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마력이 거의 바닥이 날 즈음, 시술이 끝났다.
지금이야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지만, 이 민감한 몸은 느끼고 있다.
폐 안에 마력이 제대로 자리 잡고 있음을.
그와 동시에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력 수치가 5 하락합니다.]
기껏 6까지 올려두었던 마력 수치가 다시 1로 떨어졌다.
다른 신체 부위에 마력이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코어에 자리 잡은 채 부풀려진 근원 자체를 떼어다가 이용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얼기설기 엮어도 며칠 있으면 마력이 빠져나와 버리고 만다.
고작 폐 하나의 성장력을 보정하는 데에 5의 마력 수치가 들어갔다.
내 딸은 전신에 이러한 성장력 보정이 이루어졌다.
그때 잃은 마력을 잃지 않았으면 아마 세계 헌터 랭킹이 몇 단계는 더 상승했을 거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다 커선 영 못난 딸이 됐지만.”
그렇게 자기를 애지중지 키운 것도 모르고 이제는 저 잘났다고 아빠랑 밥도 같이 안 먹는 딸이 되었지만.
그렇기에 후련하다.
내 딸이 더없이 사랑스럽고, 예쁘던 시절.
아비로서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었다고 생각하기에.
내 손에서 떠나간 지 오래인 딸이다.
이제는 알아서 잘 크겠지.
그녀의 앞날에 좋은 일만이 가득하기를, 먼 곳에서 바랄 따름이다.
* * *
다이어트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폐의 성장력을 끌어올린 이후, 날을 거듭할수록 숨이 차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나날이 늘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이번에도 쌓인 마력 수치 5를 이용해 심장의 성장력을 끌어올렸다.
심장의 순환과 폐의 호흡, 이를 더해 심폐지구력이라고 부르지 않나.
두 부위의 성장이 더해진 결과, 아줌마와 새벽마다 걷는 정도로는 운동량이 부족하단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다.
“여기 맞나?”
그래서 인터넷으로 찾았다.
인근 지역에서 가장 회원비가 싼 헬스장을.
오전에는 아줌마와의 걷기 운동, 오후에는 헬스.
이제부터 하루에 두 번씩 운동을 할 예정이다.
스마트폰 길찾기 기능을 따라 찾아간 곳엔 낡고 허름한 건물이 서 있었다.
“쌀만 하네….”
겉으로만 봐도 여기가 왜 싼지 알 것 같다.
헬스장이 위치한 3층으로 올라가자,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텅 빈 헬스장이 보인다.
조금 낡아 보이는 운동 기구들.
“으음, 저 정도면 상관없나.”
지금이야 저 정도로도 충분했다.
걷고, 달리고, 뭐라도 들 수 있으면 그만인 수준이니.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바로 앞에 있는 카운터에는 40대쯤 되어 보이는, 육체미 넘치는 아재와 눈을 마주쳤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아재가 말을 툭 내뱉는다.
“등록하시게?”
“예.”
“목적은?”
거 이상한 사람이네.
헬스장에 온 목적이 운동이 아니고 뭐가 있다고 그딴 걸 묻는지.
“운동이죠.”
“흐음. 노파심에 말하지만, 까인다고 해서 환불 같은 거 안 해줍니다.”
“예? 뭘 까여요.”
운동하다가 까인다는 단어에 걸맞는 일을 당하는 순간이 있나.
도통 모르겠다 싶어 물어봤더니, 대답도 않고 자기 할 말만 계속한다.
“한 달에 5만 원, 석 달은 9만 원, 12개월은…, 30만 원.”
가격을 들으니 저 아재의 이상함도 다 이해가 되는 느낌.
“12개월로 끊을게요.”
“오.”
살짝 놀란 듯한 아재.
제대로 호구 잡았다는 표정인데, 저거.
카드를 내밀기가 무섭게 뺏어가듯 가져가 결제를 완료시킨다.
“자아, 결제되셨고.”
카드를 돌려주며 손을 내미는 아재.
“딱 봐도 알겠지만, 내가 여기 관장이오. 운동하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뭐든 물어보시고.”
“아, 예.”
결제가 끝나고 나니 나름 친절해진 아재 아니, 관장.
“오늘부터 하고 갈 생각이신가?”
“예, 그러려고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오늘부터 운동하려고 여벌의 옷과 헬스장에서 신을 운동화도 따로 챙겨왔다.
“준비 단단히 하셨구만. 저쪽이 남자 탈의실이니까, 갈아입으시고.”
“예.”
대화를 마친 뒤, 곧장 탈의실로 가 준비해온 옷을 갈아입는다.
별 거 없다.
검정색 반팔티에, 반바지.
그리고 인터넷으로 급하게 산 러닝화를 신었다.
가볍게 몸을 풀어내며 탈의실을 나서는데, 웬 여자가 벤치프레스를 하고 있다.
“와….”
바 옆에 끼워진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저 정도면 최소 각성자겠는데.
“나는 언제쯤 저리 들어지려나.”
이 몸뚱어리가 저렇게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훗날을 기약하며 러닝머신으로 향한다.
“일단 천천히 걷자.”
예열을 위해 저속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투명한 유리막 너머로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열심히 내딛고 있을 때.
“맞네.”
갑자기 웬 얼굴 하나가 내 앞에 불쑥 들이밀어졌다.
“억!”
놀란 몸뚱어리가 제멋대로 탭댄스를 추다가 뒤로 밀려나 바닥에 고꾸라졌다.
쿵!
육중한 몸이 떨어지니 그 소리 또한 남다르네.
“아오….”
발목이며 엉덩이가 아파서 힘껏 문질러대고 있을 때, 조금 전 들이밀어진 얼굴이 또 불쑥 나타난다.
“네가 여긴 웬일이냐?”
낯익은 목소리.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했다.
목소리보다 더 낯익은 금색 단발과 날카로운 인상의 이목구비.
이 몸뚱어리의 천적, 신유정이 이쪽을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
그 모습을 눈에 담기가 무섭게 몸에서 격한 반응이 올라온다.
“…히끅!”
아, 제발.
겁에 질린 내 얼굴을 보는 그녀의 낯에 깔린 미소가 더욱 짙어진 건 단순히 내 착각이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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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을 본 개구리.
지금 내 모습이 딱 그거다.
“이야, 진짜 세상 일 모른다더니.”
즐거워서 참을 수가 없다는 눈빛이 이쪽을 향한다.
“여기서 널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는데.”
저 소악마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 신유정은 한국 대학교 헌터 캠퍼스에 입학했을 텐데, 왜 그 좋은 시설들 놔두고 이런 허름한 곳에서 혼자 운동을 하고 있는 건지.
심심하던 차에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눈빛이 내 몸을 옥죄어 온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에게 당했던 그때의 기억들이 밧줄이 되어 전신을 얽맨다.
“설마 운동하러 온 거냐, 너?”
“으, 응.”
가까스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하자, 그녀의 눈동자가 위아래로 움직여 내 몸을 훑는다.
더욱 짙어지는 미소.
“그러고 보니, 너 각성자 됐다며.”
“응….”
아줌마에게 들었나 보다.
“짜식, 인생 폈네?”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신유정이 쪼그리고 앉아 나와 눈높이를 맞춘다.
“그래서, 특성은 뭐냐?”
“어….”
없는데.
사실대로 말했다간 특성 없는 각성자가 세상천지에 어딨냐며 지랄해댈 게 뻔히 보인다.
적당히 둘러대는 수밖에.
“마법…, 관련된 특성인 것 같아. 마력을 조금 더 잘 다룰 수 있게 되는 그런….”
내가 대답하기가 무섭게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구라 아니고?”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하긴, 각성자들 중에서 마법사의 자질을 보이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니까 그녀가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진짠데….”
그녀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인증이 없으면 뭐다?”
뭐라도 보여서 내가 한 말을 증명하라는 건가.
이 소악마가 믿건, 안 믿건 내게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으면 또 지랄할 테니 적당히 보여주는 수밖에.
“후우.”
주변의 마력을 끌어모아 변화를 가미한다.
원하는 것은 불.
매일 같이 손가락 위에 켜두던 라이터 불이 아닌, 마력을 동그랗게 뭉쳐서 만든 구체.
무속성 마법이자, 마법의 기초인 매직 미사일.
그것에 속성을 가미하여 만들어내는 속성 마법의 기초인, 파이어 미사일(Fire Missile).
나는 도통 마법사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다.
고작 기초에 불과한 마법, 심지어 구체 형태인 마법에 왜 미사일이란 이름을 붙여뒀을까.
내 손바닥에 탄생한 그것을 녀석의 눈앞에다 들이밀었다.
“자…, 맞지?”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어쩔 수 없다.
이거 만든다고 마력을 거의 다 끌어다 쓴 바람에 체내에 남은 마력이 간당간당하거든.
조금만 더 썼다간 또 마력 탈진으로 쓰러질 뻔했다.
신유정은 내 손바닥 위에 만들어진 파이어 미사일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진짜네….”
손바닥 위에 둥둥 떠 있던 구체가 서서히 줄어들다가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어쩔 수 없다.
마법은 완성한 이후에 그걸 유지하는 데에도 소량의 마력이 소모되거든.
더 이상 유지했다간 정말 쓰러질 것 같아 급하게 없앴다.
“이, 이 정도면 됐지.”
“어? 어….”
녀석의 상태가 조금 이상해졌다.
약간 넋을 놓고 있는 듯, 입이 벌어진 지 한참 됐는데 다물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때가 기회일지도 몰라.
이 상황에서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하루에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는데 여기서 허비하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
“그럼 나 운동하러 가볼게….”
넋을 놓고 있는 신유정을 향해 넌지시 말을 건네고 돌아섰다.
그런데.
“아, 잠깐잠깐.”
내 어깨 위에 얹어지는 손.
시발.
그냥 말없이 사라질걸.
다시 뒤로 돌아섰다.
“왜….”
살짝 짜증이 났다.
운동도 탄력을 받았을 때 이어 나가야 그만큼 살도 잘 빠지는 법인데, 얘 때문에 러닝 머신으로 힘겹게 달궈놓은 몸이 다 식어가고 있다.
내 짜증을 느낀 신유정의 얼굴이 험상궂게 변했다.
“너 지금 나한테 짜증 냈냐?”
응.
“아, 아닌데?”
속내와는 정반대인 말이 튀어나온다.
그러자 녀석의 얼굴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치? 아니지?”
“…물론이지.”
내가 어디 가서 이렇게 말리는 타입이 절대 아닌데, 얘 앞에만 서면 그냥 몸이 자연스럽게 쪼그라든다.
이게 말로만 듣던 그 PTSD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보기엔 참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녀석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우리 돼지, 살 빼고 싶지?”
“응….”
“인심 썼다. 이 누나가 운동 가르쳐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