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120)

“젊음이 있으면 뭐든 다 가능할 텐데 나 같은 사람이랑 바꾸는 건 많이 아깝지. 안 그래요?”

“어…, 그, 그런가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다.

뭐, 사람의 입장마다 가치는 달라지는 법이다.

어느덧 50을 코앞에 둔 나는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젊음이 부러울 뿐이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는 청년은 내가 가진 여유가 부러울 테니.

나는 청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그만큼 젊음이란 건 무궁무진한 기회가 있다는 얘기에요.”

“하하, 예.”

청년이 한층 밝아진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웃으니까 꼭 귀여운 아기 돼지 같다.

살만 빼면 인물이 확 살 것 같은데.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살 하나는 기깔나게 잘 빼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한테 소개를….

에이, 아니다.

남의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순간 꼰대가 된다는 걸 잊지 말자.

차량이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마당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가 매끄럽게 안착했다.

“도착했습니다, 헌터님.”

“아이고, 얘기하다 보니 금세 도착했네.”

차에서 내려 지갑을 꺼낸다.

백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꺼내어 청년에게 건네주었다.

“허, 헌터님. 이건….”

“기사님과 대화하는 게 아주 즐거워서 그래요. 부담 갖지 말고 받아두세요. 아시죠? 저 S급 헌터 손시우인 거.”

“알죠, 예.”

떨리는 손으로 백만 원짜리 수표를 받아드는 청년.

나이 많은 사람과도 곧잘 대화를 잘 나누는 걸 보면 인성이 올바른 친구가 분명하다.

이만한 친구라면 사위로 삼아도 손색이….

“내 딸은 안 된다, 이노옴!”

“히익…!”

“아.”

또 앞서 나갔다.

“아이고, 미안해요. 갑자기 혼자 이상한 생각에 빠져 가지고.”

“아, 아닙니다.”

순간 내가 소리를 쳐서 그런가, 많이 놀란 모습이다.

“오늘 고생 많았어요. 얼른 들어가 봐요.”

“아, 넵.”

청년은 백만 원짜리 수표를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고선 뒤뚱거리는 걸어갔다.

대문에 다다랐을 즈음, 청년이 뒤로 돌아섰다.

“저, 헌터님!”

“네?”

“저는 역시, 제 몸보다 헌터님의 몸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아까 전의 밸런스 게임을 말하는 건가.

“하하, 고마워요.”

밝게 웃어주고 싶은데, 쓴웃음이 지어졌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대 그런 말 못할 텐데.

“거래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거래라는 건 대리운전을 말하는 건가.

“하하! 나도 좋은 거래였어요.”

허리를 숙이는 청년.

남산처럼 튀어나온 뱃살 때문에 30~40도 정도가 한계인 것 같다.

그 인사를 끝으로 청년은 대문을 나섰다.

“예의가 매우 바른 청년이야, 음.”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들어섰다.

쥐 죽은 듯 고요한 적막감이 온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잠깐이나마 좋았던 기분이 금세 다운됐다.

안방의 문고리를 잡고 돌리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술 냄새 때문에 마누라 옆에서 자기는 글렀으니, 손님용으로 꾸며둔 방 중 아무 곳에나 들어가 외투를 벗고 그대로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하아….”

새로 빤 이불의 섬유유연제 냄새가 코끝으로 깊숙이 스며든다.

내 인생도 이렇게 깨끗하게 세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새것처럼 빨아서 다시 시작한다면.

적어도 같은 후회를 두 번 느끼는 일은 없을 텐데.

“하, 내가 무슨 생각을….”

쓸데없는 생각도 잠시.

서서히 수마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그래.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

나는 단숨에 곯아떨어졌다.

다음화 보기

사내가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정보의 바다를 헤맨 것은 오직 이날을 위해서였다.

‘오늘이야.’

오늘이 아니면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대한민국 최대 커뮤니티인 씨씨 인사이드.

메이저 갤러리 중 하나인 헌터 갤러리에는 온갖 헌터들에 대한 정보와 루머들이 쏟아진다.

당연하게도 그중에는 손시우 또한 포함되어 있다.

아니, 그에 대한 지분이 가장 많았다.

수많은 거짓들 사이에 숨어 있는 진짜 하나를 찾기 위해 무수한 검증을 시도한다.

검증에 성공한 정보는 두 가지.

술에 취한 손시우는 대리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는 것과 혼자 술을 마시고 싶을 때면 강남에 위치한 바에 가끔 나타난다는 것.

‘준비는 모두 끝났다.’

빡센 시험을 통해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몇날 며칠을 이곳에서 서성인 결과.

그가 나타났다.

‘이제 나오기만 하면….’

생각보다 그는 빨리 나왔다.

제법 얼큰하게 취한 얼굴로 나타난 그는 자신의 차 앞에 서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금이야.’

대리를 기다리고 있을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대리 부르셨죠?”

“아아, 대리 기사님이시구나.”

처음엔 못미더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이내 안심하며 차 키를 건네주었다.

사내는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차를 몰았다.

이곳에서 그가 사는 곳까지의 거리는 대략 20분.

‘조금 느리게 가면 30분 정도….’

그 시간 안에 그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들어야만 했다.

사내의 옆에는 이미 황금빛 천칭이 소환되어 있었다.

다만, 처음 나타날 때처럼 거대한 크기가 아닌 손바닥만 한 크기의 미니 사이즈였다.

“혹시 기사님은 결혼하셨나?”

“아, 아뇨.”

대화가 시작되었다.

술에 취한 사람 특유의 헤픈 웃음과 함께 그는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다.

마치 평소에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

좋아하는 사람이나 결혼과 같은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거래와 관련된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젊음이 부럽네요. 나도 젊었던 때가….”

기회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손시우 쪽에서 먼저 젊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적당하게 말장구를 쳐주다가, 사내는 넌지시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헌터님과 제가 몸을 바꿀 수 있다면, 바꾸실 건가요.”

“기사님과 제가요?”

남들은 웃으며 대충 넘겼을 질문 하나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그가 말하기를.

“너무 밑지는 거 아닌가.”

아, 망했다.

설마 저런 대답이 나오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영상에선 젊음이 부럽다며, 이 새끼야!’

그저 학생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했던가.

그는 낙담했다.

자조 섞인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넨다.

“역시 헌터님은 가진 게 많으시니까….”

그래.

이미 젊어서 모든 걸 이룬 사람이 뭐 하러 아무것도 없는 맨몸으로 다시 시작할까.

희망의 불씨가 꺼져갈 즈음.

“아니아니, 나 말고 기사님이요.”

그의 말 한마디가 불씨를 되살리다 못해 아주 활활 태워버렸다.

“예…?”

그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젊음이 있으면 뭐든 다 가능할 텐데 나 같은 사람이랑 바꾸는 건 많이 아깝지. 안 그래요?”

그의 말 한마디에 저울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젊음의 가치를 보다 높였고, 자신의 삶의 가치를 낮춰버렸다.

또한, 그 말에 사내는 생각했다.

‘젊음이란 게 그리도 대단한 거였구나.’

오직 방구석에서 인터넷 세상만 뒤적거리고 있던 그는 전혀 모르고 있던, 젊음의 가치에 대해 조금 깨닫게 되면서 가치는 한층 더 높아졌다.

요동치던 저울이 이내 잠잠해졌다.

위치는 뒤바뀌었다.

한없이 손시우 쪽으로 쏠려 있던 무게가, 완전히 반대로 뒤바뀌어 있었다.

[가치가 변환되었습니다. 상대의 가치보다 사용자의 가치가 더욱 높습니다.]

가치가 더해져 바닥까지 내려앉은 제 모습을 보며 사내는 쾌재를 불렀다.

자신의 젊음이 그만한 가치를 지녔다는 것보다, 그와 몸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저 기뻤다.

지독한 상사병에 걸린 그에게 있어 그녀보다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은 없었으니.

“허, 헌터님. 이건….”

그는 제 손에 들린 백만 원짜리 수표를 보았다.

누구에게도 받아본 적 없는 돈을 그는 고작 대리 기사에게 내주는구나.

저만한 재력 있는 사내가 곧 자신이 된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짜르르 전기가 흐르는 듯했다.

수표를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은 채, 그는 손시우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저는 역시, 제 몸보다 헌터님의 몸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 말이 단순히 자신을 부러워한다고 여긴 건지, 그는 고맙다는 말을 내뱉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제 인생을 송두리째 자신에게 내어주는 손시우를 향해 감사하다는 말을 건넨 뒤, 사내는 헐레벌떡 뛰어 제 집에 도착했다.

“드, 등가교환! 손시우와 내 몸을 바꿔줘!”

자그맣던 천칭이 순식간에 제 몸을 부풀렸다.

[상대방의 신체가 사용자의 신체보다 가치가 낮습니다. 손해를 감수하고 거래를 하시겠습니까?]

[Yes / No]

눈앞에 떠오른 'Yes' 와 ‘No'.

아무 생각 없이 ’Yes'에 손을 가져가려던 그가 가까스로 손가락을 멈춰 세웠다.

“아, 아니지.”

굳이 밑지는 장사를 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가치가 더 높다면, 그에게 더욱 여러 조건을 추가하면 되는데 굳이?

그는 골똘히 고민하다가, 그에게 몇 가지 조건을 추가해 보았다.

조건마다 저울이 요동친다.

그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평행을 이룰 수 있게끔 조건들을 설정했다.

[두 대상의 가치가 완벽하게 동등합니다. 거래 하시겠습니까?]

[Yes / No]

그는 마지막으로 제 몸을 내려다봤다.

어느 한구석 좋은 점이 보이지 않는 썩어빠진 몸뚱어리.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자신의 게으름이 지대한 영향을 끼치긴 했으나, 아무튼.

“이제 시궁창 같은 삶도 끝이다!”

그는 미친 듯이 웃으며 ‘Yes’ 버튼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아….”

동시에 강렬한 수마가 그를 덮쳐왔다.

* * *

기묘한 감각들이 전신을 휘몰아친다.

오래 입고 있던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이 된 듯한 서늘한 감각.

비로소 남은 한 꺼풀마저 벗어냈다는 해방감과 더불어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손으로 움켜쥘 수 있을 것만 같은 지배감을 느낀다.

아, 아아.

능숙하게 다루기 위해 수천, 수만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던 녀석을 발아래에 둔 기분.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면 그것을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오르고, 반대쪽 손을 가볍게 휘저으면 그 움직임을 따라 바람이 인다.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전능감이 온몸에 차오른다.

바로 그때.

추락이 시작됐다.

하늘 높이 솟아올랐던 모든 것들이 바닥을 향해 내동댕이쳐진다.

안 돼, 안 돼!

놓치고 싶지 않다.

지금 느낀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추잡하게 팔을 휘젓고 발버둥 친다.

어떤 것은 잃어버리고, 어떤 것은 손에 꼭 쥔 채.

마침내 하염없이 떨어지던 육신에 무언가가 덧씌워졌다.

오래 입던 옷 대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은 듯한 감각.

새 옷이 으레 그렇듯, 아직은 내 몸에 맞지 않는 것처럼 불편하고 낯선 감각으로 뒤덮인다.

“…생.”

어찌 됐든 이제 다시 불편하게나마 잠들 수 있겠다, 생각할 때.

캉캉캉!

“도진 학생!”

“으헉!”

쇠로 된 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소음과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의식을 수면 위로 끌어당겼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