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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244화 (244/250)

[244화] 12장-마교

"왜 그런 표정인가? 본녀가 그대의 스승의 물건을 탐하기라도 할것같나?"

"..."

솔직히 그런 의심을 하긴 했지만 그랬다고 말할순 없었...

"...귀한 물건이긴 하니까요."

"학습이 생각보다 빠르군.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단 말이지."

방금 전의 간단한 사회생활에서도 불길한 기운을 내뱉었던 그녀의 성격이 생각나 서둘러 대답을 바꿨는데 아무래도 정답이었던 모양이었다.

정작 솔직하게 의심했던 것에 대해서 불쾌함은 느끼지 않는 것 같았고.

"귀한 물건인 것 같긴 하지만 본녀에겐 딱히 쓸모도 없는 물건이네. 겨우 이런 야명주 하나 가지겠다고 그대와 척을 지는 것은 수지타산이 안 맞지."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면 다행입니다."

"처음부터 그런 내용의 거래 아니었나. 본녀는 약속을 어기는 걸 좋아하지 않아."

...두 가지 의미가 한번에 담긴 말이었다.

그러니까 나도 그 내용을 제대로 지키라는 의미겠지.

-물끄럼

나는 내 손에 들린 여우구슬을 바라봤고 그 안쪽이 확실히 깨끗해진 상태인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검붉은색의 이질적인 기운은 없어지고 평상시 채워져 있던 푸른색 기운만 남아 은은하게 주변을 비추는 모습은 내가 지난 3년간 지니고 다녔던 구슬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걸로 스승님도 무사해진 거겠지.'

워낙 멀리 있어 스승님의 상태를 파악할 순 없지만 아마 이제 괜찮으실 거다.

이 구슬의 상태가 곧 스승님의 상태라고 했으니 아마 본체에서도 마의 기운이 빠져나간 상태겠지.

"...그러면 옆방에 있는 일행에게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그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구슬의 상태를 확인한 뒤 몸을 틀어 방에서 나가려고 했으나 천마의 말에 문고리 앞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허락해주신다면 돌아가겠지만.. 허락해주시겠습니까?"

"글쎄. 어떨 것 같나?"

대화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냥 시원하게 말 좀 해주면 좋겠는데.

앞으로 저 성격에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갔다 오겠습니다."

"그래. 작별 인사 잘 하고 오게."

천마의 말을 듣고 작게 눈을 한번 감은 뒤 그녀의 방을 나가 옆방에 있는 여소천에게 찾아갔다.

-벌떡!

"어, 어떻게 됐어요?"

그녀는 안절부절 못한 채로 앉아 다리를 떨다가 나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다가왔다.

아마 혼자서 걱정을 많이 하고 있던 모양.

"...여기요."

나는 말없이 여소천에게 깨끗해진 여우구슬을 건넸다.

"아.."

여소천은 눈에 이채를 띄며 여우구슬을 받아 들었지만 순수하게 기뻐하지 못하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깨끗해진 여우구슬은 일이 잘 끝났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지만 다른 말로는 이제 시작이라는 의미이기도 했으니까.

"...스승님한테 전해주세요."

"...당신은.."

"..."

"...알았어요."

대답이 없는 내 모습을 보고 충분히 상황을 이해했는지 여소천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구슬을 받았다.

역시 사람은 각오를 아무리 해도 당장 앞에 닥치면 상황이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각오를 하면서 들어왔는데도 정작 상황에 직면하니까 이러는 모습이라니.

심지어 여소천은 마교에 들어오기 전에 앞에서 바로 방금 전 용기까지 복돋아주지 않았던가.

-물끄럼

"...잘 지낼 수 있죠?"

"이제 와서 그쪽이 그렇게 물어보면 어떡해요."

"그.. 아까 말 했지만 그냥 괜히 뭐 하려다가 사이 나빠져서 이상한 짓 당하지 말고.. 천장의 무늬나 창밖에 별 모양이라도 세면서 버티고 있으면 우리가 밖에서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다치지 말고 잘 지내야 해요?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알았어요 알았어."

나는 이제 와서 걱정이 몰려왔는지 애 소풍보내는 엄마 마냥 내 몸을 이리저리 더듬는 여소천의 손을 잡고 내려놨다.

"제가 안전한 곳에 있는 동안 혈교도 제대로 마무리하고 오세요. 돌아갈 때는 멸망이니 뭐니 그런 섬뜩한 이야기 더 안 듣고 싶네요."

"네.. 아마 가능할 거에요. 놓치긴 했지만 엄청나게 큰 타격을 입힌 건 확실하고.. 영혼을 조각 내놨다는 것도 그때 상당수가 소멸한 걸 확인 했거든요. 정작 중요한 마무리를 못해서 불안한 거지.. 한번만 꼬리를 다시 잡아내면 확실히 처리할 수 있어요."

"그러면 다행이네요."

그래도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놓쳤다길래 다 망친 줄 알았는데 딸피에서 놓쳤다는 것 같으니 조금만 더 고생하면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지하실에 감금 당해도 잘 협상해서 어떻게 최소한의 운동은 하셔야 해요..? 사람이 몸을 너무 안 움직이면 근육이 망가져서.."

"아니 알았다니까 자꾸."

조언은 알겠는데 이러니까 진짜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지 않은가.

...아니라곤 못하겠지만.

"...뭐 당신이 그때그때 알아서 판단할 테니까.. 저는 이만 가볼게요.."

"저 없다고 너무 외로워하지 마시고요."

"...당신 스승님이랑은 잘 놀아 드릴게요."

"그렇다면 고맙고요."

나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여소천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기왕 마지막으로 보는 거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스승님을 챙겨준다니 고마운 것도 진심이었다.

스승님도 내가 없으면 외롭긴 하시겠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랑도 좀 지내봐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스승님이랑 평생 같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끼익

"...잘 있어요?"

"...잘 갔다 와요."

-쿵..

여소천은 그렇게 말하며 방 밖으로 나갔다.

이제 와서 마교에서 여소천을 붙잡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혹시 붙잡는다고 해도 천마가 나서는 게 아닌 이상 여소천이면 뚫고 나갈 수 있을 거고.

그러니까 이제 마교에 남은 건 정말 나 뿐.

'...오랜만에 혼자네.'

여소천이 떠난 뒤 적막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방 안에서 아직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장 옆방으로 가면 천마가 있으니 혼자는 아니겠지만

조금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야 하나.

'진짜 무슨 생각으로 혼자서 튀어나온 건지.'

의자에 털썩 앉아 중원에 나온 뒤로 있던 지난 3년간의 일을 생각했다.

영문도 모르고 이런 위험한 세계에 떨어진 뒤 운 좋게 스승님에게 거두어져서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성장했고

심심하다는 이유로 멋대로 그런 위험한 세계로 뛰쳐나왔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겨우 살아남은 거지 아니었으면 진작에 어디서 시체로 굴러다녀도 이상하지 않은 짓이었다.

좋은 일만 있던 건 아니지만 이 세계의 위험도를 생각하면 용케 그 정도 만으로도 잘 살아남았다 싶을 정도.

그러다가 이 세계에 끌려온 이유도 알게 되고

그렇게 욕하던 천지신명이 사실 알고 보니 열심히 챙겨주던 걸 알게 되고

갑자기 부인이 3명.. 아니 4명까지 늘어나고..

'...옛날엔 이런 식으로 살게 될지 몰랐는데.'

설마 내 몸의 능력치가 몽땅 섹스로 몰려있었을 줄이야.

예전부터 심상치 않게 성장하는 아들놈의 기세가 심상치 않긴 했지만

그땐 '어차피 쓸 일도 없는 게 커봤자 뭐가 좋다고' 라고 생각했었다.

솔직히 쓸데없이 크기만 하면 혼자서 생활할 때 불편한 점이 꽤 있어서 그랬었는데

이렇게 문란한 몸이 될 줄 알았으면 꽤 괜찮았을..

'...애초에 안 그랬으면 이렇게 될 일도 없지 않았나?'

-물끄럼

나는 묘한 눈으로 지금은 얌전히 있는 내 고간 사이를 바라봤다.

생각해보니까 내가 침대 위에 올라가면 두 팔이 잡힌 상태로 여자처럼 신음이나 내면서 정액을 쥐어 짜이는 것밖에 못하는 게 애초에 이놈 때문 아닌가?

쓸데없이 커서 민감한 탓에 허접이라는 말도 부족할 정도로 계속해서 절정에 올라대고

본체가 쾌락의 여운을 느낄 틈도 없이 다시 회복하는 것 하며 횟수까지 수십 번은 거뜬한 게..

"..."

에라이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 천마 한 명이랑만 하면 되니까 몸에 부담은 조금 덜하지 않을까.

심지어 성격만 조금 이상할 뿐이지 아직은 처녀였다.

아직은 남자 경험도 없을 테니 어떻게 잘 하면 당분간은 좀 편하게 지낼 수 있을지도.

아 물론 주제넘게 내가 잠자리에서 주도권을 가진다니 뭐니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자존심이 어디 한 두 번 박살 나봐야지 아직도 그 정도로 자존심이 남아있었으면 그것도 일종의 병이다 병.

나는 그냥 얌전히 밑에 깔리는 게 답..

'아니 이건 또 뭔가 이상한데.'

하도 섹스에 찌든 삶을 보냈더니 머리가 어딘가 이상해진 느낌이었다.

왜 당연히 바로 천마랑 바로 섹스를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몸도 주겠다고 내 입으로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처녀가 바로 몸을 요구할 리도 없지 않은가.

아무리 그녀가 나한테 첫눈에 반했고 내가 몸이 야하니 뭐니 해도.

일단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부터 가저야 하는 게 당연한 순서였다.

'응. 너무 긴장하지 말자.'

이러니까 내가 무슨 강간 못 당해서 안달 난 사람 같지 않나.

성적 취향이 떳떳하지 못한 건 인정하지만 나는 평범한 순애가 좋았다.

-짝짝

"좋아. 가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심호흡을 마치고 뺨을 두어 번 친 뒤 정신을 맑게하며 다시 천마의 방으로 돌아갔고

"일행의 배웅을 마치고 돌아왔.."

"아. 왔군. 자, 한번 입어보게나. 만일 맞지 않으면 사람을 불러서 수선해야 하거든."

-펄럭

문을 열자 순식간에 내게 옷 한 벌이 날아 들어왔다.

옷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서둘러 받아 들자 옷의 외형이 눈에 들어왔는데

검은색 바탕에 중간중간 들어있는 금빛 자수가 인상적인 꽤 멋들어진 복장이었다.

"...이건.."

"앞으로 그대가 입고 활동해야 하는 옷이네. 본교에서 괜히 다른 이들과 시비가 걸리면 불편하지 않겠나. 소교주의 문양을 박아 놨으니 장로라고 해도 그대를 쉽게 건드리지 못할 거야."

"...예?"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소교주라고 하지 않았나?

"...저기 소교주라면.."

"본교의 소교주를 의미하는 것이지. 지금까지 공석이었으니 혹시 그대가 다른 누군가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네."

"........예?"

진짜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 거지?

내가 마교의 소교주라고?

갑자기?

"정식으로 임명식은 준비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테니 우선 옷만 맞춰두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게."

"시, 신교의 하늘이시여 잠시만요. 제, 제가 알기로 소교주는 교주의 직계 자식이나 그 후계자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뭐, 그렇긴 하지. 그런데 아직 본녀에게 딱히 자식도 없고.. 누군가에게 본교를 계승해줄 생각도 아직 없으니 그대가 맡아도 문제는 없을 거야.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겨서 그대가 곤란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네. 그런 일은 없을 테니."

"하, 하지만 천마신교는 강자존 아닙니까? 저 같은 범인이 신교의 소교주의 자리에 오른다면 분명 불만의 말이 나올.."

"감히 누가 그런단 말인가?"

-싸아

다시 한번 주변의 공기가 내려앉았다.

아까처럼 내 몸에 절로 소름이 돋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기 위한듯한 한기.

"본교의 주인인 내가. 본녀의 후계자로 지정된 자리에 내가 원하는 이를 앉히겠다는데 감히 그 누가 불만을 표하지?"

-싱긋

주변에 느껴지는 한기와 함께 천마의 얼굴에 특유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누구도 반론을 제시할 수 없을 차가운 분위기.

그렇게 나는 하루아침에 말도 안되는 감투를 쓰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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