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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236화 (236/250)

[236화] 12장-오염

기지 전체에 사이렌이 울린 직후, 그들은 진동 만으로도 엄청난 양의 적들이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르르르르

"엄청 오고있는 것 같구나. 일단 십 단위의 발소리는 아니니."

"한 명 정도는 입구를 막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할텐가?"

"잠깐 비켜보거라."

-화륵

그녀가 불길을 일으키며 평상시 보기 힘든 귀와 꼬리를 꺼내자 검후는 문으로부터 한참 물러섰다.

그리고..

-화르르륵!!!

"이 정도면 잡졸들은 충분히 막을 수 있겠지."

"..."

검후는 문을 포함해 자신들이 왔던 통로 전체를 채우는 새빨간 화염의 벽을 보며 침을 삼켰다.

주술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듣긴 했지만 이 정도 수준의 주술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공이랑은 완전히 다른 형태의 무언가였으니까.

극양의 무공이 내공으로 불길을 일으킬 수 있다곤 하지만 저런 식으로 불의 기둥을 세우는 건 아예 무공과는 다른 영역의 일이었다.

"이대로도 한 시진 정도는 유지 되겠지만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끝내보자꾸나. 원래 계획부터가 속전속결이 목표였으니."

"아, 알겠.. 습니다."

"으음.. 그래서 제압은 어떤 식으로 하면 되지? 그 무슨 술법을 쓰기 위한 조건이 있나?"

[1분이상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으면 돼요. 아마 다른 두 분이 저자를 붙잡고 그 사이 제가 잠깐 몸을 빌려 마법을 쓰면 딱 될 거에요.]

"...몸을 빌린다고?"

[자, 잠깐이면 돼요! 어차피 간섭력이 부족해서 오래 현현하지도 못하고.. 정신을 잃지도 않으실 거에요. 그냥 잠깐만 제가 몸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느낌?]

"으음.."

[제, 제자분도 맡기셨었어요!]

"그러면 괜찮겠군."

-화륵

그녀는 그 사이 먼저 여소천을 지원하러 싸움에 끼어든 검후까지 총 3명이 엉켜서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며 조용히 손에 불길을 일으켰다.

원래 대로였으면 진작에 1000년의 수행을 마치고 요괴에서 벗어났을텐데 제자놈때문에 꼬리는 여전히 9갈래로 나눠져 있었고 수행도 크게 늘지 않았다.

뭐 진짜 그 경지까지 이르게 되면 지상에 남아있지 못할 수도 있으니 바로 올라갈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올라갈 수 있는데 가지 않는 것과 아직 올라갈 준비가 되지 않은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이 정도 만으로도

저 2명과 협력해서 이상한 옷을 입고 있는 녀석을 잡는데는 충분했다.

* * *

'제길.. 제길..!!'

바르슈타인은 지금 미칠 노릇이었다.

에르델이 지금 이 세계에 연관되어있는 이상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고 경계하고 있긴 했지만 설마 에르델이 아니라 이 세계의 원주민이 당당하게 쳐들어올 거라곤 그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이 세계에 도착한 이후로도 계속해서 중원을 미개한 세계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무공이라는 신비를 익힌 자들은 그들의 고향에서의 오러 사용자들과 비슷한 수준의 무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결국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상당한 여유를 느끼고 있었다.

원래부터 오러 사용자들은 전쟁에서 마법사들에게 밀리는 편이었고

이 세계엔 그런 마법사들이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으니 마법에 대항할 수단조차 전무하리라.

분명히 그랬어야 했는데..

-화륵!

'이곳에 왜 주술사가 존재하냔 말이다!'

저 녀석.

저 금발에 여우귀와 꼬리를 달고 있는 여자가 가장 큰 변수였다.

물론 조사하면서 이 세계에도 주술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기록에 따르면 그 수준은 굉장히 낮은 걸로 보였고 신비의 99%를 무공과 진법이라는 녀석이 차지하고 있는 탓에 사실상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파지지지직!

-사각!

"크윽!"

마법사의 경지로 표현하면 자신에 비해서 결코 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알던 주술과는 형태 또한 많이 달랐다.

굳이 따지자면 자연에 숨어 사는 드루이드들과 비슷한 성향의 주술처럼 보이는데 그렇다기엔 종종 날아오는 화염구의 파괴력이 예사롭지 않았고

지금 검을 맞대고 있는 2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데 틈만 나면 날아오는 주술까지 경계하느라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그는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자존심이 강한 그이지만 목숨이 위험해지는 순간에선 평소보다 훨씬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편이었기에 판단을 내리는 것도 빨랐다.

미리 영혼을 조각 내뒀으니 이 몸 하나 잃는다고 한번에 죽진 않겠지만 결국 본체를 잃는다면 힘의 소실이 굉장히 클 거고

당장 그분의 부활 의식이 진행되고 있었기에 자신이 한번 죽는다면 의식에 큰 차질이 생길 것이다.

차라리 무효로 돌아간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아 몇 년 간 다시 준비를 걸쳐 시행하면 되겠지만 초월자의 부활 의식이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 않아서 문제였다.

한번 세계에 그 존재가 새겨지게 된 이상 의식을 다시 시행한다고 해도 실패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 버린다.

결국 어떻게든 이 의식을 그대로 이어나가야 하는 상황.

-까득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의식을 완성 시킬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지만 지금 진도에선 그것도 불가능했다.

저 망할 3명이 그런 수작을 가만히 둘 리도 만무했고.

그렇다면 남은 수는 하나 뿐.

'기회를 보다가 의식의 핵을 챙기고 도망..'

"놓칠 줄 알아?!"

-깜짝!

"남의 세계에 기어 들어온 주제에 조용히 사는 것도 아니고 온갖 민폐를 다 끼쳤으면 그만 숨고 좀 뒤져!!!"

-파지지지지직!!!!!

자신의 계획을 눈치챈 걸까.

이 세계의 파란 성녀는 지금까지의 울분을 담기라도 한 듯 스파크가 주변 공간을 일그러트릴 정도의 일격을 장전했다.

-오싹!

'이건 피해야 한다.'

이 일격은 베리어를 몽땅 끌어모아도 막지 못한다.

직감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바로 피하려고 했지만

-스릉

'...어느 틈에?'

이미 지금 상황에서 움직일 수 있는 퇴로엔 내공이 담긴 검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뱀파이어의 회복력을 믿고 몸을 구겨버리더라도 피하는 건 불가능할 정도로 이미 빼곡히 공간을 지배 중인 검들.

최후의 수단으로 서둘러 단거리 텔레포트 마법을 시전했으나

-화륵

'...저 망할 년이..!'

마법의 마 자도 제대로 모르는 세계의 수인 주제에 주변의 마력을 불태워 방해했다.

결국 도망칠 수 있는 모든 수가 봉쇄됐다는 걸 깨달은 순간엔 이미 푸른 검격이 눈앞까지 다가온 뒤였고

'...이런 젠장.'

"뒤져어어어엇!!!!!"

-콰아아아아앙!!!!!!

순식간에 시야가 푸른 섬광으로 물들었다.

* * *

-파직.. 파직...

"커흑.. 쿨럭..."

바르슈타인의 가슴에 커다란 자상을 남긴 뒤 3명은 순식간에 움직였다.

방금 전 여소천의 일격으로 그가 죽어버렸다면 계획이 무너져버리기에 여소천이 간신히 힘 조절에 성공했고 그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넣을 수 있었다.

이대로 시간을 준다면 다시 회복하거나 어떤 수작을 부려 도망칠 거란 건 눈에 훤한 일.

-콰득! 콰득!

"끄윽!"

"고정시켜놓을 테니 서두르게."

검후는 검으로 뱀파이어 로드의 몸을 고정시켜 버렸고 여소천은 혹시 또 허튼 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그 앞에서 언제든지 목을 쳐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잠시만 눈을 감고.. 몸에 들어오는 걸 거부하지 말아보시겠어요?]

"음.."

"네. 이제 됐어요."

[오..]

순식간에 의식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몸이 남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현상에 두려워하고 다시 몸의 주도권을 되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순수하게 지금 상황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본인이 호기심이 많은 성격인 것도 있었지만

이미 제자가 겪었던 일이라는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덕분에 그녀는 몸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에도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몸으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현상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자. 이제 끝날 시간이에요 바르슈타인. 마음 같아선 당신이 최대한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만 시간이 없으니 이 정도로 하죠."

"크윽.. 너.. 너...!! 에르델!!!!!!"

"닥치세요. 당신이 제 이름을 부를 때마다 피부 위로 구더기가 기어다니는 느낌이 나니까."

"에르델 브라이트!!!! 언제까지 방해해야 만족할 거냐!!! 그 세계에서도 끈질기게 방해하더니 다른 세계까지 따라와서도 방해하는 거냐!!!!!"

-우우웅

몸을 넘겨 받은 에르델의 손 위로 하얀 마법진이 피어올랐다.

"...잠깐. 그 마법은."

"당신한텐 설명할 가치도 아깝네요."

"하핫! 그래. 드디어 그 망할 마법을 완성했나보지? 나 하나 죽이겠다고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갈아 넣은 거냐. 나 외에는 전혀 쓸모도 없는 그 마법 하나 만들겠다고 안 그래도 적은 아군 수백 명을 갈아 넣더니 결국 시간 안에 완성하지도 못해서 일일이 내 영혼을 찾아내서 죽여버리더니."

"..."

-까득

한참 마법이 시행하던 도중 무표정에 가깝던 에르델의 표정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은 그래도 평정을 유지하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 네년은 그 용사 한 명만 있으면 다른 인류 따위 어떻게되도 상관없는 년이었지. 전장에서도 용사 한 명 살리겠다고 신성력을 때려박다가 그 대신 죽은 아군만 수천 명은 되지 않나?"

"..."

"너는 네가 그 용사를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겠지만 나도 그 망할 놈에 대해선 조사를 할 만큼 했거든. 그거 아나? 네 그 잘난 용사가 스스로 죽으려고 시도한 횟수만 수십 번은 된다는 걸 말이야."

"...닥치세요."

"당연히 모를 리가 없겠지! 너가 그 용사놈에 대해서 모르는 게 있을 리가 있나! 알고 있는데 외면했겠지! 용사님은 살아줘야 하니까!"

"...닥치라고."

-우우웅

에르델의 손에 피어올라 차근차근 바르슈타인의 영혼을 태워가던 마법진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네 그 성녀라는 잘난 이름값에 홀려서 희생한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되는지! 하하핫! 아마 용사도 속으론 널 증오했을 거다! 네 이기심 때문에 죽고 싶은데 죽지도 못하는 삶을 대체 몇 년이나.."

"닥쳐!!!!!!!!!!"

-챙강!

끝내 바르슈타인의 심장에 올라가 있던 손이 목으로 올라가 그를 조르기 시작했고

"당신이 용사님에 대해 뭘 알아!! 너가 뭘 아냐고!!! 죽음에서 태어난 찌꺼기같은 너 같은 놈이 나보다 용사님에 대해 잘 알아???? 용사님이 너 때문에 얼마나 상처 입었는지 아냐고!!!!"

"크륵.. 그러니까 죽고 싶어 했겠지. 나는 그를 죽이는 게 목적이었고 너는 살리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강철은 두드리고 식힐수록 단단해진다지만 인간은 강철이 아니지 않나?"

"닥쳐!! 닥치라고!!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용사님이.. 너만 아니었어도!!!"

"어이쿠. 그렇게 발작하는 걸 보니 그 잘난 용사도 결국 죽었나보지? 이를 어쩌나. 미운 정에 장례식에라도 참여했어야 했는데."

"아아아아아아아악!!!!!!"

-쾅! 쾅!

그녀는 끝내 반쯤 이성을 잃고 바르슈타인의 머리를 잡고 바닥에 내려 찍기를 반복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원한이 있는 것 같아서 우선 가만히 있었지만 뭔가 상황 돌아가는 게 이상했다.

영혼을 소멸시킨다더니 기운을 운용하던 것도 없어졌고

지금 행위는 순수하게 분노를 푸는 행위처럼 보였다.

역린을 건드려도 제대로 건드린 모양.

"지, 진정해요. 화난 건 알겠지만 우선 이자를 소멸 시키는 게 우선.."

여소천은 그런 성녀를 진정 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그 순간 뱀파이어 로드의 표정에 숨길 수 없는 조소가 옅게 나타난 게 보였다.

-오싹!

-파지직!

순식간에 불길함을 느끼고 검으로 그를 내려치는 여소천이었지만 이변이 일어나는 건 그보다 더 빨랐다.

-퍼엉!

"?!"

방 안에 있던 붉은 구체가 폭발한 것.

자연스럽게 그 주변을 맴돌던 죽음의 기운과 핏빛의 기운이 그들을 덮치기 시작했고

"이, 이런!"

-키이잉!

그제서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에르델은 그들 주변으로 보호막을 전개했다.

.

.

.

"다, 다들 괜찮아요?"

"나, 나는 괜찮네.."

죽음의 파도가 방안을 휩쓸어버린 뒤

그들의 경지로도 주변이 쉽게 확인되지 않을 정도의 자욱한 안개 사이에서 그들은 서로를 찾기 위해 입을 열었다.

"나도.. 괜찮은 것 같구나.."

"어, 어디 있어요? 우선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그래주겠느냐."

여소천과 검후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뒤 그대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자, 잠깐만. 당신 모습이 왜 그.."

"괜찮은 겁니까?!"

아까까지만 해도 황금빛을 자랑하던 그녀의 머리카락과 털이 군데군데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척 보는 것 만으로도 상태가 멀쩡하지 않다는 게 보이는 상황.

"위험한 건 아니네.. 그냥.. 기운이 조금 오염된 것.. 뿐.."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며 손을 올리더니

-털썩

그대로 힘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저, 정신 차려요 당신!! 갑자기 여기서 쓰러지면.."

"부, 불길이 사라졌다! 다들 돌입.."

"여, 여소천!"

"이런 씹..! 제가 업고 갈 테니까 당신이 길을 뚫어요!"

당연한 말이지만 뱀파이어 로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비록 여소천이 마지막까지 내질렀던 검이 무언가에 닿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 순간 폭발에 휩싸이는 바람에 확실하지 않은 상황.

"젠장 그 망할 여자가..!"

여소천은 끝낼 수 있던 상황에 갑자기 돌변해 시간을 끌어버린 하얀 마녀에게 이를 갈며 서둘러 쓰러져있는 그녀를 들어 올렸고

"그러면 가겠네!"

-채재재쟁!

그들은 눈앞의 뱀파이어들을 도륙내며 지하의 기지를 탈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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