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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232화 (232/250)

[232화] 11장-기적

중원의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주변에 사람들의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 황무지.

그 지하에 위치한 혈교들의 본거지의 가장 깊숙한 곳에선 바르슈타인이 불편한 표정으로 거대한 핏빛 구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젠장. 역시 부족하군."

무려 초월자를 다른 세상에서 부활시키는 일이었다.

엄청난 양의 생명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건 당연하고 그걸 모르는 게 아닌 만큼 이미 예전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래 계획 대로라면 이번에 화산과 그 주변을 습격하면서 확보한 생명력을 가공해 혈정을 만든 뒤 그걸로 의식에 박차를 가하려고 했었다.

계산 대로라면 이번에 딱 본격적으로 의식을 시작할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가 모이기도 했었고.

하지만 그건 계획이 제대로 성공했을 때 성립하는 이야기.

"쓸모없는 놈들. 그만큼 몰려가서 가져온 게 고작 이만큼이란 말이냐."

-콰직

바르슈타인은 이미 구체에 에너지를 전달한 뒤 껍데기만 남은 혈정을 부숴버렸다.

아무리 자신이 같이 가지 않았다지만 반대로 화산의 병력도 상당수가 자신이 있던 쪽으로 오지 않았던가.

어떻게 자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력이 그쪽으로 향해 놓고 가져온 생명력이 자신 한 명이 가져온 것보다 부족하단 말인가.

'...내가 이딴 놈들을..'

자신이 아니었으면 차가운 죽음의 늪속에 가라앉아있었을 놈들이 도움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원래부터 부하들에게 가혹한 성격의 그였지만 지금은 평소보다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완벽주의를 선호하는 그의 계산이 빗나간 것도 문제였지만 에르델의 흔적이 전혀 예상도 못한 곳에서 튀어나왔으니 더더욱 초조해질 수밖에.

한창 전장에서 싸울 때 좋게 말해야 서로의 라이벌이었지 실질적으론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와 트라우마만 남긴 최악의 숙적이었으니 방해꾼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계에서 마음 편히 대업을 준비하던 그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바르슈타인 본인은 끝내 그 에르델의 손에 직접 죽임을 당했으니

아무리 부활한 뒤라도 에르델 브라이트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결코 현역 시절보다 덜하지 않았다.

'...그 망할 년이 언제 나를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차라리 아예 그 존재를 몰랐다면 모를까

이 세계에도 그년과 관련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걸 안 이상 예전처럼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계산이 어긋낫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원래 계획대로 할 수 있도록 짜 넣는 수밖에.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주변 마을에서 대학살을 벌였다가 또 에르델 그년이 나타나버릴 수도 있으니..

"...여봐라."

"넵. 부르셨습니까."

"가서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도 못한 주제에 상황의 심각성도 모르고 와인이나 까고 있는 녀석들을 데려와라. 30명정도면 될 것 같구나."

"알겠습니다."

"20분 주마. 없다면 억지로라도 끌고 오도록."

플로라를 치운 뒤 새로 옆에 둔 녀석을 시켜 쓸모없는 놈들을 데려오라고 시켰다.

일단 심심해서 옆에 수다를 들어주고 시중을 들어줄 녀석을 두긴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수다를 떨 일이 많지는 않았다.

저 녀석이 플로라만큼 옆에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녀석도 아니었고.

'제대로 키우면 꽤 재밌었을 것 같은 녀석이었지만..'

돌아오지도 못하고 포로로 잡힌 이상 아무리 재밌어 보이는 장난감이라도 살려둘 가치는 없었다.

자신과 비슷한 동류인 것 같아 옆에 뒀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아 있었고.

어쩌면 무사히 돌아왔어도 머지않아 직접 처리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들이 옛날부터 하던 말중에 짐승의 자식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었으니.

-탁.. 탁..

눈을 감고 신고 있는 나막신으로 바닥을 두드리고 있는 사이 녀석이 다른 뱀파이어들을 우르르 데리고 나타났다.

"데려왔습니다 로드님."

"17분이라. 시간은 잘 지키는구나."

"명령을 지키는 것 뿐입니다."

"그래. 넌 이제 가봐라."

"알겠습니다."

재미없게 딱딱한 녀석을 방 밖으로 내보낸 뒤 아직 여전히 자기들이 왜 끌려왔는지 모르고 있는 머저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 네 녀석들이 왜 여기 끌려왔는지 한번 맞춰보거라. 이유를 맞춘다면 포상을 고려해볼 테니."

"으음.."

"어.."

'...멍청한 놈들.'

이 상황에서 내가 불렀다면 최소한 어느 정도 위기감은 느끼는 게 정상일텐데 그런 것 하나 없었다.

정말 순수하게 모르겠다는 표정.

-덜덜덜덜

'그래도 눈치 있는 놈 한 명은 있군.'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기껏 기운을 나눠주며 그 생을 유지 시켜주고 있는 놈들이 이런 머저리들이었다면 분노의 숙청 시간을 가져버릴 수도 있었을텐데 한 명 정도는 최소한의 눈치가 있었다.

"그래. 거기 너. 너는 뭔갈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한번 네 입으로 말해보아라."

"네, 네?"

"네가 방금 머릿속으로 생각한 이유를 한번 읊어보란 말이다."

"히, 히익!"

-고오오

다 알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을 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살짝 살기를 내뿜자 녀석은 덜덜 떨면서 바닥에 넙적 엎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잠시 휴식을 마치고자.."

'아아..'

-푸샤아악!!

"컥, 커흑.. 제발 살려.."

"짜증나는 녀석들.."

"히, 히이이익!!!"

"아...?"

하여간 말을 제대로 듣는 녀석이 없었다.

내가 분명 뭐라고 말했었지?

목숨 구걸을 하라고 했던가?

내가 자기들을 왜 불렀을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말하라고 했을텐데?

"너희는 뱀파이어의 수치다. 그런 꼴로 밤의 귀족의 이름을 더럽히지 마라. 내가 어떻게 쌓아 올린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풀썩..

-파스스..

생명력을 잃고 가루로 변한 녀석을 짓밟으며 이제야 자신들의 처지를 알았는지 덜덜 떨고 있는 나머지 머저리들을 바라봤다.

"너무 안타깝게 생각하지 마라. 너희들의 생명력은 위대하신 그분을 부활시키는데 사용될 예정이니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해도 좋다. 너희들의 피와 살이 그분의 몸체에 녹아들게 될 테니."

"으, 으아악!"

그 와중에 최악의 선택을 한 녀석이 나타났다.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포기를 모른다고 해야 할지

-푸슉!

"아악!"

뱀파이어의 몸으로 내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걸까.

"왜 도망가는 거냐. 그분의 의식을 위해 직접 몸을 바치고 그분에게 녹아드는 영광을 어쨰서 마다하는거냔 말이다. 나는 내가 로드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그분에게 모든 걸 바쳤을텐데 너희는 어째서 그분의 은혜를 받은 주제에 고마운 줄을 모르는 것이냐."

-파스스..

"아..아.."

뭐. 상관없다.

어차피 녀석들도 그분의 일부로 들어가고 나면 저절로 전율과 환희를 느끼게 될 테니 굳이 지금 억지로 이해 시킬 필요도 없다.

그리고 위대하신 그분의 일부로 들어가고 싶다는 내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분의 은혜를 받아 무에서부터 창조된 몸.

생명의 여신에게 생명으로서 거부 받고 다른 언데드들도 받지 않은 태양의 거부라는 극단적인 낙인까지 찍힌 채 살아왔다.

이 세계의 태양은 내 살과 마력을 태우지 않는다고 한들 수백 년 동안 각인된 태양이라는 존재가 주는 거부감과 공포심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러니

'...이 세계는 반드시 그분에게 바치리.'

지상을 차지하고 있는 생명을 가진 존재를 모두 없애고 그분을 위해 죽음이 가득한 땅을 다시 세우겠다.

그러기 위해서 고작 이딴 기운과 자원만 축내는 동족 따위 100명도 더 바칠 수 있었다.

-파스스..

"아. 잠시 멍을 때렸군."

잠시 상념에 잠겼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방금까지 앞에서 벌벌 떨고 있던 뱀파이어들은 모두 사라져있었다.

도망갔냐고? 아니.

-찰랑

"흠..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시작할 수 있겠군."

이미 그들은 내 손에 잡힌 보석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것들로 부족했으면 또 이상한 핑계를 대면서 다른 녀석들을 잡아 넣었어야 했을 텐데 다행이었다.

너무 조급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지금 이것도 늦은 거였다.

원래 계획보다 3일정도 늦어진 셈이니.

'더 앞당겨도 모자랄 마당에 더 늦출 수는 없지.'

에르델 그년이 언제 그 망할 성창을 들고 찾아올지 모른다.

죽은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 법이니 자신이 소멸한 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에르델 그년이 살아있다는 것부터가 상당한 적신호였다.

죽지 않은 자들의 진영이 승리했다면 에르델이 살아 있을 리가 없다.

그년도 죽은 다음에 자신처럼 다른 세계로 건너왔을 가능성도 있을 순 있지만..

'...아니야. 죽었다면 그분이 그 년의 영혼을 가만히 뒀을 리가 없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자신도 분명히 영혼이 완전히 소멸했을 텐데 지금 살아있고..

생각하면 할수록 상황이 이상했다.

대체 자신이 어떻게 이 세계에 있는 거지?

영혼이 소멸한 존재가 다시 살아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그리고 차원방벽은 또 어떻게 건너왔고?

전 혈교의 술법이라는 게 그것들을 전부 무시하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고도로 발달한 무언가라고 하기엔 또 그것도 아니었는데?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 시점에선 그 답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당장 중요한 건 그 원인이 무엇이던 결국 자신이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는 것.

그걸 위해서라면 고작 그런 사소한 의문 따위는 무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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