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20)

기억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놈 욕을 하게 된다.

“에이, 은인께 이러면 안 되지.”

그만하자.

그분께서 그렇게 방종하게 사셨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 몸에 있을 수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면….”

내가 게임에 접속한 건 녀석처럼 게임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해서다.

물론, 그 방향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나는 캐릭터가 입고 있던 장비들을 하나씩 벗어서 경매장이란 곳에 올려버렸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채팅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킹갓로드: 님 뭐임? 장비 왜 팜?]

[워로드짱짱맨: 해킹임?]

[슈샤이어만세: 아니 형;; 갑자기 장비는 왜 팔아;;]

[예삐곤듀: 옵빠... 게임 접는 거야...? 나 내일 버스 태워주기로 했자나...ㅠ]

“인맥 봐라.”

스마트폰엔 저장된 번호 하나가 없는데, 게임 친구 창에는 수십 명이나 있네.

현실에선 방구석 폐인, 게임 속에선 인기남.

이 괴리감 또한 아마도 게임에 빠지게 만든 원인일 거다.

현실의 스펙을 끌어 올리는 것보다, 게임 캐릭터의 스펙을 올리기가 더 쉬웠을 테니.

나름대로 이 몸이 가꿔온 인맥이니,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서 모두에게 똑같은 답장을 보냈다.

[vV최강로드Vv: 현생 살러 감 ㅂㅇ]

장비들이 하나둘씩 팔려나가고, 골드가 수북하게 쌓였다.

자주 이용하는 거래 사이트를 이용하여 골드를 전부 현금으로 바꿨더니.

[잔액: 3,633,300]

“미쳤다….”

곧장 잔액 300만 원 넘어가는 거 실화냐.

“하긴, 몇 년간 공들인 게임인데 이 정도도 안 나오면 오히려 섭하지.”

이 방에 틀어박힌 3년간 열심히 해온 게임이다.

3년의 값어치로 300만 원이면 사실 말도 안 되는 헐값이긴 해.

“이 정도면 제법 버티겠는데….”

아줌마 찬스를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살면 대략 몇 달은 너끈히 버티지 않을까.

“일단 돈 문제는 일시적으로 해결됐고….”

마지막 세 번째 과제가 남았다.

바로 마력량 늘리기.

현재 마력 수치는 2다.

마력 탈진 경험하고 수액으로 채웠더니 퇴원할 때 1 오르더라.

“1이나, 2나 도긴개긴이긴 하지만….”

마력을 늘리는 방법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영약, 장비, 시술 등등.

이것들은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반에 마력을 성장시키는 데에 매우 효율적이나, 이를 구매하기 위해선 큰돈이 필요하다.

전재산 300만 원인 내게는 언감생심 꿈도 꾸기 힘든 것들이라는 얘기다.

“열심히 구르는 수밖에 없겠어.”

지금 내게 가능한 방법은 오로지 훈련뿐.

마력의 총량을 늘리는 훈련은 간단하다.

마력을 탈진 직전까지 사용하고, 명상을 통해 회복하면 된다.

회복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양보다 더 많은 양을 흡수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총량이 늘어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굳이 위의 것들을 해야 하나 싶겠지만, 문제는 그 양이 무척이나 적다는 거다.

그야말로 티끌에 불과한 수준.

“티끌이라도 모아야지, 뭐.”

티끌 모아 태산? 그런 거 없다.

티끌 모아봐야 좀 더 큰 티끌에 불과할 뿐.

지금의 나에겐 그것마저도 시급하니, 어떻게든 하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그래도 재미있긴 하네.”

내 의지에 따라 주변의 마력을 자유자재로 변환시키고, 가공하는 것.

그것은 생각 이상으로 즐거웠다.

하마터면 또 마구잡이로 써대다가 마력 탈진에 빠질 뻔했을 정도로.

“안 되지, 안 돼.”

마력 탈진은 짧은 시간 내에 자주 경험할수록 중증도가 높아진다.

초기에는 단순히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회복하면 곧바로 깨어나는 수준이지만, 나중에 가면 아예 회로 전체가 망가져서 마력을 더 이상 쓰지 못하는 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최대한 탈진이 오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손가락 끝에 라이터처럼 피워 올렸던 불꽃을 꺼트린다.

간당간당해진 마력량.

곧장 벽에 기대어 앉아 정신을 집중한 채로 주변의 마력을 체내로 빨아들였다.

“금방이네.”

마력 수치가 하도 보잘 것 없는 탓에 충전 또한 무척이나 빨랐다.

숫자는 변동되지 않았지만, 조금이지만 몸집이 커진 게 느껴진다.

나는 거기서 새삼 이 신체의 특별함을 느꼈다.

“고작 한 번에 체감이 되네.”

앞서 말했듯, 마력을 사용하고 다시 채우면 그 크기가 조금씩 커진다.

하지만, 한 번 비우고 채웠다고 해서 체감이 될 정도로 커지지는 않는데, 이 몸뚱어리는 지금 단 한 번의 채움으로 그것을 체감하고 있다.

그것이 비록 매우 미약한 수준이라곤 하나, 이는 남들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마력량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뜻.

“재미있네.”

S급 헌터에 오른 이후로 오직 의무감으로 행해졌던 수련으로부터, 다시금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 * *

[마력 수치가 1 올랐습니다.]

“후우.”

명상을 끝마치고 천천히 눈을 뜬다.

눈앞에 떠오른 기분 좋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전에는 아줌마랑 운동을 하고 그 이후에는 오로지 마력 수력에만 매달린 결과.

키/몸무게: 160cm / 117kg

[근력: 5] [민첩: 2] [체력: 3] [마력: 6]

보이는가.

이 눈부신 변화가.

물론 미약하다면 미약하지만, 이 몸뚱어리로 얻어낸 최초의 결과물.

“이 맛에 훈련하지.”

지독하게 올라오는 식욕을 억눌러가며 운동을 시작한 지 어언 일주일.

3kg 감량에 성공했다.

앞으로 빼야 할 살에 비하면 티끌에 불과하지만, 시작이 반인 법.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감량도 감량이지만, 그보다 더욱 감격스러운 건 바로 능력치의 변화다.

일단 체력이 올랐다.

단 1밖에 오르지 않았지만…, 죽음으로부터 한 걸음 멀어졌다고 생각하면 그 숫자가 매우 크게 느껴진다.

그 다음으로는 마력.

이거야말로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다.

살찐 몸뚱어리를 받치기 위해 강제로 성장한 근력을 넘어서고야 말았다!

“캬.”

콩알만 하던 마력량이 어느덧 엄지만큼이나 커졌다.

화륵!

담뱃불을 연상시키던 불꽃도 이제는 제법 크기가 커져서 손바닥을 뒤덮을 정도는 되었다.

“계속 나아지겠지.”

모든 능력치가 그렇다.

1에서 1이 오를 때, 10에서 1이 오를 때의 차이가 크다.

오르면 오를수록 숫자 하나 올리겠다고 발악을 하게 되지만, 그만큼 얻게 되는 양 또한 어마어마해진다는 거다.

“한 10쯤 되면 시도 정도는 가능하겠는데.”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수시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다 보니 살과 함께 몸에 붙어 있던 게으름도 아주 조금은 희석된 듯한 느낌이 든다.

화장실에 들어가 웃통을 벗고 거울 앞에 섰다.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이건 아니야.”

볼품없는 몸뚱어리.

살이 쪄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이 몸에 붙어 있는 근골 자체가 별로라는 얘기다.

마법사로서는 최고의 체질을 지녔지만, 전사 또는 사내로서는 그다지 좋지 못한 셈.

마법사는 힐러와 더불어 헌터 업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이다.

탱커가 든든하게 지켜주기만 하면 이에 보답하듯 최고의 화력을 뽑아내는 딜러기에.

더군다나 수요에 비해 그 수가 매우 적은 편이라 마법사들은 언제나 파티에 들어가기 전에 제 몸값을 한껏 끌어올릴 수 있다.

아마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그럴 것이다.

그런 마법사가 될 수 있는 최적의 체질이라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고.

“감수는 무슨.”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감수하고 싶지 않다.

이것저것 감수하면서 살다가 그리 꽉 막힌 인생을 살게 됐는데, 또 감수하라고?

싫다.

타고난 체질을 바꿀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주어진 대로 살았겠지만, 난 아니다.

내게는 있다.

타고난 체질마저 바꿀 수 있는, 오직 나를 포함한 극소수만이 알고 있고, 그중에서도 나만이 가능한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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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한주희 사이에서 태어난 딸 손서연.

서연이는 태어날 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제멋대로 품은 기대 속에서 태어났다.

두 명의 S급 헌터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의 재능은 얼마나 대단할 것이냐며.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나와 주희는 그저 딸이 건강하게 태어나기만을 바랐다.

그랬는데.

10개월의 기다림 끝에 세상 밖으로 나온 서연이는 선천적으로 약한 체질을 타고 났다.

어디 한 군데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모든 신체가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타고 났단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잔병치레만 해도 병원에서 죽네, 마네 할 정도였다.

“그때 주희랑 나랑 참 고생했지.”

그때를 생각하니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몸이 좋아질 만한 것들이 있으면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구해다가 먹였다.

“먹여도 그때뿐이었지.”

먹고 나면 그 순간은 좀 편안하게 보이다가도, 얼마 안 있어서 또 돌아왔다.

미칠 노릇이었다.

다른 거 안 바라고 단순히 건강하게 자라기만 하면 된다고 그리도 바랐건만.

“진짜 애지중지도 키웠네.”

서연이 어릴 때가 대한민국 내에서의 내 평판이 가장 안 좋았을 때였다.

딸아이가 언제 어디를 가고 싶다고 말하면 그날 있던 스케줄을 모조리 취소해서라도 데려갔다.

그런 일이 몇 번이나 이어지다 보니 나를 향한 안 좋은 기사들도 제법 났었고.

그렇게 서연이가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며 일곱 살에 다다랐을 때.

내 딸은 방구석에서 나오지 못하고 누워 있는데 다른 아이들은 힘차게 뛰어노는 걸 보며 나는 결심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딸의 병약한 체질을 바꿔놓고야 말겠다고.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부부 모두가 들고 일어서면 딸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는 상황.

나는 내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라면 어디든 가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기를 5년, 나는 두 가지 비술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비술 ‘급성장’과 비술 ‘환골탈태’.

“병약한 체질은 절대 되돌릴 수 없지.”

선천적인 병약함을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연구 방식을 바꾸었다.

남들보다 몇 배나 되는 성장력을 그녀에게 부여하는 것으로.

어린아이는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한다.

키도 커지고, 연약했던 장기나 근육들도 성인이 될수록 점점 더 강인하게 변한다.

나는 그 성장력을 건드렸다.

평범한 아이가 1년 동안 총 10이라는 숫자만큼 성장할 때, 내 딸은 40, 50씩 성장하게끔.

내가 이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연구원이 붙여준 이름이 바로 비술 ‘급성장’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치한 이름이야.”

유치한 이름과는 별개로 효과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연약했던 체질에 압도적인 성장이 뒤따르자, 서연이는 해를 거듭할수록 건강해졌다.

그뿐인가, 건강을 되찾은 건 물론이고 아예 각성까지 하게 되면서 그 속도를 덧붙이더니, 헌터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할 이상적인 신체를 가지게 되었다.

“이걸 나한테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했듯, 이것은 어디까지나 성장력을 향상시키는 비술이다.

다 자란 늙은이의 신체에는 사용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는데, 이 몸은 다르다.

일반인의 성장이 늦어도 스물 전후면 끝나는 데에 반해, 각성자의 성장은 길면 20대 중후반까지도 이어진다.

아직 성장할 여지는 충분하다는 뜻.

“마력이 부족해서 전신에 할 수는 없고….”

성장력을 끌어올리는 방식은 간단하다.

성장력을 끌어올리고 싶은 부분에 마력을 깊숙하게 밀어 넣으면 된다.

이렇게 얘기하면 무척이나 간단한데, 실상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마력이 자연스럽게 머무는 곳은 신체에서 단 두 곳.

배꼽 밑에 위치한 코어 그리고 심장이다.

다른 부분에 마력을 실으면 일시적으로 머무를 순 있지만, 의식의 집중을 거둬들이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가 버린다.

“깊숙하게….”

그렇기에 어렵다.

이 마력을 아주 깊숙한 곳에 밀어넣어야 한다.

단순히 밀어 넣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성장에 관여할 수 있도록 그 부위와 아예 한몸이 되도록 묶어야 한다는 얘기다.

“일단 폐부터.”

쥐꼬리만 한 마력으로 성장력을 끌어올릴 첫 번째 부분으로 폐를 선택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찬 걸 보면 이 몸은 체력적인 문제뿐 아니라 폐 기능 자체가 나쁘다.

더 많이 움직여 보다 많은 살을 빼기 위해선 숨이 좀 덜 차야만 했다.

폐에 천천히 마력을 밀어 넣는다.

마력이 폐를 일시적으로 강화시켜서 숨을 빨아들이는 느낌이 훨씬 편안해졌다.

허나, 내가 바라는 것은 일시적인 강화가 아닌 성장의 조력.

폐 주변을 감싸고 있는 마력을 강제로 폐 안으로 쑤셔 넣는다.

폐라는 장기를 구성하고 있는 조직 하나하나에 마력을 싣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매듭 묶듯이 마력을 얼기설기 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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