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120)

[S급 헌터, 수호자 손시우 씨가 이끄는 파티가 베트남의 S급 던전을 성공적으로 공략하여….]

손시우.

내 이름이다.

대한민국에 딱 다섯 명밖에 없는 S급 헌터.

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한 영웅에게 수여하는 수호자의 칭호를 부여받은 최고의 헌터.

7년 연속 헌터들의 롤모델 1위.

7년 연속 대한민국 브랜드 평판 지수 1위.

이렇듯, 모두에게 선망받는 나는.

“야, 재식아. 오늘 저녁에 술 한 잔… 아, 가족들이랑 놀러 간다고….”

“병규야, 오랜만에 저녁이나 한 끼, 아…, 해외라고.”

“상철아, 부탁하마! 오늘 술 한 잔만 마셔주라! 여보세요? 여보세요? 야, 이 새꺄!”

집에 들어가는 걸 무척이나 싫어한다.

“하아….”

전화번호부에 남은 몇 안 되는 친구 놈들에게 전화를 쭉 돌렸지만, 전부 까였다.

내가 지들한테 먹인 밥과 술이 얼마인데.

심지어 그 자식들 힘들다고 할 때마다 들어준 이야기들을 엮어 영화로 만들면 열두 편이 시리즈로 나올 거다.

“에휴.”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향했다.

대문 앞에 얼굴을 들이밀자, 나를 알아본 AI가 문을 열어주었다.

[손시우 님, 귀가를 환영합니다.]

딱딱한 기계음을 들으며 궁궐 같은 저택에 들어섰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불 꺼진 거실.

싸늘하다.

“…….”

2층에 있는 아내의 서재로 발걸음을 옮긴다.

똑똑!

-들어와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당장에라도 타오를 것만 같은 붉은 머리칼의 여인이 책상 앞에 앉아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다.

내 마누라다.

“여보, 나 왔어.”

“…고생했어요. 씻고 쉬어요.”

그녀는 나를 힐끔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곤, 멈췄던 서류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분명히 말하지만, 난 조금 전에 베트남에 있는 S급 던전을 깨고 돌아왔다.

그곳은 S급 헌터도 까딱 잘못하면 목숨을 잃는 사지(死地)다.

남편이 이웃 나라 돕겠다고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왔는데!

“더 할 말이라도 있어요?”

“아니…, 그냥 오늘도 바쁜가 해서.”

그녀는 깍쟁이처럼 쓰고 있는 안경을 깊게 눌러 쓴 뒤, 기다랗고 고운 손가락으로 서류 더미들을 가리켰다.

“네, 바빠요.”

응, 그래.

바쁘구나.

바쁘면 어쩔 수 없지.

가정보단 일이 먼저인 게 맞지, 응.

“고생해.”

절대 올라가지 않을 것처럼 내려앉은 입꼬리를 강제로 말아 올리며 웃는 얼굴로 나왔다.

“후우.”

입이 쓰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나에게는 마누라만큼, 아니 조금 전부터 마누라보다 소중하게 된 딸이 있다.

어려서부터 애지중지 키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딸.

3층에 있는 딸의 방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문고리를 손에 쥐었다.

“아차차.”

노크 안 하고 문 열면 다신 안 본다고 했었지, 참.

똑똑똑!

“딸~ 아빠 왔어요!”

“…….”

대답이 없다.

감각을 일깨워 방을 살펴보니 인기척이 느껴진다.

분명히 안에 있는 게 맞는데.

“딸~ 자니?”

대답이 없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저혈당 쇼크라던가, 공부에 매진하다가 코피를 흘린 채 쓰러진 건 아닐까.

“딸~ 아빠 잠깐 들어갈게.”

문고리를 잡아 돌리려고 하던 그때.

덜컥!

문이 열리더니 딸내미가 튀어나왔다.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데 자꾸 왜 부르는데.”

“아니…, 아빠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인사는 해야지….”

“…고생했어.”

그 말을 남긴 채, 딸내미는 방 문을 쾅 하고 닫고선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춥네.”

보일러를 잘 안 돌리나.

소름이 오소소 돋은 팔을 문지르며 계단을 내려가 마당으로 향했다.

커다랗게 지어진 개집이 보인다.

“뽀삐야!”

딸내미가 어릴 적에 하도 키우고 싶다고 해서 데려온 녀석.

사람 나이로 치면 팔순에 가깝지만, 나에게는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녀석이다.

몸을 반쯤 밖에 내놓은 채로 잔디밭에 누워 있는 녀석의 등과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주었다.

짜식, 내 손맛이 그리웠을 거다.

“우리 뽀삐, 아빠 안 보고 싶었쪄요? 우쭈쭈!”

뽀삐의 시선이 느릿느릿하게 이쪽으로 향한다.

“멍.”

그러고선 다시 돌아가는 머리.

“…….”

이젠 키우는 개마저도 나를 무시하는구나.

인생이, 참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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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밥을 차려 먹었다.

마누라는 바쁘니 나중에 알아서 먹겠다고 하고, 딸내미는 다이어트 중이라 안 먹는단다.

내가 먹은 그릇들을 설거지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가족이 맞나…?”

내가 생각했던 가족은 이런 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모르겠다.

나보다 더 뜨겁고 정열적이었던 마누라는 어느새 식어 사랑보다 일이 소중한 워커홀릭이 되어버렸고, 아빠, 아빠 하며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딸내미는 방에 틀어박혀서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는다.

대체 무엇이 내 딸과 마누라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진짜 모르겠네….”

내가 무언갈 잘못해서 그런 거라면 이해를 하겠는데, 잘못한 적이 없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논쟁거리가 생기면 언제나 져주는 쪽을 자처했고, 두 사람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 해줬다.

바람을 피운 적도 없고, 가정에 소홀했던 적은 단언컨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이상과 현실은 이토록 다르구나.”

일찍 부모님을 여읜 탓인지.

어릴 때부터 단란한 가족을 꿈꿨다.

어렴풋하게 남은 부모님과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그런 가정을 다시 이루겠다고, 이루고 싶다고 소망했다.

그녀와 결혼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낳았을 때만 해도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는 도중이라고 생각했는데.

하하호호 웃으며 도란도란 모여 앉아 식사도 하고, 나들이도 가는 행복한 생활이 이어지리라 믿었건만.

알 수 없는 배신감에 몸서리가 쳐진다.

“후우….”

생각이 깊어질수록 시간 또한 깊어져 갔다.

주방 식탁에 앉은 채로 새벽이 찾아왔다.

혼자 술이나 한잔 할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마누라는 술 냄새를 싫어한다.

잠이라도 같이 자려면 술은 포기해야겠지.

“슬슬 잘까….”

가볍게 샤워를 마치고 안방으로 향하니 서재에 있던 아내가 침대 한쪽에 누워 자고 있다.

가벼운 슬립 웨어 차림.

그 안으로 비치는 육감적인 몸매에 목울대가 울렁거릴 정도로 침을 삼켰다.

남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성욕이 죽는다던데, 난 왜 계속 솟구치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눈앞에 저런 여인이 잠들어 있으면 누구든 성욕의 노예가 되는 건 당연한 건지도.

산봉우리처럼 우뚝 솟은 아랫도리가 이대로 잠들 수 없다고 말을 걸어왔다.

“여보…, 자?”

“네…. 당신도 어서 자요.”

끈적한 물음을 차단하는 담백한 대답.

이에 나는 물러서지 않고 침대 위로 올라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지 말고…, 오랜만에 어때…?”

이불 너머, 얇은 옷차림 속에 잠든 풍만한 가슴을 향해 손이 꾸물거리며 나아간다.

원하는 목적지에 당도했을 즈음.

“왜 이래요, 정말.”

쌀쌀맞은 음성과 함께 내쳐지는 나의 손.

그녀는 이불을 더욱 꽁꽁 싸매며 등을 돌렸다.

“내일 아침 일찍 회의가 있어요.”

“그래….”

그렇구나.

그녀는 알고 있을까.

그 대사만 벌써 7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는 걸.

잠깐 흥분했던 감정이 단숨에 땅바닥에 처박혔다.

잠든 그녀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다.

조금 전 눈길만 주었던 양주 한 병을 꺼내어 주방으로 향했다.

그곳엔 선객이 있었다.

“딸…?”

냉장고를 뒤적이며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잔뜩 품에 안은 딸이 인상을 찡그리고 서 있다.

저 얼굴을 표현하면 ‘아, 씨발. 딱 걸렸네.’ 정도가 아닐까.

뭐라 말하기도 전에 얼굴을 푹 숙인 채 3층에 있는 제 방으로 줄행랑치는 딸내미.

“…….”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몸을 조여온다.

다이어트 때문에 안 먹는다더니.

“그냥 나랑 먹는 게 싫었던 거구나.”

아직 술은 마시지도 않았는데.

속이 왜 쓰릴까.

* * *

오늘은 강남 한복판에 나타난 A+급 던전을 공략했다.

던전 환경이 덥고 습한 정글이었던 터라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나를 제외한 모두가 엄청나게 고생했다.

던전 앞에 모여든 기자들과 형식적인 인터뷰를 나눈 뒤, 쉬고 있는 대원들에게 향했다.

“다들 고생 많았다!”

“대장도 고생하셨수.”

“고생하셨습니다!”

조금씩 살아나는 표정들.

“오늘 내가 한 턱 쏠 테니까 다들 한 잔 어때?”

이때가 기회다 싶어 외쳤지만.

“아, 죄송. 오늘 결혼 기념일이라 일찍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나도 오늘 가족들이랑 외식하기로 했수.”

“전 여자친구….”

돌아오는 건 거절뿐.

어릴 때는 던전 공략이 끝나면 뒤풀이가 필수였다.

내가 가고 싶지 않다고 해도 주인공이 빠지면 섭하다며 우루루 몰려가 다음날 해가 밝을 때까지 마시는 게 일상이었는데.

“아, 그래…. 아하하! 나도 가족들이랑 저녁 먹기로 했었지, 참!”

그들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도록, 어색하게 웃으며 거짓말을 내뱉는다.

모두가 하나둘씩 떠나가고, 넓은 공간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제 다들 그럴 시간은 없는 거구나.”

새삼 깨달았다.

모두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었다.

누군가의 남편, 아내가 되었고 자식들의 아빠, 엄마가 되었다.

모두에게 가정이 생겼다.

예전처럼 우리가 한데 모여 웃고 떠들 수 있는 시간은, 없어졌다고 봐야겠지.

모두가 성장하고,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에서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변해버린 마누라와 딸내미가 떠오른다.

“어쩌면…, 내가 문제일지도.”

그들의 변화는 당연한 거였고, 변하지 않은 내가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눈박이들이 모인 곳에선 양눈박이가 이상한 사람이 된다고 했던가.

나는 문득 이곳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단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 * *

강남에 위치한 프라이빗 바.

회원권이 없으면 입장조차 불가능한 상류층들을 위한 장소.

“어머,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렇게 됐네요.”

겸연쩍게 웃으며 마담이 안내해주는 룸으로 들어선다.

같이 마실 사람이 없어 혼자 술 마시러 왔다.

포장마차에서 소주나 마시고 싶었지만, 얼굴이 너무 알려진 탓에 그럴 수도 없다.

개방된 장소에서 혼술하고 있다간 다음 날 아침 기사의 헤드라인 제목이 이렇게 될 것이다.

[S급 헌터 수호자 손시우, 포장마차에서 혼술하는 모습 포착. 혹시 무슨 문제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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