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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209화 (209/250)

[209화] 11장-선택

대체 시발 세상에 어떤 여자가 술병 안에 반지를 넣어서 줄 생각을 할까.

그것도 이미 애인이 있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여기가 지구였다면 고소해도 할 말이 없었을 거다.

...그녀를 잡아갈 수 있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서 문제지.

아니 진짜 들이대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왜 애인이 있다는 사람한테 들이대는 건데.

임자 있는 남자를 뺏는 취향이라도 있는 건가?

'...'

농담 삼아 해본 말이었는데 완전히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음험한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런 취향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생각해보니 진짜 그런 취향이 있는 게 아니면 아무리 첫눈에 반했다고 해도 이미 애인이 있다는 사람한테 이 정도로 대쉬하는 게 말이 안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아.'

생각하면 할수록 잘못 걸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 뭐 반지. 줄 수도 있지.

술병에 넣어서 주는 건 많이 이상하긴 하지만 내가 술을 좋아하니까 그 안에 넣었다고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근데 문제는 그걸 그날 처음 만난 사이인데다가 이미 애인까지 있는 사람한테 줬다는 것.

대체 어디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아오 진짜 뭐 하는 여자냐고.."

기껏 술 마시고 좀 풀리나 했던 스트레스가 갑자기 확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일단 지금 상황에서 빠르게 해야 하는 게 있었다.

이 반지를 어떻게든 처리하는 것.

미쳤다고 이걸 끼고 다닐 생각은 없다.

아직 부인들이랑도 반지는 안 맞췄는데 이걸 무슨 깡으로 낀단 말인가.

-툭 툭

'...일단 좀 닦고..'

술병에 담겨있던 만큼 반지에서 술 냄새가 진동을 한 탓에 물로 박박 닦은 다음 고민 많은 표정으로 반지를 바라봤다.

일단 생긴 걸 보면 상당한 명품이었다.

반지 자체도 금에 비싸 보이는 보석까지 박혀있는 이런 걸 무슨 생각으로 술병 안에 넣어놨나 싶은 물건.

설마 천마쯤 되는 사람이 뭐가 아쉽다고 짭을 줬을 것 같지도 않으니 귀금속 전문점에서 감정 받으면 금전 수십 개는 가볍게 받으리라.

사실 관심도 없는 사람이 준 반지는 그렇게 해결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긴 하다.

심지어 이미 애인까지 있는 상황이면 더더욱.

'문제는 상대가 상대라는 거지.'

그 반지를 준 상대가 천마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평생 안볼 사이라면 모를까 5개월 안에 한번은 다시 만나러 가야 하는 상황인데 그런 반지를 팔아?

인생 제대로 좆되는 지름길이었다.

'끼지도 못하고 버리거나 팔지도 못하고..'

그러면 뭐 할 수 있는 게 더 있나.

그냥 품속에 감추고 다니는 수밖에.

'...아니 근데 싫어하게 만들어야 하잖아.'

그녀가 내게 관심을 끄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너무 싫어하게 만들면 또 안된다.

진짜 그냥 딱 내가 더 이상 뭘 하든 말든 관심 없는 상태 정도로 만드는 게 베스트인데 그 선을 찾기가 힘들었다.

당장 그 여자가 내 뭘 보고 이렇게 대쉬하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그녀의 성격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니까.

일단 추측되는 것으론 내 망토를 뚫고 내 맨 얼굴을 본 거랑 똑같이 술을 좋아하는데 같이 마시는 동안 말까지 잘 해줘서 정도가 있는데..

'...술을 끊었다고 하면 되려나?'

그녀도 나 못지않은 주당인 것 같으니 내가 술을 끊으면 관심을 끄지 않을까?

머리 위로 전구가 켜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쳤다.

이거다.

외모도 외모겠지만 결국 취미가 맞아서 반한 걸 테니 취미가 안 맞게 만들면 자연스럽게 나를 향한 관심도 꺼질 거다.

그러면 앞으로 술자리를 못 가지겠지만 그녀 때문에 위험할 일은 더 없..을 거다.

'아, 아니야. 아쉬워하지 마.'

아무리 술이 좋아도 정도가 있지 술 때문에 인생을 팔아넘길 순 없다.

그 술들을 다시 못 마신다고 생각하니 절로 아쉬운 마음이 올라온 걸 자각하자 진짜 내가 심각한 알콜중독이구나 싶었다.

인생이 좆되게 생겼는데 그딴 술이 문제냐고.

'..이 정도면 진짜로 술을 끊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몸이 알코올을 잘 받아들인다고 너무 절제 없이 부었더니 정말 피에 알코올이 흐르는 몸으로 변하기라도 했나 보다.

진짜 이러다 그대로 마교 지하실로 향할 수도 있으니 이참에 진짜 술을 끊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드르륵

딱 오늘까지만 마시고.

* * *

그이의 스승님에게 점수를 딸 겸 시내를 안내해드리기 위해 밖에 나와있던 당아영은 여러모로 진땀을 빼야 했다.

비록 얼마 전에 사고가 일어났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사람들이 금방 움직이기 시작해 도시가 예전 모습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긴 했지만 안내해줄 만한 게 많이 없었다.

건물이 통째로 날아갔거나 남아있더라도 복구공사중인 게 대부분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피해가 비교적 적은 외곽 쪽만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떠세요? 속세도 나쁘지 않죠?"

"괜찮은 것 같구나."

그의 스승님은 그렇게 말하며 혀를 내밀어 아까 산 탕후루를 핥았다.

누가 스승과 제자 관계 아니랄까봐 먹는 모습도 상당히 비슷했다.

산 속에 오래 있었다는 것 치고 적응이 굉장히 빠른 모습에 괜히 쓸데없는 것까지 설명하려던 자신이 머쓱해질 지경이었다.

"호, 혹시 어디 더 보고 싶은데 있으세요? 고향은 사천이지만 여기서 오래 살아서 웬만한 건 알고 있는데.. 옷은 어제 주문했으니까 장신구에는 관심 없으세요?"

"딱히 관심 없다."

-핥짝

...그런 거 없어도 충분히 에쁘다는 자신감일까.

자신과 다르게 몸짓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에 이런 게 연상의 매력이라는 건가 싶었다.

'그러고 보니 남자들은 엄마랑 비슷한 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도 들어본 것 같은데.'

생긴 거랑 비슷하게 어리광을 자주 부리던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마냥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딱 봐도 흘러넘치는 모성애를 봐라.

대체 어릴 때부터 얼마나 어리광을 잘 받아줬으면 자신과 동갑이라는 남자가 성격이..

'흠흠.'

뭐 그런 면이 그의 매력이니까.

본인은 평소엔 애써 진중한 척 하면서 조금만 힘들거나 압박 당해도 금방 어린애처럼 달라붙는 모습은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몸만 야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성격까지 당장 들어서 덮쳐버리고 싶..

"...내 제자가 점집을 운영했었다고 들었는데."

"네, 네?!"

"그것도 이 마을에 있나?"

"ㅇ, 아! 네! 그것도 있어요! 안내해드릴까요?!"

"..한번 봐보도록 하지. 속세에서 그걸로 먹고살았다고 들었으니."

자신도 모르게 감히 그의 스승님을 옆에 두고 머릿속에서 폭주해버렸다.

여러모로 저질스러운 짓이었지만 이건 자신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최근에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탓에 성욕을 풀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그의 스승님을 집에 모시고 있는 상황이라 아예 그의 방에 갈 수도 없는 상황이고..

한참 혈기왕성할 나이인데 거의 몇 주째 해소를 못하고 있으니 성욕이 계속 쌓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와 그의 스승님을 동시에 집에 두고 혼자서 수음하는 것도 모양새가 많이 이상하고..

"이..쪽으로 가면 되는데.. 잠시만요."

자신이 마련해준 땅이었지만 이 땅. 섬서에서도 상당히 비싼 땅이었다.

그도 알고 있었겠지만 가게나 점포같은 걸 내기에 정말 최적의 장소 중 하나라 쉽게 자리가 나지 않는 걸 어떻게든 구해서 준거였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당시엔 아직 학생이었던 만큼 조금 부담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 투자는 해볼 만한 상대라고 생각해서 본가에 손을 빌려가며 구해줬었고

결과적으로 이런 관계까지 오게 됐다.

'..사실 그땐 능력 때문에 접근했던 거긴 하지만.'

그땐 그의 예지 능력을 탐냈고 만약 그 능력이 진짜라면 당가의 일원으로서 한 몸 희생해서 그를 데릴사위로 데려올 각오까지 했었다.

설마 내가 먼저 반해서 이렇게 될거라곤 그땐 생각도 못했으리라.

그땐 연애는 전혀 생각도 없었고 경지를 올리는 것에 몰두해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 지금은..

[...네가 그렇게 선택했다면 말리지 않으마.]

...무공 수련은 반쯤 접은 지 오래였다.

무인으로서의 삶보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더 살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

청뢰검님이나 검후님까지 그와 엮이게 되면서 쐐기가 박힌 것도 물론 있었지만 사실 그 전부터 저울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다른 평범한 무인들이라면 모를까

자신은 사천당가의 무인. 그것도 가주의 딸.

혈관에 독이 흐르는 몸으로 이 이상의 경지를 보고자 한다면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있었다.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그리고 그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당연히 저울의 반대쪽에 있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죄송해요. 전..]

[됐다. 네가 무엇을 선택하던 네가 행복한 길을 걷도록 응원해주는 것이 아버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겠지. 장로들에겐 내가 말해둘테니 너는 괜한 걱정하지 말거라.]

[...죄송해요.]

정말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아버지는 예상과 달리 따뜻한 말로 나를 위로해주셨다.

[네가 무슨 큰일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말하는구나. 비록 네가 어릴 적부터 그 늙은이들에게 많은 기대를 받은 것은 맞지만 우리 당가가 고작 한 사람이 무기를 내려놓는다고 큰일이 생길 정도로 약한 가문은 아니다. 고작 그 정도로 쇠락할 가문이면 진작에 망했겠지.]

[...푸흡.]

[오히려 몇몇 늙은이들은 좋아하겠구나. 이참에 자기 자식들이나 더 지원해 달라고 하겠지. 너도 네가 그렇게 선택한 이상 지원금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거고.]

[그건 당연히 각오하고 있어요.]

[그래. 그러면 더 해줄 말은 없겠구나. 후우.. 전에 그 모습을 봤을 때부터 어쩐지 불안하더라니..]

[아하하하..]

[...뭐. 너는 네 엄마를 닮았으니 따로 조언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겠지. 나는 오히려 그자가 불쌍..]

[여보?]

[크흠! 큼! 아, 아무튼! 결혼은 할 거라면 빨리 해두는 게 좋을 거다. 그런 선택을 내렸으면서 아직 결혼도 안 했다고 하면 평소에 너한테 불만이 많던 늙은이들이 신나서 물어 뜯을..]

...아빠 때문은 아니더라도 자신도 종종 날아오는 친구들의 청첩장을 보면서 생각이 많이 늘어가던 참이다.

청뢰검님이나 검후님 두 분은 이미 그런 거에 연연할 나이를 넘어버린 것 같았으니 재촉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설득해야 할 사람.

-이글이글

'최대한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해..!'

당아영은 장모ㄴ.. 아니 그의 스승님을 안내하며 투지를 불태웠다.

-핥짝

'갈 때 좀 더 사가야겠군. 맛있다고 한 이유가 있어.'

정작 본인은 별생각이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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