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미안해. 괜찮니?”
그녀도 모르게 힘 조절을 하지 않고 그대로 때려버렸다.
돼지라는 말에 자신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드는 오크 생각이 났다.
당분간 반찬으로 돼지고기가 올라가는 일은 없을 듯했다.
“그래서 얘가 엄마를 어떻게 구했는데?”
사실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큰 스트레스였기에.
그럼에도 그녀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래서 엄청 벌벌 떨고 있었는데 도진이가 딱 나타나지 뭐니.”
“오…, 이 돼…, 아니, 이 자식이 그랬다고?”
이야기를 풀어갈수록 서정희의 입가엔 묘한 미소가 그려졌다.
막상 입에 담으며 위험천만한 순간들을 다시 복기해 보니, 꼭 공포만 남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크의 압도적인 공포 위로 위험천만한 순간에 자신을 발견하고, 마침내 오크를 죽이기까지 한 김도진의 모습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와…, 솔직히 엄마 입으로 들은 게 아니었으면 못 믿었을 것 같은데.”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은 신유정은 제법 많이 놀랐다.
‘저 돼지가 오크 숨통을 한 방에 끊었다고?’
마법을 사용했다는 것 자체는 그리 크게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마법사 재목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녀석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달리 하기로 마음먹은 거니까.
그보다 놀란 건 그가 주저 없이 녀석의 목에 송곳을 박아 넣었다는 것이었다.
‘헌터가 되겠다고 달려든 새끼들도 처음엔 토하고, 못하겠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데.’
몬스터 또한 생명체다.
그들이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들임을 알면서도 사람은 생명을 해치는 것을 주저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몬스터 중에는 인간과 비슷한 형태를 띠는 녀석들도 더러 존재하고, 그것들의 목숨을 끊는 일은 사람의 목숨을 끊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으니.
‘저 새끼…, 진짜 나중에 크게 되는 거 아니야?’
그런 기대가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어쩌면 녀석을 소위 ‘나작딜’로 만들겠다고 결심한 것은 자신의 인생 최대의 업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요즘 살이 빠져서 그런가…, 예전에는 마냥 혐오스러웠는데, 지금은 좀 아닌 것 같기도….’
예전에는 뒤룩뒤룩 살이 찐 탓에 눈은 쪽 찢어져서 영 보기 싫은 비주얼이었다면, 지금은 나름대로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아기 돼지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녀는 세차게 머리를 휘저었다.
아무리 제 엄마를 구해줬다곤 하지만, 이건 너무 나갔지 싶다.
“아무튼, 퇴원은 내일이야?”
“그래. 엄마 없다고 친구들 불러서 놀면 혼나, 아주!”
신유정은 뜨끔한 표정을 숨기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엄마는 내가 아직도 고딩인 줄 알아?”
“아니니까 더 걱정이야, 이것아.”
잔소리 폭격이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
신유정은 곧장 서정희로부터 두어 걸음 물러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나 갈게! 내일 집에서 봐!”
“그래, 밥은 오늘만 냉장고에 있는 반찬으로 챙겨 먹어.”
“어, 알았어.”
신유정이 황급히 병실을 나섰다.
다시금 찾아온 적막.
“하아.”
또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만 해도 괜찮아졌었는데.
우우웅
머리맡에 놓아둔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남편이다.
―여보, 유정이한테 얘기 들었어. 몬스터에게 습격당할 뻔했다며. 괜찮아?
남편의 걱정어린 음성에 일렁이던 가슴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으응, 괜찮아요. 다행히 별일 없었어요.”
―다행이네. 도진이가 구해줬다며. 이야,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그 돼지 녀석, 볼 때마다 저걸 얻다 써먹나 고민했는데 이런 날이 오다니.
그녀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
“여보. 예전부터 말했지만, 유정이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도진이한테 말이 너무 심해요.”
―하하, 미안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이후로는 여느 부부들이 하는 통화가 이어졌다.
슬슬 이야기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 서정희는 다시금 가슴이 불안해지는 걸 느꼈다.
”저기, 여보.“
―어, 왜?
”미안하지만…, 오늘 올라와 줄 수는 없어요?“
서정희의 남편 신병철은 각성자다.
5년 동안 각성자 전형 공무원 시험에 낙방하다가 겨우 붙은 공무원 각성자.
턱걸이 성적으로 겨우 붙은 그에게 주어지는 일거리는 대부분 서울이 아닌 지방에 있는 것들이었고,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떨어져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옛날에만 해도 주말, 공휴일마다 올라와 자신과 딸을 살피던 남편은 시간이 흐를수록 올라오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이제는 석 달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사이가 되었다.
―미안해, 여보. 말했다시피 여기서 내가 빠져버리면 일이 제대로 돌아가질 않아서….
항상 이런 식이었다.
자기가 없으면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다는 말.
”그래요….“
남편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으로서 대우받는다는 건 무척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는 알까.
자신에게도 지금 그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냥 보고 싶어서 그랬어요. 다음에 올라와서 봐요.“
―응, 그래. 아! 또 호출 전화 들어왔다. 미안해, 여보! 사랑해!
”네, 저도요.“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그녀는 김도진의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그를 내려다보았다.
절체절명의 상황 속,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자신과 함께라면 죽어도 괜찮겠다는 말이.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었을까, 아니면 진심이었을까.
그녀의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맺혔다.
‘그때, 제법 사내다웠지.’
그때 김도진이 풍겨내는 분위기는 무척이나 사내다웠다.
그와 동시에 자신을 낯부끄럽게 만들었던 순간이 생각났다.
반찬을 가져다주기 위해 올라갔던 옥탑방.
문을 몇 번인가 두드리니 끼기긱, 싫은 소리를 내며 열린 문.
살색으로 가득한 야한 동영상과 이를 정신없이 보고 있는 김도진.
굳이 일본어를 이해할 수 없어도, 내용을 얼추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적나라했다.
‘유부녀…, 였지.’
의상, 장소, 생김새까지.
모든 것이 유부녀 스타일이었다.
그런 유부녀가 다른 남자를 집에 들여 뒤엉키며 쾌락에 허우적대는 모습.
‘설마 도진이가 나를…?’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막 스무 살, 한창인 남자가 40대 중반인 자신을 그런 식으로 볼 리는 없다고.
그런데 자꾸만 어제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섹시한 포즈를 취해달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와 더불어 덧붙여진 말이.
다른 사람은 안 돼도, 자신은 가능하다고 말했던 그때.
‘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자신은 대체 어떻게 해야만 할까.
”으음….“
미동조차 없던 그가 서서히 깨어나는 듯했다.
상념에서 깨어난 그녀가 상체를 숙이며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이 힘겹게 올라간다.
흐릿한 시선이 좌우로 움직이다 이내 한 곳에 멈춰 섰다.
”아줌마…?“
”그래, 도진아. 아줌마야.“
* * *
벌써 두 번째다.
눈을 뜨고 보니 병원인 상황이.
아줌마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뒤늦게 우리를 찾은 헌터들이 뒤처리를 해주었다고.
그 새끼들은 남이 처리한 일 뒤처리하는 게 주요 업무인가.
”왼쪽 팔에 금이 갔다고 하니까, 당분간은 쓰지 않는 게 좋을 거래.“
”아….“
어쩐지 왼쪽 팔이 갑갑하다 싶더라니.
팔을 바라보니 붕대가 칭칭 감겨 있다.
움직이기 어려운 걸로 봐선 그 안에 깁스까지 대놓은 듯했다.
”고마워, 도진아. 네 덕분에 아줌마가 살았어.“
”에이, 뭘요. 저도 아줌마 없었으면 그놈 못 죽였을 거예요.“
서로 상부상조한 셈이다.
난 정면에서 놈을 이길 힘이 없었으니까.
아줌마가 시선을 홀라당 빼앗아 놓지 않았다면 절대 이기지 못했을 거다.
”그나저나, 아줌마는 괜찮아요?“
”응? 나 말이니?“
여기저기 긁힌 상처는 보이지만, 딱히 크게 다친 부분은 없어 보인다.
물론 내가 묻는 건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를 말하는 게 아니다.
”몬스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시잖아요. 더군다나 쫓기기까지 해서 많이 무서우셨을 것 같은데.“
내 말을 들은 아줌마의 눈이 조금 커다래졌다.
뭐지, 저 표정은.
의아해하는 사이, 아줌마의 표정이 한 번 더 바뀌었다.
입은 기뻐하는 것처럼 웃고 있는데, 눈에는 눈물이 차오르고 있다.
당황스럽다.
”아, 아줌마?“
아줌마도 놀란 표정으로 제 눈에 차오른 눈물을 닦아냈다.
”몰랐네. 도진이가 이렇게 섬세한 남자일 줄은.“
”하, 하하.“
겸연쩍게 웃어 보인다.
헌터의 실수로 인해 놓친 몬스터를 마주한 일반인들은 대부분 트라우마를 떠안게 된다.
심한 사람은 어딜 갈 때마다 몬스터가 또 나타나면 어떡하나 하고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방에 틀어박히기도 한다.
나는 그걸 우려했다.
”도진아.“
아줌마가 내 이름을 불렀다.
촉촉하게 젖은 눈가가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아줌마, 한 번만 안아줄 수 있을까?“
수줍어하는 얼굴로 손을 뻗는 아줌마.
나는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다리를 침대 밑으로 내리고 앉아 맞은편에 있는 아줌마를 가볍게 안아주었다.
”괜찮아요, 아줌마. 살다 보면 정말 재수 없는 일도 생기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에요.“
어떨 때는 헌터의 실수로, 또 어떨 때는 몬스터의 영리함으로 인해 사고는 벌어진다.
”근데 이런 날,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예요. 아줌마는 오늘 겪었으니까, 이제 다시는 겪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팩트를 기반으로 한 위로였다.
실제로 몬스터를 마주한 사람들이 대부분 또 마주치면 어떡하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지만, 우려대로 두 번이나 마주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가만히 안겨 있던 아줌마의 팔이 별안간 내 몸을 끌어안았다.
”아, 아줌마.“
배와 배 사이에 두고 있던 넓직한 공간이 단숨에 좁혀진다.
맞닿지 않으려 애쓴 몸이 결국 맞닿았다.
느껴진다.
얇은 환자복 위로 닿은 아줌마의 풍만한 가슴의 감촉이.
내 어깨에 파묻은 목덜미로부터 전해지는 진한 체향이.
나를 더없이 자극한다.
”아.“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힘없이 늘어져 있던 자지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아, 또 섰다.
”아, 아줌마. 잠시만….“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했는데, 아줌마가 나를 너무 꽉 끌어안고 있다.
이윽고 온전하게 솟은 자지 위로 무언가가 살포시 닿고 있다.
아줌마의 아랫배 부근이었다.
”도진아…?“
이를 느낀 아줌마가 의아한 표정으로 내 몸을 꽉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어낸다.
”아니, 그게.“
이윽고 내 아랫도리 쪽을 내려다본 아줌마의 동공이 휘둥그레진다.
이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시선을 내 얼굴 쪽으로 올리는 아줌마.
아무래도 화가 난 것 같은데…, 어떡하지.
”도진아, 솔직하게 말해줄래.“
”…네.“
”그거…, 아줌마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니?“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다른 여자를 생각하면서 자지를 세웠으면 그건 그것대로 미친 거 아닐까.
”그…, 음, 네.“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아줌마.
눈치 없는 자지 때문에 또 분위기를 망쳤다는 생각에 자책하고 있을 때.
아줌마의 표정이 달라졌다.
무언가 커다란 결심이라도 한 듯, 결연한 시선.
그와 동시에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여 있던 아줌마의 손 하나가 내 쪽을 향해 뻗어졌다.
”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