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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229화 (229/250)

[229화] 11장-조건

"...그게 무슨 소리에요. 맨입으로 라니."

[에이. 알만한 분이 왜 이러실까. 거래의 기본이잖아요? 받는 게 있으려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한다. 사회의 기본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시스.. 뭐요?"

[맥락상 무슨 말인지 알아 들으시면서 그렇게 넘어가려 해도 안 먹혀요. 그리고 당신이 싫다고 해도 저는 상관없어요. 어차피 당신이 그들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저 뿐일 테니까.]

"..."

나도 별생각 없이 대화하다 보면 가끔 습관적으로 영어가 나오곤 하는데 여소천은 내 사정을 알아서 그런지 그냥 맥락상 적당히 단어를 흘려듣곤 한다.

아마 모르는 척 넘어 가보려 했다가 실패한 모양.

"...당신 세계에서 건너온 것들이잖아요. 그것들 때문에 지금 이 세계가 망할지도 모르게 생겼는데 그런 말이 나와요?"

[글쎄요. 사실 그쪽 세계의 신님께서 멋대로 용사님을 데려가지만 않으셨어도 이쪽에서 그쪽 차원으로 통로가 생길 일도 없었거든요. 거리도 어마어마하게 떨어져 있고. 저는 용사님을 소환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차원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당신이야말로 뻔뻔하게 굴지 마세요! 그런 상황의 세계에 다른 차원에서 사람을 데려온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이기적인 일인데!"

[네. 저희가 좀 이기적이라서요. 저희랑 관련도 없는 다른 세계가 멸망하든 말든 신경 쓸 여유가 없네요. 이쪽도 상황이 안 좋긴 마찬가지라.]

"당신.."

...이렇게 보니까 꽤 잔혹한 면도 있었구나.

두 성녀의 살벌한 기싸움을 보면서 다른 여자들의 눈치를 살피자 그냥 다들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사실 그녀들 입장에선 갑자기 웬 여자가 튀어나오더니 여소천이랑 말싸움을 시작하는 셈이라..

'...나도 도와줘야 하나.'

누굴 도와줘야 하지.

그래도 당장 옆에 있는 여소천을 지원사격해주는 게 나으려나.

근데 그랬다가 성녀님이 기분이 상해서 이상한 짓이라도 하면 나도 곤란해지는데.

"...이 세계가 멸망하면 당신이 죽고 못사는 이 남자도 위험해져요. 괜찮겠어요?"

[어머. 그런 귀여운 협박을. 정말 그 정도 상황이 임박했을 때 쓸 최후의 최후의 수단 정도는 옛날부터 마련해뒀어요. 그러니까 걱정해주실 필요 없네요.]

"크읏.."

아쉽지만 지금 당장 우위에 있는 쪽은 성녀님 쪽처럼 보였다.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당사자가 성녀님뿐이니 뭐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뭘 요구할지도 이야기 안 했는데 그렇게 날 세우지 마세요. 거래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시면 될 거래도 안되는 수가 있어요?]

"하. 당신이 요구할 건 뻔하잖아요. 저 남자를.."

...괜히 더 싸워서 사이가 나빠지기 전에 그냥 중재하는 게 낫겠다.

'성녀님. 잠깐 저랑 대화 좀 해요. 통신 잠깐 개인으로 바꾸고.'

속으로 성녀님을 부르자 익숙한 느낌과 함께 머릿속으로 성녀님의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왜 그러시죠? 아무리 용사님의 부탁이라고 해도 저는 이참에 저 건방진 성녀의 기강을 조금 잡아야겠는데요.]

'어차피 저랑 계약도 맺으셨고 제가 그쪽 세계로 건너가는 것도 이제 시간문제잖아요. 간섭력 수급을 원활하게 하려면 여소천을 너무 몰아붙이는 것도 안 좋을걸요.'

[흠..]

내 말에 성녀님은 고민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여소천이 없으면 내가 확보할 수 있는 포인트는 하루에 단 1포인트 뿐이다.

돈을 투자하면 포인트로 바꿀 수 있긴 하지만 내가 직접 돈을 포인트로 변환할 일은 웬만해선 없을 테니 사실상 없다고 봐야하고

성녀님은 1만포인트가 모이는 순간 만을 계속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 기간을 단축 시키기 위해선 여소천이 필요했다.

'제가 여소천이랑 싸워서 갈라서기라도 해봐요. 하루 1포인트씩 27년이에요. 제가 여소천이랑 사이가 좋아야 포인트도 빨리 모인다고요.'

[으으으으음...]

'하루라도 빨리 저를 보고 싶은 거 아니었어요?'

아마 이 말이 결정타였던 것 같다.

[아, 알았어요. 정보는 그냥 적당히 넘겨드릴게요. 어차피 이제 제가 가지고 있어봤자 쓸 데도 없고.. 아무리 다른 세계라도 그 망할 놈들이 웃으면서 활개치는 꼴은 별로 보고 싶지 않거든요. 이 시점에서 딱히 저 성녀 개인한테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없고요.]

성녀님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사실상 이미 나랑 계약을 한 시점에서 게임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 여소천에게 뭘 더 요구할 것도 없던 모양이었다.

[...아. 그래도 좀 건방져서 곤란해 하는 모습은 보고 싶으니까 잠깐 시키는 대로 해주세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죠?]

성녀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요구사항을 보냈고 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요즘 들어 자주 느끼는 건데 성녀님도 마냥 성격이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근데 뭐 어쩌겠는가.

정보 얻고 혈교 물리치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저벅

"...뭐에요? 갑자기 말없이 둘이서만 대화하고."

여소천은 내가 성녀님과 몰래 이야기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평소처럼 틱틱댔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여소천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내가 바로 앞까지 다가올 때까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다가

-츕

"?!"

내가 기습적으로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나자 그제서야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하는 표정을 띄웠다.

'혀도 넣으라고 했었지.'

내가 키스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소천보다는 경험이 많았다.

적극적으로 혀를 넣어 여소천의 입 안을 휘저었고 여소천의 혀는 그걸 받아들이려고 시도는 하는 것 같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우왕좌왕하며 그냥 내 혀가 이끄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간단한 입맞춤이라면 모를까 키스는 경험이 거의 없는 여소천이었기에 내가 리드할 수 있는 상황.

'까치발 안 서도 되고 편하네.'

그리고 내가 다른 여자들한테 먼저 키스를 시도하려면 바로 앞까지 다가가서 까치발을 선 다음에 상대의 목에 팔을 둘러야 간신히 각도가 나왔다.

다들 무공을 익혀서 기본적으로 비율이 좋은 편인데 내 키는 한참 전에 멈췄으니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있나.

반면에 여소천은 나보다 크긴 하지만 고작해야 1cm 차이 정도는 뭐 목 각도를 바꿀 것도 없었다.

그 정도 차이면 그냥 걸어서 다가가도 입술 박치기가 되는 수준의 차이였으니까.

"으응.. 응.."

그 와중에 여소천은 처음의 그 격렬했던 반응은 어디가고 점점 목소리에서 힘이 풀리고 있었다.

반항하듯이 나를 밀어내던 손도 이제 내 가슴팍을 콩콩 치는 수준에 그치고 있었고.

애초에 정말 싫었으면 여소천이 가볍게 밀치는 것 만으로도 내가 3m는 날아갈 거다.

내가 계속 키스를 하게 두는 것 자체가 그녀도 싫지 않다는 동의라는 뜻.

-파하

처음부터 키스를 너무 길게 하는 것도 좋지 않으니 적당히 멈추고 입을 뗐다.

여소천은 내가 입을 뗀 뒤에도 한 3초정도 몽롱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가

"핫! 뭐, 뭐에요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사람 입을.."

정신을 차린 순간 다시 평소의 여소천으로 돌아왔다.

다만 다른 건 얼굴이 굉장히 빨개져 있던 것 정도.

"가, 갑자기 이게 무슨.. 시, 싫은 건 아니지만 그, 그래도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이런.."

예전에 데이트할때도 느꼈던 거지만 여소천은 의외로 대놓고 들이대는 거에 약한 타입이었다.

완전히 얼굴이 빨개져서 말도 어버버거리고있는 여소천을 보며 설명을 하려던 순간

"그게.."

[푸흡!]

다시 남들에게 다 들리는 목소리의 성녀님이 돌아왔다.

[하핫!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반응이 좋네요! 부끄러워할 건 예상 했었지만 얼굴이 무슨 토마토처럼.. 아까까지만 해도 잘만 말하더니 이제 말도 제대로 못하고.. 키스가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그렇게 놀라요? 누가 보면 숫처녀인줄 알겠네요.]

"아..?"

성녀님의 놀림을 들은 여소천은 배신감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고 나는 죄책감에 고개를 돌렸다.

...근데 정보는 얻어야지.

혈교 쫓아내야 할 거 아니야.

여소천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근데 따지고 보면 강간은 내가 먼저 당하지 않았나.

'이제 와서 키스가 뭐..'

몸도 섞은 마당에 키스가 뭐 그리 대순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닌 모양이었다.

"으읏.. 으으읏.."

여소천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상태로 반쯤 울먹이더니 그대로 방으로 뛰쳐 들어갔다.

-쾅!

"..."

"..."

어.

저거 제대로 삐진 거 같은데.

여소천이 울먹이며 뛰쳐나가자 다시 주변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삐질삐질

"우우~"

"저, 저렇게 삐질 줄은 몰랐죠.."

"여자의 마음을 가지고 놀다니 쓰레기~"

"가지고 논 적 없거든요?!"

그리고 자기들은 내 몸 가지고 놀면서 나는 이런 것 좀 하면 안돼?!

침대 위에선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밖에선 좀 당해달라고!

"..."

아무튼 여소천에게 잘못을 한 건 맞는 것 같으니 나중에 사과는 해야겠다.

[뭐 아무튼 원하는 대로 해주셨으니 저도 혈교에 대한 정보는 드리기로 할게요. 아마 후회는 안 하실 거에요. 유용한 정보가 많을 테니까.]

일단 여소천의 희생(?)으로 혈교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있었다는 걸 다행으로 삼자.

그래도 여소천을 아는데 저 정도면 얼마 안 있어서 풀린다.

아마 성녀님이랑 얘기하고 있을 때 도중에 돌아와서 자기도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쉽게 풀리길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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