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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227화 (227/250)

[227화] 11장-각오

천마의 천기를 읽었더니 운명의 상대로 내가 나왔다.

제일 난리가 난 건 검후님과 당아영이었다.

"아, 아니.. 당신의 운명의 상대가 천마라고요? 거, 거기에 저희는 없었어요? 그러면 저희는.."

"그, 그게 무슨 말인가? 천마의 운명의 상대가 그대라니. 이제와서 어떻게 그런.."

천기에 대해서 잘 모르는 두 사람의 경우엔 정말 그게 예정된 미래라고 생각하고 반쯤 멘붕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다른 두 명은 달랐다.

"...곤란하네요. 어쩌다가 그렇게 됐지."

"..중원에 나와서 생각보다 대형사고를 친 것 같구나. 하필 그런 여자한테 걸리다니."

천기를 잘 알고 있는 만큼 천마의 운명의 상대로 내가 나왔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

그냥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그래 뭐.

얘는 오히려 모르는 게 낫다.

"그.. 일단 두 명은 진정해보세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확정된 미래 같은 건 아니니까."

"그래요..?"

"으음.. 확정된 미래라고 봐도 무방하긴 한데.. 조금 다른 거니까 들어보세요."

여소천은 어리둥절해하고있는 두 명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래도 이 남자랑 지내면서 보고들은 건 있을 테니 자잘한 설명은 생략하고.. 천기는 하나로 나눠져있지 않다는 건 알고 있죠?"

"...네. 여러 개가 존재한다고."

"우리가 읽는 점. 그러니까 천기를 읽는다고 할 때 읽어지는 건 보통 그 시점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가능성이에요. 이미 지나가서 변하지 않는 과거와는 다르게 미래의 천기에 대한 가닥은 정말 무수히 많이 뻗어있어서 인간의 뇌로 전부 파악할 순 없거든요."

"네, 네.. 그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건 나도 알고 있네."

"좋아요. 이거까지 알고 있으면 설명하기 편하겠네요. 자. 예시를 들어볼게요. 당신에게 이룰 수 있는 건 모두 이룰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가정해보죠. 그러면 당신은 이루고자 할 일을 안 이룰까요 이룰까요?"

"어.. 보통 이루지 않을까요?"

"고려해야 할 게 많긴 하겠지만.. 웬만해선 이루겠지."

'설명 잘하네.'

사실 천기라는 게 저렇게 쉽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형태가 아닌데 천지신명의 성녀라서 그런지 여소천은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복잡하게 꼬여있는지는 직접 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 못한다.

"그런 거에요. 천마 그 여자 쯤 되는 경지면 그 여자의 의사가 곧 천기에 영향을 주게 되거든요. 이걸 토대로 다시 생각해보면 그 여자의 '운명의 상대'를 본 천기에 이 남자가 등장한 이유를 알 수 있겠죠."

"으음.."

여소천의 설명을 들은 당아영과 검후님은 각자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아마 둘 다 머리가 좋은 편이니까 금방 결론에 다다를 수 있을 거다.

그리고 1분정도 시간이 지난 뒤

"...천마가 그이를 원했다는 거에요?"

"!"

당아영이 먼저 그 의미를 해석하는데 성공했다.

"네. 아주 제대로 반한 거죠. 본 것 만으로 첫눈에 반해서 그대로 결혼까지 생각했을 정도로요."

"...세상에."

"으음.."

결론을 들은 당아영과 검후님은 잠시 인상을 쓰며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내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대체 가서 무슨 짓을 했길래 사람을 첫눈에 반하게 만들었대요?"

"아무 짓도 안 했거든요! 그냥 같이 술만 마셨다고요!"

"충분히 반할만한 짓을 했군."

"뭐가요?!"

아니 뭐 술 좀 같이 마셨다고 사람이 첫눈에 반해?!

"아니 저라고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 했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천마쯤 되는 양반이 그거 가지고 반할 거라곤 저도 생각 못했죠! 그리고 그 여자는 제 망토도 꿰뚫어보는 거 같아서.."

"네.. 인정하긴 싫지만 그 여자가 제가 10명이 있어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건 사실.. 잠깐만. 뭐라고요?"

"...아."

그러고 보니 이건 말 안 했구나.

"...그 망토 안쪽을 꿰뚫어봤다고요? 당신 맨 얼굴을?"

"..확신은 아닌데 한 9할 5푼정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냥 확신이라고 보는게 맞겠는데요?!"

아니 뭐 근데 이건 진짜 내 탓은 아니다.

검후님이나 여소천도 꿰뚫어보진 못해서 맨 얼굴을 보려면 직접 모자를 내려야 하는 신뢰성을 자랑하는 물품이 안 통할 줄은 몰랐지.

엄밀히 따지자면 나도 피해자다.

구매할 때 그런 말은 별도로 말 안해줬으니까.

[그 여자가 심각할 정도로 규격외인거라니까요! 설명 안 해줘도 상식적으로 드래곤브레스를 마도구 하나 믿고 어떻게 해보려는 게 도둑놈 심보..]

머릿속에 들리는 이상한 목소리는 무시하고 현실에 집중하자 여소천이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잠깐만. 이러면 좀 얘기가 달라지는데."

"천기 안쪽에서 천마한테 겁탈당했었다는건 저번에 얘기 했잖아요."

"그거랑 이건 조금 경우가 다르죠. 아니 근데 저번엔 천기 안에서 겁탈당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읽은 천마의 천기에 운명의 상대로 미래의 당신이 나왔고 현재의 당신은 별개로 존재하는데 그걸 겁탈.. 뭔가 복잡해지고있는데."

"아뇨 그거 맞아요."

내가 들어도 뭔 개소린가 싶지만 저게 맞았다.

"설명하다가 끊겨서 이렇게 된 건데.. 일단 마저 설명해줄게요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는 그 상태로 천마와 만난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나는 대로 전부 말했다.

천마의 운명의 상대로 내가 나왔고, 그 천기 안의 나는 자식까지 4명이나 낳을 정도로 천마에게 십 수년 동안 감금 당한 것처럼 보인 거랑

그 천기 안에 있는 미래의 천마가 지금의 나를 인식해서 겁탈했던 것도 다 말했다.

앞으로 몇 달 안에 다시 마교에 방문해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내 말을 다 들은 뒤 일행의 표정은

-멍

"..."

정말 어이가 없다 라는 말을 그대로 표정으로 옮겨 붙이면 나올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방금 말했던 거에 따르면 천마의 천기는 그분의 의사에 영향을 받는다고 했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저런.. 미래가 나왔다는 건 조금 과장..? 같은 게 된 건가요 아니면 그것도 본인의 의사가 반영된 걸까요..?"

"..."

...그러고 보니 그렇네.

천마가 나한테 첫눈에 반했고 언제 내가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그걸 생각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과장된 걸 수도 있지 않은가.

사람의 상상이 아무리 정교하다고 해도 현실 전체를 옮길 수는 없기에 천기가 알아서 완성하는 부분이 있을텐데 그 부분이 조금 과격하게 드러났으면..

"10년 넘게 감금해두고 자식을 넷이나 낳을 정도인건 과장됐을 가능성이 있긴 해요. 그래도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걸 천기가 자동으로 완성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요."

"예를 들면요..?"

"애초에 이런 경우 자체가 전무후무한 일이라서 예시로 들 것도 없어요. 그래도 굳이 예를 들자면.. 저 남자를 옆에 두고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 정도의 욕망이 천기에선 저런 형태로 과장됐을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 그러면..!"

"뭐 아닐 수도 있고요. 정말 그런 상상을 했을 수도 있죠. 제가 그 여자가 어떤 성격인지 아는 것도 아니니까."

"..."

좋다 말았네.

그래도 이걸로 말할 건 다 말했다.

원래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걸 그냥 밝히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우선 천마가 이미 집을 찾아와서 한바탕 난리를 치고 간 상황이니 뭘 더 숨기기도 애매했고

'내가 지쳤어 그냥..'

감추고 있는 게 계속 늘어만가는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부담감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천마에 대한 이야기는 밝혔지만 성녀님에 대한 건 전혀 말하지 않았다.

여소천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은 성녀님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여소천도 내가 성녀님과 영혼을 건 계약을 나눴다는 사실은 모른다.

어찌됐든 1만포인트가 모이는 순간 다른 세계로 가서 종마로 살아야 한다는 계약을 했다는 걸.

아직은 기한이 널널하게 남아있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결국 언젠간 모이게 되어있다.

성녀님이 어떤 수로든 포인트를 소모 못하게 막는 순간 그때부터 시한부인생 시작이었으니까.

...맨날 잠자리에서 힘들다고 온갖 엄살은 다 부리지만 지금 있는 여자들까지는 버틸만 하다.

어떤 이유로든 몸을 한두번 섞은 게 아니고 그동안 쌓인 정도 많은 덕분에 사실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다.

이렇게 살게 된데 내 업보도 있었고.

근데 천마나 성녀님은 아예 종류가 달랐다.

전자는 마교 지하실에 갇혀서 햇빛 구경도 못하고 천마한테 쥐어짜여야 하는 거고

후자는 아예 발을 디딘 세계 자체가 달라진다.

그것도 그냥 착정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쉬지 않고 다른 여자들이랑 몸을 섞는 종마로 살게 된다.

정해진 수명대로 죽지도 못하고 최악의 경우엔 내 자식들이랑도 몸을 섞..

'으으..'

잠시 얼마 전까지 시달리던 악몽이 다시 생각나서 몸을 떨었다.

이미 계약서에 싸인까지 해버린 이상 무를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어떻게든 무르고 싶었다.

아무리 섹스가 기분 좋은거라지만 그건 사람 사는 인생이 아니지 않은가.

대체 전생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저런 계약에 싸인을 했다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그때 계약을 하지 않았으면 당아영이 지금 옆에 있지 않았겠지만 원래 사람이 급할때랑 안급할때가 다르다고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가슴속에 품고 있던 모루 하나를 밖에 드러낸 심정은..

"...좀 편하네요."

"네? 뭐가요?"

"...기분이요."

심각한 표정으로 각자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자 내가 참 사람들은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헤어지고 싶지 않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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