마법 성공시킨 재능이면 가만히 놔둬도 스스로 잘 큰다는 것쯤, 그들도 잘 안다.

알면서도 이러는 이유는 딱 하나다.

내게 빚을 지우기 위해서.

장차 마법사가 될 재목에게 빚을 씌워두고 이를 이용하려는 셈이다.

네가 뉴비일 때 우리가 얼마나 챙겨줬냐, 너는 우리한테 그러면 안 된다, 뭐 그런 식으로.

어쩌면 나중에 가서 협회 소속 헌터가 되는 게 어떠냐며 꼬드길지도?

“어, 어떠십니까?”

뭐라고 신나게 떠들어대긴 했는데, 대부분 다 흘렸다.

들어봤자 뻔하지.

내게 왜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만 하는가에 대한 5,700자가 주요 골자였을 거다.

일단 고심하는 척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저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좀 과한 것 같아요. 뭔가 큰 빚을 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별로….”

완곡한 거절 의사를 내비친다.

그러자 윤지안의 얼굴이 조금 더 다급하게 변했다.

그녀가 무릎 위에 가만히 올려두고 있던 손까지 마구 흔들어가며 이를 부정했다.

“그, 그런 생각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저희는 그저 재능 있는 각성자 분들의 성장을 돕고자하기 위함일 뿐, 다른 생각은 일절 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내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말을 꺼내는 중에 실시간으로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져 간다.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에 상부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거다.

어떤 형태로든 그에게 빚을 지웠다는 느낌이 들도록 하라고.

그런데 본인 스스로 부채감 따위는 조금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오…, 정말 그게 전부에요?”

알면서도 한 번 더 물어본다.

입가에 잔뜩 미소를 그린 채로.

그녀는 시무룩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말은 그렇다는데, 행동은 아니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따로 놀고 있는 모습이 딱딱한 그녀의 인상에 귀여움을 더해준다.

“그럼 거절할 이유가 없겠네요.”

확인 사살까지 해가며 제안을 받아들이기 전에 부채감을 모두 털어내고 제안을 덥석 물었다.

사실 마법을 배워야겠단 생각은 꽤 전부터 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지닌 바 재능만으로 마력을 주물러 마법 비슷한 걸 만들어내는 능력.

마법(魔法)보다 마술(魔術)이라 부르기에 적합한 이 능력은 아직 완벽하지 않기에.

“자,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녀의 얼굴이 조금 밝아진다.

부채감을 씌우지는 못했다곤 하나, 그들의 도움으로 내가 기초 마법을 배우고 특례 입학을 하게 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니 이를 이용하려 할 테지.

턱도 없는 소리겠지만.

“근처 학원을 물색 중이니, 조만간 다시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럼 살펴 가십쇼.”

어딘가 후련하지 못한 표정의 그녀가 가볍게 목례를 건넨 뒤, 돌아서서 떠나간다.

이를 지켜보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접이식 식탁 위에 올려진 두 장의 흰 봉투.

“흐흐흐흐흐.”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없는 살림에 천만 원이 더해지고, 기초 마법을 공짜로 배우고, 한국 대학교에 특례 입학할 수 있게 됐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구나!”

앞서 말했다시피 지금 내 능력은 온전치 못하다.

내 능력은 마력이 허용하는 한, 모든 것이 내 의지대로 이루어진다.

하나하나가 전부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오리지널 마법인 셈.

이는 분명 듣기에는 좋은 울림이기는 하지만, 커다란 맹점이 숨어 있다.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내 오리지널이 기존의 마법보다 강하고, 효율적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이 확실치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내 능력은 그야말로 주사위 던지기에 가깝다.

어쩌다 마력 배분 완벽하고, 배열, 형태 등 완벽하면 6을 던지는 거고, 하나라도 흐트러져 효율이 완전히 엉망이 되면 1 나오는 거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지금부터 마력을 미친 듯이 사용해가며 각 상황에 따른 효율을 몸소 파악하는 것.

다른 하나는 그냥 마법을 베끼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무조건 후자지.”

당연하다.

한쪽은 빈 땅에 도면 그리기부터 시작해서 새집을 지어야 하는 거고, 다른 한쪽은 누군가 잘 지어진 집에 들어가 인테리어만 내 입맛대로 바꾸는 거니까.

마법이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능력 있는 마법사들이 개량을 거듭해온 효율의 결정체다.

이걸 베낄 수만 있다면 굳이 맨땅에 헤딩하는 짓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베낄 능력이 충분하다.

왜냐고?

내 눈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마력을 볼 수 있으니까.

눈앞에서 구현되는 마법이 어떠한 방식으로 마력을 움직이고, 사용하는지 나는 볼 수 있다.

이를 고스란히 베껴서 내가 구현하기 쉽게 약간의 변형만 가하기만 하면 끝.

“안 그래도 마법 학원에 어떻게 등록하나 했는데.”

문제점을 알면서도 고칠 생각을 않고 있었던 건 단순히 돈이 없어서 그랬다.

좀 잘 나가는 마법 학원은 한 달 수강료만 거의 100에서 200을 받는단다.

전재산이 300인 나로선 엄두도 나지 않는 가격.

“돈이 해결됐으니까.”

이제는 수십 년간 쌓인 그들의 노하우를 베껴 문제를 해결하고, 완전무결해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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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지, 한 개만 더.”

“끄응…!”

이…, 빨간 모자 조교 같은 년.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헤엑, 헤엑….”

오크에게 죽다 살아난 이후로 3주.

팔에 금이 갔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유정은 나를 굴렸다.

팔을 못 쓰는 거지, 다리를 못 움직이는 건 아니지 않냐며.

“자, 올라가.”

녀석의 재촉에 못 이겨 지친 몸을 이끌고 체중계 위로 올라섰다.

출렁이는 숫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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