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120)

실제로 예전에 한 번 혼술했다가 그런 식으로 기사가 나갔다.

내용은 더 가관이었다.

공략대원들과 사이가 극도로 나쁘다느니, 아내와 불화를 겪는 중이라느니.

온갖 불화설들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선동은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이를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고 했던가.

그때 해명하느라 모두가 고생했다.

다시는 혼자 술 마시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있을 때, 마누라가 이곳의 회원권을 주었다.

혼자 마시고 싶으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마셔달라고 당부하면서.

개인적으론 ‘술이 마시고 싶을 땐 나한테 얘기해줘요.’와 같은 답변을 바랐는데.

“손시우 헌터님께선 스스로를 너무 억누르면서 사시는 것 같아요.”

이따금 찾아올 때마다 마주쳤던 마담이 술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별안간 건넨 말이었다.

“내가요?”

“네. 다른 S급 헌터 분들 좀 보세요.”

네 명의 S급 헌터.

그중 둘은 나와 마누라다.

나머지 둘은 나보다 몇 살 어린놈들인데, 이놈들 사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다.

매일 같이 클럽을 통째로 빌려서 여자들과 파티를 연다.

그러다 몇 달쯤 지난 후에 웬 여자가 임신했다며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작년에만 그놈 아이를 가졌다는 여자가 셋이나 나타났다.

그중 둘은 거짓이었고, 한 명은 진짜였던가.

“그분들은 좀 많이 드러내긴 하지만, 할 건 다 하면서 살고 있잖아요.”

맞는 말이다.

두 녀석은 이 나라에 없어선 안 될 인재들이고, 놈들도 그걸 알아서 그런 건지 세간에서 뭐라고 떠들어대든, 자기들 인생 살기 바쁘다.

“전 예전에 그 사람이 한 대답이 아주 인상 깊었어요.”

“무슨… 아, 그거.”

예전에 한 기자가 두 놈 중 하나와 인터뷰를 하며 물은 적이 있다.

당신의 문란한 사생활로 인터넷이 떠들썩한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식의 물음이었는데.

그때 한 놈의 대답이 아주 그럴싸했다.

“남들 시선 신경 쓰며 살기엔 내 인생이 너무나도 짧다…, 라고 했던가.”

“네, 맞아요.”

오롯이 제 인생을 살기 위해 남들의 눈치 따위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당당함이 돋보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그저 문란한 놈이라 생각했던 녀석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됐다.

그저 문란한 놈이 아니라,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문란한 놈으로.

“저는 그분처럼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 그렇다고 온갖 여자를 끼고 살라는 게 아니라요.”

한쪽 눈을 찡긋하며 내게 윙크를 보낸다.

“남들 눈치 보느라 인생의 즐거움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거예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내 손 위로 그녀의 손이 포개어졌다.

기다란 검지가 내 손등을 가볍게 긁어내린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야릇하고, 농밀한 유혹.

그녀는 아름답다.

야릇한 시선을 내보내는 커다란 눈망울, 고혹적인 눈 밑의 점, 도자기처럼 하얗고 오밀조밀한 피부, 가만히 있어도 염기를 줄줄 흘리는 풍만한 몸.

하룻밤의 상대로는 과분한 여인.

그녀의 상체가 이쪽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타이트한 드레스 윗부분이 살짝 벌어지며 드러난 깊게 파인 가슴골이 시선을 잡아끈다.

“조금 더 은밀하고 조용한 곳은 어떠세요…?”

노골적인 언행이 귀를 간질인다.

나는 그녀 밑에 깔린 손을 조심스럽게 빼냈다.

“제안은 고마운데, 미안합니다.”

“아…….”

아쉬움 가득한 시선을 보내오는 그녀를 뒤로한 채, 바를 나섰다.

“혼자 마시기엔 나름 괜찮은 곳이었는데….”

쩝.

이곳에 오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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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일과는 언제나 컴퓨터 앞에서 시작된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은.

인터넷 뉴스에 떠오른 그녀와 관련된 기사들을 모두 읽고, 그녀의 팬카페에 가서 팬들이 올려놓은 사진을 보고 또 보는 게 그의 일과의 전부였다.

“하아, 하아…!”

고작 가슴골 조금 드러난 사진을 보며 열심히 자위를 하고 나면 현타가 찾아온다.

“씨발.”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 놓고 대결하면 세상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녀를 품에 안을 수는 없다.

그녀는 너무나도 높은 곳에서 빛나고 있는 별이었기에.

그리고.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기에.

“손시우 개새끼.”

손시우.

대한민국 최강의 S급 헌터.

40대 중반이라곤 믿을 수 없는 샤프한 외모와 바른 행실, 국가 수호에 대한 헌신으로 대한민국 전체를 팬으로 둔 사기캐.

두 사람이 서로의 어깨와 허리에 손을 얹으며 다정한 모습으로 나타날 때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나를 가지려면 이 정도 남자가 되지 않으면 곤란하다, 라고.

“으으…!”

지독한 상사병에 걸렸다.

사랑이라는 건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가라앉기 마련이라는데,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인 듯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마음이 오히려 더 커져만 갔다.

“가지고 싶다.”

가지고 싶어 미치겠다.

자려고 누우면 그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터져버릴 것만 같다.

“가지고 싶어 미치겠어어!”

이불을 끌어안고 몇 번이나 소리치고 발버둥을 쳐야 그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된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

사내는 자신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음을 시시각각 느끼고 있다.

이대로 가면 그녀의 집에 무턱대고 찾아갔다가 경찰에게 붙잡히는 결말만이 유일한 미래가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보고 싶어, 가지고 싶어…!”

작은 얼굴에 꽉꽉 채운 눈, 코, 입에 입을 맞추고.

동양인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를 마구 주무르고.

기다랗게 뻗은 다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핥고 싶다.

한 번, 단 한 번만 그녀를 느낄 수 있다면 목숨을 잃어도 좋겠어.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능력을 각성합니다.]

그의 두 눈을 환희로 물들일 문구가 허공에 떠올랐다.

[고통에 대비하세요!]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고통이 뒤따랐다.

“끄아아아아악!”

온몸을 잘근잘근 물어뜯기는 듯하다.

아닌가, 온몸이 불에 지져지는 느낌인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아프다.

차라리 죽었으면 싶을 정도로 아프다.

고통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사람이 쇼크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던데, 사내는 자신이 그렇게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아, 하아….”

고통이 잦아들었다.

각성자가 될 때면 어마어마한 고통이 뒤따른다더니.

“내가…, 내가 각성을 했어…?”

세계는 현재 두 부류의 인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성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범람하는 몬스터들에 맞서기 위해 각성한 이들은 헌터가 되어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럼 각성자가 나쁜 것 아니냐고? 그럴 리가.

그들은 그만큼 어마어마한 돈을 손에 쥐고, 또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요즘에는 각성자들을 교육하는 기관이며 방법이 체계화된 덕에 사망률 또한 초창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내가…, 내가…!”

사내의 인생은 그야말로 시궁창이었다.

부모에게 버려졌고, 고아원에서는 수도 없이 맞으며 자랐다.

이곳을 싼 월세로 내어준 주인아주머니의 착한 마음씨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길바닥을 헤매다 거지가 됐거나, 죽었을지도 모른다.

늘 각성자를 부러워했다.

자신도 그들처럼 각성을 했다면 이토록 바닥을 기진 않았을 텐데.

“하, 하하…, 하하하…! 아하하…, 쿨럭, 쿠웨엑!”

미친놈처럼 웃다 사레에 들려 토하기 직전까지 기침을 해도, 만면에 띤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기뻐하다 비로소 자신에게 생긴 능력과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각성자가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첫 걸음.

“사, 상태창…!”

RPG 게임을 하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상태창.

각성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 중 하나인 그것이 눈앞에 솟구쳤다.

“아…….”

제 신체를 수치화한 스텟들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그의 얼굴에 실망이 깃들었다.

처참했다.

무엇 하나 두 자릿수를 넘어가는 게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그, 그래. 그럴 수 있어. 난 운동 같은 걸 싫어했으니까….”

그는 비만이다.

그것도 아주 고도비만.

고개를 내리면 산봉우리처럼 튀어나온 뱃살 때문에 발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능력치가 처참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니까.

살도 빼고, 열심히 훈련하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각성자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재능, 특성이다.

그는 상태창 가장 아래에 위치한 특성칸을 살폈다.

[등가교환(SSS)]

“오, 오오오오…!”

S, A, B, C, D, E, F.

가장 꼭대기에 있는 알파벳이 박혀 있다.

그것도 세 개나.

“이, 이게 가능한가?”

헌터에게 주어지는 능력 중 가장 강력한 등급이 S급일 텐데.

“그렇다는 건…, 내가 처음?”

처음.

이 얼마나 값진 울림인가.

자신이 기나긴 헌터사에서 S급을 뛰어넘는 능력을 개화한 첫 번째 각성자라는 것 아닌가!

“우헤헤헤!”

이거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S급 헌터 손시우를 밀어내고 자신이 그녀의 옆에 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 우오옷…!”

자지가 발딱 섰다.

튀어나온 뱃살보다 짧아서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게 느껴진다.

그는 애써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직 특성의 이름과 등급만 확인했을 뿐, 저것이 가진 능력의 요체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의 특성 부분을 가볍게 건드려 보았다.

[등가교환(SSS)]

당신에게만 보이는 거대한 천칭을 소환합니다.

당신이 가진 것과 갖고 싶은 것, 이 두 가지를 각각 매달아 평행을 이룰 경우, 이를 교환할 수 있습니다.

“…….”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몇 번이고 읽고 또 읽고서야 어떤 능력인지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가진 걸 내어주고, 상대방의 것 중에 가지고 싶은 걸 가져온다는 거네….”

사내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 씨바알…!”

변변찮은 것 하나 가진 게 없는데, 대체 뭘 내어주고 뭘 가져오라는 거야!

분노가 폭발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이젠 능력마저 비웃는 것만 같아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그는 부풀었다가 금세 쪼그라든 희망과 함께 다시금 이불 속으로 귀환했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너튜브를 새로고침 하다가 알고리즘이 새로운 영상을 띄워주었다.

그녀의 영상을 하도 보았기 때문인지.

헌터 육성을 전문으로 하는 한국 대학교 여의도 캠퍼스.

그곳에서 그녀의 남편인 손시우가 특강을 했던 영상이었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그녀를 가진 사내.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저놈과 내 몸 자체를 교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를 먹더라도 그가 가진 지위, 힘 그리고 그녀까지 얻을 수 있다면 상관없을 텐데.

하지만 불가능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그와 비슷한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건데, 가능할 리가 있나.

“개새끼, 부러운 새끼….”

온갖 욕지기를 내뱉으며 영상을 클릭하는 사내.

댓글에 욕이라도 한 바가지 시원하게 싸질러주기 위함이었다.

영상에서 손시우는 그렇게 말했다.

[저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왜냐고요? 젊음을 가졌으니까요. 젊음이란 건 정말 무궁무진한 겁니다. 뭐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거든요. 하하하! 거짓말이 아닙니다. 제가 가진 걸 부러워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전 지금 제가 가진 걸 전부 포기하고 젊음을 얻게 해준다고 하면 당장 거래에 응할 겁니다. 그만큼 젊음이란 건….]

손시우에 대한 온갖 악의를 키보드로 쳐내고 있던 사내의 손가락이 멈췄다.

있다.

자신은 가졌지만, 그에게는 없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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