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감정 속에서 떠오르는 신유정.
금발로 염색한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운동에 몰두하는 모습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온화한 제 엄마를 닮은 듯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 또한 확고하다.
수시로 변하고 있는 신유정에 대한 감정.
그 와중에 절대로 변치 않는 것이 있다.
“예뻐.”
욕망이 꿈틀거리는 대로 말하자면.
“섹스하고 싶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따먹고 싶다.
욕망에 사로잡힌 머리가 자연스럽게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그녀와 섹스할 수 있을까?
신유정의 안에서 나라는 인간의 존재감이 부풀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인식이 급변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잘만 이용한다면.
오히려 역으로 내가 신유정을 공략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가능할지도…?”
신유정과 나의 관계는 위, 아래가 분명하게 나뉜 수직적인 관계.
뻔하다.
녀석은 나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지배적인 위치에 있기를 바라고 있을 거다.
그걸 적절히 이용하여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름을 이끌 수만 있다면.
아주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까.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동시에 지친 내 몸과 함께 축 늘어져 있던 자지도 부풀어 껄떡대기 시작한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신유정과 함께하는 날들이 기대된다.
* * *
“씨발, 졸라 아프네.”
수업을 끝마친 신유정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제 몸에 파스를 뿌려댔다.
실전 수업이 있는 날은 항상 이 모양이다.
그녀의 희망 직업군은 탱커.
수업 시간 내내 온갖 공격들을 몸으로 막아내야만 했다.
“병신 같은 새끼들 때문에 나만 고생이네.”
세상에 딜러는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 진짜 딜러는 극히 드물다.
든든하게 앞을 막아주는 탱커의 뒤에서 확실하게 칼을 갈아 적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꽂아 넣을 수 있는 딜러가 극히 적다는 얘기다.
“헌터가 되겠단 새끼들이 몬스터를 겁내면 어쩌자는 거야.”
특히 그러한 현상은 헌터를 지망생들이 모인 대학교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저 헌터가 되면 거머쥘 수 있는 돈과 명예만 보고 별다른 각오 없이 입학한 놈들.
그들이 그녀를 매번 아프게 했다.
선배들이 말하기를, 1학년 때 가장 고생하는 직업군이 탱커라고 했다.
이제 막 입학한 신입생들은 딜러로써의 역량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몬스터 한 마리 잡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는 이유였다.
그녀는 그 말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중이었다.
몬스터가 쌩쌩하게 살아있는 만큼, 자신이 막아내야 할 공격이 더욱 많아졌다.
그걸 다 막아내고 나면 이렇게 몸이 아프고.
“2학년이 되면 나아지려나.”
1학년들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내면 고학년 선배들의 조에 속해 실전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문제는 그녀가 그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란 점이었다.
그러니 별 수 있나.
지금 조를 구성하고 있는 등신 같은 딜러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1인분이라도 가능한 딜러로 성장할 때까지 감내하는 수밖에.
“아.”
여기저기 몸이 결리는 탓에 씻고 옷 갈아입는 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그녀는 황급히 학교를 나섰다.
‘이 새끼 안 나온 건 아니겠지?’
낡아빠진 건물 계단을 빠르게 오른다.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선 그녀는 관장의 인사도 무시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없다.
“이 새끼, 내가 그렇게까지 해줬는데…!”
눈이 훼까닥 돌아간 그녀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자신을 엿 먹인 김도진에게 곧장 전화를 걸어 헬스장으로 불러낼 요령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씨발, 번호가 없네.”
어제 받아놨어야 하는 건데.
하지만 알아낼 방법이 없지는 않다.
“엄마는 알고 있겠지.”
김도진을 거의 반쯤 자식처럼 챙겨주고 있는 자신의 엄마라면 알고 있으리라.
“뒤졌어, 김도진.”
신경질적으로 번호를 터치하고 있을 때.
“내가 뭐 잘못했어…?”
뒤에서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휙 돌리자,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김도진이 서 있었다.
“너 어디 있었어.”
“옷 갈아입고 왔는데…?”
“아.”
그래서 안 보였구나.
약간의 쪽팔림이 몰려온다.
“…몸 풀고 있어. 나 옷 갈아입고 나오면 바로 시작할 거니까.”
“알았어.”
몸을 뒤뚱거리며 스트레칭을 시작하는 김도진을 일별한 뒤, 그녀는 탈의실로 들어왔다.
라커룸에 가방을 던지듯 집어넣고, 입고 있던 옷을 벗고 탱크탑과 레깅스로 갈아입는다.
“새끼, 안 나올 줄 알았더니 나왔네.”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그가 없을 거라 확신했다.
지난 3년간 봐온 김도진은 지독히도 게으른 방구석 폐인이었으니.
“어이가 없네.”
그렇기에 더욱 세상이 알쏭달쏭했다.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있던 놈이 각성을 하질 않나, 심지어 마법사에 특화된 특성까지 부여받다니.
그가 자신의 앞에서 마법을 사용하던 그 순간, 그녀는 결심했다.
“초장에 휘어잡아야 해.”
적당히 어르고 달래면서 관계를 개선한 뒤, 적절한 조임으로 목줄을 걸어두겠다고.
자그마치 마법사다.
데미지 딜링뿐만 아니라 다방면으로 활약이 가능한 다재다능한 직업군.
힐러와 더불어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쌍두마차!
그것이 자신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
‘돼지 새끼 다루는 것쯤이야.’
헌터 커뮤니티에서 보았던 수많은 글 중 인상 깊었던 글이 하나 있다.
‘나만의 작은 딜러 만드는 법.’
방구석 망생이의 음습함이 잔뜩 깃들어 있는 글.
그것은 장래가 유망한 딜러를 자신이 가장 먼저 알아보았을 때부터 시작된다.
자존감이 낮고, 소심하지만 뛰어난 특성을 보유한 딜러 유망주.
그런 그에게 다가가 적당히 친절을 베풀어주며 친구라고 여기게 만든다.
그렇게 서서히 자신을 의존하게 만드는 거다.
시간이 흐를수록 딜러로서 성장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자신이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로 만들어 끝없이 의존하게 만들면.
글에서 말하는 나만의 작은 딜러, 이른바 ‘나작딜’의 완성이다.
“좋아.”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는 탈의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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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 제, 제법 잘했다?”
“헤엑, 헤엑….”
오늘도 한껏 조져졌다.
자기 시간을 갈아가며 세세하게 운동을 가르쳐주는 신유정을 보며 나는 확신했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음을.
지금도 봐라.
어울리지 않게 제법 잘했다는 말을 던지는 걸 보면 답이 나온다.
“억지로 칭찬하긴.”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뭐 기뻐하기라도 할 줄 알았나.
“흠흠, 나쁘진 않을지도.”
사실을 부정하진 않겠다.
그래도 또 예쁜 여자애가 칭찬해주니까 기분이 슬쩍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적당히 땀을 씻어내고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여자 탈의실 쪽에서 신유정이 머리칼도 제대로 말리지 않고 나왔다.
“머리 안 말려도 돼?”
“집에 가서 말리면 돼.”
음.
저 단발머리 정도면 가능할지도.
내가 신유정에게 가치를 인정받는 건 마법사가 될 재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한 번씩 녀석에게 내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있다.
나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말이다.
“잠깐만.”
마법사는 같은 헌터들에게만 사랑받는 직업은 아니다.
마법에는 공격 마법 외에도 실생활에 이로운 마법들도 더러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건조(Dry) 마법이다.
젖은 옷이나 머리카락처럼 물기를 머금은 것들로부터 수분을 빨아들이는 마법.
마법 자체도 어렵지 않지만, 나에게는 더욱 쉬웠다.
그녀 머리카락 주변으로 가득 찬 수분을 전부 끌어당기면 그만이니까.
“야, 너….”
어디까지나 이것은 그녀에게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
머리카락에 달라붙어 있던 마력들을 끌어당겨 그녀의 눈앞에서 한데 뭉치도록 조종했다.
그렇게 생겨난 제법 커다란 물방울.
“어제 건조 마법 배웠는데, 마침 쓸모가 있네.”
적절하게 구라를 한 번 쳐준 뒤, 신유정 눈앞에 있던 물방울을 카운터 옆에 놓인 정수기 물받이에 흘려보낸다.
“이제 가자.”
그렇게 말하며 약간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신유정을 일별하고, 깔끔하게 뒤로 돌아선다.
좋아, 존나 멋있어.
…사실 멋있진 않았겠지.
이 몸뚱어리로 술수 부려봤자지.
그래도 상관은 없다.
그녀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적어도 내 가치에 대한 입증은 또 한 번 확실하게 성공시켰다.
잠시 걸음을 멈춰 그녀를 돌아보았다.
“안 가…?”
“어? 어, 가야지.”
멍한 표정을 지워내고 희미하게 웃으며 따라오는 신유정.
아마 내가 마법으로 제 머리를 말려준 걸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을 거다.
당근과 채찍 작전이 잘 먹히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마지막에 목줄을 차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지, 한번 두고 보자고.
* * *
사람은 깨어 있는 내내 몸을 단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려면 할 수야 있을지 모르지만, 들이는 시간 대비 효율이 매우 떨어진다.
“근데 뭘 하고 쉬지.”
손시우일 때에는 어떻게 쉬었나 생각해 보니 대부분의 시간을 술로 보냈다.
거실에서 혼자 술을 마시거나, 회원제로 운영되는 프라이빗 바에서 한 잔 하거나.
구미가 조금 당기기는 했지만, 참았다.
“이 몸뚱어리로 술 마시면 그건 죄야, 죄.”
술 마시고, 안주 집어먹다 보면 그동안 공들여서 뺀 살 금방 되돌아간다.
그러니 다이어트에 성공하기 전까지 술은 금지다.
“그러면….”
좁은 방을 둘러본다.
책과는 담을 쌓았는지 보이는 거라곤 중, 고등학교 졸업 앨범밖에 없다.
그 다음은 TV와 컴퓨터.
한 가지 할 게 떠올랐다.
제법 비싸게 주고 산 의자에 앉아 발가락으로 컴퓨터 전원을 켰다.
“컴퓨터 하나는 제대로네.”
이 몸이 가진 몇 안 되는 재산 중 가장 비싼 게 이 컴퓨터다.
김도진이 지금껏 살면서 유일하게 돈을 모았던 순간이 있는데, 바로 이 컴퓨터를 사기 위해서였다.
그 이후론 더 사고 싶은 게 없었는지, 오로지 먹는 데에 다 쓰더라.
“어디 보자….”
기억을 더듬어가며 폴더를 하나씩 누른다.
D 드라이브…, 비밀 폴더…, 직박구리…, 안에 있는 김도진의 화려한 컬렉션.
세 개의 폴더가 있다.
하나는 야동, 하나는 19금 동인지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19금 애니메이션.
책상 위에 놓인 두루마리 휴지를 손에 쥐었다.
“후우…, 웬만해선 참으려고 했는데.”
스무 살의 몸으로 처음 자지를 주물럭거릴 때는 여자와 섹스할 때다, 라고 정했는데.
이 몸뚱어리로 여자와 섹스를 바라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
그 와중에 스무 살이라고 성욕은 하루가 멀다고 쭉쭉 차오르고 있다.
이제는 새벽에 앞서 걸어가는 아줌마의 레깅스 뒤태만 봐도 발기가 될 지경.
“안 빼면 큰 사고 난다.”
이대로 가다간 시도때도 없이 자지가 벌떡 솟아오를 것만 같다.
그랬다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지도.
그러니 아쉽지만 한 발 정도는 자위를 해서라도 빼두는 게 여러모로 좋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켰다.
“뭐가 들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