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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점쟁이로 살아남기-206화 (206/250)

[206화] 11장-반복

"아무튼. 네가 연애운이 보고 싶다고 했었지?"

"네, 네?"

"이미 제자가 봐주겠다고 말을 해버렸으니 내가 대신 봐주도록 하마. 당장 특별히 문제는 없는 것 같지만 이 녀석에게 당장 맡기기엔 확인해봐야 하는 것들이 있어서 말이다."

"아, 아뇨! 괜찮아요! 안 봐주셔도 돼요!"

얌전히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멍 하니 듣고 있던 검후님의 제자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말을 했으면 지켜야 하는 법이지. 이 녀석과 달리 나는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으니 편하게 말하거라. 오랜만에 속세에 나와서 마침 심심했던 차이기도 했으니."

"어.. 그, 그게 실은 말이죠.. 사실 제 연애운을 봐 달라는 게 아니라.."

"음?"

"저, 저희 스승님이.. 외로워 보이셔서.. 혹시 좋은 분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

그녀의 말에 찔리는 게 있는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스승님은 살짝 고개를 갸우뚱 하셨다.

"요즘 화산파는 도사가 연애를 해도 되게 허용했던가?"

"아, 안된다고 듣긴 했는데 그, 그냥 혹시나 해서요! 저야 스승님이랑 지내는 게 좋지만 스승님은 가끔씩 외로워 보이셨는걸요.."

"...뭐. 세상 만사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긴 하지. 꽤 기특한 제자구나. 스승이 외로워할 것도 신경 써주다니."

스승님은 그녀를 쓰다듬으며 이쪽을 슬쩍 노려봤고 나는 다시 한번 스승님의 눈을 피했다.

밤에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다면 저런 말을 들어도 스승을 혼자 남겨두고 도망간 제자 입장에서만 찔리는 게 있었을텐데 하필 상황이 상황이라 다른 의미로 해석됐다.

'스승님은 왜 잠꼬대를 그런 걸로 해서..!'

아니 근데 그러면 혹시 오늘이 처음인 것도 아닌 거 아니야?

그러고 보니 피도 안 났던 것 같고 테크닉도 자는 사람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었는데?

잠꼬대가 하루아침에 생겼을 리도 없잖아?

'아, 아니야. 아닐 거야.'

스승님이 혼자 수련하는 동안 외로워서 어쩌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걸 거다.

괜히 상상의 가지를 뻗으려는 뇌를 의도적으로 닫으며 그 이상 괜한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이상 상상하면 위험한 일이 벌어질 거란 걸 본능적으로 느꼈으니까.

"아무튼 스승이라.. 본인이 여기 있었다면 더 수월했겠지만 군사부일체라고 하니 그 정도 연이면 끈이 닿아 있겠지. 한번 해보도록 하마."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전에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아. 한소연 이라고 합니다!"

"음. 그래도 누구랑 다르게 이름은 잘 기억하고 있구나."

-삐죽

나는 또 간접적으로 나를 나무라는 스승님의 말에 입술을 내밀었다.

내가 뭐 기억 못하고 싶어서 못하나.

지구에서의 기억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 몸의 이름이었던 단유성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거지 나도 기억이 있었으면 내 원래 이름으로 썼을 거다.

이제 이 몸에서 하도 오래 살아서 그냥 내 몸처럼 느껴지니 별 상관 없지만.

사실 단유성이라는 이름을 그렇게 자주 쓰는 편도 아니기도 하고.

"그래. 그러면 네 스승이랑 연관된 인물을 한번 읽어 보.."

스승님이 그렇게 말하면서 나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천기를 운용하자 나는 절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생각해보니 여기서 스승님이 검후님의 연애운을 읽으면 내가 등장할 확률이 높았다.

차라리 내가 읽었으면 어떻게 속일 수라도 있었을텐데 스승님이 읽은 천기에서 내가 나와버리면..

[...대체 그동안 속세에서 뭘 한 거냐.]

'히익..'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됐다.

언제까지고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이런 방식으로 까발려지면 변명하기가 너무 힘들어지지 않은가.

안 그래도 검후님이랑 여소천이 돌아오고 더 이상 감출 수가 없게 됐을 때 밝히려고 최대한 스승님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머리를 쥐어 짜가면서 고민 중이었는데 아직은 한참 모자랐다.

하지만 이미 스승님이 천기를 운용하기 시작한 상황.

여기서 내가 나서서 끊으면 괜히 내가 의심을 사게 된다.

결국 지금 내가 기댈 수 있는 존재는 하나 뿐.

'처, 천지신명님.. 어, 어떻게 도움 좀..'

방금 전까지 설명에 나왔던 그 여자였다.

'그, 그동안 많이 돌봐주셨는데 제가 그것도 모르고 그동안 무례하게 했던 거 사과할 테니까 이번 한번만 사람 한 명 살린다 치고.. 아, 앞으로 여소천한테도 더 잘해줄 테니까..'

평소엔 그렇게 욕하던 신한테 이렇게 비굴하게 구는 게 뭔가 어색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었다.

지금까지 나를 알게 모르게 돌봐줬다고 하니까 이번에도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비는 것 뿐.

그리고 그런 내 기도가 통한 걸까.

-파직

"음?"

스승님이 운용하던 천기가 그대로 불발이 나버리며 천기가 순식간에 흩어졌다.

"이상하구나. 갑자기 천기가 흩어졌어."

"서, 설마 스승님이 평생 외롭게.."

"그런 걸 수도 있긴 하지만.. 뭐 천기를 못 읽으면 다른 걸로 봐주면 되겠지. 구체적인 정보까진 몰라도 만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있을 거다."

'사, 살았다!'

아무래도 정말 나서준 것 같았다.

괘씸하다고 안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각오도 했었는데 다행히 아니었다.

'내가 이런 좋은 신을 오해했다니..'

그동안 놀리고 욕했던 게 다 미안해질 정도였다.

알고 보니 이렇게 좋은 신이었는데.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이미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같구나."

"저, 정말요?"

"화산의 도사가 연애를 해도 되는 건진 모르겠지만 뭐.. 본인이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그 여자도 그 정도 분별은 있는 여자일테니."

그리고 덕분에 그 대상이 나라는 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특별히 나를 의심하지 않는 스승님을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지금 들켰으면 안 그래도 신경 쓸 게 많은 상황에 더 큰 폭탄까지 떨어져 머리가 터질 것 같았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어째 계속 미래에 뭘 떠넘기는 느낌이긴 하지만..'

그걸 감당하는 건 미래의 나지 현재의 내가 아니지 않은가.

빚이라는 것도 원래 미래에 그걸 갚을 능력만 된다면 꽤 훌륭한 수단이다.

못 갚으면 그때부터 문제가 되는 거지.

그러니까 지금 이건 복잡한 현재보다 조금 더 여유가 있을 미래에 일을 넘겨두는 현명한 삶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었다.

...라고 믿고 싶었다.

'어째 빚이 점점 늘어나..'

당장 결국 내 결말을 아포칼립스 배경 떡타지로 고정 시켜 놓는 계약이 있었고 그 다음은 이번엔 또 무슨 일을 당할까 걱정되는 천마와의 재회가 있었는데 부인이 3명인 것도 스승님에게 언젠가 밝혀야 한다.

그래도 앞선 2개에 비하면 마지막은 조금 나으니까..

'...낫겠지.'

화산폭발이나 메테오와 파이어볼 정도의 차이였다.

결국 맞으면 전부 죽는다는 건 똑같은 그런 느낌.

'그나저나 여소천이나 검후님은 언제쯤 돌아오려나.'

이쪽에 이만한 난리가 난 걸 알긴 알려나 모르겠다.

본래 계획은 혈교의 이목을 그쪽에 집중 시켜 몰려오게 한 다음에 일망타진 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이쪽으로 온 흡혈귀들의 양을 생각하면 계획은 틀어진 모양이었다.

계산 대로라면 혈교의 숫자 자체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으로 판단됐었으니까.

그러면 이쪽에 병력이 몰린 만큼 그쪽은 오히려 사정이 낫지 않을까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이 뜻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쪽엔 그쪽 나름대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다.

혈교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도 신투의 비고의 이름값은 그만큼 낮지 않았으니까.

물론 이번 일이 중원에 널리 퍼진다면 신투의 비고를 앞에 두고 싸우는 일은 줄어들 것 같지만 중원이 오죽 넓어야지.

이쪽의 정보가 그쪽에 전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이다.

* * *

"...섬서에도 난리가 났었다고 하네요. 예상은 했지만."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

여소천은 날아온 전서구에게 탁자에 올려둔 간식을 던져주며 날아온 편지를 검후에게 건넸다.

"화산이 꽤 큰 피해를 입었다는 거 같은데.. 괜찮아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중원 전체를 휘감을지도 모르는 전쟁의 효시였으니.. 화산이 아니어도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중 누군가는 당했을 거야. 그러니.. 왜 하필 화산이었냐고 불평한다면 그건 곧 다른 이가 당했어야 한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겠지."

"당신 다운 대답이네요."

맞는 말이긴 하지만 참 고지식한 답변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래도 자기가 당했다는 걸 억울해 할만 한데.

-까드득

"...그래도 이번 일로 죽거나 상처입은 동문과 제자들의 원수는 갚아야겠지."

'...인간적인 면모는 있네.'

사실 지금 가장 도움 되는 자세였다.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세계의 마귀들을 이 세상에서 핏물도 남기지 않고 박멸 해버리는 것.

그게 지금 자신들에게 필요한 자세였다.

'...전략은 확실히 밀려.'

그리고 이번 일에서 확신했다.

전략은 확실히 저쪽이 우위였다.

애초에 세작을 심을 수 있는 저쪽과 달리 이쪽은 저쪽에 세작을 넣을 수단도 없고 정보를 얻을 방법이 전무했으니 정보의 차이도 발생하겠지만 고작해야 혈교와 전쟁을 겪어본 정도인 자신과 달리 저쪽은 직접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이자 지휘관이었다.

그것도 수백 년 동안 전장에서 살아온.

그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라도 저쪽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필요한데..

'...그 마녀밖에 없단 말이지.'

그 이세계 출신의 마귀들에 대해 정보를 얻을만한 구석이 그 하얀 마녀밖에 없었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하긴 싫지만 도움을 요청 하더라도 문제였다.

그 마녀가 원하는 것은 그를 그 지옥으로 데려가는 것.

설령 이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그만 자신의 차원으로 데려갈 수 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갈 여자였다.

혼자서 해결 하자니 상대하기 까다로울 것 같고 도움을 요청 하자니 그녀가 요구할게 마음에 걸리는 상황.

"...하아."

우선 이쪽에 있는 일을 끝내고 섬서로 돌아가 그와 만나는 것부터 해야 할 것 같았다.

그 볼이라도 주무르면서 술 한잔 해야 가슴에 쌓인 이 울화가 좀 해결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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