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동갑인 스무 살의 헌터 지망생.
고등학교 시절 이 몸을 괴롭히던…, 일진 중 한 사람.
“앙? 대답 안 하냐?”
“미, 미, 미안!”
뭐야, 시발.
왜 마음대로 사과를 하는 건데.
“미안이고 나발이고, 히키코모리 새끼가 우리 집에 왜 기어 왔냐고.”
“그, 그게….”
미치겠다.
입이 마음대로 움직인다.
이유는 머릿속에 진득하니 남은 녀석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으로 보인다.
고등학교 시절에 지독하게 당했던 기억들이 신유정을 포식자로, 나를 피식자로 만든다.
“아, 아주머니한테….”
“울 엄마가 뭐.”
고작 여자애를 상대로 벌벌 떠는 모습이 답답하다가도 신선하게 느껴진다.
내가 누군가 앞에서 이렇게 떨어본 적이 얼마만이더라.
아무튼 위기 상황이다.
입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구세주가 등장했다.
“신유정! 도진이한테 그런 식으로 대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현관에서 들려오는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나타난 아줌마가 곧장 신유정의 등짝에 강력한 스매시를 날린다.
짜악!
“아, 엄마! 아프다고오!”
“연약한 엄마가 때리는 게 뭐가 아프다고 엄살이야, 엄살은!”
“연약? 하, 웃겨 진짜! 엄마 하나도 안 연약하거든?”
“어머머, 얘 봐. 도진아!”
둘이 티격태격 하다가 갑자기 나를 부르는 아줌마.
“네, 네?”
“도진이 네가 보기엔 어떠니?”
그러면서 가녀린 팔을 내게 들이민다.
뽀얀 살결에 향긋한 바디로션이 코를 간질인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헤벌쭉 올라가고 말았다.
“아주머니 엄청 연약해 보이세요. 헤헤….”
아줌마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며 신유정을 바라본다.
“봐봐, 얘. 엄마가 연약해 보인다잖니.”
아.
내 답은 아줌마에겐 한없이 정답이었지만, 신유정에겐 더없이 나쁜 오답이었다.
“야, 돼지. 눈치 안 챙겨?”
“미, 미, 미안!”
이럴 땐 비는 게 상책이다.
내가 수십 년간 어디 한 군데 잘리지 않고 헌터 생활을 지속해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강해서? 아니다.
굽힐 땐 확실하게 굽힐 줄 알았기 때문이다.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숙이자, 다시 한번 짜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 엄마아!”
“너 때문에 도진이가 겁먹어서 말을 못하잖니! 빨리 들어가, 이 계집애야.”
“맨날 나만 갖고 그래, 짜증나.”
등짝을 한 대 더 얻어맞고 투덜거리며 돌아가는 신유정이 제 엄마 뒤에서 나를 노려본다.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는데.
넌…, 나중에…, 뒤졌어….
괜히 읽었다.
신유정이 제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턱끝까지 차오른 숨이 제대로 쉬어진다.
“미안해, 도진아. 우리 유정이가 많이 사납지?”
“아, 아니에요.”
아줌마는 모르고 있다.
신유정이 고등학교 시절에 나를 지독히도 괴롭혔던 일진이라는 걸.
원주인도 몇 번이나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기는 한데, 월세까지 싸게 해주는 아줌마한테 괜한 부채감을 심어주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웬일이니? 유정이 무섭다고 아줌마 집에는 절대 안 오던 애가.”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아줌마.
“아, 청소기를 좀 빌릴 수 있을까 해서요….”
“청소기…?”
아줌마의 눈이 커졌다.
이해는 간다.
반찬을 가져다 주기 위해 몇 번인가 내 방을 찾은 아줌마는 알 거다.
내 방이 돼지우리 수준이라는 걸.
“그러니까, 도진이 너 지금…, 청소를 하려는 거니?”
“예? 아, 예.”
“어머나!”
손으로 입을 가리며 감동받은 표정을 짓는 아줌마.
이쯤 되니까 날 먹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잘 생각했어, 도진아! 잠깐만 기다리렴!”
내 어깨를 토닥여주더니 곧장 달려간다.
잠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줌마가 쪼르르 달려온다.
딱 달라붙은 회색 원피스 안에서 가슴이 출렁거린다.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자, 여기. 청소기 사용법은 아니?”
“그 정도는….”
성인 남자가 그거 모르면 과연 그거를 사람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어머, 미안. 아줌마가 너무 들떠서 그랬나 봐.”
“괜찮아요.”
“아줌마가 청소 도와줄까? 워낙 오랫동안 청소를 안 해서 혼자서 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이 아줌마는 천사가 분명해.
어쩌면 아줌마의 이러한 태도가 이 몸의 원주인의 글러 먹은 태도를 부추겼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게임 아이템만 팔아도 충당 가능할 정도로 월세 싸지, 매주 맛있는 반찬 충전해주지.
사람이 좀 위험에 빠져야 경각심이 들기 마련인데, 의식주 해결되니까 경각심이란 게 생겼을 리가 있나.
이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아줌마한테 죄가 있을 리가 없다.
이렇게 잘해주는데 그걸 이용해 먹은 놈이 썩어빠진 쓰레기일 뿐.
“일단 혼자서 해볼게요. 청소기 잘 쓰고 돌려드릴게요.”
“그래. 아줌마 오늘 쉬는 날이니까 힘들면 언제든지 불러. 알았지?”
“예.”
제법 무거운 청소기를 껴안고 계단을 오른다.
무릎이 후들거리지 않아 좀 더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다.
“허억, 헉…!”
내려갈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숨이 차는 게 문제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평상에 앉아 잠깐 숨을 고르고 방으로 들어갔다.
청소기 콘센트를 꼽고, 방구석에 그득하게 쌓인 과자 부스러기와 먼지들을 싹 빨아들였다.
“와, 미친.”
청소기가 지나갈 때마다 장판의 색깔이 조금씩 변한다.
대체 먼지가 얼마나 쌓여 있었으면 이게 가능한 거지….
방바닥에 말라붙은 채로 굴러다니던 걸레를 몇 번이나 빨아 방바닥을 닦았다.
찐득찐득한 것들이 곳곳에 붙어 있어 걸레가 잘 나아가질 않는다.
“스무 살 누리는 거 참 힘드네, 시이발….”
한 십 년 정도는 끊었던 욕이 연달아 나오는 걸 보면 내가 젊어지긴 했나 보다.
“헉, 허억…!”
걸레질 한 번 할 때마다 원래의 몸으로 검을 수천 번 휘둘렀을 때처럼 숨이 찬다.
“내가 이 방구석만, 허억…, 깨끗하게 만들면, 헥…, 무조건 살부터 뺀다….”
이를 악물로 걸레를 앞으로 쭉쭉 내밀어 닦아냈다.
회색 티셔츠가 땀에 완전히 절어버렸다.
“어우, 찝찝해.”
벗어서 급하게 종이 박스로 만든 빨래통에 던져 넣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수건으로 몸을 대충 닦았다.
“아오, 이거 얼마나 안 빤 거야.”
머릿속에서 곧장 답이 나온다.
“이, 일주일? 에라이!”
그 정도면 수건이 아니라, 걸레라고 불러야겠네.
“휴.”
일단 방바닥에 엉덩이 붙일 정도는 만들었다.
곳곳에 쌓인 먼지들까지 다 닦아내야 하는데 이대로는 힘들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아무래도 몸을 손보는 게 우선일 듯했다.
적당한 자리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무협지 뽕에 정통으로 맞아버린 중국 놈들은 그 힘든 자세인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는데, 안 그래도 된다.
헌터들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사실도 늘어났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마력을 모으는 데에 필요한 자세다.
나라마다, 사람마다 마력을 모을 때 취하는 자세가 달라 세계의 과학자들이 모두 모여 마력을 모으기에 가장 적합한 자세를 찾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
그 결과, 그딴 건 없었다.
그저 본인에게 집중이 잘 되는 자세가 가장 효율적인 자세라는 게 입증이 됐다.
“아, 안 되겠다.”
양반다리를 풀었다.
허벅지에 살이 쪄서 집중은커녕 오래 유지하는 것도 힘들다.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많아.”
결국 자세를 바꿨다.
벽에 기댄 채 다리를 쭉 뻗고 앉았다.
천천히 눈을 감고, 마력을 느끼기 위해 집중력을 천천히 끌어 올린다.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마력은 세상 전체에 가득 차 있다.
허나 평범한 인간은 평생을 집중해도 이를 느낄 수 없다.
평범함으로부터 탈피한 헌터만이, 마력을 느끼고, 나아가 다룰 수 있는 자격을 지닌다.
“후우….”
집중력이 깊어지고, 호흡이 점차 길어져 간다.
내가 김도진으로 살고자 마음먹었어도, 이 몸이 아무리 불편해도 단 하나만큼은 변치 않는다.
내 영혼은 헌터들의 정점인 S급 헌터에 다다랐던 손시우라는 것.
포옹, 포옹
눈앞에서 비눗방울 터지듯 허공을 유영하는 마력들이 알알이 터지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진짜 소리는 아니다.
깊어진 감각이 이를 소리로써 느끼는 것일 뿐.
몸에서 뻗어나간 한 줄기 가닥이 마력 알갱이에 닿는다.
뭔가 이상하다.
아무리 영혼에, 내 머릿속에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해도 마력을 느끼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푸하아!”
길어진 호흡 탓에 모자라진 숨을 황급히 들이마신다.
거칠어진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으며 눈을 뜬 순간,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마력이 보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S급 헌터 손시우의 몸으로도 느낄 수는 있어도 볼 수 없었던 것이 마력인데.
그런 마력이.
시릴 듯이 선명한 푸른색을 간직한 채.
시야에 또렷하게 맺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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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명상을 끝냈음에도 마력을 느끼는 감각이 제멋대로 깊어져 간다.
마력이 더욱 선명해졌다.
이제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넘어, 집중하여 손가락으로 건드리면 만질 수 있게 되었다.
내 신체에서 무수한 줄기가 뻗어 나와 주변의 마력과 모두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
강렬한 기시감이 머릿속을 뒤흔든다.
“이건…?”
불과 며칠 전에, 난 이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다.
손시우의 몸에서 벗어나 김도진의 몸에 안착하던 날.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느꼈던 감각이 꼭 이런 느낌이었다.
세상 전부를 양손에 틀어쥐고 있는 듯한, 주변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듯한 지배감.
“설마 그때가…?”
분명 한 꺼풀 벗어던지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때, 나는 영혼 상태로 김도진의 몸으로 빨려들어가는 상태였던 건지도 모른다.
육신을 벗어던진 상태로, 영혼인 상태에서 세상에 가득 찬 마력과 마주했던 게 아닐까.
“그때 분명히 발버둥 쳤지.”
그 황홀한 감각을 잊기 싫어서 추락할 때 마구 팔을 휘젓고 발버둥 쳤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때의 그 발버둥으로 남긴 것이, 지금의 감각인 걸지도 모르겠다.
“이거 말도 안 되는데….”
단순히 영적으로 이루어진 체험만으로 이러한 능력을 선보일 수는 없다.
“이 몸 자체가 특별한 거기도 해.”
마력을 느끼는 속도가 매우 빨랐던 것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 몸 자체가 마력이 유별나게 예민한 거다.
황홀한 영적인 체험과 마력이 유별나게 민감한 몸.
“두 개가 합쳐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가.”
허공에 흐르는 마력에 손을 휘저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무런 가공도 이루어지지 않은 순수한 마력이 곧장 바람이 되어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카락을 휘날리다 사라졌다.
“하, 하하….”
나는 마법을 단 한 개도 쓸 줄은 몰랐지만, 마법이란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안다.
그녀가 내 마누라가 아닐 때, 그저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가고 있을 당시, 그녀는 내게 마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을 좋아했다.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고지식하게 보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마법을 하나의 학문이라고 일컫는다.
한주희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마법을 아주 심오한 학문이며, 자연의 기운인 마력을 일정한 술식을 통해 다양한 변화를 일으켜 기적을 구현하는 방법인 마법을 배우는 이를 마법사라 칭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