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120)

아, 지랄 진짜.

* * *

“헤엑, 헥…!”

나름대로 제법 폐활량이 붙은 폐가 아우성을 쳐댄다.

숨 좀 더 줘!

미안하다, 이게 한계다….

“저, 저기. 나 진짜 죽을… 허억, 것, 같은데….”

“응~ 아니야, 사람 그렇게 쉽게 안 죽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아, 한 개 더!”

“아, 아까 전부터…, 쿨럭! 한 개만 더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한 개만 더.”

신유정과의 운동은 나쁘지 않았다.

생각보다 애가 잘 가르친다.

내가 조금 힘든 소리를 내도 아직 할 수 있다면서 내 한계를 쥐어 짜낸다.

“우웩! 쿨럭쿨럭!”

헛구역질이 막 난다.

뭐 많이 먹고 왔으면 그 자리에서 토했을지도 모르겠다.

“오, 돼지.”

큰 대 자로 뻗은 나를 내려다보는 신유정의 눈빛에는 약간의 대견함 같은 게 깃들어 있다.

“제법 의지 있다, 너?”

아무래도 자기가 이끄는 대로 따라온 게 썩 대견한 모양.

사실 반쯤은 강제적으로 따라간 것도 있다.

이 겁 많은 몸뚱어리는 신유정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목소리 톤을 낮출 때마다 위기감을 느끼고선 없는 힘도 쥐어 막 쥐어 짜내더라.

“야, 이거 마셔.”

쓰러져 있는 나한테 플라스틱 통을 건네는 신유정.

허여멀건 것을 보니, 단백질 쉐이크 같은데.

“잘 마실게….”

“오냐.”

음, 바나나 맛이다.

배고픈 몸뚱어리가 깔끔하게 한 통을 비워낸다.

“맛있냐?”

“어? 응.”

내밀어진 손에 플라스틱 통을 다시 돌려주었다.

“야, 일어나봐.”

신유정이 뻗어 있는 내 몸을 반쯤 강제로 일으킨다.

땀에 젖은 내 옷을 붙잡고 이끌어진 곳은 헬스장 한쪽 구석에 있는 체중계 앞.

“올라서.”

조심스럽게 올라서자 쳬중계 바늘이 내 뱃살마냥 사정없이 출렁거린다.

아래에 있는 전자 패널에 몸무게가 떠오른다.

112KG.

분명 헬스장에 올 때만 해도 113KG이었는데, 빡세게 운동했더니 1KG이나 빠졌다.

“와…, 진짜 돼지네, 너.”

옆에서 몸무게를 확인한 신유정의 촌철살인이 가슴에 날아와 꽂힌다.

쩝, 할 말이 없다.

이 키에 이 몸무게는 누가 봐도 돼지라고 할 만한 수준이거든.

“지금 몸무게 기억했다. 내일 체중계 쟀을 때 이거보다 높으면 뒤지는 거야. 알았어?”

“…내일?”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보자, 녀석이 눈을 부라린다.

“왜, 오늘 하루만 나오고 안 나오려고 했냐?”

“그건 아닌데….”

운동이야 매일 나올 생각이긴 한데.

“내일도 가르쳐주게…?”

넌지시 묻자.

“싫냐?”

“아니, 나야 좋지만….”

이건 진심이다.

이 녀석, 운동을 잘 가르친다.

혼자 할 때는 아무래도 힘들면 이제 그만 쉬어야지, 하고 의지가 꺾이기 마련인데 옆에서 강하게 잡아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럴 일이 없어지더라.

“너 안 바빠?”

한국대학교 헌터 캠퍼스.

대한민국 유일의 헌터 육성 기관.

신유정 또한 그곳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다.

내가 알기로 거기 커리큘럼이 제법 빡센 걸로 알고 있는데, 얘는 안 바쁜가.

“내일은 안 바빠.”

“아, 그렇구나.”

그렇다는데 별 수 있나.

나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그만이지.

짜악!

“억!”

체중계 아래로 슬쩍 내려오자 녀석이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내 등을 후려친다.

“15분 준다. 빨리 씻고 나와라. 집 가게.”

아, 얘 나랑 가는 방향이 같지.

나름대로 후하게 주네.

지친 몸을 이끌고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벗고 샤워실로 들어섰다.

“어흐으, 좋-다.”

지어진 지 꽤 오래 된 듯, 시설 자체는 낡았는데 그로 인한 장점도 있다.

사람이 없다는 것.

“여기 안 망하나?”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바로는 이 주변에 헬스장만 네 개다.

여기를 제외한 세 곳은 전부 지어진 지 오래되지 않아 시설도 전부 최신식이고.

여긴 사실상 경쟁력을 잃은 상황.

12개월 다 채우기도 전에 망하면 돈은 돌려주겠지?

“후우.”

따뜻한 물로 몸을 씻으니 몸에 쌓인 피로가 조금이나마 가시는 것 같다.

부작용으로 한껏 노곤해진 몸으로 원래 옷으로 갈아입고 탈의실을 나서 출구 쪽으로 향한다.

“이제 나오냐.”

카운터 앞에 비딱하게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신유정.

뭐야, 이거.

“벌써 다 씻었어…?”

보통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씻는 데에 오래 걸리지 않나.

그래서 15분 꽉꽉 채워서 씻고 나온 건데, 얘는 도대체 얼마만에 씻은 거야.

“대충 땀 씻어내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녀석이 휙 돌아선다.

“가자.”

“어….”

쫄쫄 뒤따라가려는데, 카운터에 앉아 있는 아재 아니, 관장이 경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왜 저러나 싶어 물어보려 했지만.

“빨리 안 따라오냐!”

“…지금 가!”

앞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어서 그냥 참았다.

아주 제멋대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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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색 그 자체였다.

저쪽에서 내게 말을 걸어오는 일도 없었고, 내쪽에서 말을 거는 일은 당연히 없었다.

완벽한 무음, 적막!

거기다 거리까지 제법 떨어진 채로 걷고 있어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사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었을 거다.

“스읍.”

사실 뭐 그리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어색함이고 나발이고.

집에 가까워질수록 격렬한 운동으로 인한 반동이 찾아오기 시작했기 때문.

“야, 왜 이렇게 느려.”

앞뒤 거리가 상당하게 벌어지자, 참다못한 신유정이 뒤로 돌아서더니 엉거주춤한 자세로 걷고 있는 나를 바라본다.

“근육통이….”

그러자 녀석이 한숨을 푹 내쉰다.

“너 진짜 어지간히 운동 안 했나 보다.”

“그러게….”

그 말은 인정한다.

일반인에서 각성자가 되는 순간, 신체의 내구도가 상승한다.

말인즉, 똑같은 수준의 운동을 해도 각성자의 신체는 부담이 덜하다는 거다.

조금 전 신유정이 나를 무지막지하게 굴렸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는데, 이 몸뚱어리는 생각 이상으로 나약한 편이라 근육통이 심하게 오고 있다.

“근육통 왔다고 내일 빠지면…, 알지?”

섬뜩한 음성과 함께 엄지로 목을 휙 긋는 제스처를 보이는 신유정.

“당연히 가야지….”

아니, 원래 갈 거였는데 괜히 협박당해서 가는 느낌이잖아.

기분이 묘하네, 이거.

녀석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집에 도착했다.

“후우….”

지친 체력으로 계단을 올라가려니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러자 앞서 걸어가던 신유정이 혀를 찬다.

“잘 가.”

집으로 들어가려는 신유정에게 인사를 건네고 남은 한 층을 더 올라서려는데.

“야, 잠깐 있어봐.”

“……?”

신유정이 날 붙잡아 문앞에 두더니 안으로 쏙 들어간다.

그러기를 잠시.

문을 열고 나온 녀석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 있다.

“이거 써라.”

거칠게 내밀어지는 손 위에 있는 것은 찜질팩이었다.

머릿속에 혼란이 찾아왔다.

지금 내 앞에서 보이는 행동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행동에서 오는 극명한 괴리감.

어쩌면 이게 요즘 애들의 새로운 괴롭힘 방식인 건 아닐까 싶을 정도.

“뭐해, 안 받아?”

“아, 잘 쓸게….”

얼떨결에 찜질팩을 받았다.

홀가분해진 녀석의 손이 주먹을 쥔다.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내일 안 나온다? 그땐 그냥 뒤졌다고 복창해.”

“그, 그래.”

“가라.”

쿵!

문이 닫혔다.

얼떨떨한 기분을 그대로 간직한 채 방으로 돌아왔다.

“뒤지겠네, 진짜.”

뱀 앞에서 얼어붙은 개구리 같았던 몸뚱어리에 긴장감이 풀리자 재차 통증이 전해진다.

손에 쥐어져 있던 찜질팩에 시선이 간다.

“도통 모르겠네.”

신유정.

고등학교 때 이몸을 지독히도 괴롭혔던 일진의 무리 중 하나.

그녀가 주도해서 괴롭히는 쪽은 아니었다.

뭐랄까, 애들이 건드리면 옆에서 낄낄대면서 한 몫 거드는 타입이라고 해야 하나.

어느 쪽이든 트라우마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분명히 날 싫어했는데….”

청소기를 빌리러 내려갔다가 만났을 때만 해도 지금보다 사납고 거칠었는데.

왜 갑자기 저렇게 바뀌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

그때다.

내가 마법 관련 특성을 얻었고, 이를 증명했던 순간.

“아하, 그거구나?”

마법사.

녀석은 아마도 거기에 꽂힌 거다.

야구계에서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와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수요가 높고 귀중한 자원이라는 의미다.

헌터계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최근 젊은 헌터들 중심으로 붐이 일고 있는 커뮤니티에서 유래된 말이었는데, 뭐였더라.

“마법사라면 일단 친추부터 박고 봐라, 였던가?”

친구 추가의 줄임말, 친추.

실제로 뭐 친구를 추가하라는 게 아니라 마법사를 만나면 일단 친해지고 보라는 뜻이다.

앞서 얘기한 바 있듯, 마법사는 힐러와 마찬가지로 수요는 매우 높고, 공급은 극히 적은 불균형적인 직업군이니까.

신유정의 묘한 행동들이 하나둘씩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일단 침 발라두겠다, 이건가.”

아직 아무도 모르는 마법사 인재를 자신만이 알게 된 셈 아닌가.

그녀에게 지금의 난 떡상할 확률이 거의 100%에 가까운데 심지어 자신만이 알고 있는 주식쯤 되지 않을까.

그 정도면 지금까지 취하던 스탠스를 바꾸고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만도 하지.

운동 몇 번 가르쳐주고, 친근하게 대하는 정도로 미래의 마법사와 깊은 친분을 쌓는다?

나라도 그렇게 하겠다.

“가능만 하다면 말이지.”

기분이 묘하네.

녀석에게 직접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건 내가 아니지만, 약간의 앙금이 느껴지기도 하고.

급변하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귀엽기도, 가소롭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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