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11장-업보
'그나저나 신기하네..'
몸에 신기할 정도로 힘이 널널했다.
사실 이 세계에 와서 했던 섹스 대부분이 하고 나면 힘없이 쓰러져서 다음날 깨어났던 기억 뿐이라 불과 몇십 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쥐어 짜였던 기억과는 혼란을 일으켰다.
내가 정말 쥐어 짜였던 게 맞나 하고.
그렇다고 딱히 전생에 섹스를 해봤는지 안 해봤는지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라..
'...보통은 안 쓰러지나?'
제대로 된 경험이 없으니 뭐 비교가 안됐다.
내 몸이 비정상적이라는 자각 정도는 있는데 정상적인 섹스는 어떤 건지 알 기회가 딱히 없었다.
그래도 상식적으로 다 나 같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이 세계가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름 성에 대해 보수적인 시대라서 대놓고 섹스 얘기를 밖에서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가까운 사람한테 조심스럽게 물어보거나 그런 내용이 있는 책을 찾아보는 것 정도인데
'보자 내 주변 지인이..'
......
'어.'
생각해보니까 나 친구가 없구나.
기억나는 얼굴이 한두개정도 있긴 한데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뿐이다.
나름 사교성은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아니 사실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일반적인 삶인 거 아닐까?
부인 여러명한테 매일같이 밑에 깔려서 착정당하다가 그만하라고 애원해도 귀엽다면서 안 멈추고 그대로 기절할 때까지 당하는 게 사실 알고 보면 보통 사람들도 이렇게 살고 있는..
'그럴 리가 없잖아 미친.'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심하게 비정상적인 거지 다른 사람들도 다 이런 식으로 살고 있으면 세상이 이런식이겠는가.
하마터면 셀프 가스라이팅을 할뻔했다.
아무튼 그렇게 쥐어 짜였는데도 이 정도 체력 소모로 그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끝난 다음에 쓰러지지 않고 일어나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
'...나?'
회복됐다고 다시 덮치면 어떡하지?
그러면 기절도 못하고 정력은 그대로 회복된 상태로 2차전을 해야하는 거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이 뻗어나가자 절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한테서 뽑아간 정기를 다시 돌려준다고 해도 체력만 회복되지 쾌락에 시달린 건 그대로지 않은가.
제한이 얼마나 있는진 모르겠지만 하려고 한다면 3차전 4차전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쯤 되면 차라리 기절하는 게 편할 정도로.
'기, 기절하는 연습이라도 해야 하나?'
원래 그동안은 기절하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 이렇게 되면 못하는 게 오히려 위험해진다.
그 정도 섹스를 쉬지도 않고 몇 시간 동안 하면..
'히익..'
절대 못 버틴다.
스승님이 알아서 정도를 조절해준 것 같긴 하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언제든지 더 강한 쾌락을 떄려박을 수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나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원래 내 정력의 한계 때문에라도 하루에 한 명까지만 상대하는 걸로 이야기가 되어있던 건데 스승님은 나랑 해도 다시 회복시킬 수 있으니까 그런 핑계가 안 먹힌다.
막말로 스승님이랑 한 날에 다른 여자랑도 할 수 있고 다른 여자랑 해야 하는 날에 스승님이 먼저 덮친 다음 회복시킬 수도 있으니까.
-덜덜덜덜
내가 그런 끔찍한 상상을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들은 알아서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당아영은 예전처럼 스승님의 옆에 붙어서 치근덕대며 호감작을 하는 중이었고 여소천은 뾰루퉁한 표정으로 기절해있는 검후님과 그 제자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두 사람이 나름 경지에 오른 무인이라는 걸 생각하면 고작..? 이런 일로 큰일이 생길 것 같진 않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러니까 제가 왜 이 꼬맹이까지 관리해야 하냐고요.."
-투덜투덜
정작 진짜 꼬맹이처럼 생긴 사람이 저렇게 말하니까 어딘가 어색했지만 그래도 여소천은 얌전히 둘의 옆에서 자리를 지켰고
"...으음.."
다행히 별일은 없던 건지 검후님이 금방 다시 눈을 뜰 수 있었다.
"일어났어요?"
"...내가 뭔가 보면 안될 걸 본 것 같은데 그게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네."
"아마 현실일걸요. 그만 부정하고 그냥 받아들이세요. 이해하길 포기하면 편하니까."
"그대라서 그렇게 쉽게 포기가 되는 거지 나는.. 윽.."
"누가 보면 머리라도 얻어맞은 줄 알겠네요. 내공이라도 한번 두르던가요."
"그대가 말 안 해도 그러고 있네.."
검후님은 정말 충격을 제대로 받았는지 2번이나 쓰러지고도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검후님 정도의 고수를 저렇게 만들 정도의 정신 공격은 온갖 무공을 뒤져봐도 흔하지 않을텐데 그걸 스승님이랑 내가 해냈다.
'...좋은 건 아니지만.'
나야 지구 출신이라 별 생각 없을 뿐이지 사실상 근친이나 다름없는 짓이니 어디 가서 드러내면 얼굴에 달걀이 날아올 각오 정도는 해야 한다.
애초에 드러낼 생각도 없지만.
여소천은 이미 알고 있던 것 같고 당아영도 어떻게든 넘어간 거 뿐이지 아까 시선에 스쳐 지나갔던 더러운 걸 보는 듯한 눈빛은 그래도 조금 상처 입을 수밖에 없었다.
매도 당해도 좋은 건 침대 위에서지 평상시가 아닌..
'아니 또 뭐라는 거야.'
-탁
생각이 이상하게 뻗어나가자 서둘러 손으로 머리를 때렸다.
요즘 나도 점점 정신이 이상해져가는 것 같다.
진짜 섹스를 줄이던가 해야 할 거 같은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 원.
"그래서.. 그와 그의 스승이라는 분의 관계가.. 그런 관계라고.."
-움찔!
검후님은 내공으로 정신을 조금 맑게 하는 데 성공했는지 조금 깨끗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걸 어떻게 변명해야 하나 내가 열심히 고민하고 있는 사이
"...그래. 뭐.. 둘 사이에 합의가 있었다면 그 둘이 괜찮다는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뭐라고 하겠나."
'...?'
생각보다 쉽게 납득하시는 모습에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안 하세요?"
"단전이 부서진 그대를 거두어준 뒤 천기를 읽는 법까지 알려주신 은인 아닌가. 아무리 그대가 날 용서했다고 해도.. 감히 내가 그런 분에게 뭐라고 할 자격은 안되겠지."
"...아."
이게 또 그렇게 되네.
그 일에 대해선 죄책감을 그만 가지셨으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따지고 본다면 내가 뭐라고 할 게 아니라 허리 숙여 절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 덕분에 그대를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니."
"그..으..렇긴 하죠?"
"아. 그러고 보니 소연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선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군. 기억을 잃은 것 같다고 했었나? 우선 내가 진짜인지 아닌지 한번 추궁해 보겠네. 만일 정말이라고 해도 녀석이 지은 죄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처분은 그대들에게 맡기지."
"...네?"
"녀석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그대들 아닌가. 이 녀석을 어떻게 할지도 그대들에게 맡기는 게 맞네. 처형해도 괜찮고 허튼 짓 못하게 단전을 봉인한 뒤 노예로 부리거나 팔아넘겨도 상관하지 않겠네. 녀석이 지은 죄에 대한 죗값은 치뤄야 하니까."
"..."
검후님은 덤덤하게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받아들이겠다는 듯이 말했지만 몸의 떨림과 감정의 동요는 완벽하게 숨기지 못하셨다.
옛날에 그녀가 내 단전을 부쉈을 때 직접 목을 베셨다고 했던가.
참 검후님다운 선택이었다.
사람이 죄를 저질렀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한 거긴 해도 본인의 손으로 그런 결단을 내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아무리 검후님이라고 해도 두 번이나 참는 건 어려운 모양이었다.
검후님이 저렇게 동요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으니까.
"...일단 조금 더 옆에 두고 지켜보는 걸로 하죠."
사실 원래부터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저런 모습을 보면 더 모질게 대하기 힘들었다.
"그, 그래도 되겠나?"
"근데! 꼭 하나 알아두세요."
그러나 그녀를 옆에 두고 지낸다고 해도 반드시 명심해야하는 게 한 가지 있었다.
나는 정말 단호한 태도로 검후님을 향해 손가락을 하나 세웠고 검후님은 거의 처음 보는 내 단호한 모습에 살짝 당황하며 침을 삼키셨다.
"뭐, 뭔가?"
그리고 그 꼭 하나 알아둬야 하는 건
"전 검후님 제자한테 이성적으로 관심 없어요."
"...?"
그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보지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한 한마디였다.
진짜. 정말 관심 없었다.
비록 예쁘게 생겼고 가슴도 크긴 한데 그거랑 이건 별개의 문제였다.
1%의 가능성이라도 여기서 여자를 더 늘리는 건 사양이었으니까.
아무리 속은 애라지만 결국 몸은 다 큰 여자인 이상 주의해야 했다.
설마설마 하다가 스승님까지 끌어들이게 됐는데 뭐는 안될까.
지금의 나에겐 여자는 다 짐승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해도 전혀 과한 게 아니었다.
"아 혹시 소연이를 원하는 거라면 아까 말했다시피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을 테니 마음대로.."
"아니 반어법이나 다른 의미 전혀 없고요. 진짜 그런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는 거니까 알아주시라고요."
"아, 알았..네?"
검후님은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일단 알겠다는 의사 표현을 하셨다.
아마 '여자는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 같은 느낌으로 생각하고 계시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하시던 제대로 전달해 놨으니 일단 적당히 된 거라고 생각했다.
굳이 내 정력이 부족하네 몸이 남아나질 않네 이런 식으로 말할 필요까진 없겠지.
그렇게 내가 한숨 돌리고 있는 사이 도저히 사람을 쉬게 만들어주질 않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쿵!
"처, 청뢰검님! 혹시 안에 계십니까!"
내가 아니라 여소천을 찾는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 그녀의 일이면 결국 높은 확률로 이쪽이랑도 연관이 있는 일이라서 그렇게 의미 있는 위로도 아니었다.
"...하. 망할. 온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결국 검후님과 내가 대화하는 모습을 본 뒤 피곤하니까 건들지 말라는 티를 팍팍 내며 침실로 향했던 여소천은 짜증을 내며 다시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벌컥.
"급한 일이에요? 당장 어디로 가야 한다거나."
"그, 그런 일은 아니지만 급하게 아셔야 할 것 같아서.."
"그런 거면 서신이나 주고 빨리 가요. 지금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으니까."
"시, 실례했습니다!"
어쩐지 오늘따라 유독 까칠하다 했더니 잠을 제대로 못 잤구나.
아무리 경지가 높은 초인이라고 해도 잠을 아예 안자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뭘 시켰던 게 조금 미안해졌다.
-쿵!
"대신 좀 읽어주세요. 지금 글이 머리에 제대로 안 들어올 것 같아서."
"ㄴ, 네.. 잠깐만요.."
-펄럭
까칠한 걸 넘어서 짜증도가 99%까지 차있는 것 같은 여소천을 보며 나는 얌전히 서신을 대신 펼쳐서 읽었고
-쩌저적
서신의 내용은 그대로 내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아.. 아.."
"뭔데요. 많이 심각한 일이에요?"
"무, 무슨 일이에요? 또 뭐가 일어났어요?"
"속세는 참 바쁘게 돌아가는구나."
그런 내 모습을 본 건지 어느새 다들 주변으로 다가왔고
"천마가 북해빙궁을 초토화 시켰다는..데요..?"
내 말에 다들 나처럼 그대로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