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20)

그가 전부를 내걸어도 사고 싶은 것이, 자신에게는 있다.

“젊음…!”

거래 조건이 성립한다.

자신은 그의 모든 걸 가지고 싶고, 그는 자신의 젊음을 가지고 싶으니까.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외쳤다.

“드, 등가교환 발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등 뒤로 거대한 황금 천칭이 생겨났다.

“…나는 S급 헌터 손시우와 몸을 바꾸고 싶다.”

[S급 헌터 손시우와 사용자의 육신의 가치를 비교합니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작은 모형이 한쪽 저울에 올라섰다.

그리고 반대쪽에는 손시우의 모형이 나타났다.

저울은 한없이 그에게로 기울었다.

[객관적 가치 비교 결과, S급 손시우의 육체가 훨씬 더 가치가 높으므로 거래가 불가합니다.]

“아, 아니, 분명히 영상에서 손시우가 말했잖아…! 모든 걸 주고 젊음을 사겠다고!”

[영상만으론 상대의 진심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 그럼 아무런 방법이 없는 거야…?”

그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묻자, 또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대화를 통해 상호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거래가 가능합니다.]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천칭은 사라졌다.

“하, 합의?”

어떻게든 말로써 그의 진심을 이끌어내, 두 육신의 가치를 동등하게 만들라는 뜻이었다.

합의만 할 수 있다면, 그의 육신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어떻게…?”

합의는 둘째치고, 그와 만나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이는데.

“합의만 할 수 있다면….”

합의.

이 단어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돈다.

그것만 가능하면, 손시우의 몸을 차지할 수만 있다면.

그녀를 얻을 수 있다.

꿀꺽!

침을 삼킨 그는 곧장 컴퓨터 앞에 앉았다.

손시우와 관련된 정보를 모두 모으기 위해서.

그가 자주 가는 곳, 좋아하는 것, 취미 등등을 낱낱이 긁어내기 시작했다.

다음화 보기

비록 마무리가 틀리긴 했지만, 유혹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내게 건넨 말은 전부 맞았다.

내 인생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절제…, 인가.”

그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은 없을 거다.

어릴 땐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장식하는 단어들이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다.

7년 연속 브랜드 평판 지수 1위.

7년 연속 청소년들의 롤모델 1위.

누군가 내게 기대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등신.”

그들에게 보다 나은 사람, 보다 멋진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작은 구설수라도 만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고, 때때로 목숨을 걸고 던전을 공략하기도 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대한민국에 헌터가 나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내가 뭐라고 그렇게 애썼을까.

그 모든 기대의 클라이막스는 5년 전 강남을 중심으로 펼쳐진 던전 웨이브.

수없이 생성된 던전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아비규환이 되었을 때.

가장 앞선 자리에서 싸웠고, 파이널 웨이브라 불리는 보스 몬스터를 막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때 구국의 영웅에게만 주어지는 ‘수호자’의 칭호를 얻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큰 것을 잃어버렸다.

“앞으로 한 5년 남았나….”

내가 S급 헌터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그것밖에 남지 않았다.

파이널 웨이브를 해결하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힘을 끌어다 썼다.

한계 이상의 힘을 사용한 탓에 회로는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고, 마력을 담아두는 코어에는 자그마한 구멍이 뚫렸다.

힘을 쓸 때마다 회로는 조금씩 상처를 더해가고 있고, 코어에 난 작은 구멍에선 미약하지만 끊임없이 마력이 유실되고 있다.

현재도 전성기에 비하면 2할 이상 힘을 잃은 상태다.

이대로 5년 정도 더 지나고 나면, 내 힘은 S급이 아닌 A급 수준으로 떨어지겠지.

“다 내 업보지, 업보야.”

냉정하게 그때의 상황을 판단하건대, 내가 사력을 다하지 않았어도 결국 막아냈을 거다.

강남 한복판이다 보니 더 많은 건물들이 피해를 입었을지는 모르겠다만.

그냥 사람들이 부둥부둥 해주니까 영웅 역할에 심취해 있었던 거지.

조금 전 마담이 상기시킨 놈의 인터뷰가 재차 떠오른다.

그 말 외에도, 녀석은 한마디 덧붙였다.

“욕망대로 사는 게 나쁜 건가?”

여자들과 난교는 서로 좋다고 한 거였고, 임신 소동은 막대한 양육비를 줌으로써 해결했다.

도의적으로 지탄받을 일일지는 몰라도, 법을 어긴 적은 없는 놈.

영웅 놀이에 한창일 땐 그런 놈들이 죽을 만큼 싫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부럽다, 시발.”

그렇게 사는 게 부럽다.

자기 욕망을 마음껏 표출하고 사는 게 부러워 죽겠다.

놈들은 지금도 어디 호텔 스위트룸에서 온갖 여자들과 떡을 치고 놀 텐데.

쭉 절제하며 살아온 나에게 남은 건 뭔데?

하나 있는 마누라한테 쌀쌀맞게 거절당하고, 애지중지 키운 딸내미랑 밥도 같이 못 먹는 내게 뭐가 남았냐고.

“덧없다, 덧없어….”

홧김에 나를 유혹했던 마담과 확 자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거부감이 인다.

“큭큭.”

고작 상상만 했을 뿐인데, 나중에 이게 들켜서 사람들이 내게 실망하면 어쩌나 생각했다.

나를 향한 사람들의 기대는 손에 쥔 지푸라기다.

그거라도 쥐고 있지 않으면 진짜 아무것도 쥔 게 없게 된다.

어느새 그렇게 됐다.

“저어….”

한창 우울감에 빠져 있을 때, 웬 뚱뚱한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대리 부르셨죠?”

“아아, 대리 기사님이시구나.”

“예.”

엄청 젊은 친구가 왔다.

고작해야 20대 초반쯤 되었을까.

살짝 불안해졌다.

내 차가 좀 비싸다.

마누라가 품격에 맞게 타고 다녀야 한다고 한사코 거절해도 건네준 차다.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억은 가볍게 넘어간다고 들었다.

“운전 잘하시죠?”

“그럼요.”

노파심에 물어봤더니, 청년이 서글서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귀여운 아기 돼지 같다.

살 좀 빼면 인물이 확 살아날 것 같은데.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요즘 본인이 원치 않는 조언을 마구 건네는 사람을 보고 꼰대라고 한다던데.

나는 젊은 친구들의 모든 걸 받아들이는 쿨한 아저씨로 남고 싶다.

“자, 그럼 안전 운전 부탁합니다.”

“예.”

청년에게 차 키를 건네준 뒤, 뒷좌석에 올라탔다.

이윽고 차가 출발했다.

빠르게 지나쳐가는 사물들도, 내 눈에는 아주 천천히 지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스쳐 가는 간판들에 쓰인 글자를 하나둘씩 읽다가, 운전석에 앉은 청년을 보았다.

“운전 잘하시네.”

“하하…, 감사합니다.”

“내가 말 좀 걸어도 이해해줘요. 내가 술에 취하면 기사님들이랑 얘기 나누면서 집에 가는 게 낙이거든.”

“아, 예.”

언제부터였더라.

부부 사이의 대화, 부녀 사이의 대화가 서서히 끊어지기 시작할 즈음이었나.

대화가 고파졌다.

그때부터 술에 취한 날 데려다주는 대리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즐거워졌다.

비슷한 나이대라 적절하게 유머 코드가 맞기도 하고, 공감대도 잘 맞아서 얘기할 맛이 났다.

젊은 대리 기사는 처음이라, 이 청년은 어떨지 모르겠네.

“혹시 기사님은 결혼하셨나?”

“아, 아뇨.”

“그럼 좋아하는 사람은 있고?”

“그건…, 예.”

망설이다가 대답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짝사랑이 분명하다.

이럴 땐 어른으로서 또 조언을 해줘야지.

“나중에 좋아하는 여자랑 있다 보면 말입니다. 그런 순간이 찾아와요.”

“어떤…?”

“이 여자와 평생을 살아도 괜찮겠다던가, 이 여자가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은 그런 느낌?”

“아….”

아직은 이해가 가지 않을 거다.

나도 그때는 그랬거든.

“그럴 때가 오면, 미친 듯이 청혼이 하고 싶어져요. 이 여자를 다른 사람이 가로채기 전에 내 걸로 만들고 싶다, 이런 느낌이 생긴단 말이에요.”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네요.”

벌써부터 그 감정을 이해하고 있다니.

우수한 학생인걸.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그때가 가장 위깁니다.”

“…예? 위기요?”

“예, 위기.”

살에 파묻혀 작아진 청년의 눈이 찡그려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가 가지 않을 만도 했다.

황당하겠지.

좋아하는 여자와 평생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청혼을 해야겠다 마음먹는 순간이 가장 위기라는 게.

근데, 위기가 맞아.

“지금은 이해 못할 수도 있어요. 근데, 내 말 믿고 그때가 오면 눈 딱 감고 꾹 참아요.”

그 순간만 참으면 결국 위기는 사라지게 돼 있거든.

“아, 네….”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받아들이지 못했나 보다.

“명심하세요. 꾹 참는 겁니다.”

두 번 강조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거다.

그 이후는 청혼을 하든, 말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결과는 본인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이지.

“근데, 그….”

운전에만 집중하고 있던 청년이 별안간 말을 걸어왔다.

“손시우 헌터님은 지금 아내분과 함께 있는 게 싫으신 겁니까…?”

아차.

내가 이야기에 너무 열을 올렸나.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여유를 가장하며 웃었다.

“하하! 그럴 리가요. 저는 아내는 여전히 뜨거운 사이인데요. 그냥 남들이 그래요. 나는 아닌데, 다른 사람들은 결혼이 힘든가 봐.”

“아아, 그렇군요.”

소문이란 건 한 사람의 입으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저 청년이 자기 부모님 또는 친구에게 ‘이건 비밀인데….’로 시작해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가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될 거다.

얼버무리긴 했지만, 확실하게 하기 위해 화제를 바꿀 필요가 있다.

“기사님은 학생? 아니면 직장인?”

“아…, 학생이요.”

“어쩐지, 너무 젊더라니. 등록금 벌려고 하시는 거구나?”

“하하…, 예.”

많이 힘들 거다.

아무리 미래를 위해서라지만, 이 늦은 밤에 남의 차 몰고, 심지어 주정뱅이의 말까지 다 받아줘 가면서 돈 버는 게 쉬울 리가 있나.

하지만.

“부럽네….”

“예?”

“젊음이 부럽네요. 나도 젊었던 때가 있었는데, 언제 이리도 나이를 먹었는지. 하하!”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나를 따라 어색하게 웃던 청년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 헌터님.”

“말씀하세요.”

“…헌터님과 제가 몸을 바꿀 수 있다면, 바꾸실 건가요.”

“기사님과 제가요?”

“예.”

청년과 나는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다.

모든 호화로운 것들을 누리며 살지만, 늙은 나.

아무것도 없지만, 젊은 청년.

아, 이게 바로 요즘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밸런스 게임인가 하는 그건가.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입을 열었다.

“너무 밑지는 거 아닌가.”

“역시 헌터님은 가진 게 많으시니까….”

“아니아니, 나 말고 기사님이요.”

“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묻는 청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