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11장-탐색
[일단 이 정도로 추려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이 세계를 잘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건 그도 마찬가지니까요. 제가 아는 그라면 아마 이곳들중 하나에 거처를 마련했겠네요.]
성녀님이 말하는 대로 이리저리 지도에 표시를 하던 여소천이 몸을 일으키자 지도엔 수많은 흔적과 함께 크게 동그라미 표시가 그려진 3곳이 남아있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있죠. 아마 한 곳에 모든 전력을 몰아넣지는 않았겠지만 결국 그가 평소에 머무를 본진은 존재할 수밖에 없어요. 부활 의식 또한 부하들에게 어느 정도 맡길 수는 있겠지만 그가 없다면 제대로 된 진행이 불가능할 테니 그가 평소에 머무르는 곳에서 준비중일 거고요.]
"그러면 저 3곳 중에 한 곳에 그 빌어먹을 년이 있는 건가요?"
[아마도요. 그의 성격 상 무조건 이중 하나엔 거처가 있을 거에요. 만약 아니라고 해도 기지 하나 정도는 무조건 있을 거라고 장담.. 아니 근데 잠깐만. 년이요?]
"...? 네. 년이지 놈은 아니잖아요."
[...네?]
성녀님은 여소천의 말을 듣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 때문에 놀란 거지.'
성녀님이 여소천이 욕 좀 했다고 당황한 건 아닐텐데.
어려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비속어를 입에 달고 다는 편인 건 이미 알고 있을 거고.
[아니.. 그.. 여자..라고요?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는데요?"
[뱀파이어가 기본적으로 외모가 남성이어도 예쁘장하게 생긴 편이라 여자처럼 보였을 수도..]
"아니 그냥 여자였다니까요? 대놓고 머리도 길고 목젖도 들어가 있고 가슴..은 없었지만 허리도 가늘었었는데."
[...뭐지?]
잘은 모르겠지만 뱀파이어 로드의 성별에서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말하는 걸 들어보면 성녀님은 뱀파이어 로드를 남자로 알고 있지만 여소천이 본 그는 여성의 모습이었다는 것.
[으음.. 뭐 차원을 넘어간 다음에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애초에 죽음으로부터 탄생하여 생명으로부터 거부 당한 존재니까요. 정해진 성별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으니 모습을 바꿨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긴 해요. 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마음가짐으로 성별을 바꿨을..수도 있죠.]
"...정해진 성별이 없다고요?"
[결국 성별이라는 건 유성생식으로 번식을 위해 존재하는 생명체로서의 구분이니까요. 죽음으로부터 태어난 이에게 번식의 의무가 있을 리가 없죠.]
무슨 해양 생물도 아니고 정해진 성별이 없어서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존재라니.
뭐 그런 이상한 생명체가 다 있대.
...애초에 생명체도 아니라고 했던가.
[그나저나 이러면 혹시 모습을 바꾸고 도망갈 가능성도 염두는 해두셔야겠네요. 생명체도 아닌 주제에 그의 생존을 향한 집념은 어마무시하거든요. 자존심이 강한 이지만 필요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망가려고 할 거에요. 설령 다른 뱀파이어 전부가 희생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 한 명만 살아 있다면 결국 다시 일어날 수 있고 반대로 그만 잡는다면 다른 뱀파이어들이 전부 살아있더라도 재기가 불가능하니까요.]
"...절대 안 놓쳐요. 간신히 잡은 기회인데 거기서 도망가게 두진 않을 테니 걱정 안해도.."
[글쎄요. 그건 힘들 것 같은데.]
여소천의 각오 섞인 말에 성녀님은 부정적인 의견을 보냈다.
[당신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이미 그자를 겪어본 선배로서 그의 생존에 대한 집념을 우습게 보지 마셨으면 좋겠네요. 단순히 잡아다가 목을 벤다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아마 이곳에서도 영혼에 수작을 부려놨겠죠. 수십개로 조각난 영혼을 전부 찾아 소멸 시키는 게 아니라면 그를 확실하게 없앨 수 없어요. 조각난 영혼들은 당연히 여기저기 곳곳에 흩뿌려놨을거고요. 정말 그를 확실히 없앨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나요?]
"...궁극의 일격으로 한번에 연결된 혼까지 전부 태워버리면.."
[그게 가능했다면 저희가 그자를 잡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겠죠.]
"..."
여소천은 성녀님의 말을 듣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의 본거지에 대한 단서는 잡은 것 같지만 그자를 놓치면 오히려 안 가느니만 못했다.
살아남는데 성공한 뱀파이어 로드는 더더욱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 거고 그러면 지금처럼 찾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니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었다.
"그러면 천천히 그의 영혼조각을 하나하나 찾아서 처치하면.."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걸요. 영혼 조각은 아무리 저라도 어디 숨겨 놨을지 추측할 수가 없어서. 그리고 그의 본체가 영혼조각이 소멸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리도 없고요.]
"...그러면 뭐 어쩌자ㄱ.."
[에이 그래서 제가 있잖아요.}
계속 부정적인 의견만 보내는 성녀님을향해 여소천이 한 소리 하려는 찰나 성녀님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를 제압할 수 있고 그의 앞에 저를 데려가 주기만 한다면 남은 영혼 조각이 얼마나 많던지 확실하게 소멸 시킬 수 있어요. 마탑과 성국의 내로라하는 마법사, 학자, 주술사, 성직자 등등 온갖 인재들이 오로지 그를 죽이기 위해서만 만들어낸 대 바르슈타인 전용 마법이 있으니까요. 정작 저희는 너무 늦게 완성해버린 탓에 그다지 효율을 못 봤지만.]
"...당신을 어떻게 그 앞에 데려가죠?"
[음.. 제가 채널이 연결되어있는 게 용사님 뿐이니까.. 용사님을 그 앞까지 데려가야..]
"헛소리하지 마요!!"
-깜짝!
듣고 있던 나도 깜짝 놀랄 정도로 여소천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거기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이 연약한 남자를 거기까지 데려가라고요? 미쳤어요? 그랬다가 인질로 잡히기라도 하면 당신이 책임 질 거에요?!"
"어.."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대놓고 약하다고 들으니까 뭔가..
"인질로만 잡히면 다행이지 다치거나 죽으면 또 어떻게 하려고요? 이쪽 세계엔 당신들처럼 죽기 직전의 사람도 살려내는 마법의 비약 같은 것도 없어요. 흡혈귀들이 잔뜩 모여있을 그런 곳에 이런 남자를 데리고 어떻게.."
[그러면 그냥 놓치시던가요. 혹시 몰라서 말씀드리는건데 그를 제압하고 제 앞까지 끌고 오는 건 안 먹혀요. 끌려오는 사이에 그 바퀴벌레같은 자가 무슨 수를 취할 테니까.]
"...큿."
"...저기 그냥 저를 데리고 가면 되는거.."
"안돼요. 거기가 얼마나 위험할 줄 알고."
"근데 제가 안 가면 놓칠 확률이 엄청 늘어나는 거잖아요..? 그러면 멸망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는 거고."
"크읏.."
여소천은 내 말을 듣고 고민에 잠겼다.
나라고 그런 위험한 곳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내가 아니면 안된다고 하지 않나.
'...잘 지켜줄 거라 믿어야지.'
뭐 간다고 하면 여소천, 검후님, 스승님이 전부 갈텐데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고 해도 그 정도 인원이 있는데 내가 눈먼 칼에 맞을 죽을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여소천이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자 성녀님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음.. 그러면 방법이 있기는 해요. 용사님에게 있는 채널을 일시적으로 다른 분한테 옮겨 놓으면 그분을 통해서도 할 수 있어요.]
"..그런 건 빨리 좀 말해주세요."
[그치만 그러면 제가 용사님이랑 떨어져 있어야 하잖아요! 저로서도 엄청난 각오라고요?! 용사님을 지켜보는 게 제 이 삶의 유일한 낙인데..]
"잠깐이면 되잖아요. 준비만 되면 바로 출발할 거니까 며칠 안 걸릴 텐데 그 정도도 못 버텨요?"
[...저에게서 용사님이 가지는 의미를 쉽게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니까.]
...방금 왠지 성녀님의 분위기가 잠깐 달라졌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기분 탓인가.
뭐 아무튼 저 방법을 사용하면 되겠다.
"그러면 여소천한테 채널을 옮.."
[아. 이분은 안돼요. 다른 신의 기운으로 신체가 가득 찬 상황이라 제가 채널을 뚫으려고 하면 반발이 날 거에요. 다른 분으로 하셔야 해요.]
"..."
은근 까다롭네.
성녀님의 말을 들은 여소천은 검후님과 스승님을 바라봤고 그 둘도 성녀님의 말을 어느 정도 알아 들었는지 이미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채널..이라는 녀석을 나나 이 녀석 중 한 명한테 옮겨야 한다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걸 옮겨 받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지?"
[뭐 별일 없어요. 상점창은 용사님만의 전유물이라 제가 옮겨간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당사자한테는 속으로 저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 빼고는 영향이 없겠네요.]
"호오.."
성녀님의 말에 스승님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도 성녀님을 보고 호기심을 빛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게 옮기는 걸로 하지. 내 제자가 내 몰래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한번 봐야겠어."
[...용사님이 당신과 산속에서 지낼 때는 채널이 생성되기 전이라 별일 없었어요. 당장 용사님도 제 존재를 깨달으신지 이제 2년정도밖에 안됐고요.]
"그렇군. 그래서 어떻게 옮기면 되지? 가만히 있으면 되나?"
[으음.. 뭐 그렇게 거창한 건 필요 없어요. 그냥 입맞춤 정도만 해도..]
"입맞춤인가. 알았다."
스승님은 그렇게 말하며 내게 다가왔다.
뭐 입만 맞추면 된다고 하니까 잠깐만 입술 박치기 정도 하고 떼면..
-번쩍
어 잠깐만.
왜 갑자기 몸이 들리..
-츄르르르릅
"으브으읍!!"
눈깜짝 할 사이에 스승님의 얼굴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바둥바둥!
순식간에 들린 탓에 갈 곳을 잃은 팔다리가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고 짐승처럼 입안을 탐하고 있는 스승님의 혀에 점점 정신이 몽롱해져가는 순간
[끄, 끝났어요! 끝났으니까 내려놔도 괜찮아요!]
-파하
"생각보다 빨리 끝나는구나."
[애초에 혀를 섞으라는 말까지 안 했거든요!]
"입맞춤이면 당연히 그것도 포함되는 것 아닌가?"
'...누가 구미호 아니랄까봐.'
저게 진담인지 농담인지도 모르겠다.
스승님도 성격이 오죽 이상해야지.
내 속옷이 무사한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로 붙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