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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240화 (240/250)

[240화] 12장-각오

그가 여소천의 도움으로 쓰러지듯 잠든 뒤

여소천은 그를 침대에 올려두고 거실로 돌아와 대책 회의를 시작했다.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진짜 찾으시게요?"

"찾아 봐야죠.. 이대로 저 여자가 정말 침식이 돼버리면 그건 그거대로 큰 재앙이거든요."

"...재앙이요?"

"..."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아마 그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1000년 묵은 구미호가 마에 오염된다는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냥 그대로 죽는다면 오히려 얌전한 것이고 현실적으로는 끔찍한 요괴로 다시 태어날 확률이 더 높았다.

원래 그 기나긴 수행을 끝마친 뒤엔 천상에 올라 신의 지위를 얻어야 하는 여우가 그대로 마에 물들어버렸으니 그 힘은 어마어마할 거고 심지어 지상에서 활동의 제약도 없다.

가만히 둔다면 얼마나 많은 인명피해가 일어날지 짐작조차 불가능한 상황.

...그와 그 요괴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만약에 끝까지 그녀를 고치지 못한다면 자신이 내려야 할 판단은 하나로 정해져 있었다.

아무리 그녀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게 아니라고 해도.

"...후우. 일단 전 천기를 뒤져보고 있을게요. 공동파..가 부디 아직 명맥을 유지 중이길 빌어야겠네요. 봉문중인 문파에게 찾아가는 건 큰 실례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두고 볼 수도 없으니까요."

"으음.. 예전에 알던 지인에게 한번 찾아가 보도록 하지. 실례인 건 알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어떻게든 설득을.."

[저, 저기.. 여러분..]

그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어디선가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소천이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그쪽을 바라보자

[저, 정말 죄가 죽을죄를 지었다는 건 알지만.. 요, 용사님한테 몇 마디만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당장 얼마 전 다 됐던 밥에 재를 뿌린 악마같은 여자가 주제도 모르고 모습을 드러냈..

"...표정이 왜 그래요?"

[요, 용사님이 저는 꼴도 보기 싫다고.. 먼저 말 걸면 죽어버리시겠다고.. 흑.. 흐아아앙..]

당당한 모습이었던 평소와 달리 지금은 완전 펑펑 운 것처럼 얼굴 곳곳에 지워지지 않은 눈물자국이 가득하고 눈도 팅팅 붓는 등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어, 어떻게 다시 만났는데. 얼마나 많은 은하를 뒤져서 겨우 찾은 용사님인데 용사님은 저를 기억도 못하시고 제가 하는 말은 다 거짓말 취급받고.. 제가 용사님한테 얼마나 잘해드렸는데 흑.. 흐윽..]

말하는 와중에도 다시 감정이 복받쳤는지 그대로 눈물이 다시 흘러나온다.

아까 그의 보기 드문 살벌한 모습을 봤을 때 한소리 들었겠구나 싶긴 했지만 아무래도 꽤 상처 받은 모양이었다.

"...근데 당신이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건 맞잖아요. 당신 때문에 저 여자가 저렇게 된 것도 맞고. 그를 계속 지켜봤으면 저 여자가 그한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게 아닐텐데요."

[아, 알아요.. 저도 제가 죽을죄를 지었다는 것도 알고 쉽게 용서 받을 생각도 없지만.. 제가 해야 할 일도 못해드린 것 같아서요.. 최소한 치료법이라도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다행히 이미 찾으신 것 같고..]

"아니 잠깐만. 지금은 저 사람 자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나와있어요?"

정작 저 여자가 쓰러졌을 땐 한마디도 없지 않았던가.

이거 진짜 일부러..

[용사님의 스승님한테 있던 건 막 옮겨 놓은 약한 채널이라서 그런 거에요..! 저도 나올 수 있었으면 나왔을 거라구요..! 아, 아니 죄송해요 제가 감히 뭐라고 큰소리를..]

"..."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여자지만 저렇게 약해진 모습을 보면 조금 머리가 복잡해진다.

애초에 그한테 계속 달라붙는 이유 자체도 굉장히 불순하기 그지없는 데다 그 지옥 속으로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려는 몰상식한 여자지만 그래도 그를 향한 헌신적인 마음 하나는 대단한 수준이었으니까.

좋게 말해야 헌신이지 엄청난 수준의 집착이긴 하지만..

"...뭔 말인데요."

솔직히 마음 같아선 그냥 꺼지라고 하고 싶지만 괜히 그랬다가 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여자가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을 또 저지르기라도 하면 그게 더 복잡해질 것 같아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얼토당토않은 소리면 그냥 그대로 귀 한번 씻고 잊어버리고

그래도 좀 괜찮다 싶으면 생각 좀 해보다가 전해주는 걸로.

[저, 저는 항상 용사님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언제든지 불러 달라고 해주세요.]

"...예?"

[요, 용사님이 저를 도구 취급하는 것도. 필요할 때만 찾으면서 이용해 먹기 좋은 여자로 취급하는 것도 괜찮으니까.. 요, 용사님이 제 옆에 계셔준다는 것 만으로도 괜찮으니까.. 필요하다 싶으시면 언제든지 찾으셔도 된다고.. 필요할 때 부르셔도 되고.. 심심할 때 부르셔도 되고.. 아니면 화날 때 부르셔서 감정쓰레기통으로 쓰셔도 되니까.. 부, 부디 죽어버리시겠다는 말 만큼은.. 아, 아니에요 마지막 말은 빼주세요.]

"..."

대체 이 여자한테 저 남자가 뭐길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가 이 여자를 협박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정작 저 남자한테 무서울 정도로 집착하는 건 이 여자인데.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 같긴 하지만.'

이 여자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자신이 신경 쓸 게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세계는 지금 끔찍한 몰골이고

그런 세계에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던 그를 화들짝 놀라 낚아챈 건 자신이 모시는 그분의 판단이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이미 사전에 협의를 마쳤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협의 과정이 공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하셨다.

제정신이 박힌 인간이라면 저런 세계에 좋다고 기어들어 갈 리가 없으니까.

[그, 그래서 용사님한테 전해주실 건가요..?]

"...생각해보고요."

[꼬, 꼭 부탁드릴게요. 용사님이 없으면.. 전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벌컥!

-깜짝!

그녀와 대화하는 사이 갑자기 그가 들어가 있던 방의 문이 열리더니 안에서 아까 재워서 안에 넣어놨던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놀라 옆을 바라보자 그 여자는 그새 사라진 지 오래였고

결국 남은 건 수상한 일을 꾸미기라도 하고 있던 것처럼 깜짝 놀란 채 남아있는 나 뿐.

"그, 그게요! 제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던 게 아니라.."

서둘러 그가 이상한 오해를 하지 않도록 두 손을 좌우로 흔들며 변명을 하려고 했으나..

"...가죠."

"...네?"

"...가자고요. 마교."

"네에에에에에?????"

이어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 * *

난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여소천이나 검후님이 방법을 찾아본다고 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정말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이 낮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무리 중원이 넓다고 하지만 그 정도의 마의 기운을 가진 사람을 마교 밖에서 찾기가 쉬울까.

그리고 말이 좋아서 중원이 넓으니까 한 명 쯤은 있겠다는 거지

반대로 말하면 그 한 명을 찾느라 이 넓은 중원을 전부 뒤져야 할지도 모른단 소리다.

어쩌면 없을 수도 있고.

"괜히 시간 끌다가 사람은 사람대로 못 찾고 스승님 상태가 더 악화되면 그때 가선 다른 걸 할 수도 없어요. 그냥 지금 가는 게 낫죠."

"아, 아니 괜찮겠어요? 당신 전에 천마 만났을 때 엄청 힘들어하지 않았.."

"...그 여자 때문에 힘든 것보다 스승님이 저 상태인게 더 힘들어요."

"..."

간만에 오가는 진지한 대화.

여소천은 내 표정을 보더니 뭐라고 입을 열려다가 그대로 다물었다.

지금 내 표정이 어떤 상태일지는 나도 모르겠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고.

"...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실 나쁘기만 한 건 아니거든요. 적어도 제가 천마 옆에 있는 동안엔 절대적으로 안전할 거 아니에요? 뱀파이어 로드도 놓쳤다던데. 그거 다시 잡아야죠."

"읏.."

"혹시 그놈이 갑자기 돌아버려서 마교로 쳐들어오지 않는 한 제가 위험할 일은 없겠죠. 혹시 쳐들어오더라도 천마가 그렇데 두지 않을 거고. 성격이 조금 이상할 뿐이지 설마 애인을 위험에 노출되게 두진 않을 거에요."

천마는 여전히 무서운 인간이고 천기 안에서 강간당한다는 생각지도 못한 짓을 당한 기억은 아직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었지만 그래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천마가 내게 위해를 가하진 않았다는 것.

감금 당한 탓에 햇빛을 못 보고 움직이지도 못해서 몸이 막 건강한 상태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처를 입은 흔적은 거의 없었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는 작게 긁힌 자국 정도.

미래의 나에게 상처가 없다는 것도 내가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게 해주긴 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이것이었다.

'...종류가 조금 이상할 뿐 애정은 진짜였어.'

흔히 생각하는 일반적인 애정과는 종류가 다르긴 하지만 감정 만큼은 진심이었다.

비록 미래의 천마와 지금의 천마가 같다고 생각하면 안되긴 하지만 결국 미래의 천마도 지금의 천마의 상상에서 비롯된 존재 아닌가.

아마도 내가 특별히 이상한 짓을 하지 않는 한 먼저 몹쓸 짓을 하진 않을 것 같았다.

"...지금 바로 가겠다는 거죠?"

"...그래도 다들 인사 정도는 하고 가야죠. 당분간 작별인데."

"당분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는데요?"

"그러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니까 한판 할까요?"

"...네?"

"굳이 한판일 필요는 없긴 하지만 3명이나 상대해줘야 하니까요. 제가 요즘 체력이 늘긴 했는데 20번이 넘어가면 진짜 죽을 거 같아서.. 한 명당 7번 정도면 어떻게든 버텨볼만 하겠네요."

"..."

"자. 원하는 대로 해도 돼요. 혹시 하다가 절제가 안돼서 못 멈춰도 신경 쓰지 마세요.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데 그냥 힘 좀 써보죠 뭐."

나는 옷의 양쪽 소매를 잡고 팔을 양쪽으로 벌렸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니까 이 정도 서비스는 해주는 게 좋겠지.

어쩌면 이게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르니까.

"왜 가만히 있어요. 기껏 마지막날 해주는 서비스인데."

"...됐어요."

"네?"

-와락

내가 양팔을 벌리고 여소천을 유혹하고 있는 사이 여소천이 나를 끌어안았다.

덮치기 위해 끌어안는다기보다는

정말 그냥 애인끼리 할법한 건전한 포옹이었다.

"그런 서비스 필요 없으니까 무사히 돌아오기나 하세요."

"...그러면 당신 몫까지 다른 2명한테 배분해도 돼요?"

"하. 이 사람은 대체 우리를 뭘로 보는거람. 저희가 당신이랑 교접하려고 만나는 줄 아세요?"

...아니었어?

"...왜 대답이 없어요? 표정이.."

"아, 아뇨! 그럴리가요! 저를 몸만 보고 만나진 않았겠죠!"

"...뭐 몸 때문에 시작된 관계라는 건 부정하진 않겠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하면 곤란해요."

여소천은 포옹을 풀더니 볼을 부풀리며 내 이마를 콕 눌렀다.

"제가 무슨 서방님이 그런 여자 옆에 가서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데 마지막 날까지 몸이나 탐할 그런 여자처럼 보여요? 누가보면 제 머릿속에 진짜 그것만 들은 줄 알겠네요."

"..."

"아마 다른 2명도 똑같은 반응일걸요. 아니 그냥 오늘은 마지막이니 마음대로 하자니 뭐니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제가 그냥 넘어가서 그렇지 그거 여인으로서 꽤 상처 받는 말이거든요?"

"...어.."

"착각하지 마세요. 당신이 비록 귀엽고 야하게 생겨서 몸을 섞는 맛이 있다고 한들 그게 당신이라는 인간의 매력의 모든 건 아니니까."

여소천 답지 않은 말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그만큼 적나라하면서도 동시에 애정이 느껴지는

평상시의 여소천이라면 잘 해주지 않는 말.

"그러니까 천마한테 가서도 기죽지 말고 열심히 지내세요. 내 매력은 어차피 몸 뿐이니까 천마가 강간하려고 하면 막을 수 없다고 체념하지 말고 아예 그 여자가 당신한테 정이 떨어지게 만들던가. 아니면 정말 제대로 반하게 만들어서 주도권을 당신이 가져오던가. 원래 연애는 먼저 반하는 쪽이 손해인 법이니까요. 혹시 몰라요. 천마가 당신한테 홀딱 반해서 당신이 해달라는대로 전부 해줄지."

현실성은 없는 말이었지만 도움이 되는 말이었다.

...진심으로.

"...이제 정신 좀 차리셨으면 다른 2명한테 가서 사정 설명하고 작별 인사하고 오세요. 아마 10초 쯤 뒤에 저한테 난리가 날 것 같으니까."

"그러게 왜 무리했어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신이.. 으으읏.."

아. 시작됐다.

뒤늦게 부끄러움이 몰려오기 시작한 여소천을 뒤로하고 각자의 방법을 찾고 있던 검후님과 당아영에게 향했다.

뒤쪽에서 거의 비명소리에 가까운 이상 소리가 들린 건 기분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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