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11장-무자각
"으응.."
이렇게 기분 좋게 푹 자는 게 얼마만인가.
스승님이 온 뒤로 밤에 그런 일을 당하느라 제대로 자질 못했으니 최소 3일만이다.
간만에 푹 자고 일어나며 정신을 현실로 되돌리고 하루를 시작..
"일어났느냐?"
"?"
왜 또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오늘은 나 혼자 자지 않았었나?
침대에서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며 반사적으로 이불로 몸을 끌어안았다.
"오, 오늘은 안돼요!"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자, 잠꼬대는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이런..!"
...응?
그러고 보니 스승님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게 약간 떨어진 곳에서 들렸다.
조심스럽게 눈을 뜨고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자 침대에는 나 혼자만 누워있었고..
"이상한 꿈을 꾸기라도 한 것이냐. 나와 네 관계가 뭐 어쨌다고."
"...어."
정작 스승님은 내 옆에서 자는 게 아니라 침대 옆에서 멀쩡히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거기 계세요?"
"네가 술에 취해서 잠든 사이 나보고 옆에 있어 달라고 하지 않았더냐."
"제가 그랬었.."
그와 동시에 어젯밤에 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조금만 더 마시겠다고 해놓고 그대로 취해서 혀도 꼬일 만큼 마셔버렸던 것.
-삐질삐질
"자, 잘못 아신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기억이 없는걸요."
"그런 말을 할 거라면 최소한 식은땀을 흘리면서 눈을 피하지는 말거라."
"아, 아무튼 잊어주세요!"
누가 안그렇겠냐만 나도 술주정은 부끄럽다.
이 몸이 술이 강하다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계속 입에 들이부었던 게 화근이었다.
아무리 술이 강하다고 해도 그 정도로 쳐마시면 취할 수밖에 없는 건데.
"뭐, 무슨 꿈을 꿨든 일어났으면 나와서 씻기나 하거라. 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으니."
"...그래도 조금 부드럽게 말해주면.."
"같이 씻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다만."
"씻으러 갈게요!"
방금 잠에서 깬 사람이라곤 믿기 힘든 속도로 몸을 일으켜 빠르게 화장실로 향했다.
혹시라도 스승님이 들어올세라 최대한 빠르게 씻고 나온 뒤 거실을 바라보자 스승님과 당아영은 오늘도 밖에 나간 건지 짧은 내용의 쪽지와 함께 텅 빈 집안의 모습이 보였다.
정확히는 혼자는 아니고 한 명 있긴 했지만..
"...계속 그렇게 묶여있는데 안 심심해요?"
"제, 제가 잘못해서 묶여있는 거고..수련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후우.."
검후님의 제자의 처분에 대해선 여전히 머리가 복잡했다.
과거의 나와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정작 그 대답을 듣기 전에 기억을 잃어버려서 14살 짜리 애가 되어버렸다.
검후님이 본인의 제자에 대해서 따로 언급하지 않았던 것과 이미 10년도 더 전에 죽었던 걸 생각하면 마냥 좋은 제자는 아니었던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제자 아닌가.
함부로 어떻게 처리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말이 진짜라는 가정 하에 아무것도 모르는 14살 짜리 애를 험하게 다루는 것도 마음에 걸렸고.
"...풀어주는 건 안되고. 뭐 원하는 거라도 있으면 말해봐요. 먹고 싶은거라거나."
"저, 정말요?"
"자세한 건 검후님이 돌아온 뒤에 이야기해야 알겠지만.. 일단 당신이 검후님의 제자라고 하니까요. 그리고 다 들어주겠다는 것도 아니에요. 당연히 어려운 건 안돼요."
"그, 그러면.. 부탁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뭐 기껏해야 간식이라도 가져다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대답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방향이 상당히 엇나가 있었다.
"...등 좀 긁어주세요."
"에."
.
.
.
"거, 거기보다 살짝 오른쪽.. 네. 거기요."
"..."
"아아.."
이름이 한소연이라고 했었나.
그녀는 기분 좋다는 듯이 눈을 살짝 감기까지 하며 기분 좋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난 또 뭔 부탁을 하나 했더니.'
예상과 많이 빗나가긴 했지만 그렇게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다.
아무리 외간 여자라도 그 안에 들어있는 게 14살 짜리 애니까.
묶여있는 탓에 혼자 긁지도 못할 거고 안 그래도 날씨도 더워서 땀도 꽤 날텐데 그냥 긁어주기로 했다.
등이 뭐 그렇게 위험한 부위도 아니니까.
"..아프진 않아요?"
"안 아프니까 걱정 마세여.."
'진짜 기분 좋아 보이네.'
대체 얼마나 가려운 걸 참고 있었으면 고작 긁어주는 것 만으로 이런 반응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얘도 씻기긴 해야겠지?
경지가 높으면 노폐물이 알아서 정화된다는 말을 듣기도 했었는데 전에 했던 말을 들어보면 고작해야 일류라고 했으니 아직 그걸 기대하긴 어려워 보였다.
...당연히 내가 씻기진 않을 거고 당아영한테 맡길 거다.
아무리 안쪽은 애라고 해도 미취학 아동도 아니고 14살이면 남자가 씻겨줄 나이는 한참 지나지 않았는가.
그리고 안이 완전 애였다고 해도 몸은 완전히 성인의 것이니 내가 씻기기엔 여러모로 부담스러웠다.
...오히려 웬만한 성인 뺨을 세 번은 후려칠 몸매고.
'여소천이랑 반대네.'
이 여자가 정신이 애, 몸이 성인이었다면 여소천은 정신이 성..인이고 몸이 애들처럼 생겼었으니까 그렇게 볼 수 있었다.
...물론 여소천도 얼굴과 키만 봤을 때나 성립하는 이야기긴 하지만.
그냥 처음 딱 눈만 마주쳤을 때는 소녀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 순간 머릿속에 혼란이 오는 외모.
성인인데 애처럼 생긴 건지. 애인데 좀 빨리 성숙한 건지.
아마 나는 전자로 인식했던 것 같았다.
후자라고 하기엔 아무리 그래도 좀 많이 성숙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여자도 몸매가 심상치가 않다.
'...이 세계에 이 정도 크기가 이렇게 흔했나?'
뭔가 조금씩 혼란이 오는 기분이다.
분명 내가 알기론 대부분 평범한 동양 여자 평균 사이즈일텐데 이상하게 내 주변에만 탈동양급 여자가 많았다.
스승님이랑 10년 넘게 지내버린 탓에 웬만한 여자들은 여자로도 안 보이는 내 눈에도 인식이 될 정도라는 건 보통 사람들 기준으론 길가다가 보게 되면 눈을 의심하면서 돌아볼 정도라는 건데..
'...뭐 나쁠 건 없지만.'
이 여자. 그것도 검후님의 제자와도 남녀관계를 발전시킬 생각은 정말 하늘에 맹세코 단 1mg 만큼도 없지만 그냥 보는 것 만으로도 남자로서 눈이 즐거운 장면이었다.
뭐.
좀 볼 수도 있지.
솔직히 남자로 태어나서 여기서 눈을 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건 그 사람이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다.
대놓고 보는 건 상대가 기분 나쁠 수 있으니 자제해야겠지만.
"이제 적당히 다 긁은 거 같은데 더 가려운데 있어요?"
아무튼 이제 이 시간도 다 끝나간다.
"아.. 그러면 이제 앞쪽을 좀.."
"네.. 앞쪽이요.. 잠깐만요.."
나는 방향을 옮겨 달라는 그녀의 말을 듣고 몸을 일으켜 그녀의 정면 방향으로 몸을 옮겼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들었던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만잠깐만잠깐만잠깐만."
"왜, 왜요?"
"등의 앞쪽이면 가슴이랑 배 있는 방향 말하는 거잖아요."
"맞..죠?"
"이 여자가 미쳤나."
어디서 자연스럽게 수작을 부릴려고.
"정신이 어리다고 방심했더니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수작을 부리다니. 대단하네요."
"수, 수작이라뇨?"
"앞도 긁어 달라는 거면 가슴이나 배를 긁어 달라는거잖아요."
"그..런데요?"
"아무리 그래도 남자한테 그런 걸 부탁..."
...뭐라고 쏘아붙이려던 나는 순간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대체 뭐가 문제냐고 묻고 있는 것 같은 저 순진한 표정.
정말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모습을 보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선 한번 확인 차 말해보기로 했다.
"자.. 생각을 해보죠. 긁는다는 건 곧 만진다는 거죠?"
"그렇죠..?"
"그러면 제가 가슴을 긁어주려면 가슴을 만진다는 거겠죠?"
"그런데요..?"
"..."
진짜 뭐지?
아무리 14살이 어리다고 해도 그래도 최소한의 성적 지식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살다 보면 주변에서 접하는 게 있을 텐데 이게 부끄러운 행위라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알..
'...아.'
깜빡 잊고 있었다.
이 애가 검후님에게 거두어지고 화산에서 자랐다는 걸.
그러면 그럴 수도 있었다.
당장 저번에 또래 친구들을 거의 못 만나 봤다고 얘기했던 것도 있었고 그러면 이런 걸(?) 배울 창구는 검후님 밖에 없었다는 건데
...검후님이 성교육을 제대로 해줄 것 같은 이미지는 아니니까.
"호, 혹시 제 가슴을 만지는 게 싫은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닌.. 아니 말이 이게 아니라.."
"사, 사실 저도 몸이 갑작스럽게 커진 상황이라.. 원래 이렇게 크진 않았었는데.. 어색하기도 하고.. 땀도 많이 나는데 닦지도 긁지도 못하니까.. 기왕 등도 긁어주신 김에 이쪽도 긁어주셨으면 해서.."
"아니 일단 조용히 해봐요. 이거 위험하니까."
"가슴 만지는 게 왜요..?"
"알았으니까 일단 조용히 해!"
속은 아직 어린애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누구 세계 망하게 할 일 있어!
망할 거면 나 때문에 진작에 망했어야 하긴 했는데 아무튼!
"...후우. 잘 들어요. 그런 데는 다른 사람. 특히 이성한테는 함부로 접촉하게 두면 안되는 소중한 부위에요."
일단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간략하게라도 교육을 진행해주기로 했다.
"왜요..?"
"나중에 혹시라도 애를 낳게 되면 써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남자들은 그런 거에 예민하거든요."
"예민하다는 게 어떤 건데요..?"
"어.. 야한 기분.. 음.. 더 만지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거나.."
"그러면 유성님도 제 가슴을 만지고 싶은 건가요?"
"..."
왜 이게 이렇게 이어지지?
"만지고 싶으면 만지셔도 돼요! 제, 제가 먼저 씻을 수 없는 죄를 입장이니까 제 몸도 마음대로 하셔도.."
"..."
아니 물론 나도 만지고는 싶지.
아무리 내 상황이 이래도 남자의 본능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조절 됐으면 내가 지금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고.
그래도 이건 진짜 아니었다.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정신연령이 애인 것도 문제. 이 애가 검후님의 제자인 것도 문제. 당장 내 여자 문제가 이미 포화 상태를 넘어서서 터지기 일보 직전인 걸 억지로 눌러 담은 상태라는 것 등등..
"...그냥 이따가 당아영이 돌아오면 다시 말해보세요. 이참에 그때 한번 씻는 걸로 하고."
"그, 그러면 최소한 땀이라도 닦아주.."
"떽. 안되는 건 안돼."
"힝."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를 간략하게 교육 시키는 데 성공한 뒤 한시름 놓고 오늘은 집 청소라도 해볼까 생각하던 순간
-벌컥!
"저희 왔어요! 거의 한나절을 쉬지도 않고 뛰어와서 배고프니까 우선 밥부터.."
"드, 들어가겠네.."
-멈칫.
익숙한 두 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녹슨 기계가 돌아가는 것처럼 끼긱 거리며 목을 돌렸고
"...스승님?"
"...소연아?"
내가 뭘 해볼 틈도 없이 두 명은 이미 눈을 마주친 이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