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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241화 (241/250)

[241화] 12장-인사

여소천을 뒤로하고 당아영과 검후님에게도 상황을 설명하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대가 내린 선택이니 나는 뭐라고 더 하지 않겠네. 그대에게 그분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모르는 게 아니니."

검후님은 늘 그랬던 것처럼 내 선택을 최우선으로 존중하셨고

"저, 전에도 말했지만.. 그냥 시키는 게 있으면 괜히 저희 생각하지 말고 순순히 따르세요.. 괘, 괜히 반항하다가 해코지라도 당하면 안되니까.. 아무리 더럽혀져도 괜찮으니까 부디 살아만 있어주.."

"아니 진짜 머릿속에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 거야 이 사람."

당아영은 예전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혹시 뭐 이상한 거 시키더라도 자기들 생각은 하지 말고 내 안위만 생각하라고.

"아니 계속 말하지만 제가 남자라니까요. 누가 보면 포로로 끌려가는 여자라도 되는 건 줄 알겠네."

"성별만 다르지 결국 그 상황이랑 똑같다니까요! 예전에야 걱정이었지 지금은 거의 확신이잖아요! 다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면서!"

"..."

말은 이렇게 하긴 했지만 사실 맞는 말이긴 하다.

천기 안에서 당했던 게 있으니 일단 강간은 당한다고 봐야 하는 게 맞고

'결혼을.. 하려나?'

그래도 아직 알고 지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설마 바로 결혼까지 가려나 싶긴 하지만 그녀의 상상에서 비롯된 천기가 그런 모습이었던 걸 감안하면 정말 결혼까지 직행할 가능성도 외면하긴 힘들었다.

은근히 계속 자식이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뭐 그 여자가 저한테 해를 끼치진 않을 테니까 버티다 보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죠. 아마 최소한 죽을 일은 없을 거에요. 감금을 좀 당했을 뿐이지 몸에 상처 같은 건 딱히 없었으니까."

"...흥. 알았어요. 걱정 안 할 테니까 알아서 다녀오세요. 혹시 죽어버리면 죽여버릴 거에요."

"이미 죽었는데 어떻게 죽여요."

"그러니까 죽지 말라고요!"

결국 당아영에게 크게 한 소리 들은 다음 살짝 먹먹해진 귀를 매만지다 말없이 5분정도 포옹을 했다.

아까는 여소천. 방금 전엔 검후님과도 했던 포옹이지만 당아영의 포옹은 좀 더 편하게 느껴졌다.

몸을 섞은 시간이 압도적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러면 인사도 다 마친 것 같으니까 마교로 갈 준비를.."

당아영과 떨어진 다음 이제 진짜 작별 인사도 끝났겠다 어떻게 스승님을 데리고 마교까지 가야 하나 고민하려는 순간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

"..."

검후님의 제자가 묶여있는 상태로 말없이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얘한테도 인사를 해야 하나?'

만난 지 이제 얼마 되지도 않은 애한테 까지 작별인사를 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남들한테 다 했는데 얘한테만 안 하면 속상할 수 있을 까봐 그냥 하기로 했다.

내가 그렇게 마음먹고 그녀에게 다가가자 본인에게 다가오는 걸 깨달은 건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제, 제가 상황을 잘 모르겠는데.. 어디 위험한 곳으로 가신다는 거죠..? 스승님을 치료하시러.."

"...뭐 대충 비슷해요."

"으, 응원할게요. 비, 비록 만난 진 얼마 안됐고.. 제, 제가 떳떳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꼭 나으셨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순진한 얘가 대체 그땐 뭘 잘못 먹었길래 그렇게 살벌하게 살기를 내뿜었는지 원.

이런 애가 좀 더 나이를 먹은 다음엔 돌변해서 자기보다 10살은 어린애의 단전을 부순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어야 사람이 그렇게 변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기특한 마음에 머리라도 쓰다듬어주려고 손을 올리려는 순간

"무, 무사히 돌아오세요. 스승님은 제가 잘 모시고 있을게요 사부(師夫)님."

"푸흡?!"

전혀 예상치도 못한 호칭이 들어왔다.

"왜, 왜 그러세요? 호, 혹시 제가 무슨 실례라도.."

"왜, 왜 저를 사부님이라고.."

"마, 맞지 않나요? 스승님의 남편 분이시면 저한테는 사부님일텐데..? 호, 혹시 아직 그런 관계는 아니셨던 걸까요? 그러면 제가 큰 착각을..!"

"...아."

그 사부구나.

흔히 쓰이는 사부님과는 한자가 달랐다.

'스승님의 남편이니까 사부님.. 맞긴 하네.'

정확히는 혼인은 아직 안 올렸지만 거의 그런 관계에 가까우니 딱히 트집을 잡을 건 없을 것 같았다.

'...아니 근데 진짜..'

이 세계에서 스승님은 거의 부모님같은 존재고 그런 스승님의 남편이면 난 지금 검후님의 제자한텐 거의 새 아버지 같은 느낌이라고 봐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자 머리가 갑자기 또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이 나이에 이만한 딸이 생길 줄이야.

심지어 몸은 이미 성인에 나보다 나이도 많은데다 정신은 13살 어린애인..

'...'

뭔가 정리를 하면 할수록 복잡해지는 것 같은데.

그냥 정신 건강을 위해 정리를 포기하기로 했다.

원래 세상엔 정리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두는 게 더 아름다운 것도 있는 법이니까.

"아니에요. 검후님이랑은 그..런 관계가 맞긴 한데 아직 혼인을 정식으로 올린 건 아니고.. 그냥 호칭이 개인적으로 부담스러워서 그랬네요.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하, 하지만 제가 스승님의 남편 분을 이름으로 불러버린다면 그건 그것대로 위계질서가 엉망이 되는걸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부님은 제가 너무 부담스러워요. 부탁이니까 그렇게 부르지 말아주세요."

"아, 알았어요.."

한자가 다르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같은 발음의 다른 뜻이 워낙 머리에 박혀있다 보니 들을 때마다 움찔하게 된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어차피 이제 그렇게 불릴 일도 없구나.

"아무튼.. 저는 가볼 테니까 그동안 검후님을 잘 부탁드리고.. 아마 당아영이 저 없다고 외로워할 테니까 사이좋게 지내주세요. 제가 언제 돌아올지 몰라서."

"스, 스승님은 그렇다 쳐도 그분은.. 제가 한 짓이 너무.."

"당아영 성격 상 이미 잊었을 테니까 괜찮아요. 당신이 기억을 되찾으면 그땐 문제가 될 수도 있긴 한데.."

"히익.."

"...뭐 혹시 진짜 되찾으면 그때 가서 알아서 하는 걸로 하죠."

사실 진짜 검후님의 제자한테 죽을뻔했던 건 내가 아니라 당아영이기도 하고

나도 단전이 박살나긴 했지만 그건 내가 아니라 빙의 전에 겪은 일이다.

그렇다고 반성을 아예 안 했으면 모를까 아주 싹싹 빌고 있으니 기억도 못하는 사람한테 계속 뭐라고 하기도 그랬다.

'솔직히 말하면 기억 못 찾았으면 좋겠는데.'

그냥 이대로 몸만 조금 성숙한 여동생?을 키우는 느낌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가 기억을 잃기 전에 내뿜었던 살벌한 분위기는 지금과 비교했을 때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진하게 농축된 광기에 물들어있었으니

괜히 그때의 기억은 안 찾는 게 서로에게 좋은 상황 아닐까.

그 성격이 다시 튀어나오면 지금처럼 다루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검후님이랑 당아영이 알아서 하겠지.'

물론 이렇게 고민해봤자 지금의 나에겐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이대로 천마에게 간 뒤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뭘 걱정한단 말인가.

그대로 평생 마교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늙어 죽을 수도 있는데.

-쓰담쓰담

"아무튼 그러면 그동안 잘 지내세요. 만난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긴 했지만 나름 애완동.. 아니 여동생처럼 느껴지던 사람이랑 헤어지려니까 아쉬운 마음이 들긴 했다.

여자는 다 짐승이라고 생각하고 경계하고 있는 탓에 뭘 더 하진 못하겠지만 세상에 꼭 여자가 몸을 섞는 사람만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렇게 그녀와도 작별인사를 끝내며 등을 돌리려는 순간

"...저, 저는 포옹 안해주세요?"

"예?"

"아, 아니 그게.. 다, 다른 분들은 다 해주시길래.. 작별의 의미인 줄 알고.."

"..."

다른 3명한테는 다 작별인사를 하면서 포옹을 했으니까 그게 그런 작별의 의미가 담긴 포옹인 줄 알았다고?

'딱히 그런 의미는 아니긴 한데..'

충분히 착각할 가능성은 있었다.

뭐 포옹이 그렇게 진한 스킨쉽도 아니고 여동생같은 관계에 포옹 정도는 할 수도 있겠지.

"제가 깜빡했네요. 자, 일로 와보세요."

뭐  저 나이 애한테 차별 대우는 안 좋을 테니까 그 정도 스킨쉽은 그냥 해주기로 했다.

그녀가 묶여서 무릎을 꿇고 있는 상태라 내가 먼저 다가갔고

-포옥

-토닥토닥

"스승님 말 잘 듣고. 제가 했던 말 기억하죠?"

"네, 네에에.."

앞의 포옹들과는 다르게 내가 그녀를 품속에 끌어안는 포옹이었다.

그녀가 서있었다면 내가 안기게 됐겠지만 내가 키가 작다고 한들 앉아있는 사람을 못 껴안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검후님이랑 비슷한 냄새네.'

아무리 스승과 제자가 이 세계에서 부모자식과도 같은 관계라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피 한방울 안 섞인 남인데 비슷한 분위기가 나는 건 신기했다.

외모도 꽤 닮은 편이기도 했고.

사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사제관계보다는 자매정도로 볼 정도로 꽤 닮은 구석이 있는 둘이었다.

검후님이 외모가 젊어서 어머니처럼 보이진 않을 테니까.

잘 쳐주면 젊은 이모 정도?

"하아.. 하아.."

...근데 왜 어디서 이상한 숨소리가 들리는 거 같지.

불길한 마음에 아래를 바라보자 검후님의 제자가 내 가슴팍에 안긴 자세 그대로 얼굴을 붉히고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오싹

뭔가 본능적으로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오싹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자세를 풀며 뒤로 물러서자 그녀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몽롱한 표정에서 다시 평상시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 그.. 모,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시네요.. 호, 혹시 어떤 화장품 쓰시는지.."

"...전 그런 거 안 써요."

"아..하하.. 그, 그러시..구나.."

...그러고 보니 잊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내 몸에서 나는 체취도 여자들이 꽤 좋아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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