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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242화 (242/250)

[242화] 12장-결심

검후님의 제자에게 불길한 기운을 느낀 것도 잠시

어차피 이제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그녀와도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멀어졌다.

이제 마지막으로 봐야 하는 사람은..

'스승님..'

쓰러져 계신 상태라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기분 정도는 낼 수 있었다.

-스륵

쓰러진 상태로 숨만 쉬고 있는 스승님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었다.

스승님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천마가 스승님까지 같이 모시고 살아줄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그건 이쪽에서 사양이었다.

내가 천마한테 그런 짓을 당하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거니..

'...그건 내가 싫어.'

스승님을 옆에 두고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다.

사실 지금 나와 스승님의 관계도 일반적인 상황이었으면 주변에서 아주 난리가 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여소천은 이미 알고 있었고, 검후님은 나한테 큰 빚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고, 당아영은 스승님한테 압도 당한 탓에 별 말을 할 사람이 없던 거지

천마한테도 그게 먹히리란 보장이 없었다.

나와 스승님을 보고 더럽다면서 해코지를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니

기회를 노린다면 천마와 호감도를 더 쌓은 다음에 하는 게 맞았다.

차라리 여소천 말처럼 천마를 나한테 홀딱 반하게 만들어서 내가 요구하면 다 들어주는 순종적인 여자로 만든 다음에 스승님을 보고 싶다고 해보는 게 안전하긴 할텐데..

'...그게 쉽지 않아서 문제지.'

감금까지 해두고 원치 않는 자식까지 낳게 했던 여자다.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안된다.

원래 생각해볼 수 있던 계획이 잠자리에서의 주도권은 어차피 내가 가져올 수도 없으니 그건 내주고 대신 연애의 주도권이라도 가져오는 것이었는데

감금 당한 상태에서 주도권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적어도 뭐 몸을 움직이거나 반항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주도권이 의미가 있는 거지

주는 대로 먹고 해달라는 대로 다리나 벌려야 하는 상황에서 주도권이 있어봤자 뭘 먹고 싶다. 오늘은 살살 해달라 정도가 끝이다.

아니면 다른 계획으로 아예 나한테 정을 떨어지게 해서 나를 버리게 만들거나.

'...어렵네 진짜.'

전자는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 라면 이 경우는 실패했을 때 뒷감당이 안된다.

그냥 나한테 관심이 떨어져서 내쫓을 정도로만 호감도를 깎아야 하는데 거기서 덜 했다간 매맞는 남편이 돼버릴 수도 있고 더 나가버렸다간 아예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로우리스크 로우리턴vs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 된 상황.

그리고 내 성향 상 선택할 건 당연히 전자였다.

난 안전한 게 좋다.

'...살아만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결국 내가 가야 하는 길은 천마의 호감도를 최대한 올리되 주도권을 가져볼려고 노력해보는 것.

뭐 사이만 좋으면 언제든 기회는 있을 테니까.

한 10년쯤 계속 빌면 지쳐서 한번 쯤 만나보게 해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때까지 내가 이 세계에 계속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러면..

'...나중에 봬요 스승님.'

-쪽

이걸로 스승님과도 작별이다.

이제 정말 남은 건 천마를 만나는 것 뿐.

어쩌면 이날의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뒤는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스승님을 영영 떠나보낼 바에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가능성이 1%라도 있는 편이 더 나았다.

비록 그 가능성을 위해 내가 미래에 좀 고생을 할지도 모르지만

뭐, 천마 정도 되는 여자면 고생 좀 할만하지 않겠나.

일단 외모 자체는 이상형에 가깝고 취미도 비슷하니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하자.

혹시 모르지 않나. 알고 보면 남편한테 의외로 자상할지도.

"준비 끝났어요? 뭐 싸 들고 갈 짐 같은 건 없어요?"

"필요한 건 웬만해선 몸에 지니고 다니는 편이라."

"그래도 앞으로 잘 지내봐야 하는데 혼수 같은 거라도 해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반지라거나."

"반지라.."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던 게 생각났다.

-스륵

"..."

"...뭐에요 그 반지는?"

"...천마가 줬어요."

"..."

여소천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반지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머리를 짚었다.

"...뭐 준비할 게 없네요. 그냥 가죠."

"...그러죠."

아무래도 천마의 애정 표현을 보고 할 말을 잃은 모양이었다.

"...아. 그리고 전해 달라던 말이 있었는데."

"누가요?"

"그 하얀 마녀요. 당신이 잠깐 기절해있는 동안 당신한테 말 좀 전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직접 말 걸면 당신이 죽어버리겠다고 했다면서."

"..."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왔다.

물론 내가 그동안 성녀님한테 받을 거 많이 받고 필요할 때만 찾는 등 썩 좋은 짓만 했냐고 묻는다면 떳떳할 순 없었지만

애초에 성녀님도 나한테 원하는 게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었던가.

다른 것도 아니라 내 인생 자체를.

성녀님이 주는 호의들도 내가 어떻게든 이 위험한 세계에서 살아남고 마지막에 자기네 세계로 넘어와서 종마로 살아주길 원해서 제공해주는 것들인데 나나 성녀님이나 서로에게 순수한 호의만 베풀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실제로 이제 계약에 묶여서 시간만 지나면 저쪽 세계로 아예 끌려가야 하는 입장이고.

어찌 됐든 앞으로 10~20 년 정도 뒤에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될지 추측도 불가능한 시간 동안 인생을 바쳐야 하는 신세로 확정된 상황에서 성녀님 때문에 스승님이 저렇게 됐다는데 내 상태가 멀쩡할까.

최소한 끌려가기 전까지라도 편안하게 살겠다고 그동안 그 고생을 한 거였는데.

'...그래. 뭐.. 일부러 그러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쉽게 용서할 수 없는 건 여전했다.

"무슨 말이었는데요?"

혹시 여소천한테 대신 사과라도 한다던가 설득이라도 해달라고 요청한 거라면 다시 쓴소리 한번 해주려고 머리를 잡고 있다가

"...자기는 어떤 취급을 받아도 되니까 필요할 땐 언제든지 불러달라던데요?"

"...네?"

예상한 것과 살짝 빗나가는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필요할 때만 부르면서 이용해먹기 좋은 여자 취급하는 것도 괜찮고.. 심심할 때 불러도 되고 그냥 화날 때 불러서 감정쓰레기통으로 써도 좋으니까 언제든 필요하면 불러달라고 하더라고요."

"..."

당장 이 말을 듣고 화가 풀리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더 화가 나진 않았다.

...뭐 마교에 가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내가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서 정말 성녀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가면 천마랑만 지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고 계약 때문에라도 평생 한마디 안하고 사는 건 어차피 불가능했으니까..

"...생각해 보죠 뭐."

일단 가능성만 열어둔 정도로 두겠다.

여전히 스승님을 저렇게 만든 건 쉽게 용서할 수 없었으니까.

* * *

마교까지 가는 게 예전만큼 오래 걸리진 않았다.

스승님을 치료하는 일이지만 스승님 본인을 데려갈 필요는 없고 여우구슬만 가져가서 정화해도 알아서 본체까지 연동되기 때문에 여우구슬만 가져가도 충분했다.

지금 여우구슬이 사실상 스승님의 분신이기에 가능한 상황.

스승님을 데려가야 했으면 아마 가는 것도 꽤 힘들었을 것이다.

여소천이 해야 할 일이 2배로 늘어났을테니까.

그리고 이제 예전과 달리 곤륜 앞에서 멈출 필요도 없고

어차피 천마를 만나야 하는 게 목적이었으니 마교 바로 앞까지 여소천이 데려다 주면 오고 가는 시간이 한참 단축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곤륜에서 멈춰서 마차를 탔던 이유가 천마가 여소천을 감지할지 몰라서 였는데 이미 이 상황까지 온 이상 여소천이 천마를 경계해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어차피 매를 맞아야 한다면 빨리 맞자는 생각에 그렇게 바로 마교 앞까지 날아오긴 했지만

-쿵쿵쿵쿵

'..으아아아....'

정작 너무 빨리 와버리니 마음의 준비가 덜 됐다는 문제가 있었다.

여소천에게 실려서 이곳에 오는 동안 나는 기절한 상태라서 사실상 시간만 한참 지나있지 거의 집에서 눈을 감았다 뜨자마자 마교 앞에 있는 상황이었다.

이게 원래 주사를 맞을 각오를 하고 들어가는 거랑 정작 주사바늘이 눈앞에 있을 때 느껴지는 게 다르듯이

집에 있던 바로 전까지만 해도 천마한테 가도 될 정도로 각오가 되어있었는데 정작 바로 앞까지 오니까 심장이 멋대로 뛰고 호흡이 흐트러진다.

내가 앞으로 여기서 살아야 한다고?

그 성격 이상해 보이는 여자랑 매일 살을 부대끼면서 살아야 한다고?

앞으로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 시간 동안?

심지어 아직 하지도 않은 결혼을 여기서 당할지도 모르고..

-쿵쿵쿵쿵쿵쿵

'아으으..'

오기 전엔 온갖 강한 척은 다했는데 역시 상황이 직접 눈앞까지 다가온 상황에서까지 강한 척을 하긴 무리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짜 무섭다.

아무리 행복회로를 돌려봐도 그날 천기에서 봤던 모습은 거의 생체 딜도같은 모습이었고

꿈이라곤 하지만 내가 낳은 딸한테 내가 강간당한다는 기억도 계속해서 오버랩됐다.

내가 희생해서 스승님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만약 그렇지도 않다면?

천마가스승님을 고치지 못했는데 나는 그대로 천마한테 붙잡혀 버린다면?

그러면 나는 그냥 인생을 갖다 바친 꼴이 되는 건데?

이제 와서 돌아가자고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발걸음을 쉽게 앞으로 옮기지 못하게 만드는 덴 충분했다.

그리고 이런 내 상황을 눈치 챈 걸까.

-툭툭

"왜 그렇게 표정이 굳었어요. 다 잘 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그 여자 옆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 중 하나라니까요."

"...아무도 침입을 못하긴 하겠죠."

"설령 우리가 흡혈귀들을 못 막아도 그 여자 옆이면 당신은 무사할걸요. 뭐 그냥 안전한 별장에 피난 간다고 생각하세요."

여소천도 불안한 마음은 마찬가지일텐데 어떻게든 나를 위로해주려는 모습에 조금씩 호흡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후우.."

"진정 좀 되셨어요?"

"...언젠가 구하러 와줄 거죠?"

"싸워서 구출은 무리겠지만 설득하려고 노력은 해볼게요."

"...그 정도면 충분하네요."

여소천의 말을 듣고 가슴을 진정 시키며 마음을 다잡은 뒤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서 사람이 오나 안 오나 경계하던 무인들이 천천히 다가오는 우리를 보고 멈추라고 소리치며 무기를 내밀었고

나는 양손을 들며 말했다.

"무면금귀가 신교의 하늘을 만나 뵈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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