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20)

“그래, 정말 잘 생각했어.”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견하다는 듯 쳐다보는 아줌마.

말투에 진심어린 기쁨이 녹아 있다.

기억을 들여다보면 아줌마가 지난 3년간 이 몸에게 얼마나 잘해주었는지를 알 수 있다.

요즘 세상에도 이런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

근데 김도진 이 머리 검은 짐승 새끼는 배은망덕하게도 감사한 줄을 모르고 살았다.

별 수 있나.

나라도 감사해야지.

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 아줌마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어, 어머. 도진아.”

“정말, 고맙습니다. 아줌마.”

놀람과 기쁨이 반반 섞인 아줌마의 얼굴.

지난 3년간 숱하게 챙겨줬음에도 이토록 진심을 담아 감사하다고 말을 건넨 적도, 이렇게 따뜻하게 손을 잡아준 적도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줌마가 아니었다면 전 지금까지 살아있지도 못했을 거예요.”

사실이다.

세상 물정도 모르고, 근면이나 성실 따위는 거리가 먼 게으른 김도진.

아줌마가 받아주지 않았다면 길거리를 전전하다 객사했을 가능성이 9할은 넘어 보인다.

그러니 아줌마는 김도진뿐만 아니라 내게도 은인이다.

그놈이 그때 일찍 객사했다면 나에게 이런 행운이 찾아오지도 않았을 테니.

“앞으로 저, 달라질 겁니다. 좁은 방에서 벗어나서 밝은 세상으로 나갈 거예요.”

“도, 도진아.”

내 결심을 확인한 아줌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3년 동안 먹여주고, 재워준 정도면 이 머리 검은 짐승 새끼는 몰라도, 아줌마는 이 몸을 반쯤은 자식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거다.

막돼먹은 자식이 드디어 달라진다고 하니, 감동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도진이는 이제 각성자도 됐으니까, 잘 살 수 있을 거야.”

특성을 부여받은 각성자는 일반인들에 비해 직업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마력을 감당치 못하는 일반인은 할 수 없는, 오직 각성자만이 가능한 일을 할 수 있으니까.

해를 거듭할수록 각성자의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수요에 비해 부족한 상황이다.

연봉이 높은 것은 당연하고, 복지적인 부분에서도 웬만한 대기업 저리 가라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각성자가 되기 위해 겪는 현상을 로또 현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물론, 내가 각성자로, 직장인으로 머무는 일은 없을 거다.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헌터니까.

“지난 3년간 아줌마가 베푼 은혜, 평생 갚아 나갈게요.”

“호호! 얘도 참, 은혜는 무슨 은혜니. 월세 꼬박꼬박 받았는데.”

월세를 받긴 받았다.

아주 말도 안 되게 싼 값으로.

아줌마의 빌라가 위치한 곳은 서울 변두리다.

서울 중심가에 비하면 월세가 저렴하긴 하지만, 이곳 또한 엄연히 서울.

대한민국에서 치안이 가장 좋은 서울답게 옥탑방 월세만 해도 최소 50만 원은 넘는다.

그런데 아줌마가 내게 거둬들이는 월세는 고작 20만 원이다.

그뿐인가?

일주일마다 반찬 챙겨주시지, 여름에 덥다고 사람 불러서 차양막 설치해줘, 겨울엔 춥다고 단열재로 구석구석 막아줘.

이 모든 게 20만 원에 이루어졌다.

그냥 아줌마가 착한 거다.

가슴에 힘겹게 매달려 있는 저 커다란 가슴만 봐도 알 수 있다.

저기에 들어 있는 게 전부 마음이다.

아.

심각한 오류를 발견했다.

내 마누라도 가슴은 되게 컸는데 착하지는 않았다.

그럼 저 선한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고민하고 있을 때, 별안간 아줌마가 웃기 시작했다.

“호호, 도진이 결심이 그렇다면 아줌마가 별 수 없겠네.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

“예!”

나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아줌마를 호강시켜줄 자신은 넘친다.

뭐, 안 되면 몸으로 갚아도 되고.

“도진이가 바뀌기로 결심을 했다고 하니까, 아줌마가 제안할 게 있는데….”

“뭔데요?”

아줌마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 * *

빠- 빠- 빠빠빠- 빠빠라빠빠 빠빠빠-

요란한 기상나팔 소리에 잠이 확 깬다.

“어우.”

짜증도 동시에 치솟는다.

알람 소리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안 된다.

며칠 전에 다른 알람으로 설정을 해놨더니 어떻게 돼 먹은 몸뚱어린지, 도통 듣지를 못한다.

“자도 자도 졸리냐….”

뒤룩뒤룩 찐 살이 건강에 여러모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래 스무 살에는 다섯 시간만 자고 일어나도 몸이 쌩쌩해야 하는데, 이 몸은 몇 시간을 자고 일어나도 개운한 느낌이 전혀 없다.

“에휴, 빨리 일어나야지.”

무거운 엉덩이를 억지로 들고 일어나 이불을 갠다.

검정색 반바지에 반팔티로 갈아입고 있는데, 밖에서 아줌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진아~ 일어났니?”

“네에, 잠시만요….”

힘찬 목소리로 대답하고 싶은데, 안 된다.

아직도 몸뚱어리가 제발 다시 누우면 안 되겠냐고 아우성을 쳐대고 있다.

옷을 다 갈아입고, 딱 한 켤레 있는 운동화를 신고 문을 열고 나갔다.

그곳엔 아줌마가 서 있었다.

다리에 딱 달라붙는 검정색 레깅스와 얇은 점퍼를 걸친 채로.

“아, 잠시만요.”

다시 문을 닫았다.

그러자 아줌마가 문을 가볍게 두드리며 소리친다.

“도진아, 무슨 일 있니?”

“아, 아니요! 잠깐 화장실을 좀….”

미치겠다.

혈기왕성한 몸에 들어왔더니 신체 반응이 조절이 안 된다.

고작 레깅스 차림을 봤을 뿐인데.

“그거 보고 서버리면 일상생활을 어떻게 하라는 거야….”

서버렸다.

그것도 아주 발딱.

“후우….”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를 한 3절까지 부르니까 발기가 가라앉는다.

다시 바지를 고쳐 입고 밖으로 나섰다.

아줌마는 나를 기다리기 지루했는지, 한쪽에 서서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다.

“아줌마, 이제 가요.”

“그래.”

아줌마를 먼저 내려보내고 천천히 그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간다.

“새벽 공기 너무 좋지 않니?”

“예, 좋네요.”

병원에서 아줌마가 내게 건넨 제안은 간단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매일 같이 운동하자는 거였다.

당장 죽지 않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게 운동이었기에 나는 순순히 응했고, 오늘이 바로 그 운동의 첫날이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천천히 걸어볼까?”

“그래요.”

아줌마를 따라 느릿한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여기 운동하기 좋은 곳 많으니까, 아줌마만 따라오렴.”

“넵.”

눈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어떻게든 내게 건강을 되찾아주고 싶은 모양.

느릿한 걸음으로 한 10분쯤 걸어가자, 이마에서 땀이 줄줄 새기 시작했다.

“어떡하니…, 앞으로 노력 많이 해야겠다.”

“그, 그러게요.”

잘 조성된 산책길을 따라 끊임없이 걸었다.

자연스럽게 아줌마가 앞서 가고, 나는 힘겹게 뒤따라가는 상황이 되었다.

“허억, 허억….”

숨을 헐떡이고, 느려질지언정 멈추지는 않았다.

운동하는 모든 사람들이 말한다.

그만하고 싶고, 멈추고 싶을 때가 살이 빠지고 있는 순간이라고.

“잘 하고 있어, 도진아!”

앞서 걸어가다가 이쪽을 돌아보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아줌마를 위해서라도.

멈출 수야 없지.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10분쯤 더 걸어가자, 작은 공원이 나왔다.

이른 아침인데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커다란 나무에 등을 치거나 각종 운동기구를 이용하고 있다.

“자, 여기서 좀 쉬었다 가자.”

“허억…, 네….”

“물 좀 마실까?”

아줌마가 공원 한쪽에 설치된 음수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말없이 걸음을 옮겨 곧장 물을 들이켰다.

바짝바짝 말라 있던 입에 수분이 공급되자 한결 편해지는 느낌.

“후우!”

적당히 물을 마시고 물러나자 뒤에 서 있던 아줌마도 물을 마시기 위해 얼굴을 기울인 채 위로 솟는 물을 향해 입을 벌린다.

“음.”

왜 물 마시는 모습이 이토록 자극적인가.

그리고 좀 더 자극적이었으면 하는 걸까.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체내의 마력을 이용해 주변의 마력을 내 의지대로 움직인다.

위치는 음수대.

먹기 좋게 졸졸 솟구치던 물에 마력을 더해 물줄기를 더하자.

푸슛!

“꺄악!”

강해진 물줄기가 아줌마의 얼굴을 적시고 내려가 입고 있던 점퍼마저 적신다.

“아이참, 갑자기 이게 뭐야!”

푹 젖어버린 점퍼를 벗는 아줌마.

그 안에 입고 있는 것은 몸매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탱크톱이었다.

레깅스에 탱크톱이라니.

“마법 만세….”

마법사가 세상을 구한다!

세상 행복해지는 조합에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을 때.

“아.”

느껴진다.

주변의 아저씨, 할아버지들의 시선이 온통 아줌마에게 향해 있는 것을.

“음.”

앞으로는 사람이 없을 때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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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지겠네, 진짜.”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옥상에 올라섰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입고 있던 옷이란 옷은 싹 다 벗어던졌다.

팬티까지 땀이 축축하게 젖어서 도저히 입고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곧장 화장실로 가 차가운 물을 끼얹고 돌아와 낡아빠진 선풍기를 켜고, 그 앞에 드러누웠다.

털털털털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람이 쏟아진다.

“어흐으, 이제야 좀 살겠네.”

어느 정도 더위를 식히고 몸을 일으켰다.

낡아빠진 선풍기를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현재 내게 당면해 있는 커다란 과제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다이어트.

몸에 붙은 살덩어리를 제거하지 못하면 꽃다운 스무 살 청춘? 그딴 거 없다.

곰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있어도, 굴러다니는 공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없다.

비단 여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건강과도 직결되어 있으니,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다.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나.”

운동이야 많이 해봤다.

그런데 제로도 아니고 마이너스인 상태에서는 대체 어떻게 운동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헬스장이라도 끊어야 하나.”

PT라도 받으면 좋겠는데, 내게 그럴 돈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러니 여기서 두 번째 과제가 나타난다.

앞서 말했듯, 돈이다.

“난감하네.”

돈이 없어도 너무 없다.

이 새끼는 버는 돈도 얼마 안 되는데, 그마저도 한 달 동안 백 원 한 개 안 남기고 야무지게 다 쓴다.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남기면 누가 뺏어가기라도 하나.

스마트폰에서 뱅크 어플을 켜 계좌의 잔액을 살펴보았다.

“33,000원….”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치킨 한 마리만 시켜 먹어도 다음 날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수준.

“일단은….”

얼마가 됐든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김도진이 지금까지 삶을 연명해온 돈벌이 수단인 RPG 게임에 접속했다.

한껏 멋들어진 장비로 도배가 된 캐릭터.

기억을 뒤져보면 이놈은 제 몸뚱어리보다 캐릭터에 더 많은 공을 들였다.

게임을 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현실까지 포기해가며 이래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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